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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아웃 - 프/리뷰

제작 과정, 쇼케이스, 워크숍, 오디션, 경연대회 등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2019.08.16 조회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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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웹진<춤:in>은 2018년에 진행했던 ‘떵샤와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코너를 2019년 5월, 8월, 11월 총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무용을 전공한 필자가 다양한 관객과 함께 무용공연을 본 뒤 서로 다른 생각과 시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공상물리적 춤>

떵샤(윤상은)_안무가

같이 보러 간 사람들

양희지

텍스트를 통한 순수예술작업을 꽤 오래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지만, 의외로 조직형 인간이라 (인)문학적 재능은 일하는 데에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빡센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일하는 시간은 무역왕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지만, 실상은 아름다운 것들에 몹시 취약하고 예술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게으른 탐미주의자. 그 이중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번다. 내 고양이를 위해서도!

전원배

희곡을 쓰는 연출가 지망생이다. 다 보고 ‘아 그냥 집에 못 들어가겠다’하고, 공연히 동네 한 바퀴를 돌게 만든 공연이 있었다. 이후 나도 저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습작하고 있다.

공연을 보러 가는 마음
떵샤: 이번에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를 연재하면서 무용을 처음 보시는 분들의 감상도 신선하지만, 무용을 이미 열정적으로 향유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걸 발견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서였어요. 희지님은 제 발레 수업을 오래 들으셨기에 발레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원배님은 서울무용센터에서 하는 안무 워크숍에서 항상 마주치는 분이어서 궁금했어요. 오늘 본 공연과 무용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시작할게요. 오늘 공연장 오는 길에 어떤 걸 봤고, 어떤 걸 생각하면서 오셨나요?
원배: 무슨 수업 같네요. (웃음)
희지: 저는 여기 성수아트센터로 오는 길이 오늘 처음이어서요. 찾기 쉽지 않아서 아예 집에서부터 택시를 탔어요. 오늘 주말이고 비가 와서 길이 막힐까 봐 불안했는데 다행히 잘 왔네요. 오늘 이 좌담을 제안 받았을 때, 공연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가려고 작품 내용을 읽어 봤는데, 주제의식도 잘 모르겠고 내용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티켓도 초대권으로 주셨고 뭔가 배려에 부응하는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좀 됐어요.
떵샤: 희지님 평소에는 발레 공연을 많이 보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땐 어떤 마음으로 가세요?
희지: 아주 크리티컬한 마음으로 가죠. 굉장히 냉정한 시각을 가지고 가요. 발레를 워낙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서 엄격하니까요. 최근에 성남아트센터에서 했던 ‘발레 오브 썸머 나잇’에 마리아넬라 누네즈(로얄발레단 수석무용수) 공연도 갔다 왔어요. 사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일정한 주기로 정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럴 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요. 항상. 아름다운 것 말고는 정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발레를 좋아하게 됐어요. 발레 보러 갈 때는 옷차림도 상당히 힘을 주고 가는 편이에요.
원배: 발레 보러 가는 것을 ‘중요한 일’로 생각하시나 보네요.
희지: 네. 그럴 수 있어요. 그렇기에 그에 상응하는 공연 준비나 무용수의 컨디션,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이 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못 참기도 하죠. 대놓고 컴플레인 하지는 않지만, 정말 아니다 싶으면 표정부터 확 티가 나는 편이에요. 현대무용 공연도 좋아하는데요. 제가 주로 봤던 게 국립현대무용단 아니면 LDP무용단 공연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오늘 공연에 대해서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좋은 느낌으로요.
떵샤: 원배님은 오는 길에 어떠셨어요?
원배: 저는 지하철 타고 왔고요. 평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비가 와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왔어요. 그래서 좀 낯선 공간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공기가 계속 습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공연을 보고 나오니 저녁이 되었고 날씨도 선선해져서 기분이 좋아진 것 같고요.
떵샤: 혹시 이 공연에 대한 기대 같은 게 있으셨어요?
