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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계 다양한 전문가들을 소개합니다.

2020.10.15 조회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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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란 무엇인가

스코어란 무엇인가

웹진 <춤:in> 편집부

일시: 9월 8일 화요일 오후 13시
장소: 서울무용센터 커뮤니티룸
참석자: 최기섭(안무가, 모더레이터), 권령은(안무가), 오민(미술가), 이민경(무용가), 김연임(춤:in 편집장)
왼쪽부터 최기섭, 오민, 이민경, 권령은 ⓒ전영필
왼쪽부터 최기섭, 오민, 이민경, 권령은 ⓒ전영필
김연임: 안녕하세요. 이번 <스코어란 무엇인가> 좌담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스코어’라는 용어를 이곳저곳에서 듣게 되는데요, 굉장히 다양한 맥락과 방식, 용어로 표현되는 듯 싶습니다. 사용하고 있지만, 그 정체가 매우 다채롭고 모호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권령은 안무가님은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DDR을 소재로 전시와 퍼포먼스를 하셨는데, 오픈하자마자 마감되었지요. 코로나19로 인해 퍼포먼스 첫 회를 마치고 미술관이 문을 닫아야 했는데, 볼 기회가 없어 정말 아쉽습니다. 최기섭 안무가님은 이번 권령은 안무가의 작업에 아티스틱 리서치를 함께 하셨고, 준비 중인 본인의 작업에서 스코어를 사용할 예정이라 들었고요. 이민경 안무가님은 최근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하는 <2020 안무렉처시리즈>에서 스코어 워크숍을 진행하셨습니다. 오민 작가님은 2017년에 《스코어 스코어》, 최근작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를 출간하셨고, 현재 플랫폼엘(Platform-L)에서 전시 중이시고요. 여기 계신 분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우리가 ‘스코어’를 해석하시고, 수행하시면서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시는 만큼,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창작 과정에서의 스코어
최기섭: 안녕하세요. 좌담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하게 된 최기섭입니다. 그동안 오민 작가님, 권령은 안무가님, 이민경 안무가님의 작업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작업에 대해 직접 들어볼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대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한 서울국제안무워크숍과 2020 안무렉쳐시리즈에서 스코어를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하시기도 하고, 스코어가 중심이 된 전시와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셨는데요. 최근 진행했던 워크숍 및 작업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민경: 저는 무용에는 보편적인 기록 체계가 없다는 걸 전제로 <안무 창작을 위한 스코어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기록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성공했던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죠. 무용 교육을 받아왔던 저도 그렇고, 주변에 제대로 된 무용 기록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사차원의 공간에서 사물과 시간과 신체의 정보를 압축하여 변환할 수 있는 매체가 비디오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에요. 비디오가 나오는 순간부터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졌고, 지금까지 무용 스코어에 가장 가깝게 활용되고 있는 것도 비디오죠.

저는 제 작업에서 대본을 자주 사용해요. 책에서 나온 말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한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인용과 차용이 늘 들어가요. 어떤 지점에서는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재구성하는 것과 연결되고, 다른 지점에서는 연극적인, 전통적인 극장에서 사용하는 대본과도 같아요. 제가 2013년에 <봄의 제전 (2013)>을 만들었을 때는 <봄의 제전> 원작이 최초로 만들어진 지 백 주년이 됐으니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무대 위에서 어떻게 박물관처럼 그 역사를 전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그렇게 열 개의 작업을 선정해서 춤-배틀 또는 춤-마라톤 형식으로 올리고, 해설자를 두고, 관객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지령들도 포함해서 작품을 구성했어요. 그 과정에는 <봄의 제전>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된, 결국에는 재구성된 것만 남아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죠. 이 맥락에서 <봄의 제전 (2013)>의 주요 스코어는 기록된 비디오였어요. 저희 이전에는 원작을 만들었던 분들이 남겼던 사진, 드로잉, 증언 등을 모아서 재구성한 사람도 있었죠. 그렇게 재구성되고 재창작된 작품들을 다시 저희 작업의 스코어로 들여오며 작업했어요.
