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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6.14 조회 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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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과학] 동물의 구애

[춤과 과학]



<춤:in>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춤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과학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과학 그 사이를 탐험한다. 과학 전문가와 과학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과학]
동물의 구애

노정래_전 서울동물원장

ⓒ이철민
‘춤’의 사전적 뜻은 ‘가락에 맞추거나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이 흥겨운 춤은 사람만 누리는 행위는 아니다. 춤추는 동물도 있다. 그렇다고 사람처럼 가락에 맞추거나 흥겨워서 추는 동작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애절한 구애다.

사람들 세계엔 놀이도 있다. 놀이란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사람이 노는 것처럼 동물도 논다. 동물의 놀이는 보통 어른이 되기 전에 나타나는 행동이며 뚜렷한 목적이 있다. 어린 암컷 또는 수컷끼리 노는 것은 사회적 교류와 서열 다툼의 시작이다. 실제론 어린 암컷과 수컷끼리의 어울림이 더 많다. 이는 미래 배우자가 될지도 모를 이성에게 얼굴 트기로 보면 된다. 춤처럼 동물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동물에서 배우자 선택권은 대를 잇는데 투자를 많이 하는 쪽에서 쥐고 있다. 수컷은 정자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씩 만들어지나, 난자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만들어진다. 포유류에서 수컷은 짝짓기가 끝난 후에 떠나면 그만이지만 암컷은 임신이 되면서부터 새끼가 젖을 뗄 때까지 고스란히 양육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논리로 투자가 많은 암컷이 선택권을 쥘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종이 그렇진 않다. 수컷이 투자를 많이 한다면 선택권은 당연히 수컷의 몫이다.

짝짓기 계절엔 선택받으려는 수컷의 노력이 치열하다. 예를 들자면, 화려한 조류인 공작, 꿩, 원앙 등과 곤충은 수컷이 시각적으로 암컷을 자극한다. 수컷 공작은 꼬리 깃털을 세우고, 암컷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맴돈다. 사람이 보기에 어슬렁거리는 듯 보이지만 온갖 애교를 떨며 사뿐사뿐 추는 춤일 것이다. 암컷은 수컷의 춤 솜씨보다 화려함 정도로 쓸 만한 놈인지 아닌지 단박에 구별해 낸다. 화려함이 건강진단서나 다름없어서 체내에 기생충이 있는지, 건강한지 알 수 있다.

일부 종에선 예쁜 노랫소리로 구애한다. 꾀꼬리, 종달새, 휘파람새 등 노래하는 새들이 이에 속한다. 귀뚜라미, 매미 같은 곤충이랑 맹꽁이, 개구리도 노래로 자기를 선택해달라고 알린다. 사람들이 봤을 때 노랫소리지 실제론 사랑하는 짝을 만나려는 간절한 구애다. 암컷은 노랠 부르지 못하고 수컷의 노랫소리를 평가할 뿐이다.

맹꽁이 노랫소리는 독특하다. ‘맹꽁맹꽁’ 들리는 소리는 실제로 어떤 놈은 ‘맹’ 어떤 놈은 ‘꽁’ 소리를 내는 것이다. 서로 가까이 있는 어떤 한 놈이 ‘맹’ 소리를 내면 다른 놈이 즉시 ‘꽁’소리를 내기 때문에 ‘맹꽁맹꽁’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수컷마다 ‘맹’ 또는 ‘꽁’ 소리를 낼지 정해져 있진 않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까이 있는 수컷 중에서 서열이 높은 수컷이 ‘맹’ 소리를, 반대로 서열이 낮은 놈은 ‘꽁’ 소리를 낸다. 맹꽁이 세계에서 약속이다. 그러니 암컷은 관심이 없는 척 뒷짐 지고 있다가 ‘맹’ 소리 내는 놈 중에서 똘똘한 놈을 선택하면 된다.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동원하여 애절하게 구애하는 종이 있다. 대표적인 게 벌새다. 수컷이 암컷 앞에서 몸과 꼬리, 날개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윙윙’ 거리는 특유의 소리를 낸다. 공중으로 20~30m를 날렵하게 올라가거나 다이빙하듯 내려가기도 한다. 암컷 근처를 지나갈 때 몸을 비틀어 회전시키고 꼬리 깃털을 펴 흔들거리면서 윙윙 소리도 낸다. 암컷은 수컷의 재롱 같은 구애를 보고 맘에 드는 놈을 선택하면 된다. 어느 수컷과 짝을 이뤘을 때 자손이 많이 퍼트려질지가 선택하는 잣대다.

