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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12.07 조회 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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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예술사 <졸업작품발표회>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떵샤(윤상은)_안무가

웹진 <춤:in>은 ‘떵샤와 함께 무용공연 보러가요’ 꼭지를 2018년 6월, 9월, 12월 총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무용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과 함께 무용공연을 본 뒤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코너입니다.

함께 보러간 사람들

오빛나리

작가.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연대 ‘탈선’ 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우롱센텐스’의 한 멤버로서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문학 창작에 대해 고민 중이다.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의 공저자이며 각종 독립 문예지에 칼럼/에세이/소설 등을 실었다.

한서빈

불평등을 주제로 정치와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원생. 발레, 영화를 좋아하며 밥 먹는 것을 즐기진 않지만 예술폭식증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파리의 예술가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술가 중 무엇으로 태어날지 고민하곤 한다.

한정민

‘글을 참 잘 쓰시네요’라는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여기는 상담학부생. 본적은 역사학과인데, 개인을 단순화하는 학문 경향에 지쳐 상담학과를 복수전공한다. 현재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구청 민원대에서 씨름중이다. 가수 Sia의 <Chandelier>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처음 현대무용을 접했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서빈과 정민. 반가워요! ⓒ윤상은
현대무용의 난해성 담론은 이제 그만
떵샤 일반적으로 ‘현대무용은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오늘 공연 보고는 어떠셨는지요? 정민님 어떠셨어요? 아까 공연 끝나고 정신 못 차린 것 같던데.(웃음)
정민 아.. 저... 정리되면 마지막에 얘기해도 될까요? 다른 분 이야기부터 들으면 안 될까요?
떵샤 너무 긴장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웃음)
서빈 아, 저부터 할게요. 저는 무용공연을 평소에 많이 보고 공부도 해서 ‘난해하다’는 일반적인 답은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오늘은 졸업발표회를 보는 것이니 학생 작품은 어떨까 기대하면서 왔어요. 10분씩 짧은 작품들을 여러 개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학생마다 개성이 잘 드러난 게 참 좋았어요. 그런데 보면서 몇몇 작품들은 ‘어? 이거는 유명한 작품에서 의상 따왔구나.’ ‘어? 이건 피나 바우쉬 따라한 거 아닌가?’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어요. 의상이나 몇몇 동작들이 피나 바우쉬 ‘봄의 제전’을 연상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까 보고 배운 것을 인용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클리셰적인 레퍼토리가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떵샤 정말 무용팬만이 할 수 있는 평이네요. 사실 작품이 얼마나 독창적일 수 있을지, 얼마나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있는가는 논쟁적인 부분이 있죠.
빛나리 특정 안무가만 따라했다면 문제죠. 다수의 작품을 참고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녹여낼 수 있으면 모방이 아니라 본인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방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되는 건 기시감이 드는 것이죠.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으면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서빈 제가 그렇다고 ‘쟤 따라했네?’ 이런 시선으로 본 건 아니고요. 지금까지 본 무용작품을 떠올리면서 ‘어! 저거 여기서 따왔네?’ 이런걸 찾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안무가들이 자기 작품의 어떤 포인트에서 어떤 걸 원했는지 찾는 재미가 있었어요.



총총 열린 감을 보고 감탄 중. ⓒ윤상은
빛나리 저는 예술작품을 텍스트로도 많이 접하고 영상물로도 많이 접하다보니까, 또 제가 독해력이 좋은 편이여서 작품을 보면서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많이 없어요. 사실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미디어와 인터넷, 스트리밍의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수많은 발전된, 현대적인, 우리와 가까운 텍스트와 이미지를 영화, 드라마, 광고, 글, 웹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독해력이 없을 수가 없죠. 웬만한 세대가. 오늘 온 관객들도 아마 안무가의 지인이거나 예술을 많이 접한 사람들일 테고 그런 수준의 관객들 중에 난해함을 느낄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난해하다면 뭔가 작품 안에서 설명 안 된 부분이 있는 거예요. 저도 보면서 ‘이런 장면이 왜 필요했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연출에 구멍이 생겼거나 맥락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예술적인 감수성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무언가로 만드는 거잖아요. 그게 몸이 될 수도 있고, 문장이 될 수도, 단어가 될 수 도 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예술이라고 부른다는 관점에서 ‘난해하다’라는 평이 나온다면 작업의 완성도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거죠. 그런데 혹시 난해하다는 평이 일반적이고 주류적인 시선이라면 그건 ‘예술기피’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냥 난 잘 모르겠고, 모르겠어’ 라고 넘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본 작품 수준으로 현대무용이 보편화된다면 못 알아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대무용 전반에 제공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갈 기회이지, 난해하다는 평을 두려워할 건 전혀 아닌 것 같아요.



