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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22.02.10 조회 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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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서커스, 일상적 감각과 지각을 돌파하는 몸들

서커스, 일상적 감각과 지각을 돌파하는 몸들



박다솔_춤in 편집위원



최근 프랑스 무용계에서는 서커스와 서커스의 작동 원리를 적극적으로 포섭해 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커스란 무엇인지 그 역사와 서커스의 작동 원리를 알아봄으로써, 서커스에서 드러나는 몸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극한의 몸이 불러일으키는 감각들

‘서커스’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개인의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만약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감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유사한 대답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놀라운, 극한의, 기상천외한, 말도 안 되는, 경이로운, 환상적인, 아슬아슬한, 긴장감 넘치는 등 일반적으로 서커스를 수식하는 여러 표현들은 어떤 것이 서커스라는 장르로 성립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감각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근 십여 년 전부터, 프랑스 현대무용계에서는 현대 서커스 예술가들을 무용 전용 극장과 축제, 무용 작업에 적극적으로 초청하고 있다. 이는 서커스를 무용의 또 다른 가능성 또는 확장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이기도 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서커스가 일으키는 감각과 지각을 새로운 움직임 표현으로 포섭해오려는 것이기도 하다.


서커스를 수행하는 몸은 일상적인 몸과는 확연히 다른 목표를 갖는다. 이 몸들은 떨어지기 위해 올라가고(차이니즈 폴), 공중에 몸을 던지기 위해 그네를 타며(공중 그네), 무한한 수의 던지고-받기를 꿈꾸고(저글링), 가장 높은 곳에서 최대한 위태롭게 걷길 원한다(외줄 타기, 하이 와이어).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올라가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꼭 잡으며, 일회성 주고-받기에 적응된 일상적인 몸들에겐 사고나 다름없는 이 행위들이 숙련된 신체를 통해 완수됨으로써, 서커스는 그 존재감과 유일성을 획득하게 된다.
중력에 순응하는 몸들은 중력을 거스르거나 버텨내려는 몸들을 보며 새삼 중력에 대해 다시금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커스를 보며 경탄을 내뱉게 되는 것은 이 모든 행위들이 자신의 평범한 몸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극한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의 수행’이라는 의미로 서커스라는 단어를 빌려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거 완전 서커스네.’, ‘서커스 하고 있네.’같은 말들은 우연히 발생된 기이한 형상을 빗댈 뿐, 서커스가 반복된 훈련과 지난한 숙련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는 점을 쉽게 간과한다. 기예에 한해서, 서커스 예술가들에겐 관객 앞에서 우연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관객들에게는 사고나 다름없는 그들의 움직임은, 무한한 반복과 점검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어야 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우연은 사고에 가깝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서커스란 반복된 훈련을 통해 일상적 신체 표현을 뛰어넘는 극한의 움직임을 구사하고, 이로써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새로움을 쫓으며 발전해온, 서커스의 역사

역사적으로 서커스는 새로움을 쫓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어쩌면 그것은 서커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갱신된 감각은 후퇴하지 않는다. 놀라움은 그 다음의 놀라움으로 갱신되어야 하므로, ‘새로움’은 그 노력에 비해 너무 쉽고 빠르게 ‘낡은 것’이 되기도 한다. 이를 비단 서커스만의 딜레마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커스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커스가 이 새로움에 대한 갈구와 필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서커스의 기원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바로 말(馬)이다. 서커스(Circus)라는 단어는 원을 뜻하는 그리스어 Kirkos의 라틴어 표기인데, 고대 로마 시대에 전차 경주를 하던 대형 원형 경기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에 어원을 두고 있다. 서커스를 하나의 예술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지만, 그 기원에는 말과 원형 극장이 있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말을 유려하게 다룬다는 것은 자신의 강건한 육체성을 드러내 신임과 권력을 얻는다는 것을 뜻했고, 대중들은 이에 열광했다. 일례로,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의 전차 경기는 최소 천 년 이상 지속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1 그러나 더 이상 사람들은 말의 경주를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후, 곡마사들은 말을 타며 그 위에서 고난이도의 균형 잡기 묘기를 하는 등 곡마와 곡예를 접목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1768년, 승마 교관 출신인 필립 애슬리(Philip Astely)가 런던에서 곡마·곡예 기술을 공연의 형식을 갖춰 발표했는데, 서커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최초의 근대 서커스의 탄생이라 보고 있다.2 그로부터 5년 뒤인 1773년, 애슬리는 서커스 전용 극장인 애슬리 원형극장(Astley's Amphitheatre)를 개관하며 근대 서커스의 서막을 열게 된다. 이때 애슬리는 극장의 구조와 무대의 사이즈를 곡마를 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설계했는데, 이것이 서커스를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곤 하는 원형극장(혹은 천막극장)의 초기 모습이다. 이러한 형태의 서커스 공연이 성행하자 뒤이어 서커스라는 용어를 최초로 극장의 이름에 사용한 ‘왕립 서커스 극장(Royal Circus Theatre)’이 문을 열었고, 애슬리는 프랑스 파리에 가 ‘애슬리 영국 서커스 원형극장(Amphi theatre anglais d’Astley)‘을 개관하며 서커스를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필립 애슬리(Philip Astley)의 애슬리 원형극장(Astley’s Amphitheatre) 1808-1811
그림출처 artcena.fr/reperes/cirque/focus-cirque/et-lhomme-cheval-crea-le-cirque-moderne

