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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12.12 조회 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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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in 오픈 좌담 ‘슬기로운 무용생활’

조형빈_웹진 <춤:in> 편집부

윤푸름 ⓒ이재성
김연임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희가 웹진이라 독자분들이나 작업하시는 분들을 뵐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번에 공개좌담을 열어서 과정을 나누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좌담의 제목은 <슬기로운 무용생활>로, 올 한 해 <춤:in> 좌담에서 진행했던 이슈들을 확장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크게 세 가지의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먼저 윤푸름 안무가가 발제해주실 결혼, 출산, 경력단절과 비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고, 두 번째로는 청년 무용가로 살아가는 현재와 중년, 노년 안무가들이 가지는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주제는, 벌써 겨울이 되었죠. 일명 보릿고개라고 하는 이 춥고 외로운 시기를 지속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독립 예술가로서 자기 작업과 생계를 병행하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려 합니다. 저희가 오늘 행사는 컨퍼런스 같은 것이 아니고, 모두 다 함께 이야기나눌 수 있는 좌담의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모든 분들이 함께 경험을 나눠주시고 동료와 함께 이야기나누듯 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야기를 시작한 저는 웹진 <춤:in>의 편집장 김연임이라고 합니다. 모시게 되어 반갑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푸름 : 저는 윤푸름이라고 합니다. 안무를 하고 있고, 또 다른 일로는 예술 교육을 하고 있고, 또한 한 가정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뜻깊은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주원 : 안녕하세요, 송주원이라고 합니다. 춤을 추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댄스를 필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감독이라는 호칭을 많이 듣기도 합니다. 올해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입주작가로 1년 활동을 하면서 시각예술 작가들과 같이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루는 매체는 같지만, 그것을 확장하고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는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찾아오신 분들과 함께 좋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진호 : 안녕하세요, 임진호라고 합니다. 고블린파티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무가 겸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고요. 재미있는 이야기들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저번 주 주말에는 이곳 서울무용센터에서 공연을 했었고 끝나고 나서는 바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녀오는 동안 생각을 열심히 정리해봤습니다. 잘 전달되어서 좋은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애자 : 안녕하세요, 추애자라고 합니다. 저는 무용의 언저리에만 있는 사람인데요. 저도 오늘 행사에 대해서 고민을 열심히 하다가 끌려서 오게 되었습니다. 춤에 대한 뜨거움이랄까요, 춤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열기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은 삶을 그것으로 열심히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김승록 : 안녕하세요, 김승록이라고 합니다. 외부에서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고요. 쌍방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고,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듣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조형빈 : 안녕하세요, 조형빈이라고 합니다. 웹진 <춤:in>에서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가 어쩌면 두 시간으로는 턱 없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뜻깊은 이야기들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허영균 : 안녕하세요, <춤:in>의 허영균 에디터라고 합니다. 유익한 내용들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양희 : 안녕하세요, 김양희라고 합니다. 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을 가르치고 있고, 개인적으로 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 동기들도 보면 많은 친구들이 경력단절된 상태인데, 오늘 같은 주제가 나와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김인아 : 안녕하세요. 웹진 <춤:in>에서 자문을 맡고 있고, 또 춤웹진에서도 일하고 있는 김인아 기자라고 합니다. 오늘 주제도 너무 좋고, 이런 주제들이 <춤:in>의 1년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겨서, 오늘의 만남이 무용계가 활성화되고 많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밝넝쿨 :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무용을 하고 있고, 7개월 전까지 강물이 아빠였다가 근래에는 해솔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재성 : 프리랜서로 사진 촬영하는 이재성이라고 합니다. 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주변의 형이나 누나들이 무용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열심히 촬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승하 : 서울무용센터에서 웹진 <춤:in>을 담당하고 있는 김승하라고 합니다. 유익한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연 : 서울무용센터의 매니저 김수연이라고 합니다. 좌담 내용들을 직접 듣고 싶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신 선생님들도 많은 이야기들 주고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연임 ⓒ이재성
결혼, 출산, 경력단절