사슴은 수컷끼리 싸울 때 몸으로 밀어붙여 뿔로 상대를 찌르거나 뿔끼리 엉겨 붙어 흔들어 댄다. 번식기 때 약 1/4은 상처를 입고, 약 6%는 심각하게 다칠 정도로 싸운다. 힘이 센 수사슴은 자기 영역을 정해 놓고 대략 20여 마리의 암컷과 함께 무리로 산다. 무리에 청소년 정도의 수놈이 있으나 경쟁 상대는 아니다. 무리 주위에 머물러 사는 수놈이 골칫거리다. 이놈들은 우두머리가 한눈팔 기회를 엿보며 틈만 있으면 암컷을 꼬드기려고 호시탐탐 노린다.

힘센 수사슴이 최고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론 뿔을 통해 좋은 수컷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건강한 수컷의 뿔은 완벽하게 좌, 우 대칭이다. 성장 과정에서 왼쪽 다리를 다쳤을 경우 오른쪽 뿔이 삐딱하게 나거나 뿔에 난 가지가 부족하다. 같은 논리로 오른쪽 다리에 난 상처는 왼쪽 뿔에서 나타난다. 이런 걸 암컷은 잘 안다. 아무리 무리를 이끄는 두목 수사슴일지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무리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건강하고 똑똑한 수놈에게 눈길을 줄 수 있다. 힘이 좋다고 다 좋은 수컷은 아니라는 얘기다.

춤추는 종으로는 두루미가 대표적이다. 두루미는 보통 2~3살에 결혼을 하지만 간혹 노총각 노처녀로 지내다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두루미는 일부일처로 사는 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배우자가 자식 키우는 게 신통치 않으면 가차 없이 이혼하고 새로운 짝을 만난다. 이는 자식을 키워 본 경험이 없는 첫 번째 번식에 해당하며 그다음부턴 부부가 갈라서는 일은 거의 없다. 짝짓기 계절엔 두루미 수컷도 영역을 정해 놓고 살며 다른 수컷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기 아내가 다른 수컷에게 눈길을 줄 수 있어서 그럴 가능성을 싹둑 잘라버리려는 것일 듯싶다. 그러면서 자기 아내에게 춤을 춘다.

흔히 두루미 춤이라고 말하는 게 실제론 사랑 고백인 수컷의 구애다. 수컷은 점프하듯 꾸룩꾸룩 소리를 내면서 폴짝폴짝 뛰고, 날 듯 말 듯 날갯짓을 하면서 암컷 주위를 맴돌기도 한다. 인사하듯 머리를 낮춰서 서로 쳐다보면서 날갯짓도 한다. 화답하듯 암컷도 수컷을 따라 춤을 춘다. 영락없이 남녀 무용수가 잘 짜인 순서에 맞춰 춤추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멋지다. 이는 일부일처인 조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으로 부부 사이의 금술을 더 끈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한다.

토끼는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없고, 새처럼 날아서 도망갈 날개도 없다. 토끼는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길어 경사진 곳도 잽싸게 달리는 게 장점이다. 다른 동물은 흉내도 못 낼 정도로 날렵하다. 그래서인지 토끼의 구애는 달리기다. 수컷이 경주하듯 달리면 종종 암컷도 덩달아 달린다. 달리면서 점프하고 간혹 싸우는 듯한 행동도 한다. 수컷이 건강함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의 삶에서는 후손을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려면 짝을 만나야 하는데 쉽지 않다. 수컷이 애절한 구애를 해도 선택할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기 일쑤다. 암컷도 덥석 아무 수컷에게나 손을 내밀어 배우자로 맞이하지 않는다. 동물은 첫눈에 반하지 않는단 얘기다. 후손을 많이 퍼트릴 가능성이 있는지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통과한 수컷이 선택된다. 선택을 받으려면 춤 솜씨가 좋거나, 노랠 잘 부르거나 몸놀림이 좋아야 한다.
노정래_전 서울동물원장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동물행동·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공원 연구실장을 거쳐 동물원장을 지냈다. 야생동물(말, 곰, 도감 등)에 관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냈다. 하위문화에 미치는 사회적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이철민_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기획을 하는 출판 작가이다. 94년도부터 다양한 이슈를 그리는 저널,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일러스트를 해왔으며, 일상을 그리는 수필집 《글그림》을 출간했다. 그 외 《박문수전》, 《내 이름》, 《창경궁의 동무》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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