오 민: 2017년에 발간했던 《스코어 스코어》라는 책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분들과 스코어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스코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내용을 담고 있어요. 최근 발간된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에는 음악, 영상, 공연으로 이어지는 연작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기록, 즉 악보뿐 아니라 작가 노트와 개념 및 구성에 관한 다이어그램, 크레딧, 사진, 플로어 플랜 등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기록을 스코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코어 스코어》 발간 당시 정리했던 생각들을 실질적으로 작업에 적용하면서 발전시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문석민 작곡가와 <부재자>를 공동 작곡했고, 오선보를 중심으로 악보를 만들었어요. 오선보는 보편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록 체계로 자리 잡았고, 오선보의 발전 덕분에 작곡가들은 대개 악보에 음악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아무리 오선보라도 작품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고 믿지만, 악보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잘 담아 놓는다면 작곡가 없이 악보만 보고도 연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영상 <참석자>를 만들고, 이를 설치하고 상영하는 공연 <초청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중요한 정보를 아무리 정교하게 기록한다 해도 작가 없이 <초청자>를 재공연 하는 것은 어려울 거란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보편적인 소통을 위한 기보법이란 것이 부재할 뿐 아니라, 재 공연될 경우 처음부터 다시 기획되어야 하는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죠.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기록이더라도, 기록은 기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완결과 완성의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해요. <초청자>를 위한 스코어가 완결을 의미하는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할 기록 형식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질문 형태의 스코어를 떠올렸어요. 2017년의 생각에서 가장 발전된 부분이라면, 아마 이 부분일 것 같아요. 제가 작업에서 했던 모든 질문을 기록할 순 없겠지만 최대한 많은 질문을 기록해 두었고, 그 질문들을 책에 스코어로서 수록했습니다.

신작 <412356>를 스코어의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소음과 유사한 소리로 작곡을 할 때, 이를 수행하고 촬영하여 영상으로 완성할 때, 영상에서 나야 할 소리를 라이브로 생성할 때, 각 과정에서 미리 계획했던 미세한 타이밍이 뒤틀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에 따라 스코어 역시 그때마다 재정리 혹은 새롭게 정리되어야 했는데, 이 부분은 작업 초반부터 주요한 연구 주제이기도 했죠. 이제 공연이 끝났으니 그 모든 기록을 하나하나 총 정리 해보려 합니다.
최기섭: 그렇다면 작가님의 작업에서 스코어는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변형을 거듭하면서 영상과 퍼포먼스, 출판 등 작업의 전 과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군요?
오 민: 네. 저에게 스코어는 작업의 전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사고를 명확히 다듬는 동안 필연적으로 또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최기섭, 오민, 이민경, 권령은 ⓒ전영필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스코어1) ⓒ오민
권령은: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하나의 사건>이라는 전시에 <DDR: Dance Demands Rhythm>이라는 작업으로 참여했어요. 이 작업은 DDR 오락기계에 삽입되어있는 화살표 기호를 안무 스코어로 바라보며 시작된 작업이에요. DDR은 기계의 발판 위의 그려진 화살표를 밟으면 춤이 된다는 전제를 가진 게임인데, 음악을 분석해서 화살표라는 기호 체계로 안무를 기록하고 구성한 구조예요. 그리고 DDR의 화살표를 어떻게 밟아야 제대로 된 춤을 출 수 있는지를 다룬 공략집이 있었는데요. 그 책의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화살표를 밟는 행위를 넘어서 리듬을 통해 춤을 추라는 것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춤이라고 하면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타는 걸 떠올리게 되는데, 동시대 무용에서 리듬을 타고 춤을 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해보면서 무용수의 몸에 기록된 리듬들을 관찰해보았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리듬들을 통해 DDR의 화살표를 이행해 보았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무용수들이 스코어의 화살표를 본인의 리듬으로 움직였을 때 주어진 태스크(task)를 수행할 뿐 춤추는 것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저는 그 과정에서 춤을 발견했어요. “그럼 도대체 이 춤은 어디에서 생성된 거지?”라는 질문이 생겼고, 전시 퍼포먼스에서 춤을 의도하지 않은 스코어를 작성하고 무용수는 자신의 리듬으로 스코어를 수행할 뿐 퍼포먼스의 어디에도 춤을 의도하지 않도록 했어요. 그런데도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동안 발견되는 춤을 통해 춤의 위치를 질문해보는 작업을 하게 되었죠.
최기섭: 작업에서 스코어에 접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고 스코어의 형식도 다양해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스코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령은: 저는 이경은 안무가와의 작업을 통해 스코어를 처음으로 접했어요.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임 지시사항들이 나열된 스코어였는데, 작업 과정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 생각되어 이후 제 작업에서도 스코어를 종종 사용하게 되었어요. 초반 작업에서는 스코어를 주제나 형식으로 주목하진 않았고, 오히려 도구로 사용했어요. 스코어를 제작해서 무용수에게 제시한 뒤 그들이 그것을 해석하면서 움직임을 찾아가도록 하기 위해 사용했고 그 과정을 빌드앤브레이크(build&break)라고 불렀어요. 스코어와 무용수의 해석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했죠. 그 이후로 오민 작가님과 《스코어 스코어》 책에 실릴 인터뷰에 참여하며 스코어에 대한 저의 인식과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돌아보게 되었고, 다른 층위로도 관심이 확장되었어요.
