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4.11 조회 4482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복사
  • 프린트

웹진 <춤:in> 오픈 좌담 ‘워크숍, 워크숍!’

웹진 <춤:in> 편집부

ⓒ Fotobee_이병곤
김연임: 이렇게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4월호 주제는 ‘워크숍’입니다. 워크숍은 오래전부터 춤 분야에서 지속하여 온 배움의 기회이자, 리서치의 과정이기도 하며, 발전되어서 작업 자체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요. 정작 워크숍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못 나누어본 것 같아요. 그래서 워크숍이라는 주제로 좌담을 열게 되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굉장히 다른 경험을 가진 분들이라서 굉장히 재밌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는 이윤정 안무가이며, 최은진 안무가, 정영두 안무가, 이양희 안무가님께서 패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좌담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윤정 ⓒ Fotobee_이병곤
워크숍의 의미
이윤정: 잘들 지내셨죠? 너무도 궁금했던 아티스트들을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 좌담을 의뢰받은 덕분에 워크숍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일단 저희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정영두 안무가님은 예전에 LIG에서 워크숍을 진행하신 적 있으시잖아요. 제가 10년 전쯤에 그 워크숍에 참여했었거든요. 저는 그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많은 것을 느꼈었는데, 정영두 안무가님에게 워크숍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 것 같으세요?
정영두: 저도 이 주제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는데, 우리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워크숍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금까지 의미도 모른 채 이 단어를 사용했고, 워크숍이라는 것을 기획하고 참여했던 것 같아요. 저는 수업처럼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수용하는 게 아니라, 완성도 있는 어떤 것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자, 다양한 것을 펼쳐놓고 참가자들과 공유하는 과정을 워크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열거나 참여했던 것 같아요.
이양희: 저도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워크숍이라는 단어가 뭐였지?’라는 질문이 다시 들었어요. 예전 경험을 돌이켜 보면 제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경험한 기술이나 어떠한 메소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지식으로 전달할 때 워크숍이란 단어를 많이 썼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제 작업을 하면서 수업의 내용도 달라지고 참가자의 범위도 다양해지면서 수업의 방식이 달라졌고 워크숍에 대한 제 인식 역시 변하게 되었어요. 지금 제게 워크숍은 작업 프로세스와 결부되고, 동료 예술가, 작업하고 싶은 협업자,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 이런 분들과 대화하고 공연예술에 대해 함께 탐구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방식인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어요.
최은진: 저도 워크숍이라는 단어를 고민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셨던 수업과의 차이에서 출발해보자면, 수업보다 말랑한 무언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워크숍을 준비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모두 말랑해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거죠. 말랑하니까 틀릴 수 있고, 다른 쪽으로 갈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내놓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에 대해 나눌 수 있다는 게 수업과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워크숍을 여는 이유
이윤정: 그러면 저희가 워크숍을 기획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이양희 안무가님은 어떻게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계세요?
이양희: 저는 워크숍이 퍼포먼스와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연계해서 가게 되더라고요. 올해에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서 기획했어요. 저는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배우 신체 훈련과 함께 뷰포인트를 훈련해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저만의 정립된 체계를 확보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한번은 개요와 개념 정리를 정제된 방식으로 간단하게 만들고, 확인하고, 어떻게 구동되는지 실험하고 싶었어요. 저에게 이러한 목적이 뚜렷하게 있었고, 이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을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이윤정: 작년에 정영두 안무가님도 무용센터에서 워크숍을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안무가님은 보통 왜 워크숍을 여시나요?
정영두: 저는 제가 궁금한 것과 춤추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고민을 해요. 또한, 제가 공부하고 싶고 질문하고 싶은 것을 준비하고, 후배에게 쌓여있으면 좋을 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올해는 춤추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어디에 강이 들어가고 어디에 약이 들어가는지. 그런데 저희가 춤출 때는 보통 그런 것을 디테일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디테일 하나의 움직임이 명확하게 설득이 되려면 몸의 움직임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 디테일을 찾아가는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의뢰받을 때는 다른 것 같아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하면 뭔가를 관찰해보라는 과제를 줍니다. 그러나 보통 단편적인 경우가 많아서 즉각적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쪽으로 진행합니다. 타 장르랑 워크숍을 할 때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과 다른 장르로부터 배웠던 것으로 주제로 삼아요. 그리고 전문적인 무용수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 때는, 단체의 특성과 모인 사람들의 춤에 대한 경험이 어떤지 고려해서 그들의 기본 베이스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죠.
이양희: 정영두 안무가님의 말씀으로 생각이 더해지네요. 저는 신체를 미디엄으로 활용하고 창작을 하는 안무가로서 미디엄에 대한 탐구, 그것이 구현하는 형식, 혹은 굳이 신체가 아니더라도 시간과 공간에서 ‘안무’의 구조가 어떤 식으로 형을 갖추고 로직을 형성하는지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거나 실험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시각예술이나 음악의 형은 그 미디엄 자체가 외부에 존재하여 창작 주재자가 그 형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판독하고 변환시키는 구조가 자연스럽더라고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시각예술이나 음악을 하는 분들에게 워크숍을 해보면 반대의 경우가 당연히 드러난다는 거예요. 바깥에서 어떤 물질을 찌그러지는 건 쉬운 사람이 본인의 몸을 찌그러뜨리는 건 너무 어려워하더라고요. 이걸 전 거리감이라고 하죠. 그래서 전 무용수와 배우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 그 자체인 ‘신체’와 ‘역할’로부터 거리를 두고 한발 멀어지게 해요. 그리고 형상의 대상이 바깥에 있어 자신의 신체와 감정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분들에게는 본인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이걸 바탕으로 워크숍을 만들죠.