김연임 : 그럼 저희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의 발제를 맡아주신 윤푸름 안무가는 ‘춤과 함께 나이 든다는 것’이라는 좌담 기사에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좌담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 아이를 키우면서 춤추는 이야기를 하셨죠. 그래서 주제에 관한 경험들을 다 해나가시는 중인 것 같습니다. 결혼, 출산, 또 출산을 거치면서 경력이 단절되고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험을 말씀해주실 것 같습니다.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푸름 : 일단 주제를 받고 떠올랐던 것은, 비슷한 질문을 해주는 후배들이 떠올랐어요. 후배 친구들에게는 개인적으로는 조언도 했지만, 또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결혼이 아직 꿈같은, 두려운 상황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저는 결혼을 했고 주위에 결혼한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그래서 사실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너무 많으니까요. 출산하신 분들도 너무 많고, 무용하고 예술하면서 아이가 둘, 셋인 분들도 계시잖아요. 제가 가진 갈등과 어려움이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고 같이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받아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결혼을 하려고 하지만 아직 하지 않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내가 출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건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저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 너무 잘 아시겠지만, 이것이 제가 무용을 꼭 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 힘든 것이라기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든 대한민국의 여자들이 똑같이 느끼는 고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라고 특별할 것도 아니고, 더 예민하게 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문제가 있죠. 너무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었는데, 저는 이것들을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고민했던 것 같고요. 또 일부분은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나, 주변 지인들을 보면서 감내하는 법을 생각하고, 이 정도는 힘들어도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죠. 늘 충돌하고, 부딪히고, 전쟁 같은 날들이 지나갑니다. 또 그러면서 작업도 해야 하고요. 먼저 결혼을 하고자 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들을 말해볼게요. 무용수의 몸이, 당연히 변합니다. 변하고, 망가지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변하죠. 일반인들도 느끼지만, 무용을 한 사람들에게는 그 육체의 변화가 특히나 더 충격적이에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몸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올 수 있더라고요. 일반인들보다 스스로의 몸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회복이 더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몸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실 더 큰 건 변화된 환경이에요. 내가 낳은 아이를 책임지게 되면서, 이전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내 시간을 온전히 투자했던 그 예술 활동의 시간들이 없어진다는 거죠. 아이를 낳고 3년 정도까지는 내 시간을 온전히 갖기라는 건 보통의 의지가 아니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경력과 커리어를 떠나서 나 스스로 치유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울해지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져요.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기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매 순간 오는 것 같아요. 마침표가 없고, 끊임없이 아이를 돌보고, 요구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죠. 사실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살고 계시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만의 시간을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작업이라기보다는, 나만의 휴식일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회복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돈이 필요해요. 저는 출산을 하고 2년을 쉬었는데, 그게 경력의 단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회복을 해야 하는데, 사실 사회에서 불러주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 시간 동안 제가 다가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아이가 중요하고, 돌보아야 하니까요. 아이를 돌보던 당시에는 단절을 느끼지 않았지만, 작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단절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지원서류에서 탈락하고 기회가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며 단절의 느낌을 받았죠. 사라져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누구에게나 이 길을 꾸준히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리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힘들었지만 그것을 계기로 또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결국 과정을 지나면서 자기가 가지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산 때문에 경력단절의 지점이 올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얼마만큼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외부에서 날 뽑아주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의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의지죠. 일상에 쫓기다 보면 감각들이 소진되고 무뎌지는데, 그게 슬프고 무서웠어요. 무엇인가 할 의지만 있다면 단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면, 공연할 수 있는 무대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말씀드린 것들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 출산을 하신 다른 분들은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푸름 ⓒ이재성
청년과 중년, 세대의 이야기