당시 서커스는 서커스 전용 극장의 건립, 상설 공연화 등에 힘입어 대중예술로써 빠르게 자리 매김 했고, 그 이후 공중 곡예나 광대, 저글링, 외발 자전거 등 다양한 곡예가 서커스 극장 안으로 들어와 함께 공연 되면서 완전한 근대 서커스의 형식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고 기이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은 ‘정상성’, ‘탈 일상적 몸’에 대한 오독을 낳기도 했다.
대중에겐 영화 〈위대한 쇼맨〉으로 알려진 인물 P.T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은 대형 서커스 천막과 서커스 단원들을 기차에 싣고 미국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하는 등 서커스의 상업화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흑인, 샴쌍둥이, 알비노, 소인증이나 거인증을 앓는 사람들을 전시하거나 쇼에 세우는 등 유전적 ‘다름’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프릭 쇼(Freak show)를 대대적으로 기획하며 유행시키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후대에 와서야 P.T 바넘을 반인권적 행위를 벌인 인물로 재평가 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당대의 서커스가 제국주의적 시선 아래 다수의 몸과는 ‘다른’ 몸, ‘독자적인’ 몸을 보여줌으로써 장르의 성격을 인정받아 왔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도구로 사유하고 갱신을 거듭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와 서커스

서커스에서 이 ‘다른’ 몸과 ‘독자적인’ 몸은 사람들이 자기 신체를 인지하는 일반적인 감각과 지각을 돌파하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상체를 뒤로 꺾어 종아리와 등이 맞닿게 하는 등의 신체 기예(콘톨션)는 일반적인 신체 가동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다. 인간 탑 쌓기를 하는 기예(핸드 투 핸드)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부모의 어깨에 무등을 탄 기억이나, 운동회 때 협동심을 시험할 요량으로 인간 탑 쌓기를 한 기억이 있을지언정, 단지 서너 명이 서로의 어깨에 올라 길게 탑을 이루는 경험 같은 것은 결코 흔치 않다. 하지만 오로지 맨몸으로만 보편적인 신체 경험을 뛰어 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커스 예술가들은 다양한 도구·기구3 를 자신의 신체와 결합 시키면서 더 많은 수의, 더 다양한 경우의 ‘불가능’을 향해 몸을 던진다.
씨어 휠, 타이트·하이 와이어, 차이니즈 폴, 롤러 볼러, 에어리얼 실크·슬링·로프·후프·스트랩, 티터보드, 트램폴린…, 이 낯선 이름들은 모두 서커스에서 사용하는 도구의 명칭이다. 이 도구들은 각각의 도구마다 회전하기(원심력), 오르내리기(상하운동), 당기거나 당겨지기(장력), 떨어지기(낙하운동), 버티기(중력) 등의 특징정인 운동성을 갖는다. 각각의 도구가 가진 운동성은 신체가 가하는 힘에 의해 드러나게 되고, 도구에 올라 탄 신체는 이 운동성을 활용해 높이, 넓이, 빠르기 등을 변화시키며 도구가 없는 순수한 육체에서는 구현되지 못하는 상상 속 움직임, 불가능한 움직임을 실현 한다.