정영두: 인간이 모두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내 몸으로 생산물과 결과물이 동시에 이어지는 것은 춤이죠. 음악은 절대적인 음이 있어서 언제 틀리는지 알 수 있고, 텍스트도 화술적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하는데, 움직임은 언제 틀리는지 몰라요. 보통 무용수와 작업을 하면 움직임의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서 설득하기 어렵다는 말을 해요. 현대무용이 근대를 지나면서 순수한 움직임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생겼던 좋은 결과물도 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고전적으로 가져왔던 몸의 기술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서 저에게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윤정: 네. 그럼 최은진 안무가님은 워크숍을 의뢰받았을 경우와 그렇지 않았던 경우에는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최은진: 일단 기본적으로, 자기가 관심이 있고, 보고 싶은 게 있고, 함께 해보면 재밌겠다는 게 있을 때 여는 것 같아요. 아직 제가 스스로 조직해서 워크숍을 열어본 적은 없는데요. 요즘엔 좀 하고 싶어요. 제가 5년 동안 인텐스하게 워크숍을 했다가 굉장히 지쳐서 최근 2년간 워크숍을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렇게 쉬다 보니 직접 열어보고 싶은 게 생기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돈인데요, 저는 27세에 무용에 발을 들인 비전공자인데, 처음 말씀드렸던 워크숍의 말랑말랑한 특징이 저에게 현대예술에 발을 들이게 해준 틈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제가 경제적인 생산을 하게끔 도와줬어요. 저는 다른 안무가님처럼 오랫동안 트레이닝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작업을 했을 때 도움이 되었던 것과 재밌었던 작업 방식 등 저에게 유효하게 작용했었던 걸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사명감이죠. 저는 춤에 대한 편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워크숍으로 해방된 사람이거든요. 워크숍을 통해 춤의 다른 모습을 만났고 해방되는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 경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의뢰를 받고 돈을 받는 워크숍을 하더라도, 기저에는 그러한 의지가 있었죠.
이윤정: 저는 한국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아르떼 워크숍을 4년 정도 하고 있어요. 2박 3일 또는 1박 2일로 진행하는데, 정말 다양한 아티스트, 교사,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그 워크숍을 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무용으로 경험한 것들을 나누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또 그게 기반이 되어 창작 활동에도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니 계속 워크숍을 하게 됐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워크숍이 창작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워크숍을 하면, 참여자들과 어떤 목표로 갈 것인가를 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어떤 과정으로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쭉 계획을 세우죠. 이 모든 게 제가 공연을 준비하는 프로세스와 맞닿아있는 거예요.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러니까 이걸로 돈을 번다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고 힘이 나는 거예요.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4년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작업의 재미를 알게 됐고 작업이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바라보니까 항상 심장이 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과정을 차근차근 밟게 되고, 배고프지 않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더라고요.
최은진 안무가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신념이 있다면, 저희는 너무 잘 알잖아요. 어떻게 춤을 배웠고, 어떻게 작업을 하고, 맨날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과정이 있었다는 걸. 잘못된 교육으로 상처받은 후배에게 제 목소리가 힘이 실릴 때까지 열심히 작업하고 싶어요. 계속 작업하고, 워크숍을 열면서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그런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죠.
이양희: 제가 워크숍 끝나고 나서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사실상 ‘워크숍이 뭐냐’라고 하면, 영업기밀을 주는 것이더라고요. 저는 의뢰받아서 여는 것도 아니고 워크숍으로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이걸 계속한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위해 하는 거잖아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저의 워크숍으로 참가자들이 용어를 스스로 발견하는 법을 알려주길 원했던 것 같아요. 이유는 딱 하나예요. 더 많은 사람이 좋은 공연예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걸 위해서예요. 공연예술을 하는 사람들 모두 대의가 거기서 오죠.
최은진: 영업기밀이라고 말씀하신 게 공감돼요. 이미 연구되었고 역사가 있는 재료를 워크숍으로 가져오면 걱정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새롭게 해석했거나, 땅을 파서 발견한 좋은 재료를 나누려고 하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이걸 알면 내 작업을 볼 필요 없는 거 아닐까? 내 작업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면 내 작업을 재밌어할까? 솔직히 말하면, 뺏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해요. 고민을 해봤는데, 저는 제가 내놓아도 되는 걸 내어놓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힘들어질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워크숍에 참여하는 입장이 되니, 정말 궁금하고 듣고 싶은 걸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또 아쉽더라고요.
이양희: 맞아요. 일반적인 개념의 이면을 내가 어떤 식으로 이해했고 어떻게 분석했으며, 그래서 나는 이런 제안을 한다고 알려줘야 하는데, 그걸 알려주지 않고 자꾸 다른 소리를 하면 정말 돈 아깝더라고요.
최은진: 워크숍을 참여해봤던 경험이 있으니까, 워크숍을 열 때 영양가 없는 걸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죠. 그런데, 자신의 워크숍을 들은 사람이 작업으로 사용하니까 마음이 상하더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망설여지죠.
