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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5.13 조회 3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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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웹진 <춤:in>은 2018년을 이어 ‘떵샤와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코너를 2019년 5월, 8월, 11월 총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무용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과 함께 무용공연을 본 뒤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코너입니다.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제 19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Contact Improvisation Performance>

떵샤(윤상은)_안무가

함께 보러간 사람들

김채경

영화와 연극을 즐기며 최애 영화배우 ‘무대인사’를 쫒아다니기 좋아하는 이시대 의 진정한 문화인. 경기도 고양시 토박이로 고양시 청년정책협의체 일자리 분과장을 맡고 있다. 페인트 도소매회사 2년차 사원이다.

최서진

소설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서사 중독자. 한때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녔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고 아름답거나 이상한 것,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지금은 빈티지 재료를 모아 액세서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집에서 일하고 고양이를 돌보느라 한 달에 두세 번 외출한다.

공연 보기 전 아르코예술극장 로비에서 서진과 채경
떵샤: 오늘 공연장으로 오는 길은 어떠셨나요?
서진: ‘대학로에 사람이 너무 많다, 일주일 만에 집 밖에 나오니까 너무 힘들다.’ 하면서 왔어요.
떵샤: 평소에 밖에 잘 안 나오시나 봐요.
채경: 집순이시구나, 반가워요! 저도 집순이예요. (서로 악수)
떵샤: 공연 보러 나올 일은 더더욱 드물겠어요.
서진: 예전에는 미술전시를 좀 보러 다녔었는데, 요즘은 집에만 있어요. 근데 오늘 공연은 어떨지 되게 궁금했어요. 즉흥공연이라고만 쓰여 있고 자세한 설명이 없다 보니까 어떤 공연일지 가늠이 안 됐어요.
떵샤: 미술전시를 많이 봤었어요?
서진: 한 3-4년 전까지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전시는 많이 보러 다녔어요. 한창 신생공간이 생겨나고 사라진 때요. 그런데 점점 질리기도 했고 일하면서 집에만 있게 됐어요.
떵샤: 채경은 오늘 오는 길 어땠어요?
채경: 오면서 버스랑 지하철을 환승하는데 시간이 딱딱 잘 맞아떨어져서 ‘오늘 좀 럭키한데?’ 라고 생각하면서 신나게 왔어요. 혜화역 도착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되게 많고,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까 새롭더라고요. 제가 사는 동네가 사람도 없고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거든요.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섰을 때 여기저기서 버스킹을 하는 것도 좋았어요. 그런데 극장 안에 들어왔을 때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로비에 있는 사람들이 다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제가 평소에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보는 사람들이랑 좀 달랐어요.
떵샤: 어떻게 달랐어요?
채경: 그냥 딱 봐도 예술 할 것 같은 느낌? 솔직히 떵샤는 그런 느낌이 덜하거든요. 떵샤는 그냥 일반인 같은데.
떵샤: ….
채경: 그 사람들은 어디서 한 가닥 할 것 같은. (웃음) 극장 밖의 색깔이 파란색이라면, 극장 안의 색은 노란색 느낌이었어요. 밖에는 젊은 사람들이 대중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고 관객도 그것에 호응하고 있는데, 극장 안은 약간 다른 세계 같았어요.
공연 프로그램과 티켓을 사진으로 남기는 채경
떵샤: ‘서울국제즉흥춤축제’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즉흥’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데, 평소 여러분들의 일상에서 ‘즉흥’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해요. 공연과는 관계없이.