마튀랑 볼즈(Mathurin Bolze)의 〈Les hauts plateaux〉 공연 사진, 두 개의 트램폴린과 공중의 구조물이 신체 움직임을 변화 시킨다. ⓒBrice Robert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은 인간이 도구의 제작과 함께 진보해왔다는 진화론을 주장하며,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 인간)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그의 진화론에 따르면 호모 파베르의 지성은 유·무형의 도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발휘되고, 경험에 입각한 지성은 더 나은 도구의 발명과 제작을 유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호모 파베르는 이 과정을 통해 개별 존재의 고유성과 자유를 취하게 된다. 예술 세계에서 서커스 아티스트들은 호모 파베르의 진화론을 따른다. 이들은 더 자유롭기 위해 도구를 다루고, 그 도구들은 지성과 경험을 통해 점점 더 발전하는 양상을 띤다.
흥미로운 점은 서커스 세계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존재가 호모 파베르의 지성을 갖춘 관객들이라는 점이다. 서커스 도구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서커스 도구가 인간의 놀이 도구 혹은 놀이 행위를 유발 시키는 주변의 사물들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4. 공중 그네-그네, 차이니즈 폴-나무 타기, 타이트 와이어-담벼락 걷기, 에어리얼 후프-훌라후프, 트램폴린-방방, 에어리얼 슬링-해먹, 디아볼로-요요 등 서커스 도구들은 대체로 인간의 놀이 도구를 원형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 유사-서커스 사물을 경험한 적이 있는 다수의 관객들은 해당 사물이 발생시키는 움직임에 대한 경험을 인지한 채, 즉 호모 파베르의 지성을 갖춘 채 공연을 보게 된다. ‘안다’는 것은 눈앞의 서커스 신체가 직면한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그 위험을 돌파해 승리하는 신체에 대한 경이로움을 갖게 만든다.
반면, 도구의 특성이나 작동 원리가 관객의 지성을 완전히 벗어날 경우, 서커스 신체가 처한 어려움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이때 서커스는 감탄보단 의아함을 양산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현대 서커스에서는 호모 파베르 진화론을 증명하듯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예 도구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유일무이한 도구의 사용은 자기 신체와 존재의 고유성을 증명해낼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 서커스 예술가들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개성을 확립할 방법을 찾고 있기도 하다.



현대 서커스 : 다성적 서커스를 향해

현대 서커스의 출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근대 서커스가 쇠락기를 맞이하던 19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곡마, 프릭쇼, 동물 서커스, 화려한 서커스 기예 및 여러 도구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근대 서커스는 세계경제공황과 함께 맥없이 스러져가기 시작했다. 경제공황의 여파가 있기도 했지만, 실은 근대 서커스의 틀에 박힌 형식 안에서 진화의 한계에 부딪히며 맞이하게 된 몰락이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당시 수많은 곡마단이 폐업을 하고, 서커스 극장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전복시키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서커스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1974년, 프랑스의 광대 아니 프라텔리니(Annie Fratellini)는 근대 서커스의 모습을 지우고 새로운 서커스, 미래의 서커스를 만들기 위해5 파리에 최초의 서커스 학교 ‘아카데미 프라텔리니(Academie Fratellini)’를 설립한다. 이곳에서 프라텔리니는 근대 서커스의 상징인 막간도, 동물도, 사회자도 없는 현대적인 서커스 공연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그가 학교를 설립하고 가장 처음 만든 작품은 서사와 인물이 뚜렷이 존재하는, 연극성이 짙은 공연이었다. 곧이어, 프라텔리니와 마찬가지로 재도약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던 서커스 예술가들이 그와 유사한 시도를 지속해 나갔다. 유명 서커스 단체 ‘태양의 서커스’(1984년 창단)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서사와 인물을 창작하고, 이 이야기를 구현 할 수단으로 거대한 서커스 구조물을 만들어 연출하며 현대 서커스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 받는다.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의 〈Amaluna〉 공연 사진 ⓒCirque du Soleil

