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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9.07 조회 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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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서울국제안무워크숍 <쇼잉>

떵샤(윤상은)_안무가

웹진 <춤:in>은 ‘떵샤와 함께 무용공연 보러가요’ 꼭지를 2018년 6월, 9월, 12월 총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무용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과 함께 무용공연을 본 뒤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코너입니다.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들

김은정

홍보대행사 6년차 과장. 브랜드의 메시지를 소비자의 언어로 바꾸는 온갖 종류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 프로필 몇 줄에 막히는 허당이다. 춤은 물론 스킨십, 아이컨텍 등 몸으로 하는 모든 표현에 서툴러서, 유튜브 채널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안무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한다.

나경호

경기도 고양시에 살며 백수왕을 주장하는 지역활동가. 청년공동체 <리드미>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용, 취업 말고도 다양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수. 술에 취해 클럽에서 춤추는 것을 최고의 쾌락으로 여긴다. 자칭 최고령클러버.

오윤명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제약계에서 일하다 늦깎이에 AI개발자로 전향하여 일한지 1년차다. 평소 몸 쓰는걸 좋아했는데, 현대무용에 빠지게 되어 여전히 취미로 즐기고 있다. 오랫동안 즐기다보니 외모가 변했는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예술하는 사람으로 보곤 한다.



서울무용센터 로비에서의 어색한 만남. 왼쪽부터 은정, 윤명, 경호 ⓒ윤상은
무용이 이런 거구나
경호: 아 무용이 이런 거구나...
떵샤: (웃음)무용이 어떤 것 같은데요?
경호: 저는 오늘 본 게 다 긴한데, 이제 어디 가서 ‘무용이 이런 거야’ 라고 아는 척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프레젠테이션 할 때 들은 ‘몸의 언어’ 이런 단어, 이제 평생 써먹을 수 있죠.
떵샤: 써먹을 만한 걸 생각하면서 보셨군요.(웃음)
경호: 그런데, 그 ‘몸의 언어’라는 개념이 들어오니까 그제야 두 번째 퍼포먼스가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짐을 풀고, 선풍기 가지고 했던 거요.
떵샤: 아, 김보라 안무가 작품이요?
경호: 네, 이게 무용인가? 행위예술인가? 헷갈리면서, 내가 행위예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몸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한다면 그런 것도 무용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이해할 수 있었어요.
떵샤: 그 작품은 딱 보기에 무용 같지 않았어요?
경호: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길에서 그림을 그려요. 그럼 사람들이 ‘이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잖아요. 근데 누가 길에서 짐을 풀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 여자가 무용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안할 거라는 말이죠.



