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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5.13 조회 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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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노트 쓰기를 통한 작업 과정의 아카이빙

[2019SICW x 시리즈_글로 완성하는 안무]



2019 SICW x 시리즈 ‘글로 완성하는 안무’는 무대가 끝나면 사라지는 순간의 예술을 넘어 영원히 기록되는 안무를 위해, 움직임과 리듬을 글로 만드는 워크숍이다. 총 5일간, 다섯 가지 커리큘럼으로 진행된 본 워크숍의 기록을 웹진 <춤:in>을 통해 공유한다. 첫 번째는 과정상 2일 차에 진행되었던 임지애 안무가의 ‘안무노트 쓰기를 통한 작업 과정의 아카이빙’이다. 게재 순서는 웹진<춤:in> 편집 방향에 따라 조정될 예정이다.

[2019SICW x 시리즈_글로 완성하는 안무]
안무노트 쓰기를 통한 작업 과정의 아카이빙

허영균_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서지혜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오후 2시 네모, 흰 벽들, 한 면을 가득 메운 거울, 나무로 된 바닥, 공간 가장자리를 따라 놓여 있는 바(Bar)… 익숙한 무용 연습실이 풍경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긴 책상과 의자들이 동그랗게 놓여있을, 조금은 낯선 공간이 된다. 몸을 풀고, 몸을 움직이던 사람들이 연습복 대신 랩톱과 노트를 챙긴다. 연습과 글쓰기 수업, 안무와 기록이라는 이질적인 만남이 당분간 이곳에 맺힐 예정이다. 임지애 안무가가 진행한 이 워크숍은 ‘안무노트’를 중심에 두고, 안무의 발생 전후, 작업의 준비와 진행, 수행의 사이사이를 ‘기록’으로 어떻게 연결 짓고, 기록으로 남기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안무가 발생 되기 전, 안무가 발생하는 장소(안무적 행위로서) 그리고 안무가 끝난 시점으로 창작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록하기와 쓰기 행위를 총 세 부분으로 나누었고,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탈락시킬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행위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기록이나 쓰기가 신체 행위로 다시 구체화할 수 있는 ‘하기’와 ‘만들기’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임지애 안무가가 나누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안무 작업을 하는 임지애라고 합니다. 안무학교 멘토, 강사로 일하고 있기도 하고요. 한국춤과 한국이라는 곳에 관심이 있는 안무가입니다. 한국춤을 전공했고, 2011년에 베를린의 하체테(HZT)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안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업 초반에는 한국춤의 움직임에 많이 집중했었는데요, 점차 한국춤을 둘러싼 문화적, 역사적 맥락으로 관심 분야가 확장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춤을 중심으로 이민자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강의자의 소개를 끝으로 참여자들의 소개가 이어진다. 열 한 명의 수강생들은 주로 안무가거나 퍼포머로 활동 중이었다. 자기소개와 동반된 것은 자연스레 ‘왜 이 워크숍을 신청했는가’였는데 이는 곧 무용 작업에서의 ‘글의 필요와 쓸모’에 대한 고백이자 질문이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업에 지원하는 것도 글쓰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만들지 않은 공연을 글로 설명하는 것도 어렵지만, 공연을 만든 이후에도 팸플릿의 글 등, 글쓰기는 이어지더라고요. 안무 작업의 매일 매일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이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어디까지 (움직임을) 점유하고 개입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글쓰기가 낯설지는 않지만 작품 활동과 글쓰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무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또 춤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서,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비무용인들과 대화할 때, 언어적으로 춤과 움직임에 관해 소통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요. 그리고 안무 작업의 기록과 편집이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1) 연결지어 생각하기 : 글 쓰는 행위를 보는 행위, 관찰하는 행위로

서로의 얼굴과 이름, 욕망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처음으로는 글 쓰는 행위를 보는 행위와 관찰하는 행위와 연결지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글쓰기, 보기, 관찰은 모두 같은 개념이라고 임지애 안무가는 설명한다. 일상에서 무시되는 것들을 관찰하게 될 때, 그것을 통해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해낸 것을 통해 글이라는 매체로 옮길 수 있으며, 그것을 다시 다른 감각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상, 추측, 상상 등이 재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무를 시작하면서 글이 내 작업에 개입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작업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우선 무조건 무언가를 만듭니다. 그다음 행위를 하고, 글을 통해 추측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공연 후 만들어진 수많은 글을 아카이빙할 뿐만 아니라, 다음 작업을 위한 재료로 쓰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직접 글을 써보셨으면 하는데요. 다음의 네 가지 질문에 답해보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한 문장으로 설명해 보는 겁니다. 그런 다음 서로 돌려 읽고 피드백을 해보기로 하지요”

질문들 1. 글을 통해서 안무에 어떤 에너지를 얻고 싶은가?
2. 작업과 행위와 글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3. 나의 생각을 파악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4. 글을 통해 정밀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 추상적인 관계가 전환될 수 있는가?