서진: 저는 평소에 즉흥을 별로 안 좋아해요. 즉흥은 일단 되게 당황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걸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저는 계획적으로 잘 짜인, 완벽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즉흥은 작업의 초안이나, 연습, 훈련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채경: 모든 면에서 즉흥은 저랑 안 맞아요. 하다못해 저는 친구를 만나도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서 쓰거든요. 여행을 갈 때도 즉흥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계획이 틀어졌을 경우까지 다 계산해서 플랜 A, B, C까지 다 짜놓아요. 그래서 저는 누가 즉흥으로 무언가를 시키면 화가 나요. ‘나는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 왜 시키지?’, ‘나는 준비한 게 1에서 10가지 밖에 없는데 왜 11가지를 시키지?’, ‘왜 나의 완벽함을 망쳐?’ 이런 생각이 들어요. 특히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즉흥으로 랩을 해봐라, 춤을 보라고 할 때 있잖아요. 그런 걸 봐도 스트레스받아요. 물론 그 사람들은 즉흥까지 준비가 되어있겠지만, 만약 제가 회사 면접을 볼 때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정말 싫을 것 같아요.
서진: 저는 일상에서 즉흥적으로나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는 많은 것 같은데, 작업처럼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할 때는 완벽하게 짜여 있는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객석에서 떵샤와 서진
떵샤: 그렇다면 과연 오늘 본 즉흥은 어땠는지로 넘어가 볼게요.
채경: 완전히 즉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어떤 흐름 안에 있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 팔을 올리면 그것을 따라서 팔을 올리는 것처럼. 한 사람이 무대를 집중시키면서 리드하면 그 사람을 따라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어요. 맨 처음 장면에서 놀랐던 게, 한 사람이 조명 아래 발을 놓으니까 거기에 다른 사람이 발을 포개고, 손을 올리고, 또 몸을 접어서 포개는 것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아무리 즉흥이라고 해도 저 사람이 A를 했는데, 나는 B를 하는 게 아니라 A를 하면 A′, A″로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서진: 이게 ‘컨택즉흥’이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더 잘 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음악과도 영향을 주고받는데, 움직임을 보면서 음악이 따라올 때도 있고, 음악이 먼저 앞서갈 때도 있었죠.
채경: 그런 게 즉흥의 장점인 것 같아요. 움직임이 리드하기도 하고, 음악이 리드하기도 하고, 심지어 관객이 리드하기도 하는 것이 즉흥의 묘미랄까요.
떵샤: 어떤 한 요소가 계속 리드하는 게 아니라 역할이 계속해서 바뀌고 무대 위에 평등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거죠.
서진: 즉흥이라는 건 아까 말했듯이 ‘초안’처럼 아예 처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분들은 즉흥을 오랜 시간 훈련해오신 분들이라서 그냥 즉흥이 아니라 이분들이 이때까지 쌓아온 시간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떵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 성격이 드러나는 것도 느꼈어요.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은 현재에 있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어디론가 막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채경: 아까 로비에서 같이 사진 찍은 무용가분이 특히 누군가를 관찰하고 서포트하는 걸 좋아한다고 느꼈어요. 잠시 대화를 나눴을 때도 자기는 서포트하는 것에 충실했다고 하셔서 ‘역시!’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이 상대방의 동작이 돋보일 수 있게끔 깔려주고, 잡아주고, 밀어주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잘 녹아든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히려 서포트를 하면서 자기가 더 잘 드러나게 된달까요? 사실 오늘 보면서 누가 누구를 서포트 한다는 느낌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보석 같았어요. 이렇게 섞어도 예쁘고, 저렇게 섞어도 예쁘고.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공연에 출연한 이세승 무용가와 한 컷
떵샤: 이게 즉흥이니까 정체되고 잘 안 풀릴 것 같은 순간도 발생하잖아요. 그럴 때 무용가들의 갖는 인내의 시간이 느껴졌어요. 서로 기다리는 거죠. 뭐가 나오나. 그 순간을 지켜보는 관객으로서 같이 긴장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채경: 네 맞아요. 사람들이 사이드로 빠져서 다음 흐름을 기다리는 순간도 좋았던 것 같아요. 6명이 다 에너지를 쓰는 것도 좋은데 누군가 솔로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기다려주는 게 좋았어요. 완급조절을 하는 것 같은.
떵샤: 그런 순간을 그들이 알아서 만들어간다는 게 신기했어요.
서진: 그들도 오늘 공연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 몰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뭔가 원초적인, 원시적인, 처음 불을 발견한 원시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점점 재치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떵샤: 그렇네요. 원초적인 느낌에서 언어가 등장하면서 문명의 세계로 나오고, ‘사진찍기’를 관객에게 요청하는 장면에서는 완전한 인스타그램의 세계로 온 느낌이 들었어요.