이윤정: 예전에 저는 당장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답답해서 워크숍을 갔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제 작업을 잊고 일주일 동안 미친 듯이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끝나는 날에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이건 내가 생각했던 기술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정말 중요한 건 너라고 말씀하시고 떠나셨어요. 그런데 저는 이 툴이 제게 넘어왔을 때 어떨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해봤는데 공연이 그랬죠. (웃음) 그때 깨달았어요. 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이양희: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제가 워크숍을 하는 ‘뷰 포인트’도 원래 있는 말이거든요. 저도 10년 동안 뷰 포인트 훈련 프로그램을 지속하면서 제 나름대로 분석을 했죠. 제가 배운 프로그램은 공연예술의 핵심적인 두 축인 공간과 시간의 용어를 개념 정리한 무용가 매리 오블 리가 발안한 기조를 미국의 연극 극단 SITI 컴퍼니의 디렉터 앤 보거트가 그 필요성을 연극이라는 장르에 특수하게 재정립 후 연극에 활용한 것이거든요.
사실상 더 깊이 가보면 그 개념의 근본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구조를 Negative Space와 Positive Space로 분류하여 명명 짓는 서양의 논리 구조와 포스터 모더니즘, 동양철학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 역시 서양에 선택적으로 유입된 오리엔탈리즘과 연관 있죠. 이처럼 아주 다양한 층위와 전제적 요건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연극에 활용되고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해도 왜 이렇게 분류되었는지 맥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뷰 포인트’라는 개념이 메소드화 되어서 그대로 답습된 상태로 혼용되고 있더라고요.
최은진: 원래 있던 것을 그 사람의 방식대로 분류한 거네요. 역시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경험한다고 해서, 그것을 직접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양희: 그만큼 메소드는 강한 것 같아요.
정영두: 영업기밀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해봤는데, 가치 판단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것 하나는 확실하죠. 워크숍의 완성도가 있다면, 영업기밀과 관계없이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완성도가 없으면, 불만이 생기죠. 또 이런 경우가 있잖아요. 귀가 아픈데 찾아간 곳이 안과였던 거예요. 이처럼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막연하게 무언가 찾고 싶어서 참가하거나, 그런 참가자를 만났던 경험도 있을 거라고 봐요. 어떤 사람들은 제 생각이나 사고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이걸 빨리 습득해서 어딘가에 써먹으려고 하는 게 보이죠. 그런 경우에는 그러지 말라고 차단을 해요. (웃음)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다들 본인의 것이 어디서 흘러왔는지 이야기를 안 하는 것 같아요. 이 개념이 누구로부터 시작했고, 누구한테 배웠고, 나에게서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런 점은 우리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영두 ⓒ Fotobee_이병곤
인상적이었던 워크숍 사례
이윤정: 그렇다면, 경험하셨던 워크숍 중에 인상적이었던 워크숍이 있으신가요?
정영두: 제 인생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워크숍은, 수잔 버지의 컴퍼지션 워크숍이었어요. 3주 동안 12명이 함께 생활하는 워크숍인데, 크게 3가지의 테마를 정해서 아침에 클래스를 하고 오후부터 명확히 제시된 구조를 기반으로 각자 창작하게 해요. 3주 동안 대학교 1년 과정을 경험하는 거죠.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무용이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전체 발표를 하죠. 그렇게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함께 3주 내내 먹고 자면서 오직 춤과 안무 구성 만을 생각하고 작업하고 발표를 했던 경험이 아직도 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제게 중요했던 순간이자, 행복했던 경험이었죠.
이양희: 전 사실 경험을 잘 간직하지 못하는데, 정영두 안무가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에게 어떤 게 쌓여 있는지 생각나네요. 저는 SITI 컴퍼니의 워크숍을 가장 많이 들었고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참여했어요. SITI 컴퍼니의 신체 훈련 수업의 교수 방식은 굉장히 전통적인 방식인데, A와 B로 팀을 나누고 교차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A팀이 끝나고 저는 자연스럽게 옷매무새를 만지고 정리를 하면서 B팀과 함께 교대로 스튜디오에서 올랐죠. 그런데 선생님이 제가 준비를 하며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화를 엄청 내시는 거예요. 그 순간 한방 맞았습니다. 그렇죠. 퍼포머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이 곧 시작이고 준비는 이미 되어있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제가 무용을 하며 오랜 시간 배웠고,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천하고 있지 않았던 것. 즉, 공연예술의 가치와 태도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또한, SITI 컴퍼니의 워크숍 커리큘럼과 그들의 교수법은 제게 굉장히 독보적이었죠.
정영두: 짐작해서 이해해보려고 하는데요. ‘뷰포인트’와 ‘Suzuki Method’가 무엇인지 짧게 이야기해주시면 앞으로의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양희: ‘뷰 포인트’는 공연예술을 구성하는 핵심축인 공간과 시간의 구성 요소를 개별적으로 분류하여 그 개념을 용어로 정리하고 그와 더불어 실질적으로 공연이 이루어질 때 발생하는 현상과 특징을 창작자 혹은 퍼포머가 ‘즉흥과 앙상블’에 기반을 둔 플랫폼 안에서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탐구하고, 컴포지션 하는 훈련 프로그램이에요.
정영두: 보이는 현상을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으로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이해해도 되나요?
이양희: 네. 결국엔 용어 정리인 거예요. 결국, 시간과 공간이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공연예술에서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냐라는 거예요. 그리고 ‘Suzuki Method’는 엄격하게 신체를 트레이닝하여 몸과 보이스, 그리고 정신을 단련하는 훈련이에요. 극심한 제약을 이겨냄으로써 존재감을 증폭시키고자 스즈키 타다시가 만든 배우 훈련 메소드입니다.
이윤정: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뷰포인트를 명확하게 들으니 너무 좋네요. 그렇다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워크숍이 있으신가요?