쇼잉을 보기 전 2층 쉼터에서 경호 ⓒ윤상은
은정: 동의해요. 그리고 맨 마지막 작품(도리스 울리히)도 무용이라기보다는 춤? 댄스? 클럽에서 춤추는 것 같은.
떵샤: 그렇다면 평소에 머릿속에 ‘무용’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가 있으세요?
은정: 뭔가 제가 생각했던 무용은 음악이 있고, 그 안에서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보라님 작품에는 음악이 없고 행위만 있었고, 도리스 작품에는 스토리가 없고 리듬만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쿵쿵쿵 이런 리듬에만 맞춰진 움직임?
떵샤: 그러니까 뭔가 하나씩 빠져있다?
은정: 네, 그러다보니 만약에 오늘 본 무용을 친구한테 설명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고 이런 움직임을 했고, 이런 행동을 했고 하는 게 단편적으로만 기억이 나다보니까 이걸 어떤 맥락 안에서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리플렛을 꼼꼼히 읽고 있는 은정 ⓒ윤상은
오늘 본 무용을 최대한 설명해 본다면?
떵샤: 그렇다면, 도전! 오늘 본 무용을 최대한 설명해 본다고 한다면?
은정: 그게 너무 어려워요.
떵샤: 오늘 본 공연 중에 하나만 정해서 설명한다면?
은정: 진짜 어려워요. 다른 분이 먼저 답해주시면(웃음)
윤명: 뭐, 다 어떤 식으로든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가장 난해했던 김보라 안무가님의 작품을 이야기 한다면, ‘왜 저러고 있는 거야?’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드는 행위들을 하셨죠. 그런데 왠지 모르지만 보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저 미친 짓이 언제 끝날까, 과연 끝이 있기는 할까. 결과를 궁금해 하면서 본 것 같아요. 미쳤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하나 안에 있는걸 뱉어내고, 선풍기 날도 다 꺼내가지고 해체를 한 다음에 자기가 놓고 싶은 대로 놓잖아요. 그런 모습이 너무 미세한 것에 신경 쓰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막상 리플렛에 있는 글을 보니 이 안무가는 사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어떤 사물과의 관계를 다르게 보고 싶은 거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종이컵이라는 사물은 일반적으로 잡아서 마시는 거라고 한다면, 이 안무가는 ‘이 관계가 맞나?’하고 계속 질문하고 실험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사물을 탐구하는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아요.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기다리며 대화 중인 윤명과 경호 ⓒ윤상은
경호: 저는 리플렛을 가능하면 안 보려고 했어요. 보고 말하면 원래 이 기획의 취지랑 다르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은정: 저도 리플렛을 보면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들어서.
윤명: 아마 정답은 없을 거예요.
경호:하여튼 그러고 나니 내가 가진 지식으로 이해를 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내 앞에 관객들은 뭘 보고 있나, 커튼 열 때 밖에 사람이 있나 없나 등 이상한 정보들만 보이더라고요. 또 오늘 온 관객들이나 스텝들, 이런 현장 자체가 너무 낯설어서 최대한 긴장하면서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오히려 저는 떵샤나 무용을 경험을 해보신 분들은 뭘 보고 있을지가 궁금한 거예요. 아까 윤명씨가 김보라 안무가 작품 보고 ‘사물과의 관계’ 이런 해석하는 거 들으면서 ‘아,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저는 선풍기 날개만 나한테 안 던지면 좋겠다, 그랬는데 말이죠.(웃음)
떵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하는 공연을 봤다면 그런 낮선 느낌이 더 심했을거라 예상하는데요. 오늘 같이 본 ‘쇼잉’은 안무가들이 결과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작업 과정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시간이여서, 조금은 쉽게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거든요.
은정: 저는 사실 이게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해서 이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이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땐 망설였어요.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1편>을 보고 다들 말씀을 너무 잘하셔서 제가 그 정도의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거든요. 제가 너무 무알못(무용 알지 못함)이다보니.(웃음) 그런데 이게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하니 제 상상으로는 안무가들이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나와서 ‘저는 이런 공연을 할 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기획을 했고, 이런, 이런 요소를 넣어서 표현하고자 했어요’ 라면서 자세히 알려주는 건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그 설명에 덧붙여서 내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재밌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사실 첫 번째 발표 보고 너무 내용이 없어서 당황했어요.