원배: 저는 사실 공연을 보러 갈 때 언제나 기대를 안 하려고 노력해요. 이건 저만의 규칙 같은 거예요. 물론 공연에 아는 분도 있고 보통 이런 색깔로 하시는 것 같다고 대충 예상은 되지만, 그냥 가볍게 보러 왔어요.
떵샤: 평소에 공연 많이 보러 다니세요?
원배: 무용도 많이 보고, 연극도 많이 보는데요. 작은 공연 위주로 많이 보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신인 안무가나 신인 연출가의 작품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레퍼토리 공연 보다는 창작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녀요.
떵샤: 아무래도 본인이 희곡을 쓰시다 보니까 리서치도 할 겸.
원배: 네네, 그리고 또 대체로 제대로 잘 만들어진 공연은 티켓 값이 비싸서요. 일부러 가리는 게 아니라. (웃음)

어린이의 웃음이 들리고 무용수의 얼굴이 보이는 무대
떵샤: 본격적으로 공연 이야기를 해볼까요?
희지: 처음에는 공연 사전 정보가 별로 없고, 읽어봐도 콘셉트가 뭔지 잘 모르겠고 해서 걱정했는데, 일단은 너무 좋았어요.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객석에 아이들이 앉아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처음에는 아이들 소리가 배경음악에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앉은키가 제각각이었고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그동안 클래식발레 공연에서나, 컨템포러리 공연에서 아이들을 동반하여 관람하는 공연은 본 적이 없거든요. 특히 전막 공연은 길기도 하고 제한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기에 쉬운 공연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공연에는 아이들이 많고, 가족 동반으로 왔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어요. 편견이겠지만 저는 현대무용을 어른들이 보기에도 굉장히 난해하고 전위적인 장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무용을 전공한 사람들만 보러 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았어요. 발레는 그 자체로 예쁘고 아름다운 팬시한 느낌 때문에 보통 사람도 갈 수가 있지만, 현대무용은 철학적이고 움직임도 낯설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공연에 아이들이 와서 즐기는 게 신선했어요. 또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현대무용의 움직임은 정말 세련되고 도회적인 느낌이었고, 무용수들의 피지컬 자체도 엄선된 느낌이었는데, 오늘 공연의 움직임들이 굉장히 친숙한 거예요. 무용수들의 피지컬도 익숙하고 위화감이 없었고, 의상도 추리닝바지를 입고하니까 거리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칫 이런 작업이 유치해질 수 있잖아요. 저는 전문 무용수에게 바라는 ‘낯설게 하기’가 배제되면 또 싫거든요. ‘나도 할 수 있겠네’ 수준의 공연을 돈 주고 보고 싶진 않아요. 그런데 이 공연에는 그런 밸런스가 좋았어요. 친숙하면서도 유치하지 않고, 웃음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끌어내는 게.
희지: 무용수 각자의 개인기도 놀라웠어요. 제가 무용수라면 그렇게 소리 내면서 움직이는 게 쑥스러워서 못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겹치지 않는 자신만의 다양한 소리, 마임, 움직임을 연구해서 했다는 게 놀라웠고, 끼가 많다고 느꼈어요. 좀 엉뚱한 생각인데, 내가 만약 저기 무대 위의 무용수라면 내 순서를 기다리면서 동료 무용수가 하는 개인기를 바라볼 때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앞 사람이 호응도가 좋았는데, 내 차례에서는 좀 그렇다면…. 물론 하시는 분들은 숨도 차고, 자신의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가 딱 나가야 해서 이런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관객의 입장이니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또 혼자 보면서 웃었던 게, 무용수들이 ‘섀도복싱’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면서 제가 직장생활하면서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가 상상되더라고요. 저도 아마 그런 걸 해봤을 것 같거든요. 막 ‘와아아아’ 괴성 지르면서…. 일하다 보면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일상적이고 즉흥적인 움직임들을 정제하여 무대 위로 딱 꺼내놓았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떵샤: 원배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원배: 재미있었어요. 처음에 막이 딱 올라갔을 때, 만드는 도중이거나 만들다 만 것 같은 정돈되지 않은 무대를 연출해 놓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숨을 곳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암전도 없었을 뿐더러 초반에는 객석까지 밝은 상태에서 갔잖아요. 원래는 그러면 시선이 분산되니까 객석의 불을 끄는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거겠죠. 정면승부의 자세가 느껴졌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웃는 지점이랑 어른이 웃는 지점이랑 관계자가 웃는 지점이 각자 다른 것 같았어요. 관계자가 웃는 거는 약간 여기서 웃어야 할 것 같아서 웃는 것 같았고, 어른들이 웃는 거는 어떤 특정 행동을 이해한 것들에 대해 웃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가 보기에 웃기면 의미가 없어도 웃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조금 나이를 먹은 아이들은 “저건 파리를 잡는 거다” 이렇게 알아맞히고 있던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쟤도 이제 어른다워졌구나.’ 그냥 웃으면 좋을 텐데….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어요.