채경: 그 장면에서 관객과 무대의 선이 깨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 장면 이후로 관객들이 더 많이 웃고 박수도 치면서 같이 호흡하게 된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이 좀 편해지고요. 그런데 관객들이 이 공연에 대부분 긍정적이고 아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더 그런 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만약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만 관객이 채워져 있었다면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요? 저는 솔직히 막 소리내서 웃기에는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관객의 선을 지켜줘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공연 중에 사진 찍으면 안 된다거나 화장실을 가면 안 된다거나 하는 룰을 지키는 것처럼 공연하는 동안 온전히 그 무대를 지지해줘야 한다는 의미에서요. 그런데 사람들이 쿨하게 웃더라고요. 특히 떵샤.(웃음)
관객과 함께하는 즉흥난장
서진: 저는 즉흥공연이라고 했을 때, 무용가분들이 저는 절대 불가능한, 자신을 내려놓고 어떻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이 즉흥이 테크닉 적으로 굉장히 잘 훈련된 사람들의 육체적인 움직임이라는 사실 이었어요. 이게 생각보다 위험하다고 느꼈고,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훈련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서로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사람들의 몰입된 감정이 느껴지기보단 생각하고 서로 바라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채경: 무용가분들이 몰입하다가도 깨지는 모습이 보여서 재밌었어요. 마치 자각몽을 꾸다가 깨는 느낌이랄까요. ‘다음에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사실 저기서 완전히 무아지경으로 몰입을 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니까. 계속 깨어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떵샤: 실제로 즉흥훈련을 할 때 전체를 보는 눈을 되게 많이 강조해요. 내 안에 몰입되어있는 게 아니라 시선이 밖으로 열리는 거죠. 이 사람들도 그런 식의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들인 거겠죠.
서진: 그러니까요. 즉흥이라고 해도 완전히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쓰여 있는 ‘가장 순수한 춤과 만난다’라는 카피라이팅은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 이 사람들은 테크닉적으로 너무 잘 훈련이 된 사람들이고, 순수하다는 게 대체 뭔지.
채경: 저는 그 순수하다는 말이 어떤 ‘날 것’의 순수함을 의미하는 것 같았어요. 자신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료가 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만나는 음악이었으니까요.
떵샤: 즉흥이라는 단어가 너무 포괄적인 단어인 것 같아요. 즉흥이라고 ‘맘대로 해버려’가 절대 아니잖아요. 서로의 안전을 보장받는 최소한의 룰이 있는, 그 안에서 자유로운 것이죠.
서진: 그러면 떵샤는 즉흥을 볼 때 어떤 걸 봐요?
떵샤: 제가 즉흥에서 감동을 받는 부분은 무용가들의 선택이에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순간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냐는 부분이요. 그 상황을 신박하게 모면하고 자신의 주체성이 발현되는 방식.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게 재밌어요. 또 스스로 이 판에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죠. 물이 가득 든 대야를 다른 사람 배 위에 올려놓고, ‘너 이거 어떻게 할래’라고 말을 거는 상황 같은 거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요즘 꽂혀있는 ‘연결과 상실’에 관해서 계속 생각하면서 보게 됐어요. 이들이 굉장히 진하게 연결되어있는 것 같지만 사실 독립된 개체들이고, 그것은 결국 상실을 동반한다는 생각을 해서요. 제 삶의 고민과 연결지어 본 것 같아요.
채경: 저는 보면서 세포 같았어요. 세포가 증식하다가 맥시멈에 다다르고, 죽는 세포가 생겨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연상됐어요. 또 처음 만난 사람들이 신체를 접촉하는 건데, 당황하지 않고 잘 풀어낼 때 프로답다고 느꼈어요..
서진: 그런 의미에서 되게 섹슈얼한 장면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모두가 하나로 뭉쳐져 있을 때, 집단 난교가 연상되더라고요. 드라마 <센스8>에 보면 등장인물들이 정신적으로 집단 난교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는 것 같았어요.