예효승 안무가의 프레젠테이션 중 ⓒ윤상은
다음 퍼포먼스를 기다리며 즐거운 경호 ⓒ윤상은
떵샤: 오늘 본 ‘쇼잉’의 취지가 앞으로 진행될 워크숍의 인트로여서 그렇게 깊게 설명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은정: 음, 그렇다면 그런 취지에서 누구의 워크숍을 가장 듣고 싶냐고 한다면, 마지막 작품. 도리스 작품.
떵샤: 저도...(웃음)
은정: 뭔가 도리스 작업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리듬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면서 뭔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것들은 제 입장에서는 난해하고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경호: 도리스 공연 끝나고 나서는 나가서 춤추라하면 춤 출 수 있었을 것 같았어요.
은정: 그리고 그 일본인 안무가(아키코 기타무라) 같은 경우에는 ‘저 사람은 어떤 돈으로 저렇게 여행을 하는 건가? 저 사람은 금수저인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윤명: 저도 일본에서 돈을 많이 주나보다 생각했어요.
경호: 다들 보는 눈이 비슷하구나.(웃음)
떵샤: 지원금 받아서 하시겠죠. 저걸 혼자 하시겠어요...
은정: 만약에 나한테 저렇게 지원금을 주고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리서치를 하라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너무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오늘 본 프레젠테이션만으로는 그 사람이 가서 무엇을 배우고 왔는지 알지 못하고 단편적으로만 보게 되니까 그냥 재밌게 여행하고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키코 기타무라 안무가의 프레젠테이션 중 ⓒ윤상은
경호: 저는 그거! 로스 맥코맥이 보여준 영상작업 중에 공장 로봇팔 영상이 나오고 그걸 사람 몸으로 따라하는 것이 기억에 남아요.
은정: 저도 그거 기억에 남아요. 그게 직관적이었던 것 같아요.
경호: 네, 저도 그게 이해가 바로 됐어요.
은정: 만약에 공장 영상 없이 몸으로 하는 것만 보여 줬으면 그 것도 어려울 수 있는데, 그 영상을 같이 보여주니까 ‘저 로봇의 움직임을 인간의 몸으로 표현한 거구나’ 하면서 주의 깊게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김보라 안무가의 공연을 보고 난 느낌은 ‘우울함’. 생각보다 우울했어요. 서울에서 치이다가 고향 집에 내려와서 그간에 상처받은 것들을 가방 속에서 하나하나 꺼내는 듯한 느낌.
떵샤: 아 그런 스토리텔링을!
은정: 또 브래지어를 푸는 게 공감이 됐어요. 보통 여자들이 집에 가면은 답답하니까 속옷부터 벗잖아요. 그리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바닥에 톡톡 거리고 젤리를 바닥에 놓고 핥아 먹고, 전지를 찢고 이런 행위들이 다 사전에 계획이 된 건지 궁금했어요. 제가 사실 좀 뒤에 앉아서 마지막에 어떤 물건을 꺼내는지, 어떤 순서대로 배열했는지 안보였는데, 떵샤가 공연 끝나고 무대 위에 사물들 한번 보고가자고 해서 봤더니, 그 물건들이 이 워크숍 관련한 아티스트 계약서, 목에 차고 있던 것도 아티스트 명찰이었고, 카드, 돈, 이런 거더라고요. 그 걸 보고나니 저는 이 안무가가 안무가로서 느꼈던 어떤 자괴감 같은걸 표현했나 싶더라고요.
경호: ‘내가 돈만 많았어도 이러고 있지 않았을 텐데.’ 이런? (폭소)



김보라 안무가가 남기고 간 사물을 살펴보는 은정 ⓒ윤상은
은정: 지경민 안무가님 작품은 딱 떠오르는 단상이 ‘해질녘 노을이 들어오는 창에 집에 혼자 앉아있는 옥탑방 백수’ 가 생각났어요. 몸의 움직임 때문이라기보다는 입고 있던 옷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경호: 저는 그 공연에서 격정적으로 춤을 추다가 마지막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숨소리가 어느 정도 들리기 시작하면서, 짠한 게 있더라고요. 열심히 뭔가를 하는데 거기서 오는 좌절이나 슬픔 같은 게 느껴졌어요.