이민경: 제가 안무학 대학원을 다닐 때, 첫 6주간의 수업 내용이 자비에르 르 루아(Xavier Le Roy)라는 안무가와 크리스토퍼 바블레(Christophe Wavelet)라는 이론가 두 분과 과거 안무 작업을 재구성하는 것이었어요. 그 작업은 이본 레이너(Yvonne Rainer)의 <CPAD(Continuous Project Altered Daily)>이고, 한국어로는 <날마다 변형되고 계속되는 프로젝트>예요. 저에게 주어진 자료들 일부분은 레이너의 작업노트였고, 어떤 것은 레이너의 작업의 자취를 남긴 책들이었어요. 그 안에는 그림, 사진과 같은 프린트물이 있었고 움직임을 직접 배운 것도 있었어요. 이런 여러 종류의 자료들이 작품 재구성의 스코어로 사용되었죠. 제게 흥미로웠던 자료 중에는 레이너가 저드슨 댄스 시어터(The Judson Dance Theatre)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있어요. 레이너는 작품 안에서 어떻게 무용수와 안무가 사이에서 권력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그에 대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어요. 공연 안에서 무용수들의 선택권을 어떻게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레이너가 쓴 편지 등을 읽으면서, 거칠게 나누어져 있는 자료들을 이해하고 서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어요.
오 민: 저는 2015년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라는 작업을 통해 스코어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연주는 감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아요. 연주하기 위해선 먼저 악보를 보면서 음악의 구조를 분석하고, 음악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이해해야 해요. 그 후에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필요한 소리를 상상하고 그 소리를 내기 위해서 근육과 몸을 디자인하죠.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이는 분명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고전 음악의 경우는, 무대에 올랐을 때 자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해요.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는 이 세 가지 연습 단계를 보컬리스트, 피아니스트, 무술가의 행위에 대응하여 만든 3채널 영상 작업인데, 그 세 가지의 채널의 타임라인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녹화가 끝난 이후 영상 편집 과정에서 직접 이미지와 소리를 보고 들으며 구성해 나갔어요. 영상이 완성된 후, 이 영상대로 공연한다면 영상이 이 공연의 스코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왕 스코어를 만든 김에 오선보로도 기록해두면 좋겠다는 생각했어요. 오선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연주자가 분명 정확한 시간 값으로 기록된 악보에 근거해 쇼팽 소나타를 연주했지만, 그 정보가 연주자의 신체를 통과하여 음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미세하게 뒤틀어진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때 생각과 몸, 사전 기록과 사후 기록, 악보와 무보의 차이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기록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어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는 모차르트가 악보를 당구대 위에 놓고 마치 편지를 쓰듯이 작곡하는 장면이 나와요. 머릿속으로 소리를 떠올리면서 작곡하고 그 소리를 악보로 기록하는 것이죠. 당시 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무엇을 어떻게 언제 기록할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언제 기록했는가가 제작과 수행과 관련한 많은 것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아주 본질적인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스코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무용의 제작 및 수행이 음악과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스코어를 연주자와 창작자를 연결하는 매개체, 혹은 완성된 작품을 담는 저장고로서의 개념으로 인식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저에게 스코어라는 것은, 작품이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어쩌면 시작하기 이전부터 완성된 이후까지 살아 움직이면서 작품의 사고체계를 명확하게 재정립하도록 하는 어떤 것, 작품의 주변에 서식하는 모종의 생물체와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기섭: 세 분의 말씀을 듣다 보니 스코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안무의 과정과 그것을 수행하는 몸 모두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안무란 애초에 춤을 쓰는 기술, 즉 스코어를 남기는 행위로서 출현한 개념입니다. 과거의 안무가 스코어를 통해 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수행하는 몸조차 고정하였다면, 동시대 안무에서 스코어는 자료를 수집하고 재조합하면서 안무적인 방법론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사고 과정을 구조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민 ⓒ전영필
오민 ⓒ전영필
스코어의 범주
최기섭: 그렇다면 스코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것의 범주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안무가들의 작업노트와 스코어를 구분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일까요? 가령 과거에 무용 스코어라 함은 신체적 움직임을 특정한 체계, 즉 기보법에 따라 기호화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시대 스코어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으며, 최소한 무엇이 기록되어야 할까요? 저의 경우, ‘매체’로서의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스코어인지 아닌지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매개하는 것, 즉 중간이라는 함의를 이미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 매체(medium)예요. 퍼포먼스라는 사건 속에서 어떤 작용이 발생하고 전달될 때 스코어가 그 ‘사이’에서 어떤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고 그것이 작품을 둘러싼 환경과 개념들에 긴밀히 연루될 때, 저는 그것을 스코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 민: 작품과 관련된 어떤 기록도 스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단, 작품의 사고 구조가 잘 담긴 기록일수록 의미 있는 스코어가 되겠죠. 악보에서 흥미로운 점은, 악보에는 단순히 연주할 소리 정보뿐 아니라 의외로 그 음악의 사고가 꽤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에요. 작곡가를 영어로 ‘컴포저(composer)’, 즉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양 음악은 ‘음악은 곧 구성’이라는 전통을 딛고 있습니다. 따라서 악보에 담긴 소리의 구성 관계를 잘 분석한다면, 작곡가가 의도한 소리뿐 아니라 음악의 주재료와 전개,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음악이 향하는 의미나 개념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읽는 게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스코어에 무엇을 기록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읽는가, 어디까지 읽어낼 것인가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사고를 투명하게 담을 수 있다고 알려진 악보 역시 한 가지 진리로 수렴되지만은 않아요. 작곡가들은 악보에 한 음악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고 믿으며 악보를 만드는데,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악보를 연주하는 결과물 역시 같아야 하겠죠. 하지만 연주된 소리는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우 다릅니다. 음악 감상에서 연주마다 발생하는 차이를 감상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 없고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차이 속에서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는 무언가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기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유용한 스코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를 작가가 미리 결정해서 기록해 둘 수 있는 것인지, 수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인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스코어란 작품의 사고 체계에 관한 대화를 유도하는 장치라 할 수도 있겠네요.
