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우_말레이시아 말라야 대학교 무용과 조교수
말레이시아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말레이 언어로 한류는 ‘글롬방 코리아’(Gelombang Korea)라고 일컫는다. 한국 드라마 열풍을 시작으로 많은 수의 청소년과 청년(이후 청(소)년으로 지칭한다.)들이 케이팝(K-pop) 음악과 케이팝 댄스에 매료되어 댄스 커버 팀에 합류하고 있다. 현재 80개 이상의 댄스 커버 팀이 존재하고 있고, 각 팀은 쿠알라룸프루나 페낭과 같은 도시의 쇼핑몰에서 개최되는 댄스 커버 대회에 정기적으로 참가하며 기량을 뽐내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 새로운 댄스 커버 영상을 게시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케이팝 그룹은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소년과 소녀로 구성된 가수 그룹을 지칭한다. 물론 그들의 노래의 퀄리티가 주목을 받고 팬덤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인기를 얻는 데에는, 기계처럼 완벽하게 소화하는 역동적인 안무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실황, 그리고 비공식 안무 연습 영상까지도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유연한 미디어 환경은 영상을 통해 아이돌의 안무를 모방하고자 하는 전 세계 사람에게 유용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젊은 팬들은 미디어를 통해 케이팝 아이돌의 안무를 모방하고 댄스 커버 영상을 제작하여 미디어에 배포한다. 과연 말레이시아의 젊은 세대가 케이팝의 노래에 심취하는 만큼 댄스 커버에 열광하는 원인이 과연 무엇이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글을 시작해본다.
말레이시아의 케이팝 열광은 한국 드라마의 유행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에 방영된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청(소)년들은 드라마 주제곡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 현상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말레이시아의 젊은 세대들은 한국 방송 3사(KBS, SBS, MBC)를 알고 있을 정도로 한국의 음악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실 2010년 이전의 말레이시아 청(소)년은 일본 팝 음악 (J-pop)을 들었지만, 케이팝이 등장하면서 말레이시아 청(소)년 대중음악이 시대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가수 비, 아이돌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를 필두로 말레이시아 내에 팬덤이 형성되었다. 실제로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한 다수의 지원자가 케이팝을 사용하고 케이팝 댄스를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댄스 커버에의 참여와 영상 제작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말레이시아의 젊은 세대들이 케이팝 그룹에 대해 대체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은 다르겠지만, 한국 아이돌 그룹의 팬덤이 쉽게 형성되고 팬심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현상이 목격된다. 즉, 오랫동안 특정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의리와 충성으로 팬심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팬과 달리, 말레이시아 청(소)년은 팬덤의 대상을 유동적으로 바꾸곤 한다. 다시 말해, 케이팝 문화를 거부감 없이 짧은 시간 내에 쉽게 수용하는 반면 특정 아이돌의 팬덤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유동적 특질은 말레이시아의 국가적 특성인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고유의 자체 전통문화를 지지하고 그로 인해 단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문화적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우에는 구별되는 특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국가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지원하는 것에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조합의 국가로 거듭났다. 사바, 사라왁주의 토착민과 말레이인(68.6%), 중국인(23.4%), 인도인(7%) 및 기타(1%) 등 이렇게 주요 3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종에 따라 관심사나 의견이 다르며 혼재적 문화 안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해 보면 말레이시아인에게는 ‘단일’ 보다는 ‘다원’이라는 용어가 익숙하고, 타 국가로부터 오는 다양한 영향에 오랫동안 단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 중국인은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환경적 조건 때문에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말레이 언어에 동화되어야만 말레이시아인으로서 말레이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공립학교에 다닐 경우에는 국가 공용어인 말레이어를 사용해야 하며, 국제학교에 다닐 경우에는 말레이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한다. 귀가 후에는 많은 가정에서 부모님들과 중국어로 소통한다. 현재 청(소)년층인 이민 3, 4세대 말레이시아 중국인과 말레이시아 인도인은 이중 혹은 삼중 언어의 사용이 자연스러운 환경적 결과물이다. 혼종 언어의 사용은 말레이시아 국민과 그들의 문화를 하나의 폴더로 분류할 수 없음을 증명해준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인들의 다원적 기질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 대한 단일적 신의를 보여주는 대신에, 자율적이고 유동적인 팬텀을 형성하는데 중추적인 기반으로 작용한다.
말레이시아 케이팝 팬들은 한국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사를 정확하게 발음해 노래하고 아이돌 외모에 주목하여 패션, 헤어, 메이크업, 제스처 등을 모방한다. 그리고 케이팝 댄스 커버 영상을 제작하는 청(소)년들이 팬으로 아이돌의 노래와 춤에 관심을 갖지만, 몇몇 댄스 커버 그룹들은 더 나아가 각 그룹의 취향에 따라 춤 동작을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이돌 그룹의 안무를 선정하고 스트리밍 미디어를 통해서 춤을 마스터하여 커버댄스 영상을 만든다. 또한,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안무가 발표될 때마다 안무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인다. 케이팝 안무는 미국의 스트리트 댄스 안무가와 긴밀한 관계로 얽혀져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미국의 유명 안무가가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안무에 참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막연하게 따라하는 것으로 그치는 댄스 커버에서 나아가, 안무가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댄스 커버 영상을 제작하는 말레이시아 그룹의 사례는 단지 이것이 한류이고 케이팝 댄스이기 때문에 매료된 게 아니라 글로벌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읽고 현시대 춤의 풍조를 이해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댄스 커버 영상은 단순한 춤 모방의 결과물로 해석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역사적 환경으로부터 기인한 혼종적 -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 특질이 청(소)년 문화에 작용하면서 타문화에 대해 열린 사고방식과 중립적이고 유동적 성향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향은 케이팝 안무에서 나타나는 교차문화 모티브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촉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젊은 세대들에게 케이팝 댄스 커버는 글로벌 현상을 읽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자연스럽게 마련해준다.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볼 때, 개발도상국인 말레이시아가 세계화로 빠르게 진전되고 흡수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 문화적인 잠재력을 보유한 신세대의 활동으로 평가되어야 함을 제안하고 싶다.
참고한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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