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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4.11 조회 5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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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시아_베트남편] 베트남 문화, 춤의 이해

[아시아아시아]



[아시아아시아]는 2019년 웹진 <춤:in>의 특별 연재 시리즈입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없는 아시아 지역의 무용 생태계를 현지 전문가의 글을 통해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아시아아시아_베트남편]
베트남 문화, 춤의 이해

손예운

베트남은 이미 우리나라에 친숙한 아시아권 나라다. #박항서매직, #하노이회담, #삼성전자공장, 한국에 번져나가는 베트남 음식점들까지. 최근 2년간 베트남 방문객 중 한국인 비중이 1, 2위를 오르내린다. 위아래로 한국보다 3배나 긴 나라, 중국 식민지 1000년을 겪은 나라, 이념의 대립으로 남북전쟁 후 통일된 나라, 20-30대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며 경제가 개방된 젊은 나라, 세계가 주목하는 개도국으로 떠오르는 나라 등 상징적인 특징을 이해해야 베트남 문화와 공연예술 파악에 도움이 된다. 이 나라의 지형, 역사, 이념 등을 짚어보면서 베트남 공연예술씬을 소개한다.

베트남이 문화를 대하는 자세 : 지형과 역사, 이념

베트남은 폭이 좁고 위아래로 길에 뻗어 해안선의 길이가 약 2,000km에 이른다. 중심지들은 인구의 분포에 따라 구분된다. 총인구는 1억을 앞둔 약 9,700만 명이며, 북부 수도인 하노이와 중부의 다낭, 그리고 남부에는 경제 중심지인 호치민에 밀집되어 있다. 여기에 주요 베트남의 정부기관, 투자기업, 혹은 문화예술기관들이 모여 있다. 각각의 도시들은 지리적으로도 멀고 겪어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인 것처럼 생활하고 사는 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54개에 이르는 베트남 민족의 분포처럼 긴 영토에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과거에 중국 1,000년, 프랑스 50년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45년 2차 대전 후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과 호치민이 주도하는 북베트남으로 나뉘었고, 남북전쟁 끝에 북베트남이 승리한 후 현재의 통일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 이르렀다. 1986년 ‘도이머이(새롭게 개혁함)’라는 경제개방 정책을 통해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베트남 내 예술 활동도 이런 개방의 흐름과 함께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문화예술 기관은 정부 산하에 있다. 그 중심축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있고 그 속에 공연예술국, 미술국, 영화국, 사진국 등이 있다. 이 기관들이 중요한 이유는 베트남에서 예술 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이들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등록을 받았거나 관리 하에 있는 예술기관을 거쳐 라이선스를 사전에 획득해야 하고, 단계적인 검열을 거쳐야 공연이나 전시가 가능하다. 아무리 경제개방을 이루었다 해도, 아직 사회주의 체제의 걸림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체제 내부나 역사에 대한 비판 콘텐츠는 가장 단호한 검열대상이다. 즉 민주주의 국가라면 한 번쯤 개인이 비판적으로 사고할법한 내용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는 선전용 음악이나 공연을 만들어내는 데에 아끼지 않는 지원을 하는 편이다. 현지의 한 공연예술 관계자는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해 “아무도 듣거나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데에 돈을 쏟아 붓지 말고 현대의 새로운 해석,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 말라면 더 한다’고 했던가. 베트남에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비공식적인 지하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며 활동한다. 모든 작품이 문제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정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에 거주하는 외국인(expats)과의 예술 교류도 활발하다. 하지만 늘 순탄한 것은 아니어서 특정 활동이 두드러지면 선정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공간을 정부에서 폐쇄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외부의 시선으로 말하면, 옮겨 다니는 젊은 아티스트의 집합소를 찾아다니는 묘미가 있다. 어느 곳보다 자신의 작품이나 행위에 열정적으로 쏟아 붓는 그들의 마음이 귀하고, 누구보다 의식이 뚜렷하다. 또한, 베트남은 전체 인구 중 70% 이상인 청년층 가운데 1980년대 전후로 태어난 세대의 활약이 떠오르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들은 해외 예술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오거나 베트남 내 높은 교육열 아래에서 성장해 주목할 만한 베트남 스타일을 개척하고 있다. 역사나 환경을 주제로 삼는 이들의 개성 있는 작업들이 시각예술, 영상 쪽에 많은 편이며, 실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예술기관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다.

공터로 남은 하노이 크리에이티브 Hanoi Creative ⓒ손예운
도시별 인프라 살펴보기 : 하노이-호치민의 다른 성격

위에서 언급한 대로 베트남의 곳곳은 다른 역사적 환경을 거쳐 왔기 때문에 도시별로 문화적 성격이 많이 다르다. 하노이는 베트남만의 고유한 색채가 강하다. 또 수도라는 이유로 나라에서 적극 지원을 하고 있어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많고 해외 공관이 주최하는 행사도 하노이에 집중되고 있다. 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호치민은 상대적으로 문화에 대한 소비문화가 활발하고, 개방적인 예술을 즐기는 데 거리낌이 적은 편이다.

인프라의 규모를 살펴보자. 정부 산하 무용 단체와 극장들을 보자면 하노이에는 하노이오페라발레단, 국립가무악단이 있고 무용 공연이 올라갈 만한 시설과 모양을 갖춘 500석 이상 극장은 하노이오페라하우스, 어우꼬극장이 있다. 호치민에도 마찬가지로 2개씩이다. 호치민심포니오케스트라발레단과 봉센극단이 있고, 호치민오페라하우스와 벤탄극장이 견줄만하다.