권령은: 비슷한 질문을 오민 작가님과의 인터뷰에서 받았던 게 기억나네요. 그때 저는 작업 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스코어가 될 수 있다고 답했어요. 삼 년 정도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여전히 같은 입장이고요. 저 같은 경우 스코어를 실천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에, 스코어 자체가 하나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시작으로 퍼포머의 해석이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스코어만으로는 아무런 기능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그것을 퍼포머가 어떻게 해석하고 해독할지에 대한 방법이 필요하죠. 그리고 해독할 수 없는 애매한 스코어라든지 너무나 단단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해석의 여지가 좁은 스코어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스코어의 해독법이 반드시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기섭: 권령은 안무가의 최근 전시 작업은 스코어를 새로 만든 게 아니라 DDR이라는 게임 속에서 스코어를 읽어내었고, 최근 퍼포먼스 작업에서는 좌회전/우회전 등의 경로 표시가 나오는 지도 앱을 스코어로 활용하셨습니다. 이렇듯 권령은 안무가님의 스코어에서 중요한 건,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간에 해석이 개입될 수 있는 틈과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권령은: 전통적인 스코어가 가지고 있는 몰개성과 획일화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해봤을 때, 오히려 저는 스코어를 통해 차이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똑같은 스코어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러한 차이를 흥미롭게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스코어가 매력적인 지점이 있는 듯해요. 그것을 수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확연하게 볼 수 있는 기능적인 도구인 거죠.
이민경: 스코어는 창작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작업을 읽는 해석의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단순한 기록의 방법으로도 사용되는데, 스코어의 용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정보가 다를 것 같아요. 스코어를 많이 사용하는 안무가로는 데보라 헤이(Deborah Hay), 조나단 버로우(Jonathan Burrows),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가 있는데, 그들의 작업에서 스코어는 사적인 창작의 도구임이 분명해요.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고 독립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든 스코어도 있어요. ‘에브리바디스 툴박스(Everybody’s Tool Box)’ 같은 웹사이트는 공적으로 누구나 활용 가능한 스코어들을 담고 있죠. 사적인 도구냐, 이처럼 공적인 도구냐에 따라 스코어에 기록되어야 하는 것, 스코어를 규정하는 규약이 달라질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적일 때에는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사용하는 언어들이 명확해야 할 거예요. 사적일 때에는 창작 작업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어야겠죠.
이민경  ⓒ전영필
이민경 ⓒ전영필
스코어를 위한 방법론
최기섭: 스코어를 만들 때 자신의 모든 작업에 두루 사용되는 특정한 기록 시스템, 즉 자신만의 기보 방법론이 있나요? 아니면 작업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스코어를 만드나요? 이민경 안무가님의 경우 ‘지령’의 형식을 자주 사용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경: 2012년에 발표한 <어느 하루> 작업의 경우 관객들로만 이뤄진 퍼포먼스이자 공연 게임이었는데, 참여 관객들이 현대 예술가 존 케이지(John Cage), 소피 칼(Sophie Calle) 등 특정 역할을 선택하고 스코어에 따라 그 역할을 수행하는 작업이었어요. 이 작업에서 스코어는 게임 설명문과 역할에 따라 주어지는 대본이었는데, 직접적이고 선명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죠. 관객이 하나의 역할을 선택하고 따로 가서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데, 자신의 역할에 주어진 대본에 따라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고 연기하면서 즉흥극이 만들어지는 거죠.