최은진: 저는 팔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워크숍을 하시는 분이 스트릿 댄스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2시간 안에 나이키를 전수해주고 싶으셨던 거죠. 그래서 제 팔다리를 잡고 무조건 버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 어깨가 다 나갔는데,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이에요. (웃음) 이때 다쳐서 아직도 고생하고 있어요.
워크숍과 사람, 그리고 열등감
정영두: 워크숍은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또 다르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윤정: 저는 작년에 미국에서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진행하는 선생님이 장애인이셨어요. 본인의 워크숍은 몸이 불편해도 상관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해서 들어보았죠. 그런데 제가 영어가 잘 안 되는데 영어를 많이 해야 하는 워크숍인 거예요. 눈을 마주치고 뭐라고 하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너무 길어서 너무 불편했죠. 그런데 이런 저의 불편함이 장애인이신 선생님의 불편함과 공유가 된 거예요. 그렇게 같이 불편함을 나누었죠. 특히 선생님께서 제게 영어를 천천히 따라 하라고 하시고, 천천히 기다려 주셨어요. 그때 나누었던 눈빛과 언어가 기억에 남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 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할 나위 없이 몸이 확 열리던 순간이 있었어요.
최은진: 또 기억이 나네요. Authentic Movement라고 불리는데, 소리는 낼 수 있어도 말은 못 하게 되어있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움직임을 해요. 그러다가 제가 누굴 실수로 쳤는데, 너무 놀라서 가만히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랑 부딪혔을 법한 사람이 저한테 다가오더니, 몸을 비비면서 음음- 하는데 그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이양희: 아무런 이기적인 목적 없이 순수한 상태로 존재와 존재가 만나고, 마주하여 무언가가 발생하는 순간을 함께 하는 거잖아요. 그걸 그냥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눈물 날 때가 있거든요. 진심으로 서 있는 누군가가 하는 선택을 바라볼 때 정말 감사하죠.
이윤정: 맞아요. 그런 순간을 나누고 싶어서 워크숍을 계속 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그런 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가 과정을 잘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그 순간을 맞이한 진행자도 다음 워크숍을 준비하고, 그 결과물이 일상과 작업에 연결되고, 이런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런 시간이 반복되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렇게 살고 싶네요.
정영두: 맞아요. 저는 누구랑 했을 때 힘들었는지 생각해봤어요. 저는 상처 많은 사람과 작업할 때 가장 힘들어요. 저도 그렇지만, 그러한 상처가 긍정적으로 발현되는 경우보다 질투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이 그냥 앓는 소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죠. 저 스스로도 그렇고 불필요한 상처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작업을 바라볼 때, 직접 워크숍을 열거나 참가할 때 상처에 억눌린 상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이윤정: 무용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열등감을 자신의 작업에 너무 드러내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이양희: 처음에 말했듯이, 작품을 만들면서 본인의 형이나 작업의 과정을 객관화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특수하게 폐쇄적인 집단 내의 경쟁을 과도히 증폭시키는 시스템도 그 원인이 될 테죠. 그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견고함도 생존의 방식을 그렇게 안착시켰지 않나 싶기도 해요. 결국, 사회에 나와 본인을 지탱하던 것이 무참하게 깨지는 순간이 있어야만 본인으로부터, 본인의 예술적 속성으로부터 거리가 생기고 확장이 될 텐데, 대학을 졸업하면 또다시 교수의 무용 집단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죠. 계속 반복적으로 학습되는 것 같아요.
이윤정: 저도 굉장히 열등감이 컸던 기간이 있었어요. 제가 댄서로 있었을 때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저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춤은 나지 나 (웃음) 이러면서 굉장히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넘어가는 지점에 열등감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죠, 잘 모르니까. 당연히 잘 모르니까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현재의 나는 여기 있는데 저기 있는 나를 바라보니까 그 거리감이 계속 충족이 안 되는 거예요. 정말 힘들었는데, 그 열등감을 극복했던 방법은 오랜 기간을 두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어요. 저기 있는 나를 보려면 10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저는 한 해의 계획, 한 달의 계획,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며 열등감에서 벗어났어요. 저는 예전에 정영두 안무가님의 무용단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했어요. 그때 안무가님이 안무도 잘하시고 춤도 잘 추시는데,
정영두: 아 그랬었나요?
이윤정: 네 그랬었어요. 그곳에서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나는 왜 정영두처럼 못 되지? 라는 상실감이 컸거든요. 거기서 벗어나는 시간이 꽤 걸렸는데, 벗어난 순간 굉장히 행복했어요. 모든 무용 졸업생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프리마돈나가 되잖아요. 근데 사실 그게 아니죠. 무용은 협업인데 협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요.
최은진: 가끔 제가 춤을 더 일찍 췄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아냐, 그럼 내가 아니지, 재미없었겠지. 물론 저에게도 한 번 현타가 왔던 적이 있어요. 학교를 막 졸업하니까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때 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처음으로 목격했어요. 그 순간이 너무 아파서 샤워기 붙들고 한 시간 동안 엉엉 울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무서울 게 없어졌어요. (웃음) 물론 그게 평생을 보장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번 울었으니까 5년쯤 괜찮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현타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최은진 ⓒ Fotobee_이병곤
워크숍에 가는 이유
정영두: 워크숍에 대해 막연한 경계심이 아직 많다는 생각도 드네요. 같은 업계니까 그럴까요? 나이 어린 사람의 워크숍을 나이 많으신 분이나, 선생님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잘 가지 않잖아요. 그 현상의 기저에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죠. 서로가 가진 것에 대해 마음껏 용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없어요. 실제로, 동료가 공연해도 안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누군가의 워크숍에 가면 내가 저 사람보다 못난 상황이라던가, 저 사람이 잘하는 걸 내가 못하게 되면 나의 약점이 후배에게 들키는 건 아닌가 하는 심리적인 것도 있고요. 그래서, 서로의 생각과 작업을 공유하고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걸 방해하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형성된 요소가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 생각하게 되네요.
