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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계 다양한 전문가들을 소개합니다.

2019.07.15 조회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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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추는 노동자

금배섭, 김모, 김은경, 유지영, 윤혜린, 임태이, 이민진, 주혜영

오롯이 예술만 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부턴가 무용가들의 삶에서 예술을 하는 것과 먹고 사는 것이 분리되어 생각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무용가는 춤을 추는 것 외에 생각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무용가는 어떤 삶을 살아가며,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 무용가 8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는 그들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지 않기로 했다”_금배섭
“요즘 생활은 어떠세요?”
5년 전, 어느 기획자가 내게 물었다. 이쪽 분야를 훤히 알고 있는 그가 이렇게 뻔한 질문을 한 이유는 나의 두 딸이 걱정되었기 때문일 거다. 그의 질문에 나는 예전보다 나아졌다며 괜찮다고 말했다. 여느 때처럼 ‘늘 그렇죠’라는 대답을 예측했던지 정말이냐고 되묻더라. 나는 실질적인 수입이 늘어서인지, 이러한 생활을 견디는 힘이 생긴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을 이었다.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난 무용과 관련되지 않은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시간에 창작 작업을 더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10년 후에 잠실대교에서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기본적인 소비를 줄이기로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편리함을 추구하지 말자’이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몸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한 노력 중 첫 번째가 외식을 줄이는 일이다. 나와 아내는 외식하러 나가는 것 대신, 장을 봐서 직접 요리하여 식사한다. 이렇게 편리함을 추구하지 않으니 외식에 드는 돈의 서너 배는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의 요리실력이 부쩍 늘었고 웬만한 음식은 맛있게 먹는 능력이 생겼다. 그다음으로는 차를 팔았다. 원래 쓰던 자동차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름값에 수리비, 보험료, 자동차세가 만만치 않아서 유지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판 대신에 자전거를 구입했다. 우리 가족 모두 자전거를 한 대씩 가지고 있다. 사실 그중 한 대는 주민센터에서 제공받았다.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교통비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피부에 와 닿는 자연의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많이 못 버는 대신 많이 안 쓰는 삶을 살고 있다.
“팔아먹을 궁리를 하게 만드는 현실이 참 싫다”_김모(가명)
불과 2달 전까지 요가 수업을 했다. 4년 전쯤 고질적으로 아픈 몸을 관리하고자 요가를 접하게 되었고, 요가를 시작하자마자 이걸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인지 요가를 시작했던 시점과 가르치기 시작한 시점이 거의 비슷하다. 아무래도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요가 동작들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접근이 쉬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예술 작업과 요가 수업을 병행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작업하는 시간 외에 요가를 수련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고, 이러한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서 요가를 가르치며 오는 죄책감은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둘 수 없었던 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작업임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시간당 페이의 유혹을 쉽게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요가 수업을 하지 않으면서 장애인 예술가와 비예술가와 함께 움직임 수업을 하고 있다. 이 일은 나에게 가장 친숙하고 좋아하는 본업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즐겁게 하고 있다. 그리고, 요가 수업을 그만두면서 요가를 더 즐기면서 하게 되었고,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도 하고 있다. 새로운 일상이 주는 작은 풍요를 느껴도 보기 전에 족족 팔아먹을 궁리를 하도록 만드는 현실이 참 싫다. 당분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일상으로 두고자 한다.
“무용과 상관없지만, 무용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_김은경
나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가를 졸업하고 현재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시어터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10년 가까이 무용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공연 스케줄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출연료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그래서 공연 연습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번다. 현재 나는 연기학원에서 무용수업을 하는 일과 의류 판매직을 하고 있다. 연기학원 두 곳에서 월, 수, 목요일에 3시간씩 수업을 하고 화, 토요일에는 삼청동에 있는 작은 옷가게에서 옷을 판매한다.