팜플렛을 읽는 서빈과 정민. ⓒ윤상은
빛나리 또 한 가지 ‘난해하다’는 얘기를 듣는 이유는 오히려 작품을 설명하는 글 때문인 것 같아요. 오늘 팜플렛에 나온 몇몇 안무노트를 읽어보면 의도는 좋은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많았어요. 또 제가 문장에 예민하다보니, 비문을 많이 발견했고요. 보통 하고자 하는 말에 비해 절제가 어려울 때 비문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앞에서 배경 제시를 안했는데 갑자기 개념이 나오면 안 돼요. 예를 들어 ‘대항하고 싶은 나’라고 했을 때, 무엇에 대항하고 싶은지 앞서 체제가 제시가 되어야 하죠. 체제가 묘사된 적이 없는데 대항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관념적인 말들이 멋있어 보이니까 그냥 쓰는 경우가 많단 말이죠. 이건 무용계뿐 아니라 모든 예술계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아무튼 그런 관념어를 그냥 던져놓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시키는지가 안무가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난해하다’라는 평이 나온다면 안무가 본인의 역량부족이겠죠.
서빈 저도 항상 예술을 설명하는 글의 난해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데, 미술 쪽이 그런 게 더 심한 것 같아요. 무용 쪽은 안무노트 읽어보면 그래도 어떤 의도로 만들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고, 글이 이해가 잘 안가더라도 작품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데 미술은 더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일반 대중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구조성의 탈피성’, ‘보이지 않은 것의 보임’ 이런 것들. 아예 말이 안 되는 단어들을 쓴다는 거죠. 너무 뜬금없이 관념적인 단어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민 저도 말씀하시는 것에 공감되는 게, 미술전시 가보면 관람객들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디에고 리베라’ 전시를 보러간 적이 있는데, 관람객들이 그림 앞에 있는 게 아니라 텍스트 앞에 다 몰려있어요. ‘너는 이 걸 다 알아야 해. 그걸 모르면 작품 해석 못 한다’는 식의 암묵적인 강요가 있는 것 같았어요.



