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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아웃 - 에세이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9.07.10 조회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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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과학] 생체시계와 춤을

[춤과 과학]



<춤:in>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춤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과학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과학 그 사이를 탐험한다. 과학 전문가와 과학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과학]
생체시계와 춤을

조세형_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이철민
춤의 ㅊ도 모르는 나에게 ‘춤과 과학’ 코너에 실을 글을 써달란다. 함께 보내준 원고제안서에는 익숙한 키워드들(시간, 운동성, 호흡, 생명력, 순환, 사이클, 수축, 이완, 근육, 기타 등등)이 눈에 띈다. ‘음, 춤의 키워드에는 내게 친숙한 단어들이 많으니 쉽게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웬걸. 막상 쓰려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원고 데드라인을 넘겨 펑크를 낼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 맘대로 쓰자.
1. 먼저 춤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춤 또는 무용(舞踊), 무도(舞蹈)는 음악 또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행위이다.”1)

예술과는 담을 쌓고 사는 나니까 ‘예술적’을 빼고 생각하자. 먼(40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옛날 지구에서 탄생한 태초의 생명에게도 익숙한 음악, 익숙한 박자가 있었다. 바로 지구-물리적 특성에 의해 나타나는 자연의 리듬이다.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지구엔 밤낮의 변화, 계절의 변화가 뚜렷했을 테고, 이런 주기적인 환경의 변화, 다시 말해 자연이 만들어낸 박자는 지구상에서 막 모습을 드러낸 생명에게 커다란 도전이자 기회였다. 햇빛은 에너지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햇빛 속에 포함된 고에너지의 자외선은 아직 제대로 된 방어수단조차 갖추지 못한 태초의 생명에게 재앙 그 자체였다. 당연히 초창기 생명체의 수명은 매우 짧을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론 이로운 점도 있었다. 자외선에 의한 생명 물질의 손상과 변형은 수많은 돌연변이체를 탄생케 했으며 생명의 진화를 가속화 하였다. 그러다가 생명 탄생 후 십 수 억 년 만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빛에 의해 3차원적인 공간구조가 바뀌는 단백질, 즉 원시적인 광수용체(photoreceptor) 단백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단세포에 불과했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 몇억 년 전의 진핵세포(우리의 머나먼 조상 생물이다!)는 이 광수용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원시의 바다에 내려쬐는 햇빛은 해수 표면에 풍부한 유기물들을 만들어냈고 이전까지의 우리의 조상 생명체는 바다 표층에 머물면서 이런 유기물을 먹고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자외선에 의한 손상을 최소화할 기발한 방법을 찾고야 만 것이다. 어두울 때 바다 표층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다 보면 해가 뜬다. 그러면 몸속 광수용체 단백질이 햇빛을 받아 그 모양이 바뀐다. 광수용체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은 바로 해가 떴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고, 이를 감지한 조상 생명체는 자외선이 미치지 못하는 깊은 바다로 유유히 잠수한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박자에 맞춘 신체 움직임의 탄생, 그것이 바로 원시적인 춤의 탄생이 아니겠는가.
2. 자연의 박자에 맞춘 생명의 몸놀림, 생명의 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춤 또는 무용(舞踊), 무도(舞蹈)는 음악 또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행위이다.” 옆으로 걷는 게는 하루 두 번씩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땅을 파고 파도로부터 몸을 숨긴다. 아니, 게 다리로 춤을 추다가 하루 두 번 춤추던 무대에서 퇴장한다. 썰물이 되면 다시 나와 새롭게 공연할 것을 약속하면서. 낮 동안 어두운 동굴 천장에 매달려 졸던 박쥐는 해가 지면 떼를 지어 날아와서 먹을 걸 찾아 헤맨다. 아니, 군무(群舞)를 춘다. 여명이 오기 전까지. 미모사는 낮이 되면 잎을 들어 올리고, 밤이 오면 잎을 내린다. 100배속으로 관찰해보면 미모사의 느린 독무(獨舞)를 감상하실 수 있으리라. 4월엔 목련이 폈다가 지고, 5월엔 장미가 핀다. 10,000배속쯤으로 관찰하면 아름다운 꽃들의 ‘예술적’인 춤이 눈에 잘 보이려나 모르겠다. 생명의 춤엔 별도의 무대도 필요 없다. 생명이 있는 곳은 그 어디나 춤판이니까. 춤을 뜻하는 영어 단어 ‘Dance’의 어원인 산스크리트어 ‘탄하(Tanha)’가 ‘생명의 욕구’를 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3. 춤을 추려면 박자에 맞춰야 한다.
