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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0.14 조회 6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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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무도>, 오늘의 전통을 보다

김지영_한국체육대학교 연구교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한가위 연휴를 만끽하며 소소하게 즐길 거리를 찾고자 할 때, 마침 서울남산국악당과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전국 팔도에 흩어져 있던 탈판에서 잘 알려진 캐릭터 춤만 뽑아서 가장 핫한 젊은 탈춤꾼들과 제대로 된 한 마당 <가장무도-숨김과 드러냄>을 준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전통탈춤의 대중화와 현대적 계승을 위해 지역성을 지닌 탈, 움직임, 장단, 재담, 춤으로 동시대와 호흡한다. 천하제일탈공작소에 속한 ?젊은 탈춤꾼 모두 국가무형문화재를 이수하거나 전수한 사람들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전통탈춤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탈춤은 웬만하면 누구나 출 수 있었기에, 탈춤 한 자락을 출 줄 알아야 대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낙양동천 이화정~” 익숙하지만 낯선 전통예술인 탈춤은 그 당시엔 지금 유행하는 스트리트 댄스와 비슷한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마당놀이형식인 탈춤은 탈춤꾼과 상호보완 관계를 지닌 구경꾼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연희적 특징이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둘러앉는 판의 구조에서 탈춤꾼과 구경꾼이 하나로 연결되는 협화적 동질감을 유발한다. 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극에 개입하는 탈춤은 열린 공간에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춤이다. 제의적 상징과 일상 공간을 또 다른 축제의 시공간으로 전복시키는 이중구조를 지닌다.
탈춤은 신분차별, 종교의 부패, 민중생활의 실상, 남녀 간의 대립과 갈등 표현 등 민중사회에 내재해 있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모순과 주요갈등을 춤과 재담 그리고 유희적 탈의 조형성으로 표현한다. 또한, 양반에 대한 모욕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한 명의 남편과 처첩의 삼각관계에서 오는 가정비극, 축사연상(逐邪延祥)의 축원무로 저항성·민중성·제의성·축제성·놀이성 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렇듯 탈춤은 풍자적으로 드러내어 해소하고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 마을의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흥과 신명으로 한이 맺힌 액을 풀고, 평소 억압당했고 불편부당했던 것을 탈춤을 통해 분출하고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놀이를 구체화하여 탈춤꾼과 구경꾼의 갈등구조를 춤으로 치유하는 풀이 문화의 회복이자, 일체감을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정서를 현실에 되돌려 놓는 삶에서 축제로의 이행이다. 한국 풀이문화의 신명은 단순히 놀이나 예술이라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의 중요한 정신적 바탕이 되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가장무도-숨김과 드러냄>은 탈춤꾼 각자의 해석을 더한 새로운 시선으로 전통탈춤의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되었고, 봉산탈춤의 ‘먹중춤’, 가산오광대의 ‘할미춤’, 고성오광대의 ‘문둥북춤’, 양주별산대의 ‘연잎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이매마당’ 그리고 북청사자놀음의 ‘꼽추춤’과 ‘북청사자춤’으로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아 신명으로 풀어낸 한 판의 기운생동(氣韻生動)한 탈춤들로 구성되었다.
봉산탈춤 먹중춤 ⓒ천하제일탈공작소
첫 번째 무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중 ‘먹중춤’을 박인수를 주축으로 팔목중을 춘다. 봉산탈춤은 해서지역의 대표적 춤으로 산대놀이의 춤보다는 힘이 있고 활기차다. 팔목중의 춤사위는 씩씩하고 활달하여 민중들의 신명과 흥을 돋우는 데에 큰 역할을 하며 한삼을 휘감았다가 경쾌하게 흩뿌리면서 두 팔을 크게 뻗어 굽히는 빠른 팔사위는 활달하다. 또한, 다리를 땅에 딛고 솟아오르는 답지저앙(踏地低昻) 굴신의 힘은 이 춤의 가진 큰 맛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대화가 되면서 논과 들판에서 보이던 굴곡진 호흡들이 점차 사라지고 아스팔트와 고무판에 매여진 발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움틀 거리고 생동하는 힘이 반감되었다. 사실, 이 목중춤은 춤폭이 어느 춤보다도 너르고 크다. 거기에 어깻짓이나 고갯짓을 함께하며 도무를 절정으로 돋우어 억압되었던 민중의 감정과 반항의식을 표현하며 폭발적인 힘을 발산하므로 탈춤꾼와 구경꾼이 완전히 일체가 되는 신명을 느끼게 되는 춤이다. 탈춤은 옛 농경문화의 공동체 생활에서 비롯된 공동체적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의 춤으로, 춤사위의 역동성으로 보는 사람이나 추는 사람 모두가 혼연일체 된다. 심리적인 해방감과 더불어 집단적인 꿈의 실현, 그리고 새로운 삶의 희망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신명의 춤인 것이다.
가산오광대 할미춤 ⓒ천하제일탈공작소
두 번째 무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3호 가산오광대 중 ‘할미춤’으로, 할미에게 가해지는 영감의 횡포를 보여줌으로써 공분(共分)을 느끼며 억척 어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우리네 옛 여인들의 ‘관용(寬容)’이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서를 대변하며 인륜(人倫)을 회복(回復)하고 공동의 유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탈춤꾼의 소망(所望)이나 한(限)과 분노는 공동의 것이므로 같이 웃고 같이 울며 함께 느끼며 일체감을 형성하고 ‘공동의 카타르시스’와 ‘공동의 신명(神明)’을 맛보게 하여 공감대를 형성한다.