빛나리와 떵샤. 초점나간 사진 ⓒ한서빈
여초 무용과 안에서 대표되는 남성성
빛나리 보면서 궁금했던 게, 제가 알기로 무용과는 심각한 ‘여초과’인데 남성 무용수들이 눈에 띄게 많더라고요. 제가 아는 바로는 보통 무용과는 여남 성비가 40:1 정도인데 말이죠.
떵샤 음, 창작과의 특성일 수도 있어요. 창작과는 장르 구분 없이 안무를 전공하다보니까 입시 때도 남성지원자가 꽤 많아요. 그런데 오늘은 남성 무용수들이 겹치기 출연을 많이 했더라고요. 작품을 만들 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남성무용수가 필요한 것 같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서 남성무용수들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작품 안에 남성캐릭터가 한두 명은 있어야 할 것 같은 괜한 느낌?
빛나리 그런 게 한편으론 아쉬운 것 같으면서 좋은 것 같고, 복잡 미묘해요. 남성무용수들의 수요가 많은 게 말이죠. 어떤 표현을 위해서 남성의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무심코 남성무용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원론적으로 ‘우리가 표현해야할 육체는 무엇인가?’ ‘반드시 남성의 몸이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여성의 수가 많은 집단이 있는데, 그 안에서조차 창작을 할 때 인위적으로 성비를 반으로 맞추려는 시도가 괜찮은가. 사실 남초 집단에는 그런 현상이 없잖아요. 굳이 여성들을 데리고 와서 더 대표를 시키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데 여초인 무용과에서 남성의 육체가 왜 계속 대표가 되어야 하는지. 남성의 육체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남성의 육체가 정말 아름답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 표현의 다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중복 출연하는 남성무용수가 많다면, 남성무용수는 여성무용수에 비해서 무대 설 기회가 많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남성무용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알겠는데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커튼콜을 하는 창작과 안무가들과 무용수들 ⓒ윤상은
관능적인 몸, 시의성을 가진 작품들
빛나리 그런데 원래 무용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다 아름다운가요? 몸, 선, 근육 다 정말 멋지더라고요. 남성 무용수들도 엄청 인상적이었고요.
서빈 저 지난주에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NDT)’에서 내한 와서 공연 보러 갔는데, 그날 하루종일 너무 피곤하고 기분도 안 좋았거든요. 근데 거기 남성무용수들이 너무 멋있어서 보는 두 시간 동안 피로가 다 녹았어요.
떵샤 아, 무용이 그런 역할을 하다니. 근데 저도 오늘 보고 좀 놀랐어요. 남성분들이 참 ‘간지’난다.(웃음)
정민 저도 느꼈어요.
빛나리 아니 왜 놀랐냐하면 평소에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사람들이 아니어서요. 길거리에는 그런 사람 없거든요.
서빈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무용수들은 이상한 옷을 입어도 다 멋있고.
빛나리 아! <사이공간>의 남성 무용수들이 하나같이 관능적인 움직임과 선을 보여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아름다운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군무처럼 각을 맞춰 움직이시는 것도 세련돼 보였어요.
서빈 저도 <사이공간> 안무가분이 나올 때 ‘저 사람 뭐지? 왜 저렇게 관능적이지?’ 감탄했어요. 무용수들 멋있을 때가 웃통 벗고 헐렁한 바지 입었을 때. 몸 근육이 멋있으면 조명이 비칠 때 음영이 잡히는 몸이 너무 멋있어요. 심미적인 만족감이 있었어요.
정민 그 작품은 영화로 치면 ‘어벤저스’ 느낌이랄까요.(웃음)
떵샤 그런데 저는 무용을 어렸을 때부터 하고 무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니까 오히려 그런 몸들이 지겨워요.
빛나리 그게 지겨워져요?(웃음)