교육기관도 비슷하다. 하노이에는 국립무용학교, 호치민에는 무용전문학교이 있으며 순수무용을 다루는 사설 기관으로는 하노이 키너지스튜디오, 호치민 댄스센터가 있다. 또 공연예술축제는 도시마다 한 개씩 있다. 주 베트남독일문화원(Goethe Institute)이 주최하는 ‘유럽 미트 아시아(Europe meets Asia)’가 하노이에서 가장 큰 국제무용축제였으나 2017년 6회를 맞이한 후로 재정비 단계를 거치고 있다. 대신 호치민과 하노이 모두에서 열리는 주베트남프랑스문화원(French Institute)의 주최로 ‘크로싱 오버 아츠 페스티벌(Krossing Over Arts Festival)’ 다원예술 축제가 큰 규모로 급부상하면서 올해로 3회를 맞이했다.

전반적으로 무용수를 배출하는 교육기관, 무용수들의 춤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 그리고 그들을 감상하는 관객 모두 많지 않다. 또 공연 프리뷰나 스케치만 다룰 뿐, 적극적으로 비평을 하는 전문가와 매체가 극히 드물다.

하노이 오페라하우스 ⓒ손예운
베트남에서 만난 춤의 모습들

베트남에서 만난 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베트남의 전통춤은 베트남 최고 무용교육 기관인 국립무용학교와 호치민 무용전문학교에서 여러 민족의 춤을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베트남에는 소수민족이 54개나 있지만 약 6-7개 정도의 민속춤들만 학교에서 전수되고 있다. 방울이나 부채, 손수건과 같은 소품을 잘 활용한다.

베트남 국립무용학교 전통춤 수업 ⓒ손예운
베트남 국립무용학교 전통춤 수업 ⓒ손예운
사실 베트남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춤의 형태로는 베트남 창작춤이 있다. 외교 인사를 모시는 중요한 자리에서도, 텔레비전에서 유명 가수의 백업 댄스로도 베트남 창작춤을 춘다. 외국인 관광객 대상 상설 공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남녀 모두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음악을 배경 삼아 춤추는데, 부드럽고 곡선적인 팔 움직임에 발레적인 다리 라인이나 점프 동작이 있는, 화려한 군무형식의 춤이다. 주로 베트남의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지역의 작은 공연장에서는 수상인형극과 함께 지역주민에게 무료로 보여줌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춤 형태로 자리 잡았다.
서양 무용으로는 발레를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 배워온 베트남인 선구자들이 주로 무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같은 교육과정을 거친 베트남 프로 발레단에서는 클래식 공연으로는 지젤이나 호두까기인형 정도를 공연하고 있다. 신임 베트남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쯔란 리 리는 “베트남인은 서양인의 체형과 다르고, 그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 이제는 베트남 색깔을 살릴 수 있는 컨템포러리 발레를 추구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반면 호치민심포니오케스트라발레단은 최대한 발레다운 발레를 구현하고자 한다.
베트남의 여러 곳에서는 적극적으로 컨템포러리에 대한 갈증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우리에게 컨템포러리 댄스는 어색하기 때문에, 오늘 관객과 대화 자리도 실험적으로 마련해 봤다.” 컨템포러리 신작 공연 후 아티스트 토크에서 나온 말이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무용수들이 있지만, 베트남 국내에서는 활동다운 활동은 하지 못하지만 대신 해외 프로그램에 개별적으로 참여하거나, 해외공관에서 주최하는 워크숍이 있을 때면 도시를 가리지 않고 모이기도 한다.
컨템포러리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민간 기관으로는 하노이의 키너지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 모인 무용수들은 접촉즉흥을 모티프 삼은 퍼포먼스나 워크숍을 주로 연다. 하노이에서 유일하게 순수무용을 다루기 때문에 해외 파트너들의 주요 대상이 된다. 또 호치민의 아라베스크무용단은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활발하게 공연하는 민간무용단이다. 발레로 몸을 다진 무용수들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해외기관들과 컬래버레이션 작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2018년에는 대구시립무용단과도 작업했다. 이외 신선한 시도가 담긴 다원 퍼포먼스 등은 주로 독일문화원이나 프랑스문화원이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베트남 국립오페라발레 아티스트 토크 ⓒ손예운
베트남만의, 베트남다운, 예술의 탄생 : 한국과 베트남의 고리를 찾아

현재의 인프라는 약할지라도, 경제나 산업과 같은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성장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 점이 베트남에 머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인상이었다. 따라서 베트남 체제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태동을 지켜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VCCA(Vietnam Contemporary Center for Arts)의 일본인 예술감독 미즈키 엔도는 “한국이나 일본처럼 서양의 것을 모방하고 따라가기에 급급하면 나중에 자신들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 때가 발생할 것”이라며 “베트남만의 예술세계를 펼치도록 장려한다면 인프라나 체제와는 상관없이 개성 있는 컨템포러리를 세계에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한국과 베트남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은 무궁무진하다. 40여 개나 남은 민속춤에 대한 연구, 전통의 무형문화재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모델을 공유하고, 꿈틀대는 신진 베트남 예술가를 발굴할 수 있도록 한국 플랫폼에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한때 역사를 공유한 동양의 나라를 알아가면서, 친숙하면서도 먼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손예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했고, 뉴욕 파슨스댄스컴퍼니에서 공연기획을 공부했다. 이후 무용월간지 ‘몸’에서 글을 썼고, 국립극장 문화동반자 사업, 창무국제공연예술제 등 국제 행사에서 일했다. 2018년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파견 기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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