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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7.10 조회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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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춤출 때 남겨지는 말들

해시테그 당근_관객반응연구자

ⓒ류진욱

모 단체는 내가 좋아하는 무용단이다. 작품도 좋고 무용수도 좋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의 공연 맥락 안에는 ‘좀 더 열린 작품’이 항상 존재한다는 점이다. 2016년에 봤던 소극장에서 올린 작품에서도, 2018년에 본 대극장에서 올린 작품에서도 나는 언제나 ‘그 부분’을 발견한다. 오늘은 그들의 ‘극장 밖’ 공연을 보러 간다.

여름으로 이어지는 화창한 주말 낮에는 어디든 갈 곳을 찾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유명하거나, 소위 핫하다는 곳들은 이미 만원이다. 그럴 때 자주 가는 곳이 도서관인데, 구립이나 마을 단위의 작은 도서관이면 더 좋다. 심각한 얼굴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보다 책을 읽는 사람과, 뛰다가 음료를 엎질러 꾸중을 듣기도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은 곳. 무용단의 공연은 그런 곳에서 진행되었다.

아트홀과 도서관이 함께 있는 구립 문화센터에 아이들과 엄마들이 가득하다. 공연을 보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도 꽤 보이니 평소보다 몇 배는 사람이 많을 테다. 목적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전혀 딴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용수의 존재를 인식하고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쪽과 평소보다 번잡한 분위기 속에 낯섦을 느끼는 쪽,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고 책과 책장 사이를 가르는 어리고 바쁜 손들.

음악 시작, 맨발의 무용수가 1층 마루에서 춤을 추자, 멀리 있던 사람들 고개를 삐죽 내밀며 모여든다. 무용수들이 대중음악 한 곡을 선정하여 3~5분 분량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콘셉트인 이 공연에는 일곱 명의 무용수가 출연하여 다섯 편의 춤을 춘다. 첫 번째 곡은 하현우 버전의 ‘일상으로의 초대’다. 이 곡을 아는 사람이 여기 절반쯤은 되려나? 1~2분쯤 지나니,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무용수를 둘러싸고 얌전히도 앉는다. 엄마들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 몸짓도 춤 같다) 일련의 동작들 ? 팔을 꼬거나, 몸을 비틀거나 하는 ? 비일상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춤 동작을 보며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리에 고스란히 앉아 공연을 끝까지 본다. 움직이는 무용수를 따라 다음 무대로 이동한다. 일상적인 주말, 가족과 함께 도서관에 온 아이에게 춤은 ‘비일상으로의 초대’가 아닌가.

두 명의 발 ⓒ류진욱
BTS의 <전하지 못한 진심>, 레이첼 야마가타의 <Something in the rain>, 이지연의 <사랑을 아직 몰라>, 박효신의 <야생화>가 오늘의 플레이 리스트다. 혼자 추는 춤, 둘이 추는 춤, 모두 추는 춤, 휠체어를 타고 추는 춤 모두 좋았다. 유쾌함도, 서글픔도, 흥겨움도, 애잔함도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날 때쯤이 되자 아까의 두 그룹 ? 도서관에 온 사람과 공연을 보러 온 사람 - 이 자연스레 섞여 구분되지 않는다. 열기가 식기 전에 사람들이 흩어진다. 나도 공연장을 빠져나온다. 오늘, 여기서, 같은 시간, 같은 춤을 보았던 사람들은 어떤 말을 남길까 상상하는 일이 걸음에 속도를 붙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이내 ‘말을… 남길까?’라는 생각이 다시 걸음을 느리게, 느리게.

다행이다. 흘리고 돌아설 뻔 말 하나를 줍게 되었다. 이지연의 <사랑을 아직 몰라>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춘 무용수로부터의 전언.

문자 캡쳐 ⓒ해시테그 당근
이 곡이 끝날 때쯤, 출연 무용수 모두 모여 약 30초간 함께 추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관객석에서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흥 없었는데…’ 라고 나는 쉽게 대답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흥이 있었던 것이다. 흥을 담은 춤이었든, 춤에서 비롯된 흥이었든 내가 너무나 쉽게 부정해버렸다는 생각이 늦게야 든다. 게다가 ‘역시 흥만한 게 없네’라는 말, 얼마나 단호하고 명징한 감상인가. 조금 더 남겨진 말을 찾아 헤매었다. 반갑게도 한 블로거가 쓴 글을 발견했다. 블로거가 남긴 리뷰는 환할 정도로 선명해서 주워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블로그에 묘사된 공연과 감상평을 일부 발췌하여 수정한 것이다.
“OO에서 무용을 한다고 했다.
가야 하지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왜?
무용이잖아.
OO은 우리 집에서 가깝다.
사실은 지난해에도 이번과 비슷한 홍보물을 봤었다.
나는 공연을 찾아가지 않았다.
왜?
무용이니까”
‘무용이니까!’ 볼 일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은 ‘무용 공연’을 찾은 이 솔직한 관객의 평가를 읽으니 뒤통수가 다 시원하다. 같은 무대에 대한 감상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한 명의 발 ⓒ류진욱
“이제 지상계로 내려갔다.
주 무대였다.
음악이 땅바닥으로 내려왔다.
대중가요 중에 대중가요였다.
음악: 난 사랑을 아직 몰라(이지연)
무용가의 의상도 그렇고 춤 동작은 흥겨웠다.
이웃집 아저씨의 춤 같았다.
관객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짝짝, 손뼉을 쳤다.”
나, 할머니, 블로거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하고도 다른 걸 느낀다. 감상에 있어 맞고 틀림이 없듯이, 타인의 감상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같은 곳에 있던 감상자들을 현실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기쁨과 즐거움에 취한다. 어쨌든 그날의 춤은 사람들을 말하게 했고, 춤에 대해 남겨진 말이 몇 가지 늘었다. 춤은 말한다, 그리고 춤은 말하게 한다.
해시테그 당근_관객반응연구자 관객의 존재와 습성에 관심을 갖고 염탐, 탐방, 말 걸기 등을 통해 관객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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