떵샤 다 너무 이상적인 몸을 가졌다는 것이 지겹죠. 여성무용수들도 하나같이 마르고 선녀 같은. 그래서 무용보다 연극 같은 거 보면서 다양한 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지금도 ‘무용하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무용수들에게 어떤 ‘섹시함’을 느낀 것은 단순히 이상적인 몸에 대한 심미적 충족이었다기 보다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관능’을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까 공연 보고 나와서 화장실 앞에서 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이 친구들은 관능을 기본으로 탑재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느낌이 받았어요. ‘관능’이라는 부분이 지금 청년들에게 중요한 부분이고 시의성이 있다고 느껴져요. 특히 관능을 드러내는 방식이 기존의 이성애적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퀴어적 감성을 토대로 한 것도 흥미로웠고요.
서빈 저는 첫 번째 작품(손정민 <회화의 색>)부터 퀴어 묘사가 되게 강해서 흥미로웠어요. 요즘 흐름이 페미니즘인 것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은영 작가 작품도 여성만 출연하는 전통극인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죠. 요즘은 예술의 흐름이 예술가의 내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어떤 시의성을 반영하는 것 같아요.
빛나리 페미니즘, 시의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하권재 안무가의 <피곤하구나...>, 이 작품에서 안무자분이 군대 깔깔이 입고 나오셨잖아요. 그게 되게 상징적으로 보였어요. 특정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특정 계층의 남성성 전시로 바로 이해될 수 있으니까요. 피곤함 중에서도 남성, 그 중에서도 군복무 경험이 있는 남성의 피곤함을 묘사하게 된 것이죠. 이게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군대 깔깔이 하나 만으로 연출이 그렇게 보인다는 게, 어떤 소품을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이렇게 시의성이 드러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정민 일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으면 후드티만 입었어도 되는데, 그런 성찰이 없었었던 거죠.
서빈 차라리 집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런닝을 입었으면.
빛나리 이 작품은 타겟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죠. 한편으로 바로 그 점에서 시의성이 적절하다고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군대’가 일상적이고 중첩되는 피로를 경험하는 집단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그것을 어떤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한 컷. ⓒ윤상은
떵샤 <피곤하구나...>와 대조적으로 여성 2인무 <뢰(磊)>는 어떻게 보셨어요?
서빈 저는 사실 임경현 안무가의 <1+1+1+1+1=1>가 가장 좋았는데, 그 작품에서는 춤추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상관없이 무용수들의 다양성이 잘 드러나서 좋았어요. 그 작품에 출연한 박세진이라는 여성무용수가 정말 눈에 띄었거든요. 제가 그 분을 인스타그램에서도 봤는데 같은 여자이지만 너무 반할 것 같은 거예요. 그 작품에서도 그 분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여자인데 주도하네?’ 이런 게 아니라 제일 잘 하니까 주도하는 느낌. 그냥 팔만 휘둘러도 멋졌어요. 그런데 <뢰(磊)> 같은 경우에는 그런 흐름과는 살짝 동떨어진, 무용수들의 여성성을 강조한 작품이여서 관객들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기댈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빛나리 거기서 제가 기시감을 느꼈어요.
정민 남성 영화에서 여성을 소비하는 전형적인 모습.
빛나리 저는 <뢰(磊)>에서 ‘선망’이라는 키워드가 제일 많이 떠올랐어요. 돌들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는 움직임을 보면서 인물보다는 돌이 중심이 되는 작품 같았고, 또 돌 그 자체보다는 돌을 선망하는 몸짓이 주제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모습이 수동성의 전시처럼 읽혀서 재밌기도 했고요.