한 줄로 작업 설명하기 “그 무언가를 털어버리기 위한 제스쳐”
“신체 도량화하기”
“음악과 무용은 인위적이어야 하는가, 자연적이어야 하는가”
“인위적인 움직임과 고정된 표정, 경직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몸부림”
“매 작업에서 나 자신이 피식피식 웃어야 하고, 극장에서도 관객이 피식피식 웃어야 하는 작업”
“흐릿한 기억 속의 나를 감각적인 접근으로 현재 몸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몸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기”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공간에 펼쳐놓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엉덩이로 이름쓰기라는 한국의 문화를 들여다보고, 이 행위를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피드백 하기 “구체적으로 적어 준 사람들은 상상이 되지만 어떤 글은 상상이 안 되어서 읽기가 어려웠다.”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 처음 본 단어들을 발견했을 때 흥미로웠다.”
“내가 잊고 있던 것을 짚어줬던 글을 보았다.”
“지운 부분들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나만 준비가 안 된 줄 알았는데 다들 정신이 없으신 것 같더라.”

짧은 발표와 피드백 다음에는 자신이 쓴 글 안에서 3개의 키워드를 고르기로 했다. 그런 다음 고른 키워드와 작업이 어떻게,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어있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경험, 체험, 전환
“댄서로 무대에 오르든 안무를 하든, 작품을 만드는 주제에 있어 표현하려고 할 때, 그것을 내가 먼저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고 익숙할 수 있을 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서 파생되는 이유 있는 움직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통춤, 미디어, 기술
“전통춤은 전공했던 것, 미디어는 흥미롭게 다가왔고, 기술은 관련은 없지만, 예술을 뒷받침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감각, 행복한 질감, 창작 방식
“인위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찾고 싶고, 춤을 통해 교감하고 싶고 아픈 몸을 스스로 치료하고 싶어서, 나만의 창작 구조법을 정립하고자 합니다.”
퍼포머이자 관객, 확장된 시각, 두 가지 결과물
“관객은 일시적 순간 공동체, 공연의 완성은 관객이라는 생각으로 관객이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만들어지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확장된 안무에 대한 의식 없이 새로운 안무를 만들고 싶습니다.”
신체, 물리량, 특정
“내 작업에는 늘 신체가 있었습니다.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물리량이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몸과 움직이는 몸, 공간, 현상
“작품의 핵심재료는 공간입니다. 공간은 현상을 설계하고 바라보는 주된 관점이나 도구입니다.”
영감, 노력, 끌어당기는 힘
“노력은 보상이 없으면 땡깡입니다.”
(2) 온라인 작업노트 공유

자신의 작업에서 키워드를 선별해보고, 그것을 자기 작업의 기본 문장으로 만들어본 다음에는 임지애 안무가가 작업노트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온라인 워드프로세서 페이지를 적극적(혹은 그 이상)으로 활용하는 안무가는 앞서 언급했던 세 단계의 분류 ? 글쓰기, 보기, 관찰-를 홈페이지에 공개 또는 비공개로 누적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두서없이 질문을 던지며, 아이디어를 나열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작업의 동기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 임지애 안무가 홈페이지 발췌

“질문을 충분히 던지고 나면 썼던 글과 연결되는 이미지 레퍼런스를 찾습니다.”