김연임 : 네, 그러면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의 청년 시절이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새 중년이 되어있는데, 이 구분이 법적인 나이 때문에 분리가 되죠. 39세가 넘으면 사업 지원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40대, 50대로 넘어가면 삶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고도 합니다. 이런 연령의 구분, 몇 세 이전과 이후, 그 차이를 경험하고 느끼게 되거나 그 과정을 작업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것들을 나눠보기 위해 임진호 안무가에게 말씀을 부탁드렸습니다. 함께 경험하고 계신 것들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임진호 : 저는 이 주제를 받고 나서, 과연 제가 청년인지 중년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서른 다섯인데, 찾아보니까 29세까지가 청년이라는 조사도 있고 기관에 따라 34세, 39세까지도 청년으로 분류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사실 지금까지 제가 청년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먼저 단체 소개를 간략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단체에서 내부적으로 포착되는 것들, 또 느꼈던 생각들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저희들 사이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할 것 같거든요. 제가 오늘 좌담에 관해서 이야기하니, 저화 함께 고블린파티에 있는 지경민 안무가가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바탕으로 제 이야기를 함께 실어보겠습니다. 저희 단체는 현재 가장 어린 단원이 대학을 갓 졸업한 24세입니다.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은데, 모두 9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희는 연습실 안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 다른 무용단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그래서 모든 청년을 대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작업할 거리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중년 안무가도 아니고, 과도기도 아니고, 활발히 활동하는 청년의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2년간 저희 단체는 공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비전공자 워크샵이나 다양한 일들을 했습니다. 재작년에 ‘신나는 예술여행’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서 노인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했는데, 여기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이전까지는 극장 안의 따뜻하고 포장된 공연만을 생각하다가 2, 3평 남짓 되는 곳에서 너무 가까운 관객들을 모시고 공연을 하게 됐죠. 이분들이 30분 지나니까 졸기 시작하세요. 오만가지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런 것이 정말 현장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작품을 수도 없이 바꾸고, 나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박수치고 같이 따라부르는 장면도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관객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가 팀에서 호흡을 맞춘 것이 10년이 넘었는데요. 처음 시작할 때 지방 공연이나 해외 공연 같은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10년 전 반지하에서 술 먹을 돈도 없이, 우리한테 연습실이 있으면 한 시간짜리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그런 푸념들을 이야기했었는데요. 그런데 어렸을 적 가졌던 그 꿈들이 이뤄지면서,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들이 낳은 최고의 결과물은 저희 고블린파티의 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9명 모두 안무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몇 명씩 나누어져서 소그룹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면, 토의하는 스터디그룹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계획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저와 지경민씨가 어렸을 때 무척 갈망했던 것이 작품을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요즘 하는 것이 단체에 함께 있는 친구들에게 자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일입니다. 반면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어려움은 관객이라는 단어인데요. 공연을 해도 관객모집이 가장 어렵습니다. 청년이 화두가 되어서 지원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저도 이렇게 기회를 가지기 전까지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공연이 너무 하고 싶은데 할 기회가 없어서 연습실에서 둘이 언제 발표할지도 모르는 작품을 3년, 4년 동안 연습했었어요. 그러면서 지금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 좌담에 오기 위해서 운전을 하는데, 긴 터널을 지나면서 길을 잘못 들어섰어요. 다행히도 네비게이션이 금방 돌아서 빠져나가는 길을 잡아주었는데,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보다 아직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자질구레한 실수를 많이 하는데, 그런 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보면 만회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저희의 지금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진호 ⓒ이재성
생계와 경제활동
김연임 : 감사합니다. 다음으로는 예술가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이 12월이라, 각종 지원사업의 신청 기간이기도 하죠. 이런저런 고민도 많으실 것이고, 또 그런 고민들을 한두 해가 아니라 오랫동안 해오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런 과정 속의 노하우, 혹은 어려움, 답이 있다기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송주원 안무가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송주원 : 저한테 주신 질문이 작업과 생계, 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저도 마찬가지로 제가 경험한 것에서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는 학교에서 근무를 했었어요. 그래서 30대 초중반까지는 전형적인 공연과 자기계발 같은 것들로 모든 시간을 보냈었고요. 30대 중후반까지는 지원기금을 신청해서 공연을 하는 방식을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30대 후반과 40대로 넘어오면서 학교 밖에 나오게 되고, 혼자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걸 겪게 되었어요. 