노을과 정민. ⓒ윤상은
정민 저는 오늘 제 생애 처음 본 무용공연에서 느낀 많은 감정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 하나하나 보다는 ‘몸으로 하는 퍼포먼스’ 자체에 많이 압도된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잖아요. 저는 예전엔 ‘성’을 포르노로만 접했어요. 한국 남성들 대부분이 사회에 나오기까지 접하는 성 담론은 포르노그라피를 통한 신체의 성애화거든요. 여성 신체의 특정부위에 대한 성애화에서 모든 담론, 이슈, 농담 등이 파생돼요. 한국 남성이라면 시골, 도시 다 똑같아요. 저도 그런 전형적인 남성이었고 지금도 아니냐고 물으면 답은 못하겠어요. 워낙 20년 동안 그러고 살았기 때문에. 아무튼 여성의 몸을 성애화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가려야 되고 은밀해야 되는 존재란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무용을 접하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인간의 신체와 인간성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것인지를 알았어요. 우리의 신체를 성적으로만 보거나 가부장제 안에서 자녀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가두기엔 너무나 많은 가치를 담고 있음을 깨달았고, 보다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무용을 통해 느꼈어요. 그렇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 폭력적이라는 게 받아들여졌고요.
떵샤 오늘 무대에서 본 신체는 어땠는데요?
정민 다 너무 표현하고 있었고, 감추고 안전해야 하고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야 하는 그런 행동거지들이 거기서는 다 자유로운 거예요.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라는 시를 보면 거기에는 작가의 혀가 시종일관 없어져요. 우리가 보는 세계는 그림으로 되어있는데, 그 걸 혀라는 언어로 매개하다보면 뜻이 갇혀버린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어요. 언어의 폭력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죠. 저는 오늘 무용에서 그 너머를 본 것 같아요.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이런 주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어쨌든 언어라는 툴이 있잖아요. 그런데 무용은 그것도 없이 저를 훅 그림의 세계로 보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당황하고 압도됐어요. 무용수의 복장들도 평소에 노출하지 않는 신체 부위, 배꼽, 발목, 어깨가 드러나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게 제시되고 언어 너머의 것을 표현하고 있으니까 제가 신체에 대해 일상적으로 성애화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비참해졌고, 제가 잘못됐다는 것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거예요. 일상적인 것으로 불리는 것이 안전하지만 폭력적이고, 그 너머의 것은 불안정하지만 자유롭다고 느껴졌어요. 저 진짜 보다가 울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못나게 살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떵샤 헛.
빛나리 근데 진짜 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는 순간 되게 신기해져요. 저는 그 감정을 알 것 같아요.
떵샤 이곳은 그 안에서 신체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런 표현을 인정해주는 곳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발레를 그만두게 되면서 희열을 느낀 부분이, 무대에서 제 스스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지할 필요도 없고 관객이 그걸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오늘 본 공연에서도 저 무용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정민 맞아요. 그게 의미가 없어요.
빛나리 모든 작품들에 조금씩 소수자 이슈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작품의 퀄리티도 높았던 이유가 그런 다양성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민 아까 이예지 안무가의 <제 4의 성>에서 여성무용수가 잠깐 상의탈의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제가 평소 같으면 ‘어떻게 저러지?’ 라고 놀랐을 텐데, 제가 그걸 너무 덤덤하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나니, 머리로만 이해했던 ‘남성이든 여성이든 중요치 않다’는 말이 비로소 와 닿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몸이라는 것이 계속 감추고 조심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떵샤님이 <움직임 워크샵 추상추상>을 진행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서빈 이런 반응이 나온다면 그 작품이 정말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멋지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에 자기 삶을 투영하면서 해석할 수 있으면 이것이야 말로 예술 저변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정민씨는 오늘부터 집에 가서 무용에 대해 더 검색해 볼 거 아니에요? 예술의 저변을 확장하고 싶다고 말만 많이 하는데, 관객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찾아보게끔 유도하는 것이 비로소 저변의 확장이 아닌가 싶어요.