한편, 프랑스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국립서커스예술학교(C.N.A.C)를 개관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서커스 거점센터와 서커스 지원 기관을 설립하는 등 국가 주도 하에 서커스의 장(場)을 넓혀 왔다. 그 결과,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서커스 단체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고, 현재 세계 서커스 흐름을 주도하는 중이다.
특히, 프랑스 현대 서커스에서 나타나는 흐름과 현상들은 서커스 교육이 행해지는 현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서커스 학교들은 애초에 기예를 나열하는 방식의 근대 서커스를 지양하고 새로운 서커스 창작법을 탐구하고 이를 공연화 할 목적으로 세워졌으므로, 다양성을 위해 서커스 교육 커리큘럼 안에 연극, 무용, 마임, 음악, 미술 등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교육 과정을 거친 서커스 예술가들은 서커스 창작 현장에서 이것들을 적용하고 활용하면서 점차적으로 자기 스타일을 찾아 나갔다. 국립서커스예술학교의 경우, 학교 내에서 수업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국립현대무용센터, 국립안무센터, 국립연극센터, 국립미술원, 국립음악원 등 국립예술교육기관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 수학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비단 서커스 예술가들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타 장르의 예술가들에게도 서커스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현대 서커스가 근대 서커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 중 하나는, 현대 서커스에서의 예술가들은 서커스라는 장르를 빌어 ‘자기 말하기’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기예는 자기 말하기의 주된 수단이 되지만, 그 표현을 더 입체적으로 또는 더 논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당연히) 서커스가 아닌 표현을 기꺼이 빌려올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다수의 현대 서커스 단체들이 연극적 서사가 주를 이루는 양식을 선택해왔지만, 현재는 더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다성적인 성격을 띠는 공연들이 창작되고 있는 추세이다.
개인적으로 서커스의 미학이라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서커스가 끝없는 경우의 수를 찾아 헤매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서커스는 자신의 신체를 중심으로 표현의 확장을 위해 다른 신체, 다른 도구, 다른 공간, 그리고 다른 장르의 예술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며 그 경우의 수를 늘려 나간다. 각각의 경우의 수 안에서 어떤 극단적 신체를 발현할 수 있을것인가의 문제는 잠깐 미뤄두고, 그 ‘일단의 가능성’을 향해 자기 말하기의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서커스의 감각을 포섭해 가려는 무용계의 움직임

최근 프랑스 현대 무용계는 무척 열성적인 태도로 현대 서커스를 무용의 장(場) 한 가운데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선명하게 포착되기 시작한 것은 무용계 최대 축제 중 하나인 리옹 댄스비엔날레의 예술감독 도미니크 에르비유(Dominique Hervieu)가 일종의 선언을 한 직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미니크는 과거 샤이오 국립극장의 공동 예술감독을 맡던 시절부터 서커스를 기획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등 줄곧 서커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온 바 있다. 그러나 그가 2011년 리옹댄스비엔날레와 무용 전용극장인 메종드라당스(Maison de la Danse)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뒤, 서커스는 무용 무대에 더 자주, 더 많이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도미니크는 2014년 댄스비엔날레를 개최하며 ‘대중적이고 실험적인’이라는 표제 아래 요안 부르죠아(Yoann Bourgeois), 컴퍼니 XY(Compagnie XY), 끌로디오 스텔라토(Claudio Stellato) 등 다수의 서커스 단체와 예술가를 초청했다. 이 외에도 도미니크는 힙합, 플라멩고, 신체극 등의 공연을 소개하며 무용의 다양성과 그 필요에 대해 힘 주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서커스에 대해 ‘서커스 예술가들은 무용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커스는 상상력을 갱신하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형식을 만들어내고, 무엇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도구를 사용해 끝내 안무적 형상을 이룬다.’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의 말을 인용했다 : ‘서커스가 무용보다 더 위험하긴 하지만, 서커스는 무용과 같은 혈통에서 비롯되었다.’6 결국, 서커스와 무용이 수많은 교차점을 가지고 있음을 거듭 피력한 것이다. 실제로 2014년 비엔날레 이후, 도미니크는 더 적극적으로 서커스 아티스트들을 찾아 다녔고, 그들에게 자주 무대를 내어 주며 무용계 안에서 현대 서커스의 영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물론, 도미니크 이전에도 여러 안무가들이 서커스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단편적 이벤트로 치부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서커스가 하나의 경향이 되도록 판을 형성한 경우는 많지 않다. 현재, 여전히 비엔날레와 메종드라당스는 프로그램의 일정 비율 이상을 서커스에 할애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파리의 현대예술축제인 가을축제나 몽펠리에 댄스페스티벌 등으로 재초청 되어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다.
무용계가 서커스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최근 일련의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서도 발견된다. 2018년, 유명 안무가 무라드 메르주키(Mourad Merzouki)는 버티컬 아티스트들과 함께 〈Vertikal〉(수직)이란 작품을 만들어 발표한 뒤 몇 번의 재공연을 했고, 그르노블 국립안무센터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이기도 한 라시드 우람단(Rachid Ouramdane)은 공중곡예와 핸드 투 핸드 서커스 아티스트를 초청해 만든 작품 〈Corps extremes〉(극한의 몸, 2021)을 현대무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한 몽펠리에 댄스페스티벌과 샤이오국립극장의 무대에 올렸다.


