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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22.05.10 조회 2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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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빈_춤in 편집위원

스포츠로서의 춤, 예술에 점수 매기기

스포츠로서의 춤, 예술에 점수 매기기



조형빈_춤in 편집위원



Photo by Nicolas Hoizey on Unsplash


대중화되는 춤‘들’

2021년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형 안에서 춤에게 있어서는 뭔가 특별했던 한해였다. 날이 한창 뜨겁던 여름, Mnet에서 방영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라는 프로그램이 무더운 여름의 날씨처럼 뜨겁게 여러 매체를 달구었기 때문이다. 방송사 Mnet에서 춤을 소재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 <스우파>가 처음은 아니지만(벌써 지금은 10년 가까이 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댄싱9>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스우파>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별했던 요소들은 대중의 관심을 단숨에 '춤'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이 프로그램이 신기하고 또 도드라져보였던 이유는, 아마도 한국의 맥락에서 춤이 가지고 있는/있었던 대중적 위상과 이미지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을 차치하더라도 이 소란스러움은 <댄싱9>이라는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처음 불러일으켰던 '춤의 대중적 확산과 그 가능성'이라는 신기루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춤이라는 것은, 우리가 매일 같이(인스타그램이나 틱톡, 혹은 유튜브에서) 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극장에서 관람할 일이 없는 종류의 예술이기도 했다.

<스우파>의 팬덤과 그것이 불러온 파장(<스우파>는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수상했고, <스우파>에 나왔던 출연진들이 마스터가 되어 후속으로 제작된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가 화제성을 이어나갔다)은 단순히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몰이를 한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같은 방송사는 아니지만 2022년 방영을 시작한 JTBC의 <쇼다운> 역시 커다란 춤의 맥락에서 또다른 춤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장르적으로 <스우파>가 스트릿댄스를 주제로 크루 간에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쇼다운>은 브레이킹(Breaking, 비보잉(B-Boying)이라고도 부른다)이라고 부르는 장르에 집중하여 브레이킹 댄서(Breaker)들과 그 크루들이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배틀'이라는 경쟁의 양상이 이미 내재되어있는 브레이킹의 경우 대결을 펼치는 형태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루기 더없이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게다가 <쇼다운> 출연진의 상당수는 국제적으로 열리는 브레이킹 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수차례 거둔 댄서들로,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브레이킹이 확산되고 크루들이 실제로 우수한 기량을 뽐냈던 그 시절을 통과해온 댄서들로 이루어져있다. 한때 국가에 의해 '문화 아이콘'의 한 종류로 선정되었고, 한국의 '젊은' 이미지 중 하나로 대외 홍보용 미디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춤이 바로 이 브레이킹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실제로 우리가 생활하는 반경 안에서 미디어에 의해 노출되는 '춤'이 얼마나 적은지 놀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조금 독특한 형태로 춤이 대중적으로 다시금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2020년 해외에서는 놀랄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브레이킹을 2024년 파리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최종 채택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는 종합 스포츠 축제로서 올림픽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견고한 행사로 느껴지는 것에 비해, 실제 올림픽이 포함하고 있는 스포츠 종목들은 제법 유연하게 바뀌는 편이다. IOC의 규정에 따르면 올림픽 정식 종목들은 기본 종목 28개에 추가로 개최국이 5개의 종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종목의 인기도와 국제연맹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야구가 2020 도쿄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포함되었다가, 바로 다음 올림픽인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도로 탈락하는 경우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파리 올림픽에 새롭게 정식 종목에 포함하는 4개 종목(브레이킹, 스포츠클라이밍, 스케이트보드, 서핑) 중에 '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국제 메이저 비보잉 대회를 비롯 수많은 비보잉 대회들이 존재하고 있기에 승패를 정하고 경합하는 비보잉이 '메달을 따는' 것은 어색하지 않으나, 춤이 스포츠로서 스포츠의 영역 안에 들어가서 스포츠가 요구하는 '몸' 안에 자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예술'로 인식해왔던 어떤 특정한 형태의 움직임들을 규율화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IOC의 브레이킹 종목 포함 결정은 그것이 예술을 향한(혹은 예술을 포섭하기 위한) 어떤 급진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점점 감소하고 있는 올림픽 경기 시청률과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대중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가 거기서 맞닥뜨리게 될 춤과 몸에 대한 질문들은 예술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자못 흥미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JTBC <쇼다운> 1화 '1:1 에이스 배틀' 윙 vs 매드문, 캡처 이미지(2022년 3월 18 방영)