지경민 안무가의 공연 중 ⓒ윤상은
떵샤: 윤명씨는?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었나요?
윤명: 저는 도리스 울리히 작업. 저는 퍼포머의 시선에 많이 신경썼던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어디를 볼까, 저 사람은 어디를 보고 저렇게 팔을 휘두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도리스 워크숍을 들을까 말까 고민했던지라 음악과 춤이 조화를 이루는 작업인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단순히 음악에 맞춰 움직인다기 보다는 음파, 파동이 그 사람에게 실제로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지막에 자기 살을 막 떨게 하잖아요. 그게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음파를 자신의 살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호: 도리스의 작업에서 근육이나 살의 떨림들을 보면서 묘하게 희열이 느껴졌어요. 여자들이 살찌고 그러면 가리려고 하는데 그걸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어떤 통쾌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뱃살 같은 걸 여기서는 더는 보여줄 수 없을 것처럼 양껏 보여줬다는 느낌이 시원했어요.
떵샤: 저도 공감돼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저런 여성 무용수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저렇게 살의 양감이 풍부한 여자 무용수가 극히 드물어요. 아무래도 여성무용수의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사회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윤명: 전문 무용교육을 받아보셨으니까 더 잘 아시지 않나요? 학교에서 ‘너는 살을 좀 더 빼야 선이 예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을 것 같은데.
떵샤: 그쵸. 그랬죠. 지금까지도 그렇게 배운 교육이 남아서 그런지, 계속해서 제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지,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부담을 벗어나려고 노력 하는데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저렇게 살이 쪄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 모습을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 많이 깨야 되는 부분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어요.
경호: 도리스의 표정을 보면 초지일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거든요. 의심이 없는 얼굴, 이 공연을 하는데 있어 확신을 가진 모습이 진짜 멋있었어요. 그 뒤에서 DJ하시는 분과는 어떤 관계일까도 궁금했어요. 부부인가?
떵샤: 아.. 그렇게까지.. 자꾸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웃음)
경호: 계속 뒤에 계신 분한테 눈이 가서. 아니, 디제잉할 때 스킬이 중요하거든요. 음악이 끊기지 않게 유지하면서 각종 효과들을 넣을 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춤추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봐가면서 같이 움직이거든요. 클럽에서도 그날따라 더 흥이 난다고 하면 노래를 바꿔요. 레퍼토리를 무시하고. 여튼 그런 부분에서 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떵샤: 역시 전문분야라서 이렇게... 제가 클럽 전문가를 모신 것 같아요.(웃음)