북청사자놀음 꼽추춤 ⓒ천하제일탈공작소
고성오광대 문둥북춤 ⓒ천하제일탈공작소
다음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중 ‘꼽추춤’과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중 ‘문둥북춤’이다. 이 춤은 내면의 고통과 절망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웃음으로 눈물 닦는 한국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어 <가장무도-숨김과 드러냄>의 강렬한 대표 레퍼토리가 되리라 생각된다. ‘꼽추춤’의 박인선은 탈 속 민낯을 드러내며, “숨김과 드러냄”, “새로운 시선과 마주한다”라는 기획 의도와 걸맞게 탈춤꾼의 현대성을 획득한다. 탈춤의 연희에서는 유희적이고 조형적인 탈이 사용되어 캐릭터가 쉽게 부여되었다. 현대에는 탈의 역할극이 소멸하면서 캐릭터로의 이입이 더욱 극대화되는 실정인데, 박인선은 이를 주목하고 있다. ‘문둥북춤’은 문둥이 내면의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고 이겨내어 끝끝내 신명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대사 없이 온몸으로만 표현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문둥병의 고통을 딛고 다시금 일어나는 신명은 탈춤꾼 만의 것이 아니라 탈판에 모여든 모든 구경꾼에게 확산된다. 그리고 천하제일탈공작소 대표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이수자 허창열의 춤에서는 민중의 아픔을 대변해 주는 탈꾼들의 맺고 풀고 어르며 배기는 춤사위와 우리네 인생사의 매듭과 고리로 풀어내는 해원(解怨)의 살풀이를 엿볼 수 있다.
양주별산대놀이 연잎춤 ⓒ천하제일탈공작소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별산대 중 ‘연잎춤’은 부정한 세력을 쫓는 벽사진경의 춤으로 사방을 향해 치는 멍석말이춤, 바람을 일으켜 도는 연풍대춤, 묵직함의 거드름춤이나 경쾌한 깨끼춤 등 다양한 춤사위가 있다. 황해도 탈춤 기운생동의 활달한 춤과는 비교되는 산대놀이춤으로, 경쾌하고 섬세한 경기인의 기질과 우아한 궁중춤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춤사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른 탈춤에 비해 무용사적 전형성으로 계승된 양주별산대는 예술의 형식을 빌어 시대를 풍자한 탈놀음으로 우리 민족예술을 대변하는 데에 손색이 없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매마당 ⓒ천하제일탈공작소
다음은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중 ‘이매마당’이다. 턱이 없고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절름발이의 신체적 결함과 지적 능력의 결함을 가지고 있어 바보스러운 인물로 간주되는 이매는 타고난 장애와 비웃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웃음으로 승화하고 치유케 하는 민중적 정서에 부합되는 병신춤 중 하나이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내는 이매마당은 제도의 문란상을 폭로하고 비판하며 갈등을 표출하고, 바보스러운 이매로 화해 국면을 표현한다.
북청사자놀음 사자춤 ⓒ천하제일탈공작소
마지막 무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중 ‘북청사자춤’으로 정월대보름에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행해졌던 민속놀이로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진경(辟邪進慶)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안과태평(安過太平)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춤은 제의성과 함께 탈춤의 연극적 요소와 사자춤의 곡예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사자춤이라는 독특한 형태미와 인간과 신이 공존하고 있다는 민족제의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묘기와 흥겨움에 집중하고 놀이화, 곡예화, 예술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탈놀이라고 하지 않고 탈춤이라고 한 이유는 그만큼 춤의 요소가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탈춤의 본질을 꿰뚫어 ‘춤’에 초점을 둔 <가장무도-숨김과 드러냄>은 “탈춤의 새로운 시선”이라는 반짝이는 기획 의도로 서울남산국악당과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시도했음에 그치지 않고 주요 레퍼토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의 전승, 보존, 보급, 계승, 발전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무용계에서 전통춤의 현대적 수용을 이야기했던 길을 되짚어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한 판으로 만든 무대를 새롭게 연출할 대안은 없는가 또는 춤에 주목하다가 놓친 연희적 요소의 놀이성, 축제성, 치유성 등 신명 풀이문화를 버리고 무대화에만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장무도-숨김과 드러냄>이 구경꾼과 탈춤꾼 간의 수평적 관계와 예술로 공동체적인 관심을 유도하고 현장성의 신명을 이끌어낸 것과 현대적 감성으로 해석된 탈춤들이 살아 생동하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공연으로 적절하게 줄타기하는 ‘천하제일 탈춤꾼들의 무도회’였다는 사실이다.

김지영_한국체육대학교 연구교수 춤을 좋아하고 춤 작업을 업으로 삼은 한국춤 전공자로 한국문화와 한국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2년 전부터 무형문화재춤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지영_한국체육대학교 연구교수 춤을 좋아하고 춤 작업을 업으로 삼은 한국춤 전공자로 한국문화와 한국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2년 전부터 무형문화재춤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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