떵샤: 접촉 즉흥을 ‘재즈’, ‘레슬링’, ‘섹스’에 비유하기도 해요.
채경: 정말 그렇네요. 그런데 혹시 어떤 불쾌한 상황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해요. 다 끝나고 나서 서로 이야기할까요? 만약에 누가 불쾌했는데, ‘이건 예술이야’라고 하면 난감하잖아요.
떵샤: 불쾌함이 있었다면 당연히 상대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는 없겠죠.
서진: 떵샤도 저런 거 해봤어요? 직접 해보셨을 때 어떤 식으로 몰입을 해요? 머리를 쓰게 될 것 같은데.
떵샤: 네, 당연히 머리를 쓰죠. 그런데 그 게 몸이랑 가깝게 연결이 되어있달까요. 몸이 가는대로 가지만 나의 선택만을 주장할 수 없기에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가고자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서로 완전히 연결되어있는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해요. 아까 말했듯이 내 안에 침잠하는 몰입이 아니라 ‘눈을 여는’ 몰입이라는 거. 그런 훈련들을 통해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채경: 보면서 사실 걱정되는 순간도 많았어요. 이 사람들 내일 괜찮을까.
떵샤: 안 괜찮을 수도 있어요. 다음날 막 여기저기 쑤시고, 파스 붙이고. (웃음)
카페로 이동해서 이야기 중
떵샤: 오늘 본 공연을 바탕으로 ‘현대무용’에 대해서 생각해볼게요. 여러분들에게 현대무용은 어떤 것 같아요?
서진: 제가 이 좌담 의뢰받고 현대무용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현대미술의 경우 전시장에 가면 어떻게든 설명을 해주려고 하는데 현대무용은 설명이 없어요. 그래서 더 비전공자가 보기에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어요.
떵샤: 아까 공연 시작 전에 장광열 예술감독이 잠깐 나와서 무용가 소개를 했는데, 그건 어땠어요? 충분하진 않았지만 좋은 인트로덕션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진: 그런데 즉흥무용은 설명하는 게 진짜 어려울 것 같긴 해요. 그 무용가의 역사를 소개하는 거 말고는 뭐가 있을지. 그런데 오늘 ‘컨택즉흥’이라는 장르가 있고 이 장르를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채경: 그러고 보니 음악은 클래식, 대중음악, 월드뮤직 등 장르가 있는데, 현대무용은 장르가 없네요. 그래서 마이너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현대무용의 장르가 어떤 게 있는지 알면, 예를 들어 ‘컨택즉흥’ 이라는 장르를 알고 그게 좋다고 하면 ‘컨택즉흥’ 공연할 때 맞춰서 보러 가면 되는데 그런 게 없다 보니까. 아예 그런 걸 알만한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누가 스스로 현대무용의 종류를 구글링 해보진 않으니까요.
떵샤: 서진은 문학, 미술을 즐기고, 채경은 뮤지컬, 영화를 즐겨 보잖아요. 그런 여타 장르와 비교했을 때 오늘 본 무용은 본인에게 어떤 위치에요? 무용은 몸, 신체성에 집중된 장르이기도 하고요.
서진: 저는 어릴 때부터 서사를 좋아했어요. 특히 소설, 드라마를 좋아해요. 영화보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데 영화가 연출이 더 드러난다면 드라마는 서사가 더 드러나는 것 같기 때문이에요. 드라마는 길어서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시도 잘 못 읽어요. 어렸을 때 미술을 했을 때도 회화를 회화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서사를 계속 만들어서 읽으려 했었어요. 저는 현대무용을 처음 봤을 때 미술전시에서 굉장히 추상적인 회화 작업을 봤을 때와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현대무용을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전에 봤던 무용보다도 오로지 신체의 움직임에 집중한 공연이었고, 서사를 찾는 것을 내려놓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나름 재밌다고 느꼈고요. 이런 경험은 저한테는 굉장히 드물어요. 또 저는 서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이입하는 걸 좋아하는 데 오늘 공연에서 이 무용가들의 캐릭터를 보게 됐어요. 이입까진 아니지만 그런 건 느껴지더라고요.