이양희: 제가 워크숍을 왜 가는지 생각해보니, 저한테 필요한 것을 향해 가더라고요. 지금 저는 다른 안무가의 작업과정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이처럼 제가 관심 있는 내용이라면 들어요. 그런데 그 외의 것,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건 잘 안 듣게 돼요.
정영두: 대략 자신의 문법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시기가 있잖아요. 저도 제 문법을 깊이 탐색해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하는 워크숍에 관심을 안 가져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말씀을 드릴게요. 저는 무언가를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데, 자신의 열등감이 표출될 수도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워크숍에 참가하지 않고 정보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우리 스스로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죠. 또한, 어떤 사람과 어떤 무용단이 하는 거라면 애초에 정보조차도 우리가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이윤정: 저는 요즘 안무를 한답시고 몸을 게을리했던 게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무용으로 체력을 키운다기보다 다른 운동으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 왔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령을 들고 운동을 하지 않고, 워크숍에 가면 될 텐데 왜 이러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워크숍 많잖아요. 단기 현대무용 코스 초급반에 가서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왜 가지 못하는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 안에는 옛날 기억으로 제 몸을 기억하는 제가 있더라고요. 몸에서 삑사리가 나더라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하면 되고, 지금의 몸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미련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후배 워크숍을 갔을 때 예전처럼 잘하지 못할 것 같고, 저 스스로 그 순간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영두: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랬다가는 원치 않는 어떠한 이미지와 상태로 들어가게 돼요. 그렇기에, 저의 부족한 점을 마음껏 드러내는 자리를 찾아다니는 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은진: 맞아요, 점점 두려움이 생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갔다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안무가니까 잘할 거라는 기대를 받는 게 두렵고. (웃음) 가끔 안무가라는 말을 지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심지어 클럽에 가서 놀아도, 자 이제 안무가 은진이 나와서 춤춰봐! (웃음)
정영두: 일본 같은 경우는 경력 상관없이 자유롭게 오는 경우가 있어요. 선생님들이 학생과 함께 하는 경우가 있죠. 저 연세가 되어서도 어린 분들과 같이 본인이 잘못하는 부분들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드러내실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러워요. 이처럼 저희 세대들이 조금 더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환경을 조성하고, 용기를 내면 다음 세대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요.
이윤정: 저도 열심히 움직여 보겠습니다. (웃음)
이양희 ⓒ Fotobee_이병곤
사회가 워크숍을 대하는 방식
정영두: 사회가 워크숍을 소비하는 방식과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공공재원이잖아요. 당연히 세금을 받았으니까 예술을 사회적인 환원을 하는 건 당연하죠. 특히나 공공재단 같은 경우에는, 감사라던가, 지역주민이라던가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 혼날 수 있죠.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제 개인적인 예술의 지향점일 수 있는데 예술은 결국 어느 시기든 완성도가 있으면 사회적으로 환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워크숍을 열거나 의뢰하는 대부분은 순수한 장르나 움직임을 위해서만 워크숍을 의뢰하지 않아요. 대부분 지역주민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세요, 학생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세요라고 의뢰를 하죠. 공공, 민간 문화예술재단이 많이 생기면서, 예술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어요. 그 결과로 예술가에게 워크숍을 많이 의뢰하는 것 같아요. 결국, 순수하게 무용 자체를 위하여 재원을 사용할 수 없는 거죠. 저는 재원을 확보하고 집행하는 많은 분이 지금 당장 지역사회나 시민에게 환원되는 것만 가치 있는 예술로 인식하고 계시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조만간 지칠 거라고 봐요. 예술가 본인의 전문성과 예술성이 채워지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거예요. 이처럼 예술가가 개인의 작업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결국 의뢰받는 워크숍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양희: 굉장히 동의해요. 첫 번째는, 예술적 행위와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는 행위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인데 조금은 혼용하고 있지 않나 싶을 때가 있어요. 두 번째는, 어쩌면 그런 이유로 예술 작업을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작업의 형식과 구조, 속성에 관해 탐구하고 고민하는 예술가의 전문성이 조금 묵살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공연예술에 대해 탐구하고 그 과정을 통해 work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지, 제가 할 수 있는 춤이라는 예술 행위를 서비스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 하고 싶은데 이게 참 어렵기도 하네요.
정영두: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오해하죠. 심지어 예술가가 사회와 동떨어져 살 수 있냐는 공격도 들어오죠.
이양희: 그러나 저는 주변의 예술가들과 얘기를 나눌 때 항상 나오는 말들을 기억해요. 우리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이미 시민이고, 시민으로서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냐는 거예요. 제가 하는 전문적인 예술 활동이 사회적 가치로서 기여 하는 것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는 굉장히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워크숍을 통해서 공연예술이 더 넓게 전파되고,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에 일조하는 것은 너무나 가치 있고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시민들이 경험하고 수행하기에는 좀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은 항상 누군가를 위한 워크숍을 의뢰받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구조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쓰면 점점 비워지는 게 이치이지 않나 싶은데. 그럼 그들은 스스로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동력으로 삼아서 본인의 work을 만들 수 있을까요. 누가, 무엇이, 어떻게 그들을 채워주고 다시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되네요. 자꾸 소진과 사용이라는 단어도 떠올리게 되고요.