연기학원에서는 무용 특기 수업을 하고 있다. 요즘 연극영화과 시험에 특기로 무용을 보는 학교가 많기에 무용과 입시생 보다 연기학원의 무용 일자리가 더 많이 들어온다. 무용 특기 수업은 입시 때 배웠던 무용 기본과 스트레칭을 간단히 가르치고, 1분 이내에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용 입시 작품과 달리 연기과 무용 작품은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아야 유리하다고 해서 아크로바틱과 같은 움직임을 가르쳐주는 경우가 많다. 10명 내외의 학생에게 각자 다른 작품을 만들어 주어야 해서 유튜브에 있는 무용 콩쿠르 영상을 참고하며 준비해서 가르친다. 때론 가르치다가 내가 왜 이걸 하려 대학원까지 나왔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무용수업을 하면 하루종일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며, 다른 일정과 병행할 수 있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실제로 수업을 오전 오후 시간에 하게 되면 저녁 시간은 무용단에서 연습하거나, 개인 작업을 주로 하곤 한다.

옷가게 일은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한다. 연기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은 이동 시간을 포함해서 5시간 정도이지만 옷가게 아르바이트 일은 거의 온종일을 매달려야 한다. 혼자 일하는 곳이어서 오픈하고, 마감하고, 정산하고, 청소하고, 판매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사실 판매일은 무용과 상관이 없다. 하지만 옷가게에서 손님의 몸의 특징을 보고 옷을 골라줄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가끔 매장에 걸려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보며 무대의상으로 입었을 때 어떨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관찰하며 손님들이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는 동작들이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며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옷가게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출과 정산이다. 특히 정산은 100원이라도 틀리면 안 되기 때문에 틈틈히 정산을 해야 한다. 정산하는 일이 까다롭긴 하지만 장사하는 걸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옷가게 일은 식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손님이 많은 날이면 식사를 거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늦게 퇴근하고 나서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다.

무용 작업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요즘은 작업과 병행할 수 있는 다른 업종의 일들을 찾아보고 있다.
“예술 노동으로 먹고살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다”_유지영
매일 휴대폰 알림으로 하루 대강(대타 강사)를 구하는 글을 본다. 4년 전에 시작한 요가와 필라테스는 어쩌다 보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해봤자 하루에 3만 원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대강 일을 잡기 위해선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가 필요하다. 대강 글이 올라오자마자 거의 1분 만에 마감되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세 타임을 할 수 있지만, 평소에는 한 타임도 구하기가 어렵다.

나는 정해진 일 없이 매달 다른 일을 수행하는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연기학원에서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무용 특기를 가르치는 일이지만, 고작 일주일에 단 하루 두 시간뿐이다. 예술 작업을 하면서 어떠한 일을 정기적으로 지속하는 건 정말 어렵다. 특히 매달 참여하는 작업이 바뀌거나 연습 시간이 변경되는 경우에는 더욱 어려워진다. 정기적인 일자리를 구했다가도 작업 제안이 들어오면 프리랜서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프리랜서로서 비예술 노동과 예술 노동을 병행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벌면 작업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기에 정부 지원금을 받아도 본인 사례비 지급이 불가능하다. 식비나 차비로 지원금을 쓸 수도 없다. 가끔 어떤 지원금은 공연이 끝난 후에 지급되기 때문에 먼저 사비를 들여서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퍼포머로 작업에 참여할 때도 공연 후에 페이를 지급받기 때문에 생활비로 사용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작업 이외의 비예술 혹은 예술 노동을 필수로 병행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비예술 노동에는 정해진 최저임금이 존재하지만, 예술 노동의 경우에는 노동에 대한 기준이 되는 최저임금이 존재하지 않는다. 몇 달간의 리허설과 공연 후, 30만원 정도의 페이를 지급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의 직업을 말할 때는 주로 프리랜서라고 이야기하지만 나 스스로는 안무자 및 퍼포머라고 생각한다. 거의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안무를 하거나 퍼포머로 작업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행정업무도 하고 음악을 만든다거나 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한다. 이렇게 쉴 틈 없이 1년 내내 노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예술 노동으로 버는 돈은 거의 없다. 예술노동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_윤혜린

예전만큼 자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다. 간혹 친구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뭘 한다고 해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이게 일을 하는 건지, 놀고 있는 건지, 그냥 뻘짓을 하는 건지.