카페에서 이야기 중. ⓒ윤상은
거칠지만 실험적인, 완성도 있지만 무난한
서빈 저는 <사상범을 찾아라>도 좋았어요. 셋이 한 번도 동작을 안 틀리고 딱딱 맞춰서 하는 게 연습 진짜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떵샤 이 작품에도 남녀 구분이 없는 게 좋았죠. 그리고 같은 비트에 맞춰서 계속 몰아붙이는 어떤 집념이랄까?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서빈 음악이 클라이막스도 없고 고조도 없는데, 그 움직임을 어떻게 다 맞췄는지. 한 숨으로 끝나는 작품.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정민 주제의식에서 주제의식으로 끝나는 작품. 아까 이종현 안무가를 화장실에서 만나서 잘 봤다고 인사했어요
빛나리 좋았겠다.
정민 아 저는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이 작품도 좋았는데, 처음에 바다 소리가 나오면서 최초의 행위, ‘걷기’부터 시작하잖아요. 사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서 왔거든요. 바다에서 시작돼 육지로 이어지는 태초의 움직임이 느껴져 좋았어요. 그리고 이선진 안무가의 <흔적>은 마치 싸이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어요.
빛나리 저도 그거 되게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 보면서 이젠 작품의 서사와 기승전결이 무대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씩 지층을 쌓아 올리듯 전개되는 서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떵샤 <이-아>는 어땠어요?
서빈 저는 임은정이라는 아는 무용수가 나와서 재밌게 봤어요.
정민 저는 소품으로 나온 전신거울이 너무 잘 사용되어서 좋게 봤어요.
빛나리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안무노트가 방해된 느낌이었어요. 비문도 많고, 과잉된 표현과 수식어 때문에 문장을 해석하기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안무노트만 보면 굉장히 장엄하고 추상적인 무엇을 말하려는 것으로 읽히니 더 난감하죠. 장엄하고 추상적인 무엇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그게 구체적인 연결로 이어지지 않으면 관객 입장에서 반발감이 들거든요. 분명 반복과 퇴행을 보여주는 연출, 트리거가 되는 꽃가루 등 좋은 소재들이 많은데, 소재와 소재, 연출과 연출, 장면과 장면 사이를 메꿔줄 서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빈 저는 이게 학생이라서 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힘이 잔뜩 들어가서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응축해 놓은 느낌이 들었어요. 제목 자체도 ‘아이’를 거꾸로 쓴 ‘이아’ 인 것 같은데.
빛나리 그러니까, 수를 너무 많이 쓴 거죠.
서빈 저도 학부 때는 어떤 멋진 것을 해야 할 것 같고, 단어도 멋진 걸 선택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야기하는 서빈. ⓒ윤상은
빛나리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험적인 작품에 대해서는 너무 박하게 점수를 주고, 안전한 선택을 한 작품에 대해서는 실제로 이뤄낸 것보다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아>가 너무 실험적이어서 문제였다면 <벽간소음>은 너무 무난해서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벽간 소음 짜증나’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버렸어요. 벽간소음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 얕은 것 같은 느낌. 예를 들어, 벽간소음의 실질적 원인은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원룸 및 고시텔 등의 부실건축 때문이잖아요. 1인 가구는 늘고, 땅은 좁고, 집값은 비싸고, 공통 화장실/욕실 써야하는 고시텔도 월세가 40이 넘고. 우리 세대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 결국 청년 주거 문제죠. 물론 벽간소음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말해야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그렇지만 ‘벽간소음’이 가진 수많은 주제의식을 생각할 때, 옆집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저는 벽이 무너지고 두 인물이 서로 마주하게 됐을 때 뭔가 일어나는 줄 알았어요. 그것이 오히려 사건의 시작 같았거든요. 사실 이 주제의식은, 특정한 타인과의 경쟁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현실적이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볼 때 가능하다고 봐요. 내가 싸우던 대상이 사실 나와 같은 입장이라면? 투쟁을 개인을 상대로 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런 부분에서 옆집 사람과 경쟁하다가 마무리 된 것은 조금 아쉬웠어요. 전통무용 요소의 연출, 위트, 생동감 등은 단연 돋보였고 성공적으로 작동했지만, 시트콤 보는 기분이었달까요. 물론 저도 시트콤 좋아하지만, 풍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오히려 <이-아>가 사회와 체제, 통념 등에 대한 투쟁과 도전을 말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안무노트를 해석해도 그렇고요. 그러한 문제의식을 건드린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다소 힘이 과잉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작품도 기승전결이 충분하지 않다고 읽혔고요. 예를 들어 안무노트에 쓴 ‘규정이 언어적으로 내포하는 협소함은 존재가 갖는 실질적 상태와 방대한 의미를 축소하는 필연을 낳는다.’는 문장은 극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너무 관념적이고 큰 단어가 나열되어 있는 것뿐으로 읽히거든요.
떵샤 여러분들은 대학 졸업 때 어땠어요? 졸업논문 같은 거 쓰셨나요?
빛나리 아니요. 저희는 졸업할 때 토익 일정 점수를 넘겨야 해요. 취업이 중요하잖아요. 따로 작품을 제출하지는 않았어요.
정민 저도 중국사 수업 영어로 들어요.(웃음)