춤과 스포츠 사이

스포츠는 신체 기술을 사용하거나 향상시키는 경쟁적 신체 활동 혹은 경기의 형태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1) 그리고 거기에는 참가자 혹은 관객의 흥미라는 요소까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와 춤은 동일한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현대에 이르러 춤이 그 형태와 개념을 확장하고 어떤 측면에서 신체를 제거해나가고 있기도 하지만,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서조차도 활용하는 '몸'으로써 우리는 춤의 바탕을 여전히 몸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일종의 '신체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스포츠와 춤은 공통점을 갖는다. 몸을 움직이고, 단련하며, 일종의 신체적 '탁월성'을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스포츠 혹은 춤을 관람할 때 그 물리적 운동성들, 막대한 노력이 투여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경지의 성취들을 목도했을 때 환희를 느낀다. 그리고 때로 그것을 '예술적'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공통점들이 있음에도, 스포츠의 개념에는 춤과 다른 것들이 있다. 바로 '경쟁적 활동'이라는 부분인데, 특히나 신체의 활용을 극대화하여 특정한(혹은 이미 알려진 것을 넘어서는) 기록을 창출해내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참여자들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춤과 다른 지점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대회인 올림픽의 헌장이 아주 잘 말해준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 스포츠는 신체의 능력을 강화하여 인간의 몸이 이제까지 달성해 왔던 것보다 더 빠르고, 높고, 힘차게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춤이 일련의 예술적 성취(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들을 일구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몸의 활동이라면, 스포츠는 확실하게 판별가능한 수치들(시간, 횟수, 승점 등)을 통해 우위를 가리고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몸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포츠와 춤은 각각의 영역에서 그것을 수행하는 수행자와 수행자의 몸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 역시 차이를 보인다. 두 분야 모두 더 나은 기록 혹은 육체적 탁월성을 위해 신체를 단련하지만, 스포츠가 육체와 기술을 훈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수행자 본인의 정신적 고양에 이르는 것까지 목표로 삼는다고 하면, 춤은 훈련을 통해 더 유연하고 활동성 높은 몸을 만듦으로써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둔다. 좀 더 단순화시켜보자면 스포츠가 몸 그 자체(와 정신)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정진한다면, 춤은 몸을 경유해서 궁극적으로는 신체적 탁월성을 통해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에 도달하는 데에 주목한다. 스포츠에서는 몸이 목표인 반면에, 춤에서 몸은 수단이자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이 스포츠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난감함들이 발생한다. 수치화가 불가능한 예술을 점수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누가 이것을 측정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몇 초에 넘었는지 체크하는 초시계를 구입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다. 이렇게 발생하는 난감한 문제, 예술과 탁월함 사이에서의 고민들을 이미 안고 있는 스포츠들이 의외로 이미 올림픽 종목 안에 포함되어 있다. 피겨스케이팅과 체조가 바로 그것들이다.



Photo by 𝓴𝓘𝓡𝓚 𝕝𝔸𝕀 on Unsplash


피겨스케이팅은 스포츠와 예술이 합쳐진 대표적인 신체 활동으로, 특정한 기술들을 선보여 육체의 탁월함을 뽐내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움'을 달성해야 하는 두 가지의 목표를 모두 담고 있는 스포츠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1924년 샤모니 동계올림픽의 종목으로 옮겨간 이후 지금까지 '스포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도 하다. 피겨스케이팅은 대회가 요구하는 정해진 기술을 수행하는 동시에 특정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하기에 이르는, 다른 종목의 스포츠들이 달성해야 하는 '기록' 대신 일종의 점수의 합산을 통해 '평가'받는 방식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다. 특히 경기에서 선수는 음악에 맞춰 스케이팅을 하는데, 결국 실제로 스포츠가 수행되는 과정에 이미 또다른 종류의 예술(음악이라는)이 들어와있는, 일종의 종합예술적 퍼포먼스로 간주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피겨스케이팅의 채점은 선수의 기술에 대해 기본적인 평가를 내리는 기술점(Technical Element Score, TES)과 흔히 '예술 점수'라 불리는 구성점(Program Component Score, PCS)의 합산에 감점 요소들을 더해 이루어지게 된다. 구성점은 스케이팅 기술(Skating Skills), 연결 동작(Transitions), 연기(Perfomance), 안무(Composition), 작품해석(Interpretation of the Music)의 다섯 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진다.2) 구성점의 요소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구성점(PCS)은 선수가 스케이팅을 하는 작품 내내 이루어지는 공연에 대해 심사위원이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다. 기술점(TES)은 구성점(PCS)과 분리된 형태로 다른 심판(테크니컬 패널)들에 의해 10여 가지의 기술들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피겨스케이팅은 명시적으로 기술의 탁월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분리하여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평가 기준이 둘로 나뉘어있음으로써, 선수들은 때로 모순에 부딪히기도 하고 한쪽의 평가가 다른 쪽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기술점을 높이기 위해 큰 난이도의 기술을 완성하는 데에만 몰두한다거나, 혹은 이러한 기술을 실패함으로써 두 가지 평가 모두에서 실패하는 경우들이 그것이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기술점은 선수들이 경기 안에서 시도하는/시도해야하는 기술들을 세세하게 나누어 명기하는데, 이는 스포츠로서 추구하는 육체적/기술적 목표를 예술성과 확연히 구분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제빙상연맹이 제시하는 평가세부기준에 따르면 구성점의 연결 동작 요소에는 다양성이나 난이도가, 연기 요소에는 감정적 몰입이나 스타일의 개성, 안무에는 주제나 통합과 같은 것들이 기준으로서 포함되어있다. 기술점에서 평가하는 기술들만큼이나 '예술성'이 세분화되어있는 것이다.