올해 초부터 무용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를 조금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 내내 무용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창업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작자가 아닌 기획?경영자의 입장에서 춤을 바라보는 모든 과정이 나에겐 해내야만 하는 ‘일’로서 되돌아왔다. 실제 하는 일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공연을 관람하고,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전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나는 나의 시선에서 바라볼 것이냐,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볼 것이냐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것저것 보고 들으며 내 생각을 정리해 왔다. 이렇게 일인지 공부인지 모호한 것들을 몇 달간 지속해오며 영상 제작이나 수익 창출과 같은 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성과는 잠시 뒤로 미뤄왔었다.

ⓒ윤혜린
이 외에도 음악 프로듀서 매니징부터 전통예술 단체의 기획일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중이다. 물론 이것 또한 이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라 당장의 소득은 없다. 누군가 볼 땐 열정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미 올해 목표했던 일들의 절반 이상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버텨나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인 만큼 지금 품고 있는 희망이 허황된 꿈이 되지 않도록, 무모한 도전이 무지한 도전이 되지 않도록 매일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이걸 왜 하냐는 물음엔 여러 답변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두 가지만 꼽자면, 불안정한 창작 환경의 개선과 창작자 네트워킹을 위함이다. 작년 졸업 이후 처음으로 사회에 나와 안무작업을 하고,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들을 만나며 독립 무용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느끼게 되었다. 국가지원금을 받아 겨우 올린 공연의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다음 해의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창작활동을 힘겹게 이어갈 수밖에 없는 창작자들이 자생하지 못하는 구조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무용인의 연대였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에게 춤의 가치를 제공하는 거다. 글쎄, 모두가 원하는 것인데 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한 번에 제시할 수는 없지만,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앞서 말한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중이다.
“매일 다른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든다”_이민진
잠이 들기 전 나는 매번 다른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잔다. 나의 스케줄은 매주,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매번 다른 나의 스케줄에 맞춰서 일어난 후, 나는 노트북과 상하의 연습복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가방에 짐을 한 꾸러미 챙긴다. 짐이 너무 많아서 이동 중에 어깨가 끊어질 것 같지만 이렇게 전부 챙기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다. 현재 나는 초등학교 근력운동 선생, 요가 선생. 무용 전공 졸업생, 그리고 무용수로 활동 중인데, 오늘은 공연 연습 외에 무용과 관련된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는 날이며 엄청난 땀을 흘리는 날 중 하나이다. 이런 날은 여분의 속옷과 상의 연습복이 필수이다. 이렇게 땀을 흘리며 사는데, 왜 살은 안 빠질까? 아이러니하다.

다음 날이 밝았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더 잘 수 있었지만, 마지막 스케줄이 밤 10시에 끝이 난다. 끝나고 집에 오면 11시 반이고 조금 여유 부리면 12시 도착이다. 오늘의 스케줄은 발레 수업과 성인 현대무용 수업이다. 나는 현대무용 전공이지만 초급발레수업 정도는 가르칠 수 있다. 분명 채용 당시에는 초급발레수업이라고 공지 받았는데, 신설 학원이라 그런지 9살 미만의 학생들만 수강한다. 그래서인지 일반 초급발레수업처럼 진행할 수 없다. 아직도 학생들이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렇게 어린 연령층은 내가 가르칠 수 없어서 곧 그만둘 예정이다. 지금은 ‘여기 말고도 다른 곳에서 수업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다시 면접을 보러 다닐 생각만 하면 막막하고 짜증도 조금 난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무용 수업은 학생들이 왼쪽과 오른쪽은 구분할 수 있기에 그나마 나은 편이다.