제가 그때까지 공연을 하면서 너무 아쉬웠던 것은, 현장에서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던 것 같아요. 피나 바우쉬나 피핑톰 같은 큰 무용단의 공연들을 보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런 무대를 만들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도시의 장소들, 공공시설로 활용되는 집 같은 공간들을 무대로 삼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3년에 처음 기금을 신청해서 공연을 했고, 그 이후로 ‘풍정.각’ 시리즈를 작업하게 되었죠. 도시의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필름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영상을 위한 리허설이 따로 있고 퍼포먼스가 따로 있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무용이라는 매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당시 형식적인 형태로 진행되던 ‘커뮤니티 댄스’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그러다가 만난 비전공자 분들이 퍼포머로 공연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반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부분에서 몸으로 아름답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그렇게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일일댄스프로젝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는 수업이에요. 저는 지금 창동레지던시에 있으면서 전시에 초대되기도 하지만, 사실 재단 기금 같은 것들을 많이 받아보지는 못했어요. 작품에 대한 그림이 나타나면 시드머니가 아무리 적어도 일단 시작해보는데, 하다보면 자꾸 어디선가 뭔가 생기더라고요. 작년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댄스필름이 주변의 추천을 받아서 영화제에 내게 되었는데, 영화제에 초대가 되고 상금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해에 큰 공연을 두 개나 하면서 상금을 공연하는 데 모두 써버리게 되기도 했죠. 올해도 필름으로 상을 받았는데, 그렇게 받은 상금으로 작업에 보태게 되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연습실을 운영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포기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에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힘들어하다가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죠. 원래 저희들은 작업하면서 안무비가 따로 없잖아요. 제 작업들의 경우 무용수는 많은데 늘 적은 개런티를 주면서 미안해했던 상황이 대부분이었어요. 제 방식이기는 하지만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만 했죠. 또 하고 있는 것들로는 ‘일일댄스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양한 워크샵들이 있습니다. 현대무용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 시민들이 참여하는 워크샵 같은 것들에서 나오는 특강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죠. 30대에 직장을 그만두면서 삶이 급변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제 선택인 것 같아요. TV에 나오는, 자가 아파트에 살면서 자동차를 모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희생이라고 한다면, 저와 같은 환경에서 같이 작업하는 동료 작업자들에게 희생 아닌 희생을 부탁하게 된다는 것? 제가 늘 동원하는 건 기도와 인내심인 것 같아요. (웃음) 인내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는 것, 그리고 진짜 아닌 것은 포기하는 것,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곁에 있는 것 정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밸런스들을 찾으면서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죠. 50대 이상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런 것들을 어떻게 해내시는 걸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견디실까 걱정이 먼저 들어요. 저도 제가 어렸을 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걱정했었는데,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절은 친구들에게는 빨리 그 슬픔에서 빠져나오라고 조언해요. 힘들게 고민하고 있으면 그 안에 있을 수밖에 없고, 좋은 사람들을 찾아서 만나고 뭐라도 하면 달라지는 상황들이 찾아올 거라고 말이죠. 저도 어렸을 때에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삶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어떻게 듣고 가질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충돌에서 발생하는 결핍, 상처, 갈망, 이런 모든 것들을 작업 안에서 삶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제가 최근 공연을 하면서 느낀 점인데요. 선생님들이 너무 많이 하셔서 저희는 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후배 안무가들로부터 듣곤 하거든요. 심사를 받는 자리에 같이 들어가도 젊은 안무가들이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좀 부담스러워요. 저는 그냥 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고, 그것들이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데요. 제 위의 선배님들은 이런 노가다는 아예 안하시거든요. 제 나이대에는 강의도 어렵고, 교수님들이 모두 제 또래인 상황이다보니, 존경하는 안무가들이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결국에는 활동 자체를 접게 되시더라고요. 저도 제 삶 속에서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중인데, 사실 그 후배들도 언젠가는 40대, 50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실 오늘 임진호 안무가에게 많이 묻고 싶었어요.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년이었던 것 같은데, 말하자면 우리는 같이 해나가는 처지인거죠. 사실 저는 20대 무용수나 안무가들은 잘 모르는데, 그분들과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장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송주원 ⓒ이재성
우리 안의 고민들, 그리고 인식의 전환
김연임 : 꺼내기 힘드셨을 삶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을 하는 무용인들은 대중에게는 우아한 모습으로만 전달되지만, 사실은 모두가 생활인이죠. 삶에 대해 들여다보고 편안하게 이야기나누고, 함께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런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임진호 안무가에게 질문을 주셨습니다.