희지: 리액션의 층위가 다 다른 거죠.
원배: 지난주 주말에는 국립현대무용단 <쌍쌍>을 봤어요. 그 공연에서는 굉장히 다른 종류의 인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았어요. 의도한 연출이겠지만, 마치 한 공장에서 찍어낸 로봇들이 딱딱 맞춰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 공연을 보면서 ‘나는 얼굴이 보이는 게 좋은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오늘 공연에서는 무용수들의 얼굴이 너무 잘 보였고 다양한 얼굴이 하나하나 보여서 좋았어요. 저는 춤추는 몸이라면 ‘몸의 고유성’을 보고 싶거든요. 인간을 한 덩어리로 보려고 하는 건 무대 외에도 일상에서 많이 보잖아요. 후려쳐서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보는 건 무대에서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출연한 무용수 주희님과 대화 중
어렵게 만들기는 쉽고, 쉽게 만들기는 어려운 현대무용
원배: 아이들의 움직임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으셨다고 하는데, 우리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우리가 놀았던 시절을 기억해 보면, 운동장에 모래밖에 없는데도 그걸 가지고 어떻게든 다른 세계에 가 있잖아요. 상상의 세계로 진입하려고 하는 신호를 ‘슈웅~’ 이렇게 소리를 내면서 자신한테 암시를 준다고 느꼈거든요. 이 공연도 지금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 보라는 게 아니라, '지금 거기 있는 그것을 같이 상상해봅시다'라는 제안을 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바닥에 발붙이고 있지만, 사실은 날고 있는 거야.’라고 제안하고 같이 상상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요. 처음 무대 뒤에 반구 형태의 어떤 오브제가 있었잖아요. 안에서 불도 들어오고요. 저는 그게 뇌파검사를 할 때 머리에 쓰고 전극을 붙이는 장치처럼 보이면서 마치 커다란 머리가 상상하는 것 같았어요.
떵샤: 안무라는 게 어떤 동작을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행위라고 했을 때 안무가들은 ‘그렇게’ 보이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번 공연은 아이들이 놀 때 관찰되는 움직임과 소리를 안무의 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상상하게 만드는 게 나의 안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희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현대무용의 난해함은 춤 동작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인데, 동작을 이해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무용수들의 좋은 피지컬을 보면서 눈이라도 호강하자는 마음이 있어요. 어차피 뭔지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오늘 공연은 콘셉트도 단순하고 움직임도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동극 같은 느낌은 아니라서 주 관객층인 어른의 눈높이에서도 만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원배: 혹여나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까 봐 위험한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정도의 선까지 보여주는 배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지막 커튼콜에서는 텀블링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테크닉도 하려고 하면 한다’를 보여주는. (웃음)
희지: 맞아요, 그래도 전문 무용수라면 높은 수준의 움직임이 나와줘야 하잖아요. 단순하게 뛰는 동작에서도 느끼는 바가 있지만, 전문 무용수로서의 스킬이 한두 번은 나와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난 성인 관객이니까. 그래서 마지막 텀블링에서 그 탄력들이 아주 가볍게 나와줘서 반가웠어요.
떵샤: (웃음) 저건 프로페셔널이야.