<어느 하루> 스코어 및 현장사진 ⓒ이민경
<어느 하루> 스코어 및 현장사진 ⓒ이민경
오 민: 결과적으로 보면 자주 사용하는 형식이 있는 것 같지만, 그 형식을 의도적으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오히려 좋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 같고요. 거기에 얽매이거나 사고를 제한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영상을 만들 때 사용하는 스토리보드도 스코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작품이며 어떤 장면으로 구성되느냐에 따라 스토리보드를 어떻게 구성할지도 달라져요. 공간 구성이나 조형이 중요하다면 화면 구성이 세밀하게 되어야 할 테고, 정교한 수행이 중요하다면 텍스트가 길어질 수도 있겠죠.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면 타임라인이 세분화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애니매틱 형식을 이용해서 시간을 간단하게나마 구현해 볼 수도 있고요. 어떤 계획을 세밀히 짜야 하는지는 작품마다 달라지니 스코어의 형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한편, 스코어가 저 자신을 위한 것인지, 협업자와 소통을 위한 것인지, 소통한다면 공연자들과 소통하는지 테크니션과 소통하는지, 공연자와 소통한다면 그 공연자가 음악인인지 무용인인지 등의 상황에 따라서도 기록의 형식도 달라져요. 그 외에도 영상인지 공연인지, 생각의 단계인지 실행의 단계인지, 대화를 열기 위한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서 그때그때 형식은 달라지겠죠. 어떤 경우에는 정보 위주, 또 어떤 경우에는 질문 위주로 구성되기도 해요.
권령은: 저도 발레처럼 움직임이 정해진 저만의 움직임 방식이 없기에, 작품마다 적절한 방법들을 고안해서 사용하는 편이에요. 공통으로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지시사항들이 기록되는데 그것은 지시문이거나 기호들이거나 이미지이거나 그것의 해석 방법일 수도 있죠. 그게 어떤 형태이든 기본전제는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무언가예요.
권령은 ⓒ전영필
권령은 ⓒ전영필
스코어의 가시화
최기섭: 그동안 관객들은 공연에서 안무가들의 스코어를 직접 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오늘날 무용 및 퍼포먼스 작업에서는 스코어가 관객에게 드러나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에서 오민 작가님의 스코어는 스크린으로 전시되기도 하고, <봄의 제전 (2013)>에서 이민경 안무가님의 스코어 자료들은 출판 도록으로 출판되었고, <DDR>에서 권령은 안무가님의 스코어는 무대 벽에 부착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창작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어를 작업에서 노출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오 민: 질문을 따라가는 여정이 작업 과정이라고 하면 그 여정에서 수많은 결정이 내려지고 그 결정들의 집합체가 작품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스코어 역시 생산되죠. 때로는 그 스코어 자체가 그 중요한 결정들을 담고 있어요. 예술 작품이 작업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정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결정을 담고 있는 스코어 역시 어떤 면에선 작품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몸과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작품과는 다른 운동성을 지닌 몸들을 시간과 공간 안에 구성한다면, 완성된 작품과는 또 다른 감각을 발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편, 스코어를 책으로 출판한 것은, 공연과 작가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재자>를 작업하는 동안에는 악보만으로 작가 없이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전제했던 것과 다르게, <초청자> 작업 중에는 작가 없이 재공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이중적인 태도를 반추하면서, 스코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작가 없이도 <초청자>를 재공연할 수 있으려면 어떤 스코어를 만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서 책을 엮어 나갔어요. 출판물을 통해 스코어들을 투명하게 노출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결정일지 고민하긴 했는데, 굳이 노출하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찾지 못했어요. 저는 예술이 비밀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민경: 스코어 자체를 결과물로 만든다는 것은 무대 위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소통함으로써 작품 전체의 구조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죠. <봄의 제전 (2013)> 같은 경우는 만든 과정을 공유하는 게 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령과 지문 스코어가 직접 전달되는 공연 게임 작업의 경우에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극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구도를 전환할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코어가 노출되었어요. 결국 별도의 출연자를 없애고 관객이 출연자이자 관람자가 된다면 극적 효과가 훨씬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실험이었죠. 결국 참여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코어가 사용된 경우에요.
권령은: 제가 이번 작업에서 퍼포먼스 스코어를 노출한 첫 번째 이유는 작업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발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두 번째 이유는 무용수들이 너무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이분들이 설령 춤을 추려고 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에게 춤추는 모습으로 매끄럽게 전달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의도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지도 앱을 사용하여 제작한 스코어를 전시실 내부에 공개했어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는 춤을 품고 있는 스코어도 없고 춤을 추는 퍼포머도 없지만, 춤이라는 것이 발생한다면 그곳은 어디인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스코어를 노출했습니다.