임진호 : 저희 고블린파티 멤버들 모두가 사실은 다 따뜻하게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작업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듭니다. 초등학교 수업을 나가기도 하고 유아 발레, 사람들과 함께 움직임 클라스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죠. 제가 관객 키워드를 꺼냈던 건, 공연을 하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지원금만으로는 인건비도 빠듯한데, 이 지원금이 작품을 위한 지원금이라면 사람을 위한 지원금은 어디에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같이 출연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지급을 하고 있는데요. 오히려 어떤 때에는 출연한 친구들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돈이 없어서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니까, 경제적인 것 때문에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이런 형태의 공적 지원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고 개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관객들만 많으면 티켓 수익이 선순환될텐데 그렇지 못하잖아요. 레퍼토리 작업을 계속 해나가야 작품이 촘촘해지고 재미있어 지는데, 관객 모집이 너무 어려우니까 지경민씨는 이제 공연하는 게 무섭다는 이야기까지 하더라고요.
윤푸름 : 그런 고민을 안무가들이 다 하잖아요.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서울에 너무 많은 공연이 몰려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안에 끼어서 같이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전쟁같다는 거죠. 얼마 전에 오스트리아 린츠 시에서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공연장에 100명 이상 들어올 수 없어서 보지 못하고 돌아간 관객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시스템은 문화예술을 즐기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미술관과 공연장에 들어가서 참여하고, 공연하는 문화를 보면서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연임 : 관객이 모두에게 중요한 키워드인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저희도 관객은 누구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세 가지 이야기 중에서 더 나누고 싶은 질문 있으시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윤푸름 : 생계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저도 생계가 가장 큰 고민이어서 올 한 해는 생계에 뛰어든 한 해였어요. 번듯한 직장이나 고정 수입이 없으니까 자신감이 떨어져서, 돈이란 걸 벌어보자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예술 교육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이도 키우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하면서, 너무 피곤하게 보냈어요. 시간을 정말 쪼개서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시간들을 보냈지만, 하면서 느낀 것은 벌려고 하면 벌 수 있는 길은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예술 교육 사업들은 마찬가지로 시간이 많이 할애가 되고 내 시간이 적어지지만, 어쨌든 고정 수입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었죠. 지인을 만날 시간, 공연을 볼 시간 같은 것들이 거의 없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돈이라는 것이 쌓이니까 이걸로 공연도 올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생겼어요. 교육 쪽에서는 예술인들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고,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주제에 대해서 비슷한 상황의 다른 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은데요. 제 동료들 중에도 결혼을 안 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물론 누군가가 저 같은 고민을 하고 결혼과 아이를 고려한다면, 온전히 자기 작업에 100% 몸 바쳐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대신 저는 더 대단한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지 부당하거나 경력 단절로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본인이 균형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인아 : 그런 생각도 들어요. 지하철에 보면 핑크카펫이라는 좌석이 있죠. 임산부들을 위한 자리인데요. 실효성을 떠나 그 자리가 있음으로 인해 큰 차이가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 좌석을 보면서 임산부들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고 의식할 수 있게 되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렇게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충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철에 생긴 핑크카펫처럼 조금 더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장치가 무언가 없을까요? <춤:in>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지만, 그 후에 뭔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것들이 나타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이야기들이 궁금했어요. 단지 지원제도를 변화시켜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를 어떻게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밝넝쿨 ⓒ이재성