희지: 그런데 현대무용은 일반적으로 그런 테크닉으로 한 시간 반 이상을 채우는 공연이잖아요. 그러면 또 지겹기도 해요.
원배: 어른들은 소비자적 태도를 지니고 있잖아요. ‘네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겠어, 이거 맛있는지 안 맛있는지 보겠어.’ 이런 태도로 평가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관객도 같이 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떵샤: 이게 안무가에 의도에 따라서 바뀌어요. 어떤 안무가는 관객과 분리된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관객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 사람도 있고.
희지: 후자가 훨씬 어려운 작업 아닐까요? 전자는 무대와 객석을 이원화시켜서 원하는 걸 일방적으로 보여주면 되는 건데, 후자는 발상은 좋지만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면 관객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미 너무나 많은 걸 겪었고, 자칫 소통하려고 하다가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고요.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한 오하드 나하린 안무의 <minus 7>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작품에서는 중간에 무용수들이 객석으로 나와서 관객을 한 명씩 캐스팅해요. 무용수들이 까만 정장을 입고 관객을 물색하는데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거예요. 픽업 되고 싶은 마음과 아닌 마음이 교차하면서요. 캐스팅된 관객들이 무용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가면 처음에 대부분 쭈뼛쭈뼛해요. 그런데 무용수들이 유도를 하고 음악도 신나니까 각자의 춤이 막 나와요. 그러다 나중에는 한 관객만 혼자 남겨서 춤을 추게 만들어요. 이런 작품을 하기 위해선 정말 배짱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웬만한 연출력이 아니면 변수가 너무 많아서 리스크가 큰 것 같아요. 자칫하면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거든요. 현대무용을 어렵게 만들기는 쉽지만, 쉽게 만들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원배: 오늘 공연의 안무가는 ‘무용이란 뭘까’라는 무용의 본질에 대해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무용은 무용이지, 체조도 아니고 요가도 아니죠. 기량을 보여줄 수도 있고 잘 짜인 형식을 보여주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이번엔 좀 다른 무용을 보여준 것 같아요.
내가 무용에 매료된 이유
떵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한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이 길을 가게 되었고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 무용을 좋아하게 된 분들은 무용의 어떤 면이 좋았던 건지 궁금해요. 무용수의 신체, 아름다움, 몸의 고유성 등을 이야기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춤이 왜 좋았는지 궁금해요.
희지: 어렸을 때 무용을 접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완전히 매료되었다가 여러 이유로 중단하고 나서 오랫동안 못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한마디로 ‘고급관객’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무용을 접해 왔어요. 제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너무 정형화된 이미지라 조금 뻔할 수는 있는데요. 저는 그 정형화된 것 중에서도 최대로 극화된 것을 보고 싶은 거예요. 엄격하게 단련되어있고 연습되어서 단 하나의 변명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무용수들의 경지를 보고 싶은 거죠. 무용수 본인들에게는 혹독하겠지만요. 그런데 제가 늦은 나이에 성인 발레를 시작하고 나서 반성을 했던 게, 제가 관객이라는 이유와 티켓값을 냈다는 이유로 완벽한 공연을 기대하고 무용수에게도 굉장히 혹독한 기준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직접 춤을 배우니까 무용수도 사람이기에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수련 과정에서 노화도 올 것이고 그들에게 완벽한 아름다움을 바라는 건 잔인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막상 제가 해보니까, 간단한 순서를 외우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그걸 외워서 자기표현으로 만든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용수들은 머리도 좋고, 체력도 좋고, 감성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을 존경하게 됐어요. 또 작은 공연이라도 기획부터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거쳤을 거고, 심지어 무산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과정들이 만만찮은 작업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들이 보기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일 지라도요. 또 클래식은 클래식의 엄격함을 지켜나가면 되지만 이런 창작 작업들은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새로운 걸 만들었다고 했는데 차별화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관객들도 ‘저런 건 나도 하겠네’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으니까요.
떵샤: 너무나 전문성이 쌓인 관객이신데요.
원배: 거의 관계자….