브레이킹의 경우

그렇다면 2024 파리 올림픽에 새롭게 추가될 브레이킹의 경우는 어떨까?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브레이킹이 예술성을 어떻게 세분화/구체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브레이킹'이 어떤 방식을 통해 겨루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춤의 장르로서의 브레이킹이 상황에 따라(대회에 따라) 인원 구성과 그 형태가 다양한 것에 비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의 브레이킹은 한 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맞상대로 나오는 또 한 명의 선수와 겨루고 퍼포먼스를 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미 공식 종목으로서 브레이킹이 선보여진 것은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하계 유스 올림픽에서였는데, 2018년 유스 올림픽에서 개인 종목과 단체 종목이 함께 치루어진 반면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남녀 개인전이 각각 1개 씩의 금메달을 걸고 치러질 예정이다. 경기 방식을 보면 개인전에서 브레이킹 선수들은 번갈아가며 무대 위로 올라오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결승선에 도달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스스로의 역량과 싸우거나, 트랙을 함께 질주하고 있는 주위의 여러 경쟁자들과 동시에 경쟁하는 방식의 스포츠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신체적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훈련과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은 여타의 스포츠와 다를 것이 없지만, 그 결과가 초시계 위의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오롯이 개인 기량의 완성도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브레이킹은 특수한 성질을 가진다.

더불어 선수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특정한 기술들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기술들이 개인의 역량이나 개성에 따라 변용/변주된다는 점에서 개별 기술에 대한 단일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난점도 가진다. 당연히 하나의 춤 장르로서 브레이킹도 동작과 스텝들을 구분하는 분류들(탑락(Toprock)과 다운락(Downrock), 풋워크(Footwork)나 파워무브(Powermove) 등)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이 규칙에 의해 경기 안에 적절히 배정되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브레이킹의 점수 산정은 기술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예술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개별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움직임들을 어떤 기준에 맞추어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예술성과 창의성을 어떻게 점수화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마주하게끔 한다.(체조에서 특정한 개인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기술(오리지널리티)은 경기 전 국제체조연맹 기술위원회에 해당 동작에 대한 설명과 영상을 제출하여 등재가 완료된 후에 효력을 가진다.)

이런 고민들을 안은 채로 국제댄스스포츠연맹(World DanceSport Federation, WDSF)이 채택한 올림픽 종목 브레이킹의 심사체계인 트리비움 밸류 시스템(Trivium Value System)은 여섯 가지의 세부 지표로 이루어져있다.3) 크게 세 가지 평가 지표인 신체적 특성(The Body: Physical Quality), 해석적 특성(The Soul: Interpretative Quality), 예술적 특성(The Mind: Artistic Quality)으로 나누어지고, 이 평가 지표들이 각각 두 가지씩의 세부 지표를 가진다. 신체적 특성에는 기술(Technique)과 다양성(Variety)이, 해석적 특성에는 표현력(Performativity)과 음악성(Musicality)이, 예술적 특성에는 창의성(Creativity)과 개성(Personality)이 지표로서 담겨있다. 심사위원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이들 항목에 대해 평가를 하고, 이것을 합산한 최종 결과가 선수의 점수로 이어지는 것이다. 각각의 지표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브레이킹의 평가 지표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객관화하기 쉬운 신체적 탁월성(O회의 점프, O만큼의 빠르기 등)보다는 선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표현과 즉흥의 역량을 심사위원이 주관적/추상적으로 평가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사위원에 의한 주관적 평가가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례는 올림픽의 역사 안에서 여러 차례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런 문제의 가능성들을 차치하고 채점 기준만을 보았을 때에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양성(Variety)은 어떤 동작들이 어떤 속도로(혹은 어떤 느낌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 때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창의성(Creativity)의 범주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이며, 척도를 넘어서는 정도의 창의성은 감점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까? 브레이킹에 있어서 표현력(Performativity)은 신체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을 의미할까?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선수 개개인이 가진 예술적 역량을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라는 커다란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정말 예술을 '줄 세울 수' 있는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국내 대회 ‘Breaking K’ 비걸 결승전, Yell 김예리
“[2021 브레이킹K 파이널] 결승전 비보이 & 비걸 TV On-Air버전” 캡쳐 이미지 (2022년 5월 10일 기준 조회수 20,064회)
https://www.youtube.com/watch?v=833UPBOEBsY&t=625s