떵샤: 현대무용이 ‘시적인’ 장르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 서진은 시를 싫어한다니.
서진: 저한테는, 현대시, 현대미술, 현대무용이 다 한 맥락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 세 가지가 저는 어려워요. 그런데 그래도 시는 문자이기에 읽을 수 있고, 미술은 전시장에 가면 설명에 기댈 수 있는데 무용은 그런 게 없으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오늘 공연은 그나마 덜했지만, 예전에는 현대무용 보면서 뭘 어떻게 봐야할 지 몰랐던 적이 많았어요.
떵샤: 채경은 이런 ‘비서사’ 장르를 보니 어땠어요?
채경: 물론 비서사 장르였지만, 오늘은 음악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빗소리, 새소리,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소리 등이 적절히 나오면서 무대에 어떤 분위기를 설정해주었던 것 같아요. 전에 현대무용이 하도 난해하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이거 보고 이해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세상에, 80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그런데 보다가 가끔 이 무용가들이 무대 위에서 분산되어 있을 때 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지점이 있었어요. 앞쪽에 있는 팀도 재밌고, 뒤에 있는 팀도 재밌다면 나는 무엇을 봐야 하는지 고민이 들더라고요. 다른 연극이나 영화는 제시되는 한 장면만 보면 되는데 이거는 막 두 개, 세 개, 여섯 개의 장면이 한 프레임 안에 있으니까 제 선택이 중요해지는 거죠.
떵샤: 그래서 선택을 했나요?
채경: 네, 선택하다가 결국 다 놓치기 싫어서 이거 보다가 저거 보기도 하면서 시선을 움직였어요. 정해진 대본대로 하는 것들은 표정, 호흡, 움직임 다 정해놓고 하잖아요. 최근에 황정민 배우가 나온 연극 <오이디푸스>를 제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보러 갔는데, 알고 보니 배우의 손짓 하나까지 다 정해놓고 하는 거더라고요. 그리고 한 프레임 안에서 전체가 같은 호흡으로 움직이니까 시선이 분산될 것이 없어요. 그런데 이 공연은 누구 한 명이 연출을 맡아서 ‘이 장면에는 잠깐 이 팀 멈추고 다른 팀 움직여’ 이렇게 정해놓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 면이 보기 좀 힘들지 않았나.
떵샤: 힘들기도 했겠지만, 관객의 주체성이 더 보장되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채경: 맞아요.
서로 대화 중인 서진과 채경
떵샤: 여러분은 일상에서 왜 예술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술을 향유하는 목적이 뭔가요?
서진: 제가 예전에 전시를 그렇게 열심히 보러 다녔던 이유는 더 똑똑해지고 싶고 감각을 더 확장하고 싶어서였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정해진 것만큼을 보고 느낀다면, 전시에서는 그 외의 것을 경험하고 볼 수 있으니까요. 당시의 저는 전시나 공연을 감상하면서 그냥 일반인이 아닌 예술인에 속하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던 것 같아요.
떵샤: 지금은 어떤 예술을 주로 향유 하고 있어요?
서진: 지금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죠. 살아가기에 바쁘기도 하고, 현대예술 이런 게 좀 지겨워졌어요. 보다 보면 다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감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좀 따분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크게는 ‘먹고 살아야지 전시 보러 다닐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채경: 제가 예술을 찾는 이유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단어가 ‘도피’에요. 현실에서 도피해서 여기에 잠깐 머무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가면 영화 속 주인공으로 한 시간을 머무르고, 미술작품을 보면 작품 안에 빠져 있고. 그런 시간이 현재를 사는 김채경에서 벗어나서 그 작품 속의 시간으로 녹아들어 내가 아닌 시간으로 보낼 수 있어서 의미있는 것 같아요.
떵샤: 그렇게 치면 무용은 관객이 너무 ‘나’로 계속 있어야 하네요.