	<DDR> ⓒ권령은
<DDR> ⓒ권령은
스코어와 춤
최기섭: 역사적으로 무용 스코어는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났고, 각각의 스코어가 주안점을 두는 요소들도 모두 달랐어요. 이는 결국 춤이란 어떻게 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죠. 여러분들의 스코어는 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오민 작가님은 스스로를 미술작가로 정체화하고 있지만, 자신의 작업에서 구조를 짜고 요소들을 배열, 구성하는 작업의 과정을 일컬어 ‘컴포지션(Composition)’이라고 한다고 본인의 책에 쓰신 바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안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동시대 안무는 구조에 관한 것, 요소들의 배치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또 작가님의 퍼포먼스에서는 유독 무용수가 퍼포머로서 자주 등장해요. 이렇듯 ‘안무’, ‘무용수’와 깊이 연관된다는 점에서 작가님은 춤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오 민: 저는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은, 그것이 음악이든 무용이든 미술이든, ‘시간’, ‘공간’, ‘몸’, ‘움직임’, ‘이미지’, ‘소리’ 간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즉 구성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유사한 창작 행위라 생각해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몸이 움직이면 이미지와 소리가 발생하는데, 이때의 몸은 인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나, 빛, 생각이나 질문을 포함해요. 움직임은 저에게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변화’에 가깝고, 이동 혹은 동작을 전제하지 않는 상태의 변화 역시 포함해요. 정지 역시 움직임에서 배제하지 않는데, 정지한 듯 보인다고 해서 변화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창작 과정과 결과가 소리에 집중되어 있다면 음악이라 불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다면 춤이라 불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겠죠. 물론 이건 명확하게 구별되는 개념은 결코 아닐 거예요. 종종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음악인지 춤인지 미술인지가 결정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 작품 크레딧에 안무 항목이 들어갈 때는 무용계에서 말하는 안무 개념보다 오히려 좁은 의미로 쓰일 수밖에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춤의 정의는 그 범위가 매우 넓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만드는 작품이 춤이 아닐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제 작품을 춤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무용인과 협업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창작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수행은 연습과 경험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편이기에, ‘훈련된 몸’과 작업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작품마다 작품이 요청하는 수행을 잘할 수 있는 훈련된 몸을 초대하려고 노력하는데, 최근에는 그 훈련된 몸이 연주자인지, 무용가인지, 배우인지, 최종 결정의 순간까지 고민하곤 했어요. 결론적으로 무용인이 가장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건 아마 그분들의 근육이 잘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체란 무엇인지, 신체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관해 무용인들이 가장 깊은 연구를 해 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공연하는 것이란 곧 인식하는 것’이라는 생각하고 있어요. 동시대 무용인들은 신체가 작동하는 다양한 환경을 인식하고 수행해 내는 종합적인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민경: 저는 인간 신체의 움직임에만 관심 있는 게 아니에요. 특히 영어에서는 시체도 바디(Body)라고 표현하는데, 무대 위 무용수들을 바디라고 명명하는 게 사람을 감정이나 사고로부터 분리된 몸으로 보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어요. 예를 들어, 고전적인 비극의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고 해도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은 전혀 상관없는 것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몸에 담겨있는 감정과 생각의 움직임을 가장 흥미롭게 생각해요. 생각과 감정이 움직이면 몸의 움직임은 당연히 따라오는 거죠.
최기섭: 감정과 생각의 움직임을 강조하신 게 눈길을 끕니다. 오민 작가님의 경우 움직임이란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변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민경 안무가님이 말씀하신 감정과 생각의 움직임이란 무엇인가요?
이민경: 무용사적으로, 그리고 활동하면서 무용수가 무대에서 소외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무용하는 동안에도 그저 몸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눈으로 보는 관객에게는 어려운 지점이거든요. 한 번은 작업에서 무용수들에게 춤을 추면서 수학 문제를 풀도록 했어요. 수학 문제를 풀 때는 계산을 해야 하니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용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눈에 보이는 신체 움직임의 동시성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장치였죠.
권령은:저는 그 작업에 무용수로 참여했는데, 굉장히 많은 인상을 받았어요. 무대에 서면 나라는 존재와 내가 맡은 역할로서의 나,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으로서의 나, 이렇게 세 가지의 내가 있는데 그 작업에서는 이 셋을 완전히 분리해서 감각하는 것을 경험했죠. 오롯이 나인 순간, 캐릭터도 아니고 페르소나도 아닌 순간에 성냥개비를 떨어트리라고 하고, 권령은으로 존재하는 순간을 관객이 목격하도록 시도했던 게 흥미로웠어요. 무대 위에 내가 나로 존재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었죠.
