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줌아웃 - 프/리뷰

제작 과정, 쇼케이스, 워크숍, 오디션, 경연대회 등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2019.09.16 조회 348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복사
  • 프린트

관객은 감상합니다.

관객은 감상합니다.
- 넷플릭스와 유튜브 시대의 관객

해시테그 당근_관객반응연구자

ⓒANIMA
이 작품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미 늦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 영상을 본 것은 약 2달 전인 7월이다. 음악, 뮤직비디오, 영상, 댄스 비디오, 라디오시네마… 혹은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기에 그저 ‘작업’이라고 말하려는 이 영상은 공식적으로 ‘영화’로 분류되어 있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프론트맨 톰 요크(Thom Yorke)의 새 음반 <Anima>에 수록된 세 곡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연출은 영화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이 맡았다.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일상에서 영상은 출발한다. 이른 아침 지하철에 탄 톰 요크는 기계적이고 정밀하게 몸을 비틀고 굽히는 노동자들과 함께 실용적인 움직임으로 채워진 출근길에 나선다. 지하철에서 시작하여, 터널, 숲, 동굴, 기울어진 화이트박스 등으로 이동하는 공간에서 음악과 함께 흔들리는 것은 배우가 아닌 무용수들이다. 디스토피아(Dystopia)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싱어송라이터 톰 요크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춘다. 안무는 다미엔 자렛(Damien Jalet). 앨범 <ANIMA>를 발표하기 전, 그는 다미엔에게 앨범에 수록된 몇 곡을 안무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내며 ‘더는 몸이 작동하지 않는 노동자들과 사람들,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나는 집단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NETFLIX
아니, 아니. 작업의 영화적 특성 혹은 댄스의 개성을 논하거나 분류하는 것은 이 글의 역할이 아니지. 여기서는 <ANIMA>가 넷플릭스에서 ‘개봉’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도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선 끊임없이 댄스, 무용, 춤, 움직임 외에 ‘안무적이거나 움직임적’인 것들을 다루거나, 이와 연결될 수 있는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무용 작업의 아카이빙이거나 축제나 공연의 예고편이 아니다. 극장-공연, 어쩌면 무용과도 관계없는 ‘무용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용계의 확장? 무용의 다변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단순히 현상이 아닌 현실이며,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 예상되는 지금, ‘도대체 무용은 누가 보는 거야?’ 혹은 ‘대체 무용은 누가 하는 거야?’라는 우려 섞인 질문은 이제 우문(愚問)이 아닌가. 이 흐름을 생산과 소비의 관계로 읽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부적절하다. 그것보다는 무용(춤)이 영상 매체에 새로운 방식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시대 무용 관객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관극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편이 낫다.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도 활발해지기 시작한 댄스필름도 무용 관극의 방식을 확장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국내외의 댄스필름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실험영화제, 여성영화제 등 여타 영화제의 출품작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됐다. 새로운 관객들은 ‘감상’의 베테랑들인 반면, ‘관극’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규칙보다는 자유로움에 친숙하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감상자는 시간과 장소, 속도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고, 관극의 경험을 ‘제공하는 대로’가 아니라 ‘보려는 대로’ 가져갈 수 있다. 일부 공연에서 관객참여형, 이머시브, 이동 등의 방식으로 관객을 작품에 연루시킨다고 하여도 그것은 연출(공연)의 일부로 기능하는 달라진 관극 체험이지, 감상자에게 새로운 위치를 주지 못한다.

ⓒNETFLIX
언젠가 한 작업자가 공연에 관해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대에서 뭘 하든 관객은 봐주더라고요.” 한 사람으로서는 무척 동의하는 말이지만, 작품을 봤던 관객으로서는 약간 불쾌할 수밖에 없다. 내내 괴로웠지만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유튜브나 넷플릭스라는 무대에서 ‘뭘 하든 봐주는’ 관객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반기 어떤 무용 작업들이 영상 매체로, 영상 플랫폼을 통해 ‘개봉’(개막이 아니다)될 것인가. 우리는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는 동시에 더 냉정한 관객을 얻을 것이며, 이들의 요청은 전과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관객’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기억하자.
해시테그 당근_관객반응연구자 관객의 존재와 습성에 관심을 갖고 염탐, 탐방, 말 걸기 등을 통해 관객을 연구하고 있다.


목록

댓글 0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