도리스 울리히 안무가의 공연 중 ⓒ윤상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볼 때 무용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요
떵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볼 때 무용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요.
은정: 제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브랜드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만들고 그걸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어떤 브랜드에서 신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소비자들이 이 신제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낄까, 그 포인트를 고민하고 그걸 메시지로 뽑아내서 언론, SNS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알리는 역할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공연 보러 가면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에요. 근데 오늘 이 리플렛은 너무 어려웠어요. 공연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정보가 이 리플렛인데 이게 너무 어려운거에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이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재밌게 읽었던 게 지경민 안무가님 것. 그 글은 에세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백수’라는 캐릭터가 연상되었던 것 같아요.
떵샤: 그럼 다시 써보고 싶고 그래요?
은정: 네, 만약에 제가 쓴다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쉽게 읽히는 글’을 쓰고자 고민했을 것 같아요.
떵샤: 경호님은 공동체 활동을 하고 계신 관점에서 오늘 어떻게 보셨어요?
경호: 제가 공동체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사람 사이의 ‘소통’인데요. 그런 면에서 아까 조스 베이커 안무가의 발표에서 ‘몸의 언어’라는 단어가 굉장히 공감됐어요. 저는 평소에 말보다는 사람과의 거리감, 톤, 숨결 이런 걸 많이 봐요. 그러다 정작 말을 못들을 정도로요. 예를 들어서 가끔 사람들이 말은 예쁘게 하면서 보여주는 뉘앙스와 태도는 되게 공격적이거나 불쾌감을 내포할 때가 많아요. 훌륭한 연기자가 아닌 이상 속마음이 막 튀어나온단 말이죠. 저는 그런 히든 메시지, 말해지지 않는 언어가 분명히 있다고 믿거든요. 그런 면에서 ‘몸의 언어’라는 소통 방식을 전면에 다루는 무용이라는 장르의 존재감, 가치를 느낀 것 같아요.
떵샤: 윤명씨는 AI개발하시는 공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셨어요?
윤명: 저는 공학적인 관점에서 전혀 보질 않아요. 뭐든지. 특별히 안무가가 공학자 출신이라거나, 과학적인 지식을 작업에 넣었다거나 할 때는 어느 정도 전문가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보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혀 그렇게 보진 않아요.
떵샤: 분리되어 있군요.
윤명: 그냥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부분에 집중이 되는 것 같아요.
떵샤: 회사 생활하는 것과는 별개에요?
윤명: 네, 그 쪽은 그 쪽대로 재밌어요. 움직이는 거는 움직이는 것대로 재밌고. 둘 다 균형적인 삶을 원하는 것 같아요.
떵샤: 제가 처음 이 기획을 했을 때, 어렴풋이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하나의 공연을 본다면 각자의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보라고 하는 게 억지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직업적인 거랑 굳이 연결시키지 않고, 그랬을 때 더 잘 즐길 수 있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윤명: 본인이 일하고 있는 관점으로 보게 된다면 그건 ‘직업병’이죠.
경호: 제가 과거에 회사생활 할 때 정장 입으면 딱 ‘일 모드’가 되고 벗으면 다시 백수로 돌아오는 걸 즐겼을 때가 있었어요. 분리가 되는 게 편할 때가 있죠. 그런데 저는 떵샤가 무용과 다른 삶들을 연결시키고 싶은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공동체 활동하면서 어디 가서 새로운 걸 배우면 그걸 저의 일상으로 가지고 와서 어떻게 적용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나 우선순위를 일상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거죠.
떵샤: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기획이 ’무용과 타 분야’ 이런 구도 보다, ‘무용과 일상’의 구도가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떵샤와의 본격 대화 ⓒ윤상은
춤과 무용은 다른 건가요
은정: 저는 춤과 무용이 다른 건지 궁금해요.
떵샤: 아 아까 초반에 돌리스 울리히 작품보고 이게 춤이냐, 무용이냐 언급했었어...
은정: 저는 무용은 모르지만 춤 영상은 좋아해요. 제가 유튜브로 ‘원밀리언’이라는 댄스스튜디오에서 안무가들이 찍은 영상을 많이 보거든요. 그 중에 제일 많이 봤던 거는 리아킴이라는 안무가가 선미의 ‘가시나’를 안무를 직접 춰서 올린 영상인데, 선미랑 느낌이 너무 다른 거예요. 선미는 뭔가 남자한테 버림받은 여성의 가냘프지만 깡다구있는 모습을 표현했다면, 리아킴은 더 독기를 품고, ‘복수할 거야’ 하는 느낌으로 표현을 한 거예요. 움직임이 선미랑 비교했을 때 더 파워풀했고 표정도 선미보다 더 과장돼요. 저는 거기서, 같은 춤이라도 춤추는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또 최근에 봤던 춤 영상은 가수 이선희 콘서트에서 어떤 아이돌이 나와서 ‘인연’ 노래에 맞춰서 약간 한국무용처럼 췄던 영상인데, 저는 그걸 한 10번은 넘게 돌려봤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 그 남자 무용수의 춤 선이 너무 가냘프고, 표정연기가 섬세해서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무용인데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경호: 춤과 무용, 뭐가 달라요?
떵샤: 우리나라에는 대학 내에 ’무용과’라는 게 있잖아요. 사전적으로는 같지만 단어의 뉘앙스가 달라 보이는 게 ‘무용’이 좀 더 아카데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은정: 왠지 모르게, 무용하는 사람들이 춤추는 사람들(방송댄스나 스트릿댄스)을 낮게 볼 것 같은 느낌? ‘우리는 너네랑 노는 물이 달라’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떵샤: 그런 시선이 대학무용과 내에는 존재해요. 적어도 제가 다닐 때는 그랬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도리스 울리히 작업 같은 경우에는 그런 위계가 전혀 없는걸 확인할 수 있었죠. 저는 그런 지점을 더 알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무용’이 가진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확산 가능성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은정: 막연하게 춤이라고 하면 그냥 즐거움, 신남, 이런 게 직관적으로 연상이 되는데, 현대무용하면 그냥 ‘난해함’이 떠올라요.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것 같아요. 한국무용이나 현대무용도 신날 수 있는 건데, 그런 감정이 느껴지기 전에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가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즐기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느낌. 같이 하자니 어렵고요.
경호: 최근에 클럽에서 행색이 추레한 어떤 아저씨가 오셔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혼자 열심히 춤을 추는 모습을 봤는데요. 저는 그게 너무 멋있고, 리스펙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춤은 그런 거예요. 학습되지 않고, 뭔가 흥겨워 발산하는 춤. 그런데 무용은 뭐가 좀 정제되어 있는 느낌?