정영두: 그게 성과로 빨리 드러나니까 그러는 것 같아요.
이양희: 네, 이벤트로서의 활용도 생각나네요.
최은진: 교육 사업이나 교류 사업이 더 많이 배치되고 작업을 만들게 하는 환경이라던지, 작업 자체에 대한 지원의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말씀이시죠?
정영두: 의뢰 대부분이 작업과 장르 특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예술이 어떻게 사회에 환원되는지에 대한 인식도 운동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뿐이죠. 정말 사회가 싫어서 뛰쳐나온 사람들인데, 그렇기에 더 가치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이윤정: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공공자원이 어떻게 예술에 흘러가는지, 어떤 식으로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희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요?
정영두: 저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각자 개인의 작업에서 최상의 완성도를 기하는 방식이에요. 다른 하나는, 맞아요. 예술가는 사회적으로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죠. 그런데 그것이 예술가의 자발적인 선택이 되어야 해요.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야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판단하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딜레마이긴 해요. 홍수가 났다면 마을의 큰 강물을 퍼내야 내 집의 물도 빠질 거예요. 이처럼 사회가 당장 아프니 사회를 위해 일을 할 때도 있어야죠.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내 집의 물에 퍼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렇기에 끊임없이 두 가지 조건이 어떻게 다른지 설득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윤정: 그렇게 보면 저희 세대가 해야 할 게 참 많은 것 같아요. 작업도 해야 하고, 뒤도 돌아봐야 하고.
이양희: 완성도 있는 작업을 하려면 사실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관심도 많고 목소리도 내야 하죠. 그렇게 많은 곳에 신경을 쓰다 보면 에너지가 들어가요. 그러다 보면 완성도를 높이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사회를 외면하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사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조금 지쳐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안무가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아주 많은 위로와 힘이 되네요. 계속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디를 어떻게 갈지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은진: 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5년간 집중적으로 워크숍을 하다가 계속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거든요. 앞으로 개인적인 과제가 있다면, 앞으로 저를 성장시킬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좀 틀어보는 거예요. 결국, 예술가도 잘되고 듣는 사람도 잘되어야만 워크숍도 재밌어지고 질도 좋아지는 거잖아요. 그렇기에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평가하는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의뢰받더라도 우리가 누군가의 니즈를 충족하려고 애쓰기보단 나한테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을 밸런스를 잘 맞춰나갈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연임: 감사합니다. 일단 시간 내내 꽉 찬 이야기를 해주신 패널분들게 박수 한 번 드릴까요.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도 박수를 드립니다. 그럼 혹시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떠신가요? 혹시 워크숍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셨던 것이 있으시면 편하게 이야기 나눠 주세요.
김연임 ⓒ Fotobee_이병곤
워크숍을 잘 이끄는 법
장수혜: 네 이야기 너무 잘 들었습니다. 워크숍이라는 주제에서 시작해서 사회, 철학, 경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특히 저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겪은 워크숍에 대한 경험들을 생각해봤는데요, 한국 안무가님들과 함께 해외초청 공연을 가면 해외 기획자가 혹시 워크숍도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한국 안무가들은 대부분은 물론 하실 수 있다고 하시고, 워크숍을 오픈하기 전에 해외측에 두 가지를 여쭤보세요. 오픈이에요, 프로페셔널이에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해외에 나가서 워크숍을 여는데, 일단 모집이 되어있지 않고, 프로페셔널 댄서라고 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초청된 안무가의 워크숍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워크숍을 열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안무가분들이 워크숍에서 작품의 레퍼토리를 알려주시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전에 무용과 다니는 친구들에게 무용과 수업에서는 테크닉 수업 말고는 뭘 배우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많은 경우는 그 선생님의 안무 레퍼토리를 배운다고 해요. 그래서 워크숍을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어요. 물론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아까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시피 워크숍은 기술의 훈련은 물론,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소통에 대한 기대도 있을텐데 짧은 워크숍 시간 동안 안무 동작을 가르쳐주는 것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원하던 워크숍일까 궁금했어요. 또 그 안무를 배울 만큼 전문적인 무용수가 아닌 경우도 많았고요. 저는 해외에 나가서 안무가님이 워크숍을 할 때, 가이드를 잘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확실하게 제시해드리기도 어렵고, 조심스럽기도 해요. 그렇기에 나중에 해외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안무가님을 초청하는 해외 기획자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워크숍 커리큘럼을 잘 이끌어드릴 수 있을지 궁금해요.
정영두: 저는 3가지 방식을 제안할 것 같아요. 레퍼토리 워크숍과 그 사람의 장점이 있는 즉흥, 창작 워크숍 이렇게요.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가 준비되어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움직임을 수행하는 방법에서 어떤 메소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움직임을 알려줄 것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최은진: 저는 사실 의아했어요. 안무가나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워크숍 레퍼토리가 있을 수 있잖아요. 자신의 커리큘럼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중에서 이걸 해줄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어요.
장수혜: 아, 제가 여쭤보고 싶은 질문은 기획자가 안무가님께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지보다는, 안무가님 대신 해외 기획자에게 물어봐 드리고 싶은 거예요. 제가 전해드리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요.