밝넝쿨 : 저는 저번에 <춤:in>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자체가 굉장히 반가웠어요. 연락을 받고 꼭 하고 싶다고도 말씀드렸었고요. 그때도 느꼈지만 이런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도 그 인터뷰를 통해서 그 이후로 분명히 파장이 있었거든요. 무용 작업하는 친구들 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남자 무용가들이 별로 없는데, 제가 아는 그 친구들이 인터뷰를 보고 다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같이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육아하는 안무가들 사이에서도 상황이 정말 다르거든요. 저와 윤푸름 안무가도 많이 다르고요. 저는 육아를 하는 남자이면서, 아내가 같이 무용을 하기 때문에 경력 단절에 대해서 굉장히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저와 아내 둘 중 한 명이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데, 만약 제가 완벽히 육아에 집중하고 아내가 활동에 전념하는 상황이 되면 제가 가지는 그 공백기, 그걸 무용계가 허락해 줄까요? 실제로 본인들은 그 안에서도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제도권에서 경력으로서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정기적으로 작업을 하지만 집 앞에서, 놀이터에서, 마을에서 하는 작업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원금은 생계를 전혀 도와주지 않으면서, 생계의 반대편에서 침투하는 바이러스라는 생각도 듭니다.
송주원 : 개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이 지원사업의 혜택을 계속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그게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만약 내가 단절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해오신 것들을 통해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은데요.
밝넝쿨 : 제가 보기에는 단절에 대한 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환경에 따라 집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오는 안무가들이 있는데, 그런 작업들을 다른 예술가들이 작업적으로 단절로 본다는 것이죠.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요. 그런 것들을 사회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꾸준한 작업들을 자기의 최근 실적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하고, 아티스트로 인정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해요. 최근 3년의 실적이라는 서류의 양식 자체가, 여기에 부합하는 아티스트를 걸러내고 있다는 거죠. 예술가들은 스스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고 스스로 단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회적인 시선들이 그렇게 재단을 하고 있으니까요. 포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핑크카펫 같은 사회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거죠.
송주원 : 저희가 커뮤니티 댄스를 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하는 작업의 경우도 비슷할 것 같아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공연을 할 수 있는 풀, 극장에 공연을 올릴 수 있는 풀 같은 것들도 당연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제 작업을 커뮤니티 댄스라기 보다는 소셜 인게이지 아트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사회적인 부분을 언젠가 또 이야기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밝넝쿨 : 커뮤니티 댄스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커뮤니티를 위한 커뮤니티 댄스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저 같은 경우도 커뮤니티 댄스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고 10개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했던 프로젝트도 진행했었는데, 이런 것들을 제도의 바깥 것이라고 간주해버립니다. 저는 이 공연들을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제 작업의 본질로 보고 있는데, 페이퍼를 만드는 주체들의 인식 안에서는 사이드 메뉴 같은 것이 되어버려요. 사실 페이퍼가 만들어지고 나면 아티스트는 거기에 적응해야 할 수 밖에 없어요. 따르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까. 사회적으로 커뮤니티 댄스를 극장 공연과 동등하게 생각한다면 페이퍼 시스템도 달라지고, 무용가들이 더 넓게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이것이 시대적으로 중요하다면,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중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주원 : 저는 오늘 와 준 김승록 안무가에게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청년 안무가로서 중년 안무가의 활동을 어떻게 보시고, 또 청년 안무가로서의 활동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늘 이 자리의 안무가 여러 명과 작업도 같이 하시고, 사실상 많은 이슈들을 공유하고 있으신 것 같아서요.