열띤 토론. ⓒ윤상은
예술교육의 끝은 어디인가
서빈 저는 ‘이 졸업작품이 이들에게 마지막이라는 것’이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이들 중 몇몇은 진짜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요. 언제 다시 공연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빛나리 저도 계속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예술교육의 끝은 어디인가’를 생각했어요. 오늘 이 졸업작품 발표회의 최종 감상이랄까요?
서빈 큰 무용단 보면 단원들이 10명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지금 한국에서 현대무용하는 사람이 몇백 명은 될 텐데 다들 어디로 가는지.
떵샤 음. 이분들이 졸업하고 창작과 안무를 계속한다고 마음먹으면 이제 지원사업에 도전하시겠죠.
빛나리 개인 단위로 하시는 건가요?
떵샤 단체지원도 있고요. 이런 분들이 지원사업 시장에 뛰어 드는 거죠.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빈 오늘처럼 훌륭한 작품들을 보고나서 드는 생각이, 이 분들은 잘 돼도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거나 무용단에 입단하는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그랬어요. 저도 전시 기획 쪽으로 지원사업 신청은 많이 해봤는데, 계속 신청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까 힘이 빠지더라고요. 또 정산하려면 백 원 단위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요. 이분들이 졸업해도 설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과 아쉬움이 들었어요.
빛나리 저는 이 분들이 이 작품들로 유료 무대를 구성하시거나 기획하셔도 저로서는 기쁜 마음으로 보러갈 것 같아요.
떵샤 제가 능력만 되면 이분들 모아서 페스티벌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빛나리 한번 기획해보세요.
서빈 문화적인 취향은 교육이 아니면 길러지기 힘들잖아요. 저도 혼자 공부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지난달에 국립발레단의 <마타하리>를 아는 동생을 데리고 보러갔는데, 태어나서 발레 공연을 처음 본 그 친구가 너무 좋다고, 왜 이렇게 좋은 걸 아무도 안 가르쳐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친구가 추천하지 않는 이상 혼자는 잘 안 보게 되죠.
떵샤 이 꼭지의 기획을 한 이유도 무용공연은 아는 사람이 데리고 가면 보지만 혼자는 안 가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아는 사람이 연결고리가 되어주면 그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죠. 시작조차 닿기 어려운 것이 공연예술이다 보니.
정민 재밌는 것이, 여기 계신 분들은 이렇게 ‘넓고 정형화되지 않은’ 세계를 경험하시고 그걸 삶에서 영위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것을 토착화시키기 위해서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해요. 이쪽 세계는 되게 넓고 다양한데, 사회에서 파워를 갖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담론은 되게 이분법적이고 단순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세계를 영위하고자 한다면 필요악적으로 그런 부분을 취해야 한단 말이죠. 그렇다고 이런 다양한 표현을 하고 싶은 분들한테 정치적인 것에 뛰어들라고 할 수도 없고, 누가 와서 갑자기 지원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 ‘현실이냐 예술이냐’의 진부한 담론으로 빠져버린단 말이죠. 아래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소비를 해주면 그게 가장 좋은데.
빛나리 그거 아마 불가능해요.
정민 어쨌든 그 경계에서 고민하는 걸로 이해가 돼서. 저는 내부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런 세계를 알 때마다 상심이 커요.
서빈 그냥 하는 사람만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이 세계에 있는 사람만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제가 3년 째 발레를 배우고 있는데, 같이 하는 분들도 다 3년 째 배우는 사람이에요.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유입이 안 돼요. 진입해서 그걸 취미로 쭉 이어나가기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스턴트 같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블랙핑크’ 콘서트를 간다거나, 그런 간단하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기피하는 것 같아요.
떵샤 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좌절감도 들고 하는데, 저는 지금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런 기획도 해보고, 떵샤의 모던댄스 블로그도 꾸준히 열심히 하자’가 됐어요. 저도 처음에는 ‘무용이 이렇게 좋은데 왜 안보냐’는 식으로 불만을 가지고 관객개발을 해야한다는 거대한 고민을 가졌는데 지금은 대중이 소비하는 무용이라는 거는 환상에 불과하지 않나 싶어요. ‘대중’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대중’을 한 쪽 입장에서 이렇다 설정하는 것도 옳은 일인지 모르겠고요. 지금은 ‘내 주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걸 만들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학교 앞에서 찍은 유일한 단체 컷! 좋은 이야기 감사해요. ⓒ윤상은


떵샤(윤상은)_안무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동료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용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내부자 입장에서 창작과 예술생태계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무용을 ‘그들만의 세상’ 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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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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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염둥이2019-01-16

    2019년에도 진행해주세요~~~!

  • 종달2018-12-22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