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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10.08 조회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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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문학]춤을 춤으로 두기

김상혁_시인



대표이미지, ⓒ엄유정
중학교시절 간부수련회라는 게 있었다. 학생회장,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선도부원 등이 교사 몇과 동행하는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프로그램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너희는 학교를 대표한다, 너희가 학생을 이끌어야 한다, 항시 모범을 보여야하며, 혹여 문제가 생기면 우리와 상의하고… 이런 내용을 교감, 주임, 담임들이 돌아가며 강의했다. 간부수련회에 오지 못한 친구들이 우리에게 말했듯이, 여기 온 애들은 학교를 위해 일하는 첩자 같은 것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를 포함한 소위 ‘간부’ 아이들 모두 강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들 듣는 척만 했는지, 아니면 정말 간부라는 일말의 자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걸 프락치라고 하잖아? 휴식시간 중엔 그런 생소한 단어도 들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2박 3일 간 펼쳐진 연극무대 같다.
일정 마지막 밤이었다. 숙소 스피커로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 손전등을 지참하시어 실내체육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복장은 자율입니다! 준비물로 가져온 손전등을 한 번도 활용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긴 했다. 가정통신문 준비물 리스트엔 ‘작은 손전등(끈이 달려 있으면 좋음)’이라고 상세히 적혀 있었다. 숙소 근처에 공동묘지라도 있어 거길 다녀오려나? 아니면 ‘소등 후 서로에게 비밀 털어놓기’ 같은 거라도 하려나? 특히 후자는 당시 수련회나 수학여행, 교회 청년부의 합숙 같은 자리에서 꽤나 유행이었으니까. 물론 손전등 말고, 보통은 촛불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게 정석이다. 다 유치한 짓이다. 하지만 그 시절엔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멋진 비밀이 있기를 바랐고, 또 그걸 어디선가 말할 수 있기를 은근히 바라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피운다는 것조차 실은 자랑이 되는 나이였고,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며 고독해지는 자기를 뿌듯해하던 나이였다. 털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멍청한 비밀을 가진 나이.
우리는 체육관에 모였다. 의자는 한쪽으로 쌓여 잘 정돈되어 있었다. 7월 중순이라 종일 더웠지만, 아예 깜깜해지니 날씨도 제법 선선한 편이었다. 강당 위엔 교사가 아닌 학생회장이 서 있었다. 이제 수련회 댄스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행사를 기획한 학생회임원 말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댄스? 춤? 여기서 파티?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회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동그랗게 서서 큰 원을 만들어 주시고요, 이제 불이 꺼지면 끈 달린 손전등을 돌려주세요. 손전등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면 안 됩니다! 끈을 잘 붙잡거나 손목에 완전히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분위기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동그랗게 서서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파티 같은 건 전혀 시작할 기미조차 없었는데.
쿵, 하고 대형스피커가 울렸다. 딱, 하더니 사방이 깜깜해졌다. 우우, 학생 몇이 장난치듯 가성을 냈다. 완전히 어두워진 허공 위로 손전등이 하나, 둘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교에서, 아니 우리가 아는 한, 이 세상 중학생 중에 가장 춤을 잘 추던 남학생 A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이 만든 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춤추는 걸 싫어했다. 무슨 행사만 잡히면 모든 교사들이 그에게 춤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행사가 없어도, 어떤 교사는, A야! 나와서 잠깐 춤 좀 춰봐라, 했다. 그가 교실 앞에서 춤추는 게 처음엔 우리도 좋았다. 하지만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그가 나서도 더는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춤은 여전히 멋졌지만, 그는 매번 민망해했고, 우리는 민망하고 지겨운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며, 그래서 그에게 춤을 시킨 교사 말고는 모두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A가, 물론 학생회장이 미리 부탁했겠지만, 스스로 춤을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일사천리 분위기가 불붙었다. 춤꾼 A가 사라지자, 부회장 B가 원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 춤과는 인연이 없어 어깨만 몇 번 들썩이다 나간 B를 향하여, 말 그대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13반 부반장 C가 같은 반 반장 D의 등을 밀었다. 얼결에 원 안으로 들어온 D가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환호와 박수는 더욱 커졌다. 체육관이 날아갈 듯했다. 그렇게 E가 F의 등을 밀고, F는 춤을 추고 원 밖으로 나가 G의 등을 또 밀어 춤을 이어갔다. 들키고 싶은 비밀을 가진 아이처럼, 우리는 밀리고 싶은 등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에 원 안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고, 또한 동시에 간절히 나가고 싶어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옆에 서 있던 학생회장이 내 등을 밀었다. 나는 몇 번 버티다가 우르르, 원 안으로 쏟아지듯 밀려나왔다.
나는 춤을 좋아한다. 그날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해야 옳다. 나는 춤추기를 좋아했다. 어쩐지 춤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춤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춤에 관하여 잘 모르면서, 춤 출 기회만 있으면 정말 미친 듯이 추곤 했다. 대학신입생 친구들 가운데 소위 ‘나이트클럽’에 정말 춤추러 가는 건 나뿐이었다. 무대까지 나가는 그 통로,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서도 춤을 추었으며, 한 번 나가면 휴식시간 전까지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 밤엔 홍대에 위치한 ‘클럽 조커레드’―지금은 사라진 걸로 안다―에 나갔다. 목요일은 사람이 없어 좋았다. 어느 날은 춤추는 사람이 나와 직원뿐일 정도로 한산했다. 캐나다 이모 댁에 놀러가서도 밤이 되면 헐렁한 흰 셔츠를 입고 클럽으로 나갔다. 그렇게 3년 정도 원 없이 춤추러 다닌 것 같다.
이제는 춤을 전혀 안 춘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춤을, 아니 정확히 말해, 춤추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몸이 굳으면서 꼭 마음도 같이 굳어버린 것 같다. 결심이 먼저 있고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르는 것 같다. 나는 춤이란 몸을 움직이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춤에도 관객이 필요하고, 그것을 설명할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춤을 말하려고 철학을 가져오고, 다른 누군가는 무대에 오른 춤꾼의 실력에 감탄할 것이다. 하지만 춤에 관해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 전에, 몸을 움직여 춤을 추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시인이 할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시보다는 춤이 우리를 더 사랑 많은 사람,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든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왕년에 내가 시 좀 썼지, 하며 옛날 시를 내미는 어른은 봐줄만 하다. 왕년에 내가 춤 좀 췄어, 하고 말하는 어른은 무엇을 내밀까? 그가 동영상이나 사진을 내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 때문에 어설퍼진 춤이라도 그가 ‘지금’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춤의 기쁨이 춤의 부끄러움을 압도하였던 경험이 나를 한때 춤추게 만들었다. 춤을 추는 동안 우리는 과거의 명예나 미래의 체면이 아니라 현재의 정서에 몰입한다. 그리고 바로 현재야말로 사랑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적인 것들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시간이다.


김상혁_시인 시인. 2009년 <세계의문학> 신인상 등단.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민음사, 2013),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문학동네, 2016)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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