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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8.13 조회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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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과학] 우람한 근육에 대한 단상

[춤과 과학]



<춤:in>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춤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과학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과학 그 사이를 탐험한다. 과학 전문가와 과학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과학]
우람한 근육에 대한 단상

류형돈_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세포생물학과 교수

ⓒ이철민
몇 해 전부터 한여름 뉴요커들의 옷차림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여성들 사이에서 몸에 밀착되는 운동복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몸매가 드러나는 밀착형 옷이 일상 패션으로 발전했다. 맨몸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옷을 입던 것에서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옷을 입게 된 것이다. 뉴요커 남성 중에서도 여름을 핑계로 몸매를 자랑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허드슨강을 따라 걷다 보면 셔츠를 벗어 던지고 조깅을 하는 남성들이 매년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라톤 러너들이라고 하면 대부분 비쩍 마른 체형을 상상하지만, 여기에서 셔츠 없이 뛰는 이들은 그러한 부류가 아니다. 마치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 같은 우람한 근육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체형을 한껏 뽐내면서 뛴다.

우람한 근육이 생기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평균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보다 근육이 더 발달해 있다. 그 이유는 테스토스테론이라고 불리는 호르몬 때문인데, 같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조금씩 다르다. 운동을 안 하는 것에 비해 근육이 잘 발달한 사람 중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아주 낮으니 근육의 부피가 작고, 거기에서 나오는 힘도 평균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착안하여 1970년대 동독 과학자들이 자국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남성 호르몬 주사를 투여해 큰 효과를 본 바 있다. 그 당시 동독 여자 선수들은 올림픽의 각종 종목을 휩쓸었다. 그리고 독일 통일 이후 여성 선수들이 남성 호르몬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제 올림픽 기구 등에서 각종 도핑테스트를 강화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자연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성들에 대한 뉴스가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카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는 올림픽 800미터 경주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딴 육상선수인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여성으로서 꽤 높은 축에 속했다. 이에 대해 경쟁자들이 항의하였고, 국제육상연맹으로 하여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정량보다 높을 경우, 여성 육상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자연적인 이유에서이든 불법적으로 주사를 맞았든 간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성들이 육상 경기에서 유리한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기 때문이다”라는 육상연맹 대변인의 발표가 전 세계 뉴스를 타면서 세간의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보디빌더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포럼이 여럿 있는데, 그곳에서는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보뿐만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한다거나 어떤 약이 좋다는 내용도 꽤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테스토스테론 이야기는 물론, 이보다 더 위험한 약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이러한 커뮤니티에서 활약하는 오피니언 리더 중에는 과학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이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지난 20년 동안 세포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는 ‘토르(Tor)’라는 효소가 근육 촉진을 돕는다는 이야기와 토르를 활성화하는 물질을 섭취하면 근육이 성장하는 걸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퍼져 있다. 이건 정말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토르는 세포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단백질이다. 주위에 영양분이 있는지를 감지하고, 감지된 영양분의 양에 따라 세포의 성장을 지시한다. 영양분이 많으면 당연히 영양분을 흡수할 것을 지시하고 이를 이용하여 세포를 키우고 분열시켜서 몸집을 늘리도록 한다. 그와 반대로 영양분이 부족하면 토르의 기능을 억제해야 한다. 가뜩이나 영양분이 없는데 세포가 그 영양분을 흡수해서 세포의 성장을 도모하다가는 몸 전체에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백질은 1990년대 중반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남미의 이스터섬에서 과학자들이 라파마이신(Rapamycin)이라고 하는 미생물 분비 물질을 발견하였고, 이 물질에 면역 억제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의학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스위스에 있는 마이클 홀 (Michael Hall)이라는 과학자가 라파마이신이 타깃하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그 단백질에 ‘타깃 오브 라파마이신(Target of Rapamycin)’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약자로 변환해서 ‘토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연구를 거듭하다 보니 이 단백질이 면역체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다. 성장해야 하는 모든 세포가 토르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토르에 대한 연구가 폭증하게 되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근육도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아주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의 부피가 늘어나는 이유는 근육세포의 숫자는 그대로이되, 그 부피가 늘어나가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동하지 않고도 그 효과를 낼 방법은 없을까? 토르를 활성화시킨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토르는 영양분이 많을 때 활성화되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각종 영양분 중에서도 아미노산이 토르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특히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구성분이다. 단백질에 들어가는 아미노산의 종류는 20가지인데, 그중에서도 토르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아미노산들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건 ‘루이신’이라고 불리는 아미노산이다. 예전에 마이클 홀 박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보디빌딩 이야기가 나왔다. “보디빌딩에 도움이 된다면서 토르 활성제가 많이 팔린다더군요. 아마도 루이신을 잔뜩 집어넣어서 팔 겁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약을 먹지 않아도 고단백질 음식을 많이 먹으면 똑같은 효과가 날 거예요.”

루이신 알약이 인기인 동시에, 루이신의 반대 작용을 하는 라파마이신도 꽤 인기를 얻고 있다. 라파마이신이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체구가 큰 사람이 빨리 늙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토르가 활발히 작용하였기에 체구가 커졌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빨리 늙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적게 먹는 사람들이 오래 산다는 이야기도 사회에 꽤 많이 퍼져 있다. 이는 영양분이 적으니 토르가 비교적 억제되어 있어서 체구는 작아졌지만 오래 사는 것이 아닐까? 근육이 빈약하고 체구가 적더라도 노화를 늦추고자 하는 사람들이 라파마이신에 주목하고 있다.
류형돈_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세포생물학과 교수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 생화학과에서 학사,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5년 이후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세포생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미노산 결핍에 대한 세포의 반응, 그리고 세포 망막염을 일으키는 돌연변이에 대해 반응하는 세포 내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50여 편의 논문 이외에도 저서 <불멸의 꿈> (이음 출판사)가 있다.
이철민_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기획을 하는 출판 작가이다. 94년도부터 다양한 이슈를 그리는 저널,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일러스트를 해왔으며, 일상을 그리는 수필집 《글그림》을 출간했다. 그 외 《박문수전》, 《내 이름》, 《창경궁의 동무》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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