ⓒ 임지애 안무가 홈페이지 발췌

임지애 안무가가 보여준 것들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구체적인 질문으로 그리고 좀 더 정리된 형태의 글감(그러면서 동시에 안무의 재료가 되는)으로 진행하고 있는 작업들이었다. 워드프로세서에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차곡차곡 시간과 자료가 쌓여있었고, 그중에는 작품화되어 그 이후의 단계에 이른. 즉, 기록을 넘어선 기록의 단계에 놓인 작업들도 보였다. 여기에서 참가자들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두서없이 질문을 던지며, 아이디어를 나열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작업의 동기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Q. 안무노트와 워크북이라는 두 용어를 사용하는데 어떻게 다른가요?
“안무노트는 더 개인적인 것 같습니다. 공유는 내부 프로덕션하고만 공유합니다. 워크북은 조금 더 외부에 공유 가능한 형태입니다.”
Q. 임지애 안무가의 경우에는 이미 충분히 글이나 리서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드라마투르그와의 작업을 선호하며, 어떻게 작업하나요?
“어려운 문제인데, 작업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업은 이미 내안에 충분히 시간과 재료가 쌓여있어서 내가 던지는 질문, 내게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함께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어떤 때는 작업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Q. 다른 무용수(창작자)들과 작업할 때도 개인적인 작업 방식을 유지할 수 있나요? 이렇게 준비하고 계획해도, 연습실에서 몸으로 만나다보면 다시 0이 되는 건 아닌가요?
“글을 쓰는 이유는 쓴 그대로 연습실에서 해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행위 자체를 흔들어 본 것에 가깝습니다. 해설도, 해석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과 몸의 메커니즘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3)두 가지 글쓰기 방식으로 이미지를 설명하기

“지금부터는 서울무용센터 2층 공간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이미지를 두 가지 방식으로 글로 남겨보겠습니다. 하나는 설명적인 글쓰기고 다른 하나는 추상적인 글쓰기라 할 수 있습니다. 설명적인 글쓰기는 일반적인 정보 전달의 글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7분 동안 고민해서 적어주세요.”

서울무용센터의 한 공간을 선택하여 두 가지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마지막 과제였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공간을 찾아서 그곳을 한참 들여다보거나 응시하거나, 신체를 이용해서 크기나 넓이를 재어보거나 했다.

발표 공간: 2층 레지던시 입구
- 복도 입구, 파란색 벽, 점점 길어지며 멀어지는 메모들.
- 나는 갈 수도 이지만 안 갈 수도 있다. 입구에 있지만 중간에 있고 끝에도 있다.

공간: 2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1층 복도
- 두 층과 두 측면이 창문으로 연결된 공간.
- 완전한 밖은 아닌 공간으로 향해 나아간다.

공간: 2층 연습실
- 빔프로젝터가 켜진 곳으로 사람들의 몸 방향으로 향한다.
- 빔프로젝터가 꺼지면 공간이 가진 의미는 사라지지만, 그 안에서 얻은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저장된다. 공간: 엘리베이터 앞
- 열리고 닫히고 울퉁불퉁 노란색. 희미하게 비춰지는 내 모습.
- 거부와 수용, 존재함들이 만연하게 놓인 세계.

공간: 엘리베이터 앞 시각장애인용 노란 표시
-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란 안내 표시가 있는 엘리베이터 문 앞.
- 면적이 오른 팔 한 개, 오른 엄지손가락 한 개이면서, 원이 72개가 있는 면적.

공간: 연습실 기둥 콘센트가 있는 면
-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접속적인 공간.
- 신체회로의 감각 전류 여행기.

공간: 연습실 바닥
- 플로어에 모바일을 지참한다.
- 지극히 고전적인 것과 이질적인 것이 함께 있다.

“여러분이 발표해주신 설명적인 텍스트에 이미 정보 이상의 네러티브가 많이 들어있었어요. 글을 쓸 때도, 춤을 출 때도 그곳에 없는 것을 자꾸 보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습관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거기에 실제로 있는 것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훈련을 저 스스로도 많이 하려고 해요. 설명적인 글에 있는 네러티브를 줄여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어요.”

네 시간 동안의 워크숍은 그렇게 줄여서 고쳐 쓴 설명하는 옆에 사람과 나눠읽고 피드백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워크숍은 임지애 안무가가 스스로 밝혔듯이 대단한 플래너이자, 기록광으로서, 여러 층위로 촘촘하게 나누어진 기록의 용도, 의지, 방식, 구현이 작품으로 스며들고, 다시 작품 밖으로 나오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참가자들에게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은 내 작업을 직시하기이며, 노력이라는 것이 가장 오래 기억될 점으로 남았다.

강의. 임지애 안무가
(임지애 안무가 홈페이지 http://www.jeeaelim.com)

임지애_안무가 베를린에 거주하며 안무 작업을 하고 있고, 안무학교 멘토,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 춤이라는 ‘것’과 한국이라는 ‘곳’에 대해 관심이 있다.

허영균_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예술작가로 활동하면서 1도씨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서지혜_일러스트레이터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였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인형들을 만들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

허영균_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예술작가로 활동하면서 1도씨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서지혜_일러스트레이터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였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인형들을 만들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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