생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박자를 파악해냈다. 밝음과 어두움, 따스함과 서늘함, 축축함과 메마름, 풍요와 빈곤. 자연이 만들어내는 박자는 끝도 없는 멜로디다. 생명은 이제 오랫동안 느껴오던 자연의 박자를 몸속에 체화하는 단계에 이르고야 만다. 바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의 발명이다. 생체시계의 발명은 아저씨 껄떡춤 추기보다 쉬웠다. 십 수 억 년 생명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낸 광수용체 단백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광수용체 단백질을 세포 안의 다른 단백질들과 얽어내어 생체시계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비록 부품도 몇 개 되지 않는 그야말로 초라한 시계였지만, 그 효과는 정말 탁월했다. 자연의 박자를 몸속에 체화하고 나니 정말 살기가 편해졌다. 광수용체만 있을 때는 햇볕을 쬐고 나서야, 다시 말해 어느 정도 피해를 보고 나서야 자외선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는데, 시계가 만들어 지면서 자연의 리듬을 예측할 수 있게 되니 해가 뜨기도 전에 미리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정성이 커지니 당연히 수명은 길어졌고, 이제 우리의 단세포 원시 조상 생명체는 길어진 수명 속에서 그들만의 다양한 실험을, 아니 그들만의 새로운 춤 동작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4. 내부 시계(internal clock)의 창조는 단세포 조상 생명체에게 다양한 율동을 가능케 했다.
세포 내부에서 시계가 째깍거릴 때마다 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니 만사형통이다. 장단에 맞추어 필요한 유전자를 제 때에 발현하고, 세포 소기관들은 이에 맞춰 시의적절한 춤을 춘다. 필요할 때에만 힘을 쓰니 에너지의 낭비가 사라졌고, 소식(小食)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미처 시계를 마련하지 못하고 폭식을 일삼던 경쟁자들은 생명 역사의 뒤안길로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제대로 된 춤이 보여준 최초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5. 1971년 초파리에서 최초로 발견된 시계 유전자는 ‘피리어드(period, 주기를 뜻함)’라고 명명됐다.
하지만 피리어드 단백질이 제 혼자서 시계 역할을 할 리가 없었다. 한 마디로 설명 불가!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생체시계의 비밀을 밝혀줄 피리어드 단백질의 단짝 파트너가 발견됐다. 바로 ‘타임리스(timeless)’라는 유전자다. 피리어드가 타임리스와 만나야만 서로 꼭 끌어안은 채로 세포질로부터 세포핵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만의 춤사위가 전개된다. 이를 알게 된 하버드 대학교의 Steven M. Reppert 박사는 이 발견에 대해 정리하고 논평하는 총설 논문의 제목을 이렇게 달고야 말았다. <피리어드와 타임리스의 탱고: 두 시계 유전자가 추는 춤(period and timeless Tango: A Dance of Two Clock Genes)>2) 이라고. 타임리스의 발견으로 생체시계의 비밀을 풀어줄 단서가 발견되었음에 흥분한 Reppert 박사는 생체시계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앞으로 어떤 의문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다음, 논문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이 갈무리했다. “이러한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 일주기 리듬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이 계속 춤추게 될 것(Answers will keep circadian biologists dancing.)”이라고.
사족: 초파리에서 시계유전자의 발견과 그 작동 원리의 규명으로 세 명의 과학자가 2017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일주기 생물학자들(circadian biologists)의 조화로운 춤판이 낳은 소중한 결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1. 1)wikipedia 검색, 2019년 6월
  2. 2) Reppert and Sauman, 1995. Neuron 15:983-986
조세형_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프랑스 유전및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IGBMC)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의 교수로서 생체시계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생체시계의 교란에 따른 생리적인 귀결과 그 대응방안이다. www.bioclock.kr
이철민_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기획을 하는 출판 작가이다. 94년도부터 다양한 이슈를 그리는 저널,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일러스트를 해왔으며, 일상을 그리는 수필집 《글그림》을 출간했다. 그 외 《박문수전》, 《내 이름》, 《창경궁의 동무》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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