춤과 몸, 예술에 질문하기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되기 이전에도, 심지어 브레이킹 이외의 춤 장르들에서도 경연(competition)은 언제나 있어왔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지금도 많은 콩쿠르와 대회들이 열리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곳에서 '가장 탁월함'을 인정받는다. 어떤 작품, 혹은 어떤 무용수가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결코 어색한 일은 아니다. 심지어 더 이상 몸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된 현대무용 작품들 사이에서 평가가 이루어질 때조차도 그것은 작동한다. 미술과 같은 다른 장르들은 어떤가? 예술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분야에서 '승자'는 많은 것들을 가져간다. 어떨 때에는 많은 것을 누군가에게 안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승자'를 고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술의 탁월성을 수치화하거나 그것의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맞닥뜨리는 몸과 춤의 국면들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자유로움, 배틀, 즉흥 등의 특성을 가진 춤이 전 세계인에게 공개되는 공정성의 규율 아래 놓이게 되었다. 올림픽 안에서 춤은 어떤 것이 될까? 쿠베르탱이 주창한 올림피즘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다. 예술은 어떻게 연대하고, 어떻게 공정(‘페어’)해질까? 이 말은 우리가 예술이라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개념을 통해 연대할 수 없다거나, 예술 그 자체가 지금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스포츠는 바로 그 '공정성'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일종의 역사적 체계다. 결국 이 질문은 예술이 스포츠의 '몸' 안에 들어갔을 때, 스포츠가 쌓아올린 '공정함의 규율' 안에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는 뜻과도 같다.

아직 많이 거듭되지 않은 스포츠로서, 브레이킹이라는 종목은 앞으로 경험에 의해 그 규칙과 규율을 다듬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더욱 섬세해지는 것은 무엇이고, 삭제되는 것은 무엇이며, 간과되거나 자유롭게 풀어헤쳐지는 것은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라는 역사적 체계가 다듬어가는 몸과 춤에 대한 규칙들은 아마 우리의 현실과 그렇게 동떨어져있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가 빚어내는 몸들은 이미 우리에게 어떤 특정한 형태의 '몸의 우상'들을 제안해 왔기 때문이다.(이 사실은 국가와 종목에 따라, 전문체육인이 아닌 사람들이 올림픽에 국가대표로서 다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우리는 더불어 질문할 수 있다. 어떤 '몸'이 더 예술적인가? 춤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장르로서 정립된 근대 이래, 이 질문은 아주 오랫동안 춤의 곁을 맴돌아 온 질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몸이 탈락되고 어떤 몸이 승리하는지를 결정하는 경연의 묘가 숨어있다. 궁극적으로는 몸과 예술을 선별해내며, 어떤 특정한 형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권력이 예술의 이름으로 '예술들'을 규제해 온 역사가 바로 이 질문에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춤을 보고 어떤 몸을 보는지 그 시선이 정향되는 바는 역사에 의해 움직인다. 그 아래에서 틀에 틈입하고 새로운 구멍을 내는 것은 '몸의 규율'을 되짚어나가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브레이킹이라는 춤이 어떤 '스포츠'가 되어가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바로 거기에서 말이다.



Photo by Ilja Tulit on Unsplash


  1. 1)https://en.wikipedia.org/wiki/Sport
  2. 2)International Skating Union, 「Special Regulations & Technical Rules Single & Pair Skating and Ice Dance」, pp.78-80, 2014.
  3. 3)World DanceSport Federation, 「Rules and Regulations Manual, Breaking」, pp.13-15, 2019
조형빈_춤in 편집위원 공연을 보고 글을 쓴다. 몸과 움직임이 무대 위에서 발생시키는 맥락들에 관심이 있으며, 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가장 최후까지 잠식되지 않는 것으로서의 몸-주체가 예술의 재료가 되었을 때, 거기에서만 드러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다고 믿는다. ‘노동하는 (예술가의) 몸’을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근대성을 뛰어넘는 수단으로서 몸의 ‘정동(affect)’을 다시 들여다보는 중이다. 몇 번의 무용 작업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했다.
rdculousdance@gmail.com
조형빈_춤in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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