또 다음 날이 밝았다. 오늘은 공연 연습과 회의가 있는 날이다. 이런 날은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지만, 수입이 0원이 날이다. (물론 출연료를 받지만, 공연 후에 지급되며, 할애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생계의 주 수입원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음이 편한 듯, 불편하다. 하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수입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왜냐면 일은 내일 또 하니까…. 일정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씻고 나와서 시간을 보면 새벽 1시인데, 빨래와 청소를 내일 나가기 전에 할 자신이 없기에 생각난 김에 지금 한다. 집안일까지 다 끝내면 새벽 2시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넷플릭스에 접속하면서 보다가 잠들 수 있는 콘텐츠를 재생한다. 아 참,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하더라.
“나는 안무가이자 생활인이다”_임태이
나는 안무가이자 생활인이다. 일과 삶의 조화가 아닌 일과 일의 조화를 찾는다. 즉, 직과 업이 분리되어있는 삶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현재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과외 수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번다. 과외 수업은 나름 시간이 유동적이어서 공연 당일이나 리허설에 일이 겹치는 걸 피할 수 있다. 한때 직과 업이 다르다는 이유로 딜레마가 찾아와서 심하게 괴로워한 적이 있었지만, 나의 상황을 조금씩 스스로 받아들인 이후부터는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자유학기제 무용강사도 하고 무용수업 대타도 뛰지만, 사실 돈벌이 수단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부모님께도 보태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안무작업을 한 후, 하루 식사를 한 번에 몰아서 하고 오후 4시부터 과외 수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끝내고 밤 12시 쯤에 집으로 돌아오면 작업했던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노트한다. 그리고 내일 연습 때 할 것을 정리하고, 집에 있는 전신거울을 보며 몸을 움직여보거나 음악을 편집한다. 공연에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있듯 과외에도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있는데, 아이들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직전이 가장 바쁘다. 공연 비성수기인 연말부터 3월까지는 주로 생활인이 된다. 가끔 운이 나빠서 리허설과 학생들의 시험 기간이 겹칠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최대한 일정을 조율하고 잠을 포기하는 편이다. 그리고 새 학년을 준비하는 겨울방학에 수업을 가장 많이 하고, 여름방학에는 학부모님들이 갑자기 관대해져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일을 덜 하는 편이다. 이 패턴을 수년째 반복하다 보니, 여름이 좋고 겨울이 싫어졌다.

일정표 ⓒ임태이
생활을 일주일 단위로 보면, 쉬는 날은 일단 없다. 많은 직장인도 그러하겠지만, 주말의 아침과 저녁도 포기할 때가 많다. 실제로 2016년에는 쉬었던 날이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혔다. 올해는 5월 어느 수요일에 처음으로 갑자기 하루를 쉬게 됐다. 그리고 일을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를 하다 보니, 중간에 일정 하나가 취소되면 네다섯 시간을 어디선가 때워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연습실에서 작업을 하면 지칠 것 같고, 커피숍을 전전하기도 지겨운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주변에 있는 영화관, 목욕탕, 도서관을 항상 물색해 놓는다. 또 경기도에 살다 보니 하루에 4~6시간을 이동한다.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 업무 관련 연락을 돌리고, 글도 쓴다. 친구는 일 년에 두세 번 만나고, 연애는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다. 30분 단위로 엑셀로 짜놓은 표에 아침부터 밤까지 써넣은 일정들은 내가 스스로 매일 무엇을 축적하는지 묻는듯하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매일 일정을 정리하지 않으면 뒤죽박죽 얽히는 대여섯 개의 일정들을 정리하기 어렵다. 많은 생각이 이제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안정적’이라는 것을 삶에서 찾을 수 있을까.”_주혜영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요가로 시작하고 싶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늦잠을 잤다. 오늘은 집에서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연기학원에 아이들 무용 특기 수업을 하러 가야 한다. 헐레벌떡 일어나 고양이 밥만 챙겨준 채 집을 나선다. 두 개의 반의 학생들을 두 시간씩 수업하고 나면 3시쯤에 끝난다. 고등학생들이랑 있으면 그들끼리의 유행어나 개그 코드가 귀엽고 재밌다. 아직 개그 코드가 통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가끔 좋기도 하다.