희지: 마음은 국립극장 극장장이죠. (웃음)
떵샤: 이제 창작작품도 계속 보실 것 같아요?
희지: 볼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바쁘다 보니까 한번 놓치면 계속 놓치게 돼요. 또 검증되지 않은 창작에 대해서는 아직 뭘까 싶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작은 공연이라도 관객이 없다면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떵샤: 원배님은 무용에 매료된 이유와 직접 춤을 추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원배: 제가 무용을 처음 접했던 건 백수였을 때예요. 안은미 안무가가 <1분 59초 프로젝트>라는 아주 재밌는 일반인 참여 워크숍 공연을 한다고 하길래 한 번 해본 거였어요. 그렇게 한번 ‘무대 맛’을 봐 버린 거죠. 잘했든 못했든 무대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내려왔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게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와 비슷한 기회가 또 없나 여기저기 찾아보기 시작했고, 관심이 생기니까 원래는 다른 것들도 차 있던 SNS가 어느새 춤 관련 타임라인으로 꽉 차 있더라고요. 여러 춤 관련 계정을 팔로우해 놓으니 저절로 정보들이 들어와서 참여하게 되었고요. 지금은 ‘춤이 왜 좋아?’라고 하면 그냥…. 그냥인 것 같아요.
떵샤: 무용을 접하고 나서 달라진 생각들이 있나요?
원배: 전 몸이 아주 쓰레기(?)였거든요. 어디 놀러 가거나 노래방에 가도 그냥 앉아만 있고 일어나지 않았어요. 스스로 ‘나는 몸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몸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할 수 있는걸 하면 된다는 걸 그동안 다녔던 무용학원과 워크숍에서 배운 것 같아요. 스트레칭이 이만큼 되는 사람은 이만큼만 하고 점프를 그만큼 할 수 있으면 그만큼만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하고, 피지컬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아까 말한 ‘몸의 고유성’과도 연결되는 건데, 창작작품의 사정을 들어보면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열악하잖아요. 그래서 좋은 것들을 가져다 놓을 수 없으니까 임시변통으로 대체하는데 그게 정말 예뻐 보이더라고요. 궁하니까 이 자리에 다른 뭔가 해 놓았는데, 그 결과 역시 창조력이 발휘된 거잖아요. 물론 대극장에서 무대가 돌아가는걸 보면 공부가 되긴 하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시스템화된 것이 질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작은 공연들은 너무 다 보이니까 인간미가 있는 것도 있고, 이쪽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느낌. 저는 그런 것들을 보고 싶어서 작은 공연들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창작자에서 관객으로, 관객에서 창작자로
희지: 저는 공연을 내 삶과는 유리된 공연 자체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사람이기 때문에 생활 친화적일 이유가 없었고, 그런 공연은 제가 보기에 아름답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은 따뜻했어요. 재미있고 유쾌하고 억지스럽지 않고, 현대무용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또 안무가님이 자신의 자녀와 아이들의 움직임 및 반응들에 영감을 받아서 안무를 만드셨다고 했을 때 굉장히 좋게 느껴졌어요. 무용의 대중화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죠. 현대무용가라는 직업이 가족과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게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공연이라면 그게 바로 대중화 아닐까요.
떵샤: 희지님은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없으세요?
희지: 전에 많이 시도했었어요. 오랫동안 소설을 쓰려고 집중해서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에서 소설과의 유사성을 보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창작에 대한 욕구를 모두 접었죠. 저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있더라도 드러내지 못하겠고요. 항상 제 글을 가장 먼저 읽었던 첫 번째 독자가 했던 이야기가 뭐였냐 면, ‘정말 잘 썼고, 너무 세련됐고 훌륭한데 아무런 감동이 없다’였어요. 또 ‘네가 드러나 있지 않다’는 지적을 항상 받았어요. 무용수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게 무용수들은 도망갈 구멍이 없어요. 평소에 성격이 소심한 사람도 무대에서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더라고요. 그와 달리 저는 솔직하지 못했고, 자신을 내핍하면서까지 창작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을 시작했어요. 대신 일을 창의적으로 할 수는 있더라고요. 무용이든, 글이든 창작을 하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발현이 되더라고요. 월급을 받고 매출을 올리는 똑같은 일인데 바라보는 지점이 달라요. 같은 제안서라도 바이어가 봤을 때 어떤 게 더 울림이 있고 설득력이 있는가를 생각하죠. 저는 거기서 재능을 낭비하고 있어요. (웃음)
떵샤: 제가 이 코너를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게, 여기 참여하셨던 분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무용을 처음 보는 분들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봤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작품을 보는 시선도 너무 신선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는 걸 보면서 편견이 많이 깨졌어요.