정영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어쨌든 레퍼토리를 배우면 그 움직임이 어떠한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움직임이 나왔는지는 공유하지 않잖아요. 그냥 공유하니까. 그런 경험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영감을 받거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획자 같은 경우에는, 저의 많은 과정을 지켜보고 단순하게 지금 작품에의 관심뿐만 아니라, 왜 이 관심을 사소하게 가지게 됐는지 이런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어요. 그런 부분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처럼 모더레이터처럼 자극을 줄 수 있는 질문이나, 이런 것을 던져주었던 기획자분이 있어요. 그 덕분에 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황에 융통성 있고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본인의 작업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태도와 언어로 잘 설명해주고 잘 안내해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죠.
장수혜: 말씀하신 것처럼 기획자도 안무가님에 대해 충분히 파악을 하고, 안무자님들도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다면 두렵진 않을 것 같아요. 처음 생각했던 의도와 맞지 않은 워크숍은 아마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해외에 나갈 때 안무가님들이 워크숍도 레퍼토리처럼 커리큘럼을 하나씩 가지고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자세한 워크숍에 대한 설명이나 내용이 미리 준비되어있어야 기획자 입장에서도 마케팅이 수월할테니까요. 보통 어떤 분이 오신다고 하면, 그분의 경력을 나열해 놓는 정도거든요. 그런데 더불어 워크숍에 대한 조금더 자세한 설명이 있다면 배우러 가는 학생들도 어떠한 기대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김연임: 마케팅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장수혜: 더 많은 사람이 워크숍에 오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맞는 사람이 오게 하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귀가 아픈데 안과에 가는 것처럼 뭐 하는지 모르고 가는 것보다는 이 분한테 가면 이 정도는 하겠구나 하는 정보는 전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Fotobee_이병곤
워크숍과 작업에서의 언어
김연임: 어떤 워크숍을 할 것인지 안무가들이 언어를 통해 설명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하겠네요.
최은진: 사실 워크숍뿐만 아니라 작업에 대한 글을 쓰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요. 지금도 노력하는 중인데,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이야기할 때 외국의 사례를 주로 이야기했는데, 사실 한국의 안무가 중에 워크숍을 여는 경우를 자주 못 본 것 같아요. 독립적으로 자기 메소드를 구성해서 워크숍을 여는 게 드물고, 저 역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질문이 들어요. 왜 적을까요? 왜 한국에서 안무가들이 직접 만드는 워크숍은 적을까요?
이양희: 이게 조심스러운 말이긴 한데, 언어 정리가 좀 미흡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워크숍이 실제로 본인의 작업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정하에 말씀드리면, 예술가의 작품 세계와 논리의 구조를 공유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언어의 사용이 전제 조건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요. 예술가들의 작품과 작업 방식은 다 다르고 그 만의 체계를 정리하는 것도 단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텐데 그것을 언어로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네요. 저조차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고, 실제로 뉴욕에서도 무용 쪽에서는 지금까지 흡족할 정도 언어 체계를 겸비한 워크숍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어요. 또한, 워크숍은 공연과 같아서 그 대상에 따라 자기가 세운 체계를 어떤 절차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 고민해야 해요. 어떨 때는 본인이 만들어 놓은 체계마저 파괴해 버려야 하는 순간까지 감수하는 즉흥적 선택이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해 볼 일인 것 같아요.
최은진: 저는 정확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고 해도, 워크숍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언어가 좀 부족해도 하면서 발견한다면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고요. 한국에 이미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실행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도 워크숍이 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나치게 겸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게 영향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정영두: 기금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기금은 죄가 없는 것 같아요. 기금을 받아서 하는 사람이든 안 받는 사람이든 그것이 본인의 작업을 완성도 있게 가져가는 거라면 기금은 죄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기금을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문제죠. 또한, 기금을 운영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빠르고 급하게 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예술가는 장기적으로 본인의 일을 꾸준하게 하지 못하죠. 물론 말씀하신 측면이 어떤 지점인지 이해돼요.
최은진: 저는 기금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아요.
정영두: 네 그건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하지만, 다른 지점을 선택한 안무가가 있더라도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쉽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변화가 문제죠. 그리고 언어는 필요한 작업 같아요. 특히나 워크숍이라고 누군가에게 나의 의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더 필요하죠. 그러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르적 특성도 있는 것 같아요. 전 지나치게 설명해버려서 오히려 실망스러웠던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좀 더 이야기하면, 언어는 늘 가설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이미지와 저 사람의 사랑의 이미지가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두 가지가 필요한 거 같아요. 하나는, 합의된 언어로 기술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무용만큼 지원제도가 불합리한 게 어디 있어요. 무용은 기본적으로 말을 떠난 예술인데 말이나 글로 설명된 것을 보고 심사하고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한 면이 있죠. 그러니 어떤 사람이 텍스트로 자신을 백 퍼센트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작업을 완성도가 없다고 평가할 수는 없죠. 오히려 기획자분들이나 그 지원금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분들이 말과 글자만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을 읽고 짐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무용가에게만 사회적인 언어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용가들의 언어를 풀어서 일반사회에 해석해 주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있는 거죠. 이를 위해선 무용이 다른 예술과 다른 특성이 무엇이며, 그렇기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해요. 언어가 절대화되면 무용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를 훼손하곤 해요. 이것을 훼손하지 않고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한 일 같아요.
