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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4.12 조회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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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에필로그

공영선_안무가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엄홍길 대장이 콧수염에 고드름 주렁주렁 매고 생사의 가름 길이 느껴지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여기는 히말라야산맥, 안나푸르나입니다!'라고 티브이에서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그곳 말이다. 조금 다른 것은 그분은 해발 8000m 이상의 정상을 등정했고, 나는 고작 4200m에 자리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체험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공영선
나는 보름 동안 가이드나 짐꾼 없이 혼자서 17킬로의 무게가 나가는 배낭을 메고 푼힐 - ABC -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를 이어서 걷는 여정을 계획했다. 트레킹 코스에는 적당한 거리마다 식당 겸 숙소가 있어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어차피 힘든 건 당연하니까 잠자리의 추위나 한두 번 발목을 접질리는 정도의 가벼운 부상을 제외하고는 별 무리 없었다.

“오늘의 숙소까지 한 시간 반 밖에 안 남은 터라 가볍게 출발했다. 아, 근데, 정말이지, 맙소사, 식당에서 점심을 몇 걸음 떼지도 못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근육통도 아니고, 피곤한 것과도 또 다르고, 그냥 내 다리가 아닌 것 같다. 얕은 계단에 한 발 올리는 데 1.5초는 걸리나 보다. 태어나 이렇게 우아한 느린 걸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_1월 19일의 일기

“고도 3000m 이후로 아주 느리게, 고민에 빠져 걷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의 걸음 마냥 걷되 되도록 쉬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해야 고산병 위험이 덜하다는 걸 어제 숙소에서 귀동냥했다.”_1월 20일의 일기
ⓒ공영선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씩 걸었는데 워낙 비수기에 간 터라, 드물게 사람이나 동네 개를 마주칠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숲속에 나 혼자였다. 무탈하게 하산할 수 있도록 보살펴준 산신령님 덕분에 깊은 산속에 혼자 푹 안겨있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정말 호사스러웠다. 웅장한 풍경 속에 없어져도 모를 만큼 깨알 같은 내가 발에 차이는 돌멩이나 다름없이 툭 놓아 있는 것이 느껴질 때면 아찔하게 좋았다. 또 동행이 없으니 나의 리듬대로 걸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걷다 보면 무엇보다 걷기 자체에 빠지게 되는데 걸음 스스로가 찾아가는 리듬에 몸을 얹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걷게 되었다. 첫째 날에는 그렇게 힘들다가도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과정이 놀라우리만치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작, 하고 열 걸음 만에 후회했다. 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고작 10분 지났고, 앞으로 열하루 남았다. 망했다. ‘도대체 어떻게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벗어나지를 않았다.”_1월 16일의 일기

산에서 내려오는 날, 트레킹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포카라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로 갈아타려고 내렸는데 이대로 걷기를 멈추기가 아쉬워 마저 걷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만큼이나 둔중했던 발바닥의 무게감이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걸음의 무게를 아끼고 즐기며 40분을 더 걸었다.
ⓒ공영선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하는데 정상의 반절 정도 되는 베이스캠프까지는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와 체력의 사람들이 온다. 그만큼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것이 대단히 위대한 일도, 대단히 위험한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건강하게 잘 다녀왔다고 해서 별거 아니라 말하기도 그렇다. 자칫 발을 헛디뎌 낙상을 하거나 생명을 잃기까지 하는 아찔한 사고가 드물게 일어나기도 하고 수시로 바뀌는 기상 상황 때문에 헬기를 타고 하산하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로 내가 하산한 바로 다음날 눈이 몹시 내려 베이스캠프에 있던 사람들 모두 헬기를 타고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도에서 만난 다른 친구도 정상까지 올랐다가 무릎 통증으로 헬기를 불러 15분 만에 간편하게 하산하는 불행을 겪었다. 게다가 호랑이도 곰도 만날지도 모른다! 첫째 날에는 속된 말로 ‘쫄아서’ 호루라기를 목에 매고 걸었는데 거추장스러워서 이튿날부터 가방에 넣어버렸다.