라시드 우람단(Rachid Ouramdane) 〈Corps extremes〉(극한의 몸, 2021) 공연 사진 ⓒPascale Cholette

프랑스 무용계가 서커스에 초미의 관심을 두는 이유는 서커스의 몸이 무용의 몸과 달라서가 아니다. 그 육체성은 동일하지만, 서커스를 하는 몸이 일으키는 감각, 관객의 몸에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감각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객은 일반적인 무용 테크닉을 구사하는 무용수의 몸을 보며 긴장감을 느끼거나 그와 함께 호흡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커스 기술을 선보이는 서커스 아티스트의 몸을 볼 땐 머릿속으로 위험 경보를 울리며 아찔함을 느끼고, 숨을 멈추거나 얼굴을 구기며 긴장감을 표출하고,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서커스는 관객들이 자신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행위들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거쳐 가며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다. 관객들이 자신의 몸을 감각하게 만드는 그 몸들을, 무용이 욕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예상하건데, 프랑스에서 서커스의 위상과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미니크 에르비유가 2024 파리 올림픽의 개·폐막 총 예술감독으로 위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파리 올림픽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기획들을 총 집약해 보여줄 것이라 예고했다. 무용과 서커스가 어떤 식으로든 성대한 규모로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마치며

서커스를 하는 몸은 고되다. 단 한 번의 놀라움을 위해 그 몸은 수없이 실패한다. 실패를 거듭해야만, 그 몸은 자기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잔인하게도 서커스에서 무엇이 ‘쉽게 완성됐다.’는 의미는 그것이 아직 신체 극한의 경지를 마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걸 보는 이에게도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커스를 하는 몸은 연신 자신의 신체 능력을 증가 시키며 불가능한 움직임들을 (수없는 실패를 통해) 하나씩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서커스를 하는 몸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움직임과 감각, 지각을 돌파하지 않으면, 관객들은 무기력해진다.
일상성을 돌파해낸 몸들은 숭고하다. 그 몸을 바라보는 눈은 그 육체의 외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이 지나온 시간을 함께 목도한다. 그 반복과 실패를 감히 가늠한다. 그 몸이 무엇과 결합하든, 서커스를 하는 몸을 보며 관객은 자기 자신의 몸을 경유해 그 몸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서커스는 일방적으로 자기 신체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그 너머로 끊임없이 감각을 공유하는, 감각의 상호작용으로서 존재하는 예술인 셈이다.

  1. 1) https://en.wikipedia.org/wiki/Circus_Maximus
  2. 2) 프랑스의 서커스 연구자 파스칼 자콥(Pascal Jacob)은 그의 저서 『La Fabuleuse Histoire du Cirque』(서커스의 찬란한 역사, Edition du Chene 출판, 2002)에서 16세기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서커스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본 글은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읽고 종합된 내용으로 서커스 역사에 대해 갈무리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파스칼 자콥의 책을 근거로 삼고 있음을 밝힌다.
  3. 3) 한국 서커스에서 기예를 실현시키는 사물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기예 도구’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기예 도구의 규모가 크거나 체조 용구와 형태가 유사할 경우, 혹은 도구를 작동 시키는 외부 설비가 있는 경우에 ‘기구’라는 표현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도 오브제, 기구, 기계 등의 다양한 표현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4. 4) ‘놀이’, ‘유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의 특징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서커스가 필연적으로 도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호모 파베르’의 특징이 더욱 부각된다.
  5. 5) 아카데미 프라텔리니 공식 홈페이지https://www.academie-fratellini.com/)
  6. 6) 2014년 리옹댄스비엔날레(La Biennale de la Danse de Lyon) 프로그램북에서 발췌.
박다솔_춤in 편집위원 학부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뒤,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공연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극단, 극장, 축제 등에서 기획자로 활동 했고,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무용평론으로 젊은비평상 가작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의 행위를 바라보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연극, 무용, 거리예술, 서커스에 대해 쓰고, 말한다.
belle.dadasol@gmail.com
박다솔_춤in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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