최기섭: 권령은 안무가님께서 진행하신 서울국제안무워크숍의 제목이 <스코어에 춤이 없다>였어요. 그 제목이 스코어와 춤의 관계에 관한 안무가님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권령은: 예전에는 스코어를 통해 안무를 기록하고, 그 안무가 춤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스코어에 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코어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에 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제목은 그러한 사유 하에 만들어졌고요. 워크숍에서는 안무를 기록한 스코어의 작성과 어떠한 움직임을 의도하지 않은 스코어를 통해 움직임과 춤을 도출하거나 글, 소리, 이미지 등의 매체로 창작될 가능성을 실습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하였어요.
최기섭 ⓒ전영필
최기섭 ⓒ전영필
스코어, 무용수, 저자성
최기섭: 지금까지 스코어와 춤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면, 마지막으로 스코어와 무용수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과거의 스코어가 움직임의 정확한 수행 방식을 지시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스코어는 무용수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열고 있는 듯 보여요. 무용수에 의한 해석과 그로 인해 동반되는 작품의 필연적인 변화는 기존의 스코어가 보증하고 있었던 저자성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스코어는 해석의 자유에 열려 있나요? 그렇다면 그러한 자유로부터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권령은: 작업에서 스코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제가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하거나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런데 스코어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기다리고 관찰하는 것이 저의 일인 것 같아요. 저의 스코어가 무용수에게 전달된 이후부터는 결과물에 대한 이미지를 상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다리는 거죠. 이건 제가 목표했던 무언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코어와 퍼포머라는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제3의 C를 기다리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스코어는 분명히 저자의 무엇이기도 하지만 저의 위치를 뒤바꾸는 듯한 느낌을 주죠.
오 민: ‘해석의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해석’과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제 스코어는 무척 정교하게 구성될 때가 많고, 해석이든 자유든 작품의 콘셉트로부터 벗어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공연자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지는 않아요. 스코어가 완성되어 공연자들에게 전달되기보다는 함께 상의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경우가 많고, 비교적 많은 부분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해도 거기서부터 다시 함께 결정해 나가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을 수 있으니까요. 최근 작품에서는 공연자가 집중해 있는 상태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집중 상태는 개인마다 매우 다른 상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공연자마다 그 상태를 끌어내기 위한 대화가 필요한 편이에요.

9월 5일 발표한 <412356>에선, 공연자가 폴리 아트(Foley art, 영화를 만들 때 영상 편집이 완료된 영상 위에 소리를 후시로 입히는 작업)를 라이브로 수행해야 했어요. 폴리 아트는 원래 장면마다 따로따로 녹음하고 또 녹음 후 편집하여 완성하는 작업인데, 편집 없이 연이은 장면의 폴리를 라이브로 수행한다는 것은 꽤 까다로운 작업이었고, 리허설 과정에서 계획이 계속 업데이트될 수밖에 없었죠. 공연자 중 한 분이 폴리 수행을 하는 동안 특정 신체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건지 영상에 정확히 맞춰 소리를 생성하는 것이 중요한지 물었어요. 저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폴리를 수행하면서 발생하는 집중 상태가 공연자의 신체로 발현되는 것이 공연에서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 상태는 1/25로 쪼개진 1초를 헤아리며 정말로 폴리 작업을 해야만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말씀하신 해석의 자유와 저자성의 관계와 관련해서 코닐리우스 카듀(Cornelius Cardew)의 <논고(Treatise)>라는 작품이 생각났어요. 그 작품은 오선보가 아니라 그래픽 스코어로 작곡되었는데, 연주자들이 악기도 정하고 악보 속 그래픽에 근거해 발생시킬 소리도 결정해야 해요. 마치 저자성을 연주자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면 악보로 돌아와야 하고, 저는 그 과정이 오히려 저자성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는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최기섭: 스코어에 대한 해석의 자유는 일견 저자성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퍼포머의 창조성에 입각한 그만의 단독적인 해석을 안무가가 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저자성을 더욱 견고히 구축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민경: 제가 관객과 작업할 때는 스코어를 통해 관객들로부터 일련의 행위를 발생시키려 하는데, 그들이 맘대로 해석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어요. 제가 원하는 목표에는 선명한 상이 있지만, 그곳으로 관객들을 끌고 오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이들이 선택과 자율성의 발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스코어를 만드는 듯해요.
최기섭: “해석의 자유가 무한정 열릴 수 있는 것이라면 애초에 스코어는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평소에 품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답을 이민경 안무가님의 말에서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민경: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그 질문에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어요. 해석의 자유가 제공하는 자유라는 건 쉬운 자유는 아니거든요. 최초의 조건이 있었을 때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면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에, 스코어 역시 그렇게 활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오 민: 작품의 콘셉트나 아이디어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초기에 수행에 관한 방향을 설정해둔다고 해도, 실제로 수행하는 공연자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방향을 계속 재설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권령은: 그래서 안무가로서 누구랑 일하기를 선택하느냐고 한다면 기능적으로 우수한 사람이 아니라 취향이나 가치관, 어떤 경험을 한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고를 공유할지도 매우 중요한 것 같고요.