김승록 ⓒ이재성
김승록 : 우선 저는 제가 청년인가 하는 것도 좀 궁금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저희 어머니가 서른 둘이셨는데, 그때 저희 어머니가 이미 청년은 아니셨거든요. 그러면 제 나이는 이미 중년을 넘어선 장년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청년은 맞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청년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한 집단을 말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중년의 안무가들이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그분들 또한 청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희가 지금 단절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데요. 제가 배웠던 분들도 계시고, 다들 슬기롭게 무용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계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매우 극소수죠. 무용의 중심인 서울에서, 어떻게든 정보를 알고 이 자리에 모인 극소수가 무용을 논하는 자리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제 주위의 지인 수십 명만 해도 무용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핸드폰을 팔고, 요가 강사로 하루하루를 벌어 살아갑니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무용가라는 직종은 어떻게 슬기롭게 벌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저희가 보고 자란 선배들도 분명히 고난의 행군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자리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면서, 또 현실의 냉혹함을 알려주는 슬픈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청년이라는 느낌이 들고, 이 자리에 과연 중장년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송주원 : 우리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많이 했었죠. 그래서 저는 한동안 어렵다는 이야기를 되도록 안하려고 노력했었어요. 이런 삶에 대해 스스로가 동의하고 선택한 거니까요. 이런 삶의 방식 자체를 서로가 응원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밝넝쿨 안무가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처럼, 제도권 안에서 아직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을 먼저 응원하고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에 주위 동료들 공연을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그런 응원의 문화가 우리에게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송주원 ⓒ이재성
밝넝쿨 :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공론화되지 않으면 관심갖기가 힘들 거예요. 핑크카펫 때문에 사람들이 임산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정말 맞는 이야기거든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저번에 인터뷰를 했지만, 그때까지는 정말로 밖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올해 초에 ‘육아 무용가’를 모아놓고 솔로 작업을 하려고 하다 망설였었거든요.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공연하는 것이었는데, 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무대 위로 공론화시키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또 무용가들 중에는 육아를 하지 않는 분도 많거든요. 그분들에게는 또 상대적인 소외감도 줄 수 있겠죠. 그렇게 고민을 하다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인터뷰였습니다.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감을 하고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게 만드는 그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제도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송주원 : 제가 2016년에 낙원악기상가에서 공연을 했었어요. 처음 기획으로는 무용수 엄마와 아이를 함께 캐스팅하려고 했었거든요. 계속 작업을 같이 해오던 무용수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무용수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공연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죠.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나오기 어려워하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그라운드를 우리가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푸름 :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밝넝쿨 안무가도 이야기했지만, 무용수였던 사람이 아이를 낳고 다시 무대로 복귀하는 것은 본인 의지가 필요해요. 본인이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너무 바쁘고 정신없으니까, 말은 할 수 있어도 직접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것 말고도 삶이 너무 꽉 차 있으니까요. 스스로 준비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준비된다면 나올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무용계에서 그들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을 위해 소리를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숙제가 참 많네요. 하나로 해결될 수는 없겠죠.


왼쪽부터 김연임, 윤푸름, 송주원, 임진호, 추애자, 밝넝쿨 ⓒ이재성
나가며
김연임 : 시간이 벌써 여섯 시가 다 되었네요. 오늘 토론이 너무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고 자리를 정리할까 합니다. 돌아가면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인아 : 저는 이런 자리가 너무 반갑습니다. 설사 이것이 우리 안의 이야기가 되어도, 이런 이야기를 모여서 하고 매체를 통해 공론화되는 건 이제까지 춤계에 없었던 것이니까요. 이제야 좀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이야기가 더 진행되어서 작은 부분들이 섬세하게 다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모든 주제들이 한 몸뚱아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분명히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또 다음에도 이런 자리를 통해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양희 :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동기는 춤을 추고 싶어해서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데, 또 그 친구는 살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오늘 자리를 찾아왔는데, 이곳에 오신 선생님들이 모두 생각이 참 좋으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들이 계속 무용계에서 활동하시면서 잘 이끌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있으면 또 참석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영균 :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세 가지 이슈 중에서는 제 이야기인 것도, 제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는 것도 있었어요. 말씀하신 제도와 현장 중간에 걸친 사람으로서 미천한 경험이지만, 현장보다 빨리 만들어지는 시스템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장 이야기가 항상 먼저 나와야 하죠. 이러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듣고, 현장과 시스템을 잘 조율하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관련 이슈를 쌓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형빈 : 역시나 오늘 모임에서 다 다루기 쉽지않은, 방대한 주제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 제약 때문에 여기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승록 : 한 마디 한 것이 넋두리 같아서 좀 아쉬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리를 통해 넋두리가 현실적 대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험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지원이나 중장년 지원, 지원으로서의 지원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 더 자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도움의 지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추애자 :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여러분들이 그렇게 지키고 있다면 더 오고자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이슈화가 되는 씨앗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책임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모이면 힘이 되지 않을까요. 여기 와서 너무 기쁘고, 저도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밝넝쿨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자기를 투영한 삶의 모습들이 다 다르지만, 모두 중요하지요. 살아가고 있는 무용가들의 진짜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모색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없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도라는 것이, 의외로 궁지에 몰리면 후다닥 바뀌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계속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런 장소에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죠. 무용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이런 값진 이야기의 자리가 다음에도 이어져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면 좋겠습니다.