“숲속에서 가축들의 방울소리가 실려왔다.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나무와 이끼들이 눈앞에서 얽혔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뒤틀리며 뻗는 나무 군락이 자주 나타났다. 협곡의 모양새가 아찔했다. 계곡을 졸졸졸 흐르는 낮고 높은 소리가 좋았고, 물소리가 사라지고 찾아오는 고요함이 좋았다. 걷다 보니 매 순간 태어나 가장 높은 곳을 발 디디고 있다는 생각이 별일 아니라는 듯 스쳤다.”_1월 16일의 일기

풍경은 당연하면서도 놀랍게도 매번 다르고 매번 감탄하게 되며, 하산길에 다시 만나 다시 또 감탄했다.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벅차 심심할 겨를도 없고 생각이 깊어질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짊어온 고민을 꺼내 골똘히 마주 볼 새도 없었다. 오히려 붙들고 있던 생각들에 잠시 괄호가 쳐진 것 같았다. 괄호 안에 묶어 두고 걷기만 했다. 땅에 묻어둔 김칫독처럼 괄호 안에 고민을 묻어두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괄호 안의 고민은 히말라야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돌아왔다. 여행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공영선
사람들은 내게 히말라야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 물었다. 나는 매번 대답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친구들 하나같이 나를 멋지다고 추켜세우는 것이 좀 쑥스럽기도 했고 ‘더 나은 사람’으로 돌아왔을 거라고 기대에 차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리는 없으니 뜨끔한 것이다. 오히려 민망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멋진 풍경을 만나고 근사한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눈이 번쩍 뜨이는 삶의 깨달음이나 예술적 영감을 얻어온 것도 아니고 히말라야를 다녀오기 전후의 나는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니 나조차 김새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베이스캠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게 안겨있다. 산세가 구름에 깊이 잠겼다가 무대의 막이 오르듯 어느새 걷혀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오가는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는 능선이 기가 막혔다. 긴장이 풀려 반쯤 누운 채로 생강차를 마셨다. 해가 넘어가며 마차푸차레는 타닥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치 붉게 타올랐다. 앞으로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내게 묻는다면 ‘해질녘의 마차푸차레색’ 이라고 으스대며 말해볼까봐. 근데 나는 왜 여기에 온 거지.”_1월 20일의 일기

ⓒ공영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날 밤,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는데 어째서 여기에 온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 그제야 툭 뱉어졌다. 그리고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유가 딱히 없었다. 왜 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단지 어렸을 적에 한때 꿈이 여행가였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깼다. 침낭 밖으로 정말 나가기 싫은데 쉬가 마려워서 꾸역꾸역 나갔더니 달빛이 무척 밝아서 보일만한 것들은 아주 잘 보이기에 어리둥절했다. 고개를 휙 돌리니까 어제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던 설산이 달빛에 근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압도하는 아름다움이었다.”_1월 18일의 일기

“보름달이 떴다. 달도 별도 정말 밝고 크다. 화성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달빛 별빛에 비치는 설산이 대낮처럼 또렷했다. 밤은 어둡지 않았다.”_1월 21일의 일기

그것은 나와 산, 단둘이만 아는 비밀 같은 것이었다. 한밤의 달빛 아래 설산을 처음 마주했을 때 몰래 훔쳐보다 들켜버린 것 마냥 놀라서 입술 사이로 숨이 덜컥 떨어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고, 구글링으로도 찾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목격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지만 이렇게도 갑작스러운 우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알지 못했던 세계를 불현듯 맞이하게 되면 이전의 자기를 재정비한다. 밤이 더 이상 어둡지 않게 된 이상, 괄호 안의 고민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영선
여행에서 돌아온 지 보름이 지났다. 눈밭에서 그을린 이마는 여전히 까맸고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주하고 오랜만에 먹은 잔치국수에 소주는 기가 막혔다. 다음날 숙취처럼 여행 후의 통장 잔고는 가차 없이 지난날을 후회하게 만드는데 이번에도 위험했다. 숫자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돌아오자마자 일 좀 달라며 주변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농담 같은 구직 활동도 귀담아 들어주는 친구들 덕에 일거리가 쏠쏠하게 들어오는 모양새라 한시름 덜었다. 고맙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연습실에 출근하고 있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계획에도 없었다가 하산길에 올해는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운 좋게 그렇게 되었다. 연습실에서 한창 뭘 좀 만들어 보다가 창밖으로 이제 막 움찍거리기 시작한 개나리를 보며 후렌치파이를 까먹는데, 참 좋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공영선_안무가 춤 기반의 공연예술 일을 하고 있다. 부지런히 산과 바다로 여행을 가고 그 와중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곰에서 왕으로>를 안무하고 공연했다. 곧 서울을 떠난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어쩐 일인지 아직도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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