최기섭: 이민경 안무가님이 자유에 대해 말씀하실 때 즉흥을 하는 상황을 떠올렸어요. 자유롭게 즉흥으로 춤을 추라고 하면 저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오히려 몇 개의 선택지가 있어서 조합의 방식을 생각할 때 즉흥을 하는 게 훨씬 자유로워지죠. 그런 맥락에서 스코어라는 건 어떤 선택지의 역할을 함으로써 춤추는 몸의 자율성과도 관계 맺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 민: 저는 즉흥이라고 해서 그 안에 계획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즉흥을 기본으로 하는 재즈도, 우선으로 주어진 주재료로부터 출발해서 즉흥적으로 주재료와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거든요. 재즈 연주를 면밀하게 듣는다면 그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즉흥적으로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결국 어떤 음악을 구성하는지를 읽을 수 있어요. 즉흥을 하기 위해선 오히려 더 많은 계획과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권령은: 저는 즉흥을 통해 누군가의 습관적 패턴을 자주 목격하곤 해요. 스코어를 활용하는 좋은 방법들 중 하나가 습관에 의한 선택을 견제할 수 있는 용도인데 스코어를 통해 몸의 자율성을 방해함으로써 익숙함이라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즉흥에서 스코어는 안정된 선택의 틀을 제공함으로써 집중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해주거나 낯선 상황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예상 밖의 고유한 것들을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스코어 자체가 제공하는 자유도 정해진 틀 안에서의 자유로움이기 때문에 결국 그 틀의 경계는 분명히 있는 것 같네요.
최기섭: 긴 시간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스코어의 다양한 양상과 스코어에 대한 창작자의 생각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스코어는 창작자의 사유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무용수, 관객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가 되고, 안무, 저자, 해석, 인식, 주체성 등 동시대 무용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주요 개념들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독자들은 스코어란 무엇인지, 스코어에는 무엇이 기록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연임: 대화를 지켜보며 스코어의 그 변화무쌍함이 인상적이네요. 스코어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낸 이들의 의지와 욕망도 상상해 보는 시간이 되었고요.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의 작업도 응원하겠습니다.
왼쪽부터 이민경, 권령은, 김연임, 최기섭, 오민 ⓒ전영필
왼쪽부터 이민경, 권령은, 김연임, 최기섭, 오민 ⓒ전영필
정리. 웹진<춤:in> 에디터 이주연
  1. 1)
    사진1. <부재자> ‘케빈’, 주제
        초안: 오민
        편집: 문석민, 오민
        최종 드로잉: 오민
        최종 업데이트: 2020년 4월 14일
    사진2. <부재자> ‘케빈’, 주제 듣기
        초안, 편집, 최종 드로잉: 오민
        최종 업데이트: 2020년 4월 14일
    사진3. <부재자> ‘나탈리’, 안무, 문석민의 답
        초안: 문석민
        최종 드로잉: 오민
        최종 업데이트: 2020년 4월 25일
    사진4. <초청자> 플로어 플랜
        초안: 오민
        발전: 심우섭, 오민, 이신실, 장태순, 조형준, 홍초선, 황다솜
        편집, 최종 드로잉: 오민
        최종 업데이트: 2020년 4월 23일
권령은_안무가, 무용수, 퍼포머 권령은은 단체 영리한 땅의 구성원으로 공연예술, 교육, 워크숍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 민_미술가 오민은 피아노 연주와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미술, 음악, 무용의 교차점, 그리고 영상과 공연이 만나는 접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을 주시하며 작업하고 있다.
이민경_무용가, 공연예술가 이민경은ㅤ뉴질랜드와ㅤ유럽, 최근ㅤ한국에서ㅤ작업을 해왔다. 극 속 실시간 실험 및 공연 게임 등의 공연 형식들을 실험, 발명하며 이념의 심미적 기능, 무대를 둘러싼 배우와 관객의 역할과 경험,ㅤ예술가로ㅤ존재하기 위한 조건 등에 관한 수행적 프로젝트들을 벌여왔다. 최근작으로 기후 위기에 관한 담론을 안무적으로 접근한 <피리부는 사람들>(2019), 협업과 콜렉티브에 관한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2020), 공동체와 은거의 경험에 관해 쓴 에세이 <What community, what solitude>(2020) 등이 있다.
최기섭_안무가 최기섭은 프로젝트 이인의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공연예술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동시대 안무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춤의 미적 현재성을 질문하는 공연을 만들고 글을 쓴다.
웹진<춤:in> 편집부 웹진<춤: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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