임진호 : 청년과 중년, 이 키워드 때문에 제가 스무 살때부터의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되돌아보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때와 지금, 변한 것들은 너무 많은데, 두려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두려움을 가져야 나태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계속 이런 상황을 무서워해야 주저앉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터널을 빨리 뛰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좌담이 다 끝나는 마당에 동료들이 보고 싶네요. 그 친구들이 없었으면 예나 지금이나 두려워서 제자리에 그냥 서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참 부족한데, 친구들이 있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송주원 : 저는 원래 철부지 같아서, 저 개인의 상황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변의 상황들을 살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 안의 이슈와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가 직접 우리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늘 공개좌담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항상 혼자 작업을 하는데, 오늘 이렇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모두 함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건강한 생각이 듭니다.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윤푸름 : 앞에서 모두 좋은 말씀을 해주셨네요. 사실 이런 이야기들도, 먼저 지나간 선배들이 다 겪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일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건강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잘 작업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후배들이 보기에도 결혼하고 둘째까지 낳았는데 이렇게 작업하고, 좋은 작품 계속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응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재성 : 분야는 다르지만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왠지 집에 가면서 소주 한 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네요.
김연임 : 오늘 이 자리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느끼고, <춤:in>을 만들면서도 느끼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다정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동료, 가족, 누구든지 이렇게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오늘 너무 감사하고, 이 이야기가 작은 시작이 되어 앞으로 더 나눌 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왼쪽부터 김연임, 윤푸름, 송주원, 임진호 ⓒ이재성

윤푸름
오랜 시간 동안 몸에 거주하고 있는 나를 춤을 통해 찾아오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싶고, 예술교육과 안무에 관심이 있다. 서울문화재단 TA로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을 3년 째 해오고 있고 올해는 <보다>와 <길위의 여자> 두 작품의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내년 신작은 루마니아에서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임진호
컨템포러리 댄스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드는 ‘고블린파티’ 안무가 그룹의 안무가이자 무용수다. 2007년 단체 설립 후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개인적인 시각을 통해 영감을 받는다. 그들은 작품 속에 공간과 상황을 창조하고 그 안의 캐릭터를 발굴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관객과의 소통에 가장 큰 중점을 두되 관객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연구하고 있다.

송주원
일일댄스프로젝트 대표, 안무가, 댄스필름감독,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입주작가. 국내외 무대에서 안무가, 무용수로 활동해 온 송주원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장르와 적극적인 교류를 해왔다. 현재 전문무용수, 비전문무용수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무브먼트 그룹 <일일댄스프로젝트그룹>과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情.刻) 시리즈> 를 통하여 ‘도시공간-몸-지금,여기’에 대한 내밀한 질의와 담론을 펼쳐 나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공간에서 독백하듯 방백하는 몸짓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기록을 그리는 작업에 주목하며 극장 중심의 무용공연에서 장소특정적 공연으로, 그리고 댄스필름으로 매체를 확장하고 있다.


조형빈_웹진 <춤: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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