청중 1: 저는 무용 장르의 지원서를 쓰는 기획자인데요. 어떤 안무가는 정말 영상으로 설명하면 좋을 것 같은 안무가가 있고, 어떤 안무가는 제가 그 사람의 서툰 언어를 같이 조율하면서 정돈하면서 그에 알맞은 기획 의도를 쓰면 되는 안무가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각자 훈련의 시간을 거쳐야 하거든요. 기획자는 기획에 대한 훈련의 시간이 있고. 댄서는 자신의 춤을 닦는 시간이 있고, 안무가도 자기 사유를 무용가들과 조율해서 구성하는 시간이 있죠. 그렇게 각자 소비하고 소모하는 순간을 조금 더 바라봐 준다면 그것들을 조율할 수 지점들이 보일 텐데, 왜 그렇게 하나 싶은 부분이 있어요. 특히 안무라는 것을 봤을 때 그 사람이 그 세상에 대해서 어떤 단어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지 않으면 이게 주제적으로 갇히는 부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언어가 필요한 거지, 기획서를 잘 써서 단타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없거든요. 우리가 왜 언어를 배우는가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각자의 삶에 대한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지원제도를 심사하는 사람은 정말 안무 자체를 바라본 건지, 아니면 기획 의도가 뻔지르르하게 좋아서 그것을 픽업한 건지 고민해야 해요. 그렇게 언어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윤정: 저는 지금도 자신이 없지만 정말 글을 못 쓰는 사람이었는데 점차 좋아졌거든요. 이렇게 되기까지 10년 동안 노력을 정말 많이 했어요. 글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어요. 지원서 더 어렵죠. 작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쓰냐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글처럼 춤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내가 내 작업이 뭔지 알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니까 좋아지더라고요. 특히 작업이 끝나갈 무렵에, 제가 어느 길을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는 작업은 글을 쓸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글은 정말로 써지지 않더라고요. 그 경험으로, 제가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작업을 못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대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조금 더 작업과 맞는 글을 쓰게 되더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 연결되어 있죠.
최은진: 글쓰기는 예술가인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소통하기에 편한 도구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상상을 해보고 싶어요. 만약 지원서의 포맷이 다양하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나오는 작업도 다양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연임: 저희에게 원고 청탁서가 있어요. 그런데 서식이 항상 200자 원고지 기준 몇 매로 되어있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원고지를 안 쓰잖아요. 그래서 A4로 환산하고, A4를 다시 원고지로 환산하는 작업을 거치게 돼요. 아직까지 대부분의 원고청탁서는 원고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저 역시 이것에 대해 당연했다고 생각한거예요. 그런데, 최근에 이런 형식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지원서 역시 역사를 타고 올라가면 그 시작점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처음에 있던 게 답은 아니니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영두: 서식이 주어진 사람은 서식을 지켜야 하고, 서식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서식 너머의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왜 이해 해주지 않냐고 하거나 왜 이것밖에 설명하지 못하냐고 하면 안 돼요. 지금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그 서식이 나왔을 것이고, 어쩌면 최선의 결과물일 수 있어요.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뭐냐고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그것에 맞게끔 어떻게 자신을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필요해요. 그리고 반대로 서식으로 판단을 하는 사람은 서식 너머에 있는 것을 짐작해주는 그러한 노력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김연임: 이 동네 가면 이 동네 말이 있고, 저 동네 가면 저 동네 말이 있잖아요. 정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그중에서 그나마 통역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기획을 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통역사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다른 동네의 언어를 직접 조금씩 배우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안 그래도 무용센터에서 4월에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참여하실 수 있는 분들은 참여해보시면 좋겠어요. 정말 실용적인 글쓰기도 있고, 자신의 작업과 관련된 글쓰기도 있어서 나중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너무 긴 시간 동안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눠서 좋았고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리. 이주연 에디터

이윤정_안무가 댄스프로젝트 뽑끼(Dance Project PPopKKi)의 대표이며, 다양한 ‘사이’에 대한 작업들을 통해 신체의 크고 작은 갈등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갖는 또 다른 의미들에 대해 실험하고 있다. 신체의 접촉과 신체적 갈등 속에서 여러 ‘사이’들로부터 발생하는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 소수와 다수, 균형과 불균형의 관계에 몰두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1과 4, 다시>, <점과 척추 사이>, <On this in-between moment>, <1과 4>, <75분의 1초>, <공부방>, <사소한공간>, <사소한 말> 등이 있다.

정영두_안무가 두 댄스 씨어터 대표이며, <제 7의 인간>, <푸가>, <심포니 인 C> 등을 안무하였다. 무용이 가진 추상의 힘을 믿으며, 안무의 여러 형식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양희_안무가 90년대 독립예술 무브먼트의 선두에서 ’The Limbo‘를 결성하고 전통무용과 기성 질서에 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해왔다. 한국 춤의 구조적 분석과 근본적 속성을 비평적으로 재구성하고 컴포지션 구동 원리와 공연예술의 속성을 독자적인 예술형태와 언어로 제기하며 예술 담론의 경계에서 맺는 현상학적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현재 림보 프로젝트의 아티스틱 디렉터이며 Theatre C Company와 The Syndicate의 Associated 아티스트이다.

최은진_안무가 안무를 발견하고 고안하는 일을 즐겨 한다. 크고 작은 공연들을 만들고 출연했으며 특히 현재라는 요소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공연예술 안에서 구현되는 몸의 힘과 그것을 발현시키는 정교한 구성에 오랫동안 매료되어 있다. 발표한 공연으로는 <Misunderdance>, <Side-slipping>, <The Scores of the Spectators>, <자가 발전극장> 등이 있다.

웹진 <춤:in> 편집부


목록

댓글 0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