수업이 끝난 이후에는, 일주일 뒤에 있을 공연 연습을 하러 간다. 배가 너무 고파서 가다가 김밥을 사서 먹었다. 나도 식당에 앉아서 여유롭게 식사하고 싶다.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지만 그만큼 밤에 폭식하는 경우가 많기에 살이 안 빠지는 것 같다. 달달한 커피를 매일 한 두잔 씩 먹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커피 얘기를 하니 든 생각인데, 20대 초반까지는 지나가던 커리어우먼이나 동료 언니들이 커피를 아침에 꼭 한 잔씩 먹는 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수면과 피로에서 각성 되질 않는다. 커피 한 모금을 마셔야 눈이 딱 떠진다고 할까?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연습실에 도착하니 갑자기 피곤해졌다. 공연 연습이 끝나면 저녁 8시나 9시가 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끝나서 너무 좋았다. 연습 끝나고 바로 집에 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바로 다음 공연 미팅을 하러 가야 한다. 친하지는 않고 아직 어렵고 서먹한 관계라 이번 미팅은 유독 힘들었다. 내일은 늦게까지 잠을 푹 자고 싶지만, 늦게까지 연습을 해야 하고 밤 11시에 공연 미팅도 있어서 벌써 내일이 두렵다. 어서 자고 일어나야지!

나는 공연 시즌에 따라 한해를 성수기와 비수기로 지낸다. 성수기일 경우에는 공연과 일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와서 나를 위한 시간을 전혀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매달 나가는 공과금과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간간히 요가 수업 아르바이트도 해야하기 때문에 더 바빠지고 없던 시간이 더 없어진다. 내가 공연을 하는 시기에는 항상 다른 곳에서도 좋은 공연을 한다. 나도 공연을 보러 가고 싶고 공부를 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 시간에 요가 수업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요가 수업은 회사원들이 퇴근한 이후에 이루어지다 보니 수업시간과 공연시간이 겹치기 마련이다. 이처럼 공연 성수기에도 나는 일하는 시간이 예술 활동을 하는 시간보다 비중을 훨씬 많이 차지한다. 이는 나의 선택이 아니다. 나는 먹고사는 일보다 지금껏 내가 투자해온 예술 활동이 하고 싶다. 그러나 예술 활동보다 일이 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루 전부를 일로 보내게 될 때마다 비참한 마음이 든다.

비수기에는 정말 아무런 일도 없다. 무용 레슨도 아이들 입시가 종료됨과 함께 종료되고, 요가 대타 자리도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 매년 연말부터 연초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은 날 너무 우울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 불안감과 강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또 작업보다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궁리를 한다. 더 다양한 요가 자격증과 필라테스 자격증을 취득해서 안정적인 돈벌이 수단을 확보해 놓으려고 한다.
예술 활동과 생활,
나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라는 조언에 반항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매일 아슬아슬한 선택의 기로에서 노란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과연 우리는, ‘안정적’이라는 것을 삶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리. 웹진<춤:in> 편집부

금배섭_안무가 2009년부터 춤판야무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품에서 개념보다 감각적 표현을 찾으려 한다.

김모(가명)_무용가 사회인으로서 무용 작업을 한 지 벌써 15년 가까이 되어 간다. 안무와 무용수 작업을 고루 하고 있다. 긴 시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금까지 일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건 일이 좋아서도 있지만 멋진 동료들과 함께라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은경_무용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시어터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지영_안무가, 무용수 신체의 관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만들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인체도>, <신체부위의명칭에대한의문>, <두를위한몸만들기>가 있으며 최근에는 사회에서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윤혜린_무용가 2018년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후, <불완전-Egg-완전>이라는 첫 안무작을 내놓았다. 현재는 무용 관련 영상미디어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댄스트럭트’를 운영 중이며 창작자 네트워킹과 미디어와 춤의 결합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임태이_안무가 안무가, 무용수,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무용뿐만 아니라 이와 접목한 다양한 협업, 공동 작업을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가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리서치 기반의 안무방식을 소중히 여긴다. 2017년 서촌공연예술축제에서 로 데뷔하였다.

이민진_무용가 무용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현재 무용 단체 리케이댄스의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그 이외에도 페미플로어 라는 무용계 페미니즘 모임을 구성하여 활동 중이다.

주혜영_무용가 유쾌한 걸 좋아하고 동경하며, 언제나 다른(또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고양이처럼 여유를 가진 채 춤을 좋아하고 춤을 알고 싶고 계속 추고 싶다.

금배섭 외 7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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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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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광열2019-07-20

    무용가들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획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