희지: 무용을 하는 사람들은 무용 밖의 사람들이 낯설고, 일반인들은 무용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죠. 구조가 다르니까요. 저희처럼 실적을 내야 한다거나 매월 매년 마다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저는 예술 쪽 일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아요. 막연하잖아요. 좋게 말하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지만, 어떤 강요에 의한 질서도 편할 때가 많거든요. 양쪽을 다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후자가 저에게 더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일이 좋다는 건 아니에요. (웃음)
원배: 사실 각자 잘하는 것이 다르잖아요. 무용수는 춤을 잘 출 것이고 공연에 대해서 많이 알 수도 있는데, 그들에 비해 이러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열등한 게 아니거든요. 자신의 분야가 다를 뿐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 볼 수 있거든요. 미리 얕보고 들어가면 사람들은 굉장히 영리하기 때문에 다 알아요. 대충 후려쳐서 공연이라고 해 놓고 시간을 보내게 하는 공연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관객도 다 알아요. 바보가 아니거든요.
무용을 하는 것과 보는 것
떵샤: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무용을 하는 게 좋아요, 보는 게 좋아요?
희지: 저는 제 몸으로 하는 게 더 좋아요. 물론 보는 것도 좋아하니 앞으로도 계속 볼 거지만 그래도 직접 하고 싶어요. 무대 위의 무용수처럼 신체로 뭔가를 표현하는 걸 흉내라도 내고 싶어요. 그 느낌을. 제가 전문 무용수처럼 백조가 되고 지젤이 될 수는 없겠지만요. 저는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을 쓰는 데에는 익숙한데, 운동처럼 수행하는 것에서 나아가 움직임과 느낌, 분위기를 더 표현해보고 싶어요. 발레에서 아다지오면 아다지오의 느낌, 알레그로면 알레그로의 느낌. 마사 그라함 같은 현대무용 수업에서도 직선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이렇게 무용이 너무 좋은 만큼 할 수 있는 한 무용을 계속하고 싶어요. 보는 것도 계속 보면서요.
원배: 사실 오늘도 그렇고, 공연을 볼 때마다 일종의 무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오늘 공연에서 ‘저 동상씬(동상과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 같은 장면)은 안 나왔어도 됐을 것 같은데? 내가 썼으면 다르게 썼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용을 하는 것과 무용을 보는 것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것도 뇌에다 새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글을 쓰는 거랑 다르지 않거든요. 종이에 쓰는 거나 머리에 쓰는 거나. 모든 관람행위는 재해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모르겠어’라는 아주 작은 의견이라도 하더라도 하나의 의견이니까, 무용한 거죠. (웃음)
짧은 감상
“현대무용이 이렇게 가깝고 따뜻할 수도 있다니! 공연을 보는 내내 어린이들은 진지하게 즐겁고, 어른들은 힘을 빼고 흥겹다. 실재하는 우리 삶에서의 친숙한 동작들도 절제된 분방함의 위트와 유머로 승화되어 결코 유치하거나 키치하지도 않다. 공상이 허상으로 끝나지 않아, 공연의 즐거운 기운이 오래 지속된다!” - 양희지
“여백이 있어서 상상력으로 채워 놀고 나왔다. 공원에 갔다가 아이랑 잘 놀아주는 아빠를 한참 구경하고 온 기분.” - 전원배
떵샤(윤상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동료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용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내부자 입장에서의 창작과 예술생태계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무용을 그들만의 세상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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