은정과 윤명 ⓒ윤상은
떵샤: 혹시 윤명님은 무용을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되셨어요? 왜냐하면 지금 이야기 한 것처럼 무용은 딱 봐도 벽이 있잖아요.
윤명: 두서없이 이야기 할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혼자 방구석에 춤추는 걸 좋아했었어요. 방송댄스 따라하는 것도 좋아했었고요. 그런데 제가 춤추는 걸 본 한 친구가 ‘뭐야, 너 춤 잘 못 추네’ 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 때부터 남 앞에서 춤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대학 들어와서 그 트라우마를 깨보자는 생각에 학교 재즈댄스 동아리 들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재즈댄스를 해보니 그 동작을 따라하고 암기하는 게 재미가 없었고, 선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유연성을 기르고 그런 거가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춤이 점점 잊혀져 갔죠. 그러다 회사생활하면서 취미로 뭐할까 하다가 우연히 현대무용을 접했어요. 그런데 현대무용은 틀이 없으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틀이 정해져 있는 춤만 추면서 그 틀에 안 맞으면 ‘내 몸은 저질이군’ 하는 생각만 해왔었는데, 현대무용은 그런 게 없으니까 자유롭더라고요. 그러면서 남 앞에서 춤추는 게 아무렇지 않아졌어요. 트라우마를 극복한거죠. 그리고 지금은 ‘나는 왜 아직도 춤을 추는가’ 스스로 질문하고 있어요. 안무나 공연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왜 계속 춤을 추고 싶어할까. 아마 제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던 걸 현대무용을 통해서 극복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다른 분들도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과 워크숍이 뒤섞인 참여적인 형태를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경호: 워크숍이라고 하면 저는 예전에 지역 공동체학교에서 ‘커뮤니티 댄스’를 한번 해본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서로 움직임으로 소통하는 것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공연은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같아서 어려워요. 제가 공동체 활동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질이 있어요. 주체나 객체를 구분하지 않는 것. 예를 들면 학생이 없고, 선생님이 없어요. 누구나 학생이 되고 선생님이 되는 거죠. 그런데 무용이라는 거는 무대가 확실하게 있고, 생산자가 따로 있고 소비자가 따로 있어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메시지를 내가 소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거에요. 공동체 활동을 할 때 누구 한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다 같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무용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경호와 은정 ⓒ윤상은
오늘 본 공연이 여러분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떵샤: 오늘 본 공연이 여러분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은정: 저는 별 영향 안 미칠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이 걸 보고 돌아간다고 해서 과연 내가 다시 현대무용을 보러갈까... 떵샤가 공연을 하지 않는 이상 시간을 내서 보러가진 않을 것 같아요.
떵샤: 이런 솔직한 답변...
윤명: 저는 오늘 보면서 한번 안무를 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지하게 그런다는 게 아니라 정말 가볍게 해보고 싶어요. 1분, 30초도 괜찮고요. 사실 제가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안무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실험적인 놀이를 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움직였는데, 다른 사람은 이렇게 보네?’ 하면서 주고받는 놀이를 하다보면, 그게 발전이 되서 안무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그 정도?
경호: 저는 오늘이 주말이잖아요. 클럽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거기서 좀 더 춤을 편하게 춰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전에는 클럽에서의 춤도 어떤 태나 각을 보고, 춤의 경향 같은걸 은연중에 봤었거든요. ‘저 사람은 웨스트 그루브로 춘다, 저 사람은 사우스 그루브네.’ 그러면서요. 그런데 오늘은 그런 생각 안 하고 싶어요. 이렇게 자신 있게 춤추는 사람들을 보니까 ‘이건 어색하지 않을까,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출 수 있을 것 같아요.









포토월에서 단체 컷 ⓒ윤상은
좋은대화였습니다! 즐거웠어요! ⓒ윤상은


떵샤(윤상은)_안무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동료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용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내부자 입장에서의 창작과 예술생태계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무용을 그들만의 세상 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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