채경: 그것도 나름이겠지만 오늘 본 공연처럼 제가 집중해서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면 ‘나’는 없는 거죠. 관객이 아니라 무용수가 되는 것처럼.
서진: 몰입을 정말 잘하시나 봐요.
채경: 요즘은 사실 생각이 많아서 집중을 못 해요. 책도 첫 줄 읽다가 난독증이 올 정도로.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어요.
떵샤: 그래서 아까 같이 춤추고 싶었다고 하셨구나!
서진: 저는 채경씨처럼 완전히 몰입하지는 못했어요. 몰입도를 1부터 10으로 측정한다면 오늘은 5 정도였어요.
채경: 저는 작품에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경험을 엄청 즐겨요. 그런데 장단점이 있어요. 어떨 때는 작품에서 잘 빠져나와야 하는 데도 못 빠져나오거든요. 어떤 소설이 우울하다 그러면 일주일씩 우울하기도 하고요.
떵샤: 오늘 본 공연은 여운이 좀 남을 것 같아요?
채경: 네, 그럴 것 같아요. ‘내가 이런 걸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다시 봤을 때 이 느낌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진: 저는 저한테 여운이 남을 정도의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채경: 너무 감정이 메마르신 것 아니에요? (웃음)
떵샤: 왜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떵샤
채경: 이 사람들은 출연료를 얼마나 받을까요? 티켓 값이 관객당 2만 5천원이라고 했을 때, 합쳐서 N분의 1을 하면 얼마 안 될 것 같아서요. 이게 연극처럼 장기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이 축제가 1년에 한 번이라면서요.
서진: 저도 그게 늘 궁금했어요. 무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공연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나?
떵샤: 그런 걱정까지 했군요. 그런데 2만 5천원, 티켓 가격은 괜찮은 것 같아요?
채경: 그렇게 문턱이 높은 것 같진 않아요. 대극장 연극이 8만 8천원 정도였고, 조승우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10만원이 넘어가더라고요. 영화 아이맥스도 2만원이고요. 이 정도면 돈쓸 만 하겠다는 가격이었죠.
서진: 이 정도의 규모는 보통 이 가격이었던 것 같아서 무난했어요. 그런데 제 예전 구남친들을 생각해봤을 때, 제가 이런 거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면 돈 아까워했을 것 같아요. 가성비가 안 나온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들이었다면 이거 볼 거면 그 돈으로 영화 보고 팝콘 사먹 는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 커플들이 대학로에 연극 많이 보잖아요. 그런데 이 건 안 볼 것 같아요.
떵샤: 이거 데이트 코스로 안 될까요? (웃음) 이게 뭐가 문제일까요. 너무 진지해서? 홍보 디자인이 촌스러워서?
서진: 요즘 그래도 ‘힙한’ 커플들은 미술전시는 많이 보는 것 같던데. 국립현대미술관 가서 사진 찍고. 그런 사람들을 공략해야 하나.
채경: 오늘 이 공연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도 본적이 없어요. 사실 발레 말고는 어디서 무용한다는 소식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홍보를 제발 좀 잘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SNS를 보면 빅데이터로 그 사람의 취향을 분석해서 관심 있을 만한 걸 광고로 뜨게 하잖아요. 무용도 그런 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연극이나 영화 많이 보는 사람한테 무용도 슬며시 내밀어 보는 거죠.
서진: 그만큼의 자본이 있나요?
떵샤: 아니요…. 그런데 이런 얘기는 제가 이 기획 하면서 맨날 똑같이 들었던 이야기예요. (웃음)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앞에서 마무리!
짧은 감상
‘움직임과 소리 그리고 빛, 그 관계의 즉흥.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고, 당황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찾아오고 우린 즉흥이 필요하다.’ - 최서진
‘무용이란 게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예술장르인 줄 몰랐다. 대사도 없고 그렇다고 상황설명이 될 만한 것이 없는데도 이렇게 몰입할 수 있다니! 대중들이 접하기 좋게 주기적인 공연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김채경
떵샤(윤상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동료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용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내부자 입장에서의 창작과 예술생태계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무용을 그들만의 세상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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