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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9.07 조회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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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문학]경이 하나

김봉곤_소설가



여러분, 이 친구들이 정말 군대를 가야겠어요? 군대 안 가도 괜찮겠다 싶으면 박수!
2008년, 매주 수요일 아침 아홉시면 나는 ‘예술의 산책’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강의실은 내가 사는 기숙사에서 삼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중극장이었지만, 대학의 1교시 수업은 힘들기만 했다. 예술의 산책은 학부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정말이지 산책 수준에서 끝나는 예술 맛보기에 가까웠는데 아홉시 정각 이전에 극장 문을 통과해 착석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말하자면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수업이었다. 매주 각 원院을 대표하는 교수들이 나와 어떤 날은 그리스 신화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두 시간을 할애했고, 어떤 날은 개념미술의 ‘개념’ 대해 이해시키려 분투했으며, 또 어떤 날에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들려주다 자신이 작곡한 음악으로 튀어버리는 이상한 전개를 보이다 어영부영 끝나버리기도 했다. 소위 ‘셀럽’이라 부르는 교수가 와도, 아무리 의욕이 넘치는 예술학교 1학년이라 할지라도 반응은 매번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그곳에 앉은 학생 대부분이 끔찍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15주 남짓한 수업에서 딱 한 번, 극장 안이 열기로 가득찬 적이 있었다. 조교는 강의가 끝나면 불쑥 등장해 “다음주는 XX의 이해입니다” 말하고는 사라졌는데, 다음주는 무용의 이해였고, 나는 또 영상 자료를 틀고 이론이나 늘어놓고 가겠지, 별 기대 없이 극장을 떠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음주 그날 아침은 웬걸, 불이 꺼지고, 조명이 켜지고, 여기저기서 자그맣게 터지는 탄성, 곧이어 음악이 시작되며 무대 양쪽에서 발레리노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높이로, 속도로, 무게감으로 훌쩍 날아오르며 무대 중앙으로 와 섰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궤적으로 팔을 돌리며 인사하듯 춤을 췄고, 춤을 추듯 인사하며 다시금 무대 위를 가로질렀다. 우리의 대개는 관람의 매너 같은 것은 알지 못했기에 우와, 소리를 지르고 으악, 손뼉을 치며 그들을 맞이했다. 완전한 몰입, 열광, 경외, 감탄, 그런 단어가 떠오른다. 난생처음으로 보는 발레였다.
그날 그들이 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어떤 음악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짧은 공연이 끝나자 지도 교수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앞에 서 인사를 했다. 말하지 않아도 몸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자세 그리고 태도. 그녀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발레는 중력에 저항하는 예술입니다.”
그 말에 넋이 나갈 정도로 감동하는 한편 (내가 공부하는) 서사 예술은 결국엔 발을 땅에 딛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중력에 저항하는 예술이라고? 지금껏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말이었고, 그후로도 나는 내 선생님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또 하나의 레퍼토리를 선보인 후 박수갈채를 받으며 떠났고, 교수는 방금 공연을 보여준 학생들이 모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였음에도 병역 면제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지극히 아름다운 공연이 끝난 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나는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박수밖에 없다는 듯, 우리는 진심을 다해 손뼉을 쳤다.
수업은 전에 없는 관심과 열기 속에서 끝이 났다. 아, 다시 한 번 그들의 춤을 보고 싶어, 꼭 그러고 말 거야, 이런 게 진짜 예술인 것 같아, 생각했지만 십 년이 지나도록 나는 클래식 발레 공연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발레는 내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날 그들의 공연을 통해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다른 성질을 가진 것에 나를 비추어 알게 되는 배움으로, 이를테면 나는 공연예술이 아닌 예술은 어떤 식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발산형 인간과 수렴형 인간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삼는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의 시간과 눈앞의 시간, 중력의 공간과 환영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이분법이자 이항대립의 세계라고도 생각하지만, 그것이 나를 다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두기, 순전하게 감탄할 수 있게 방심하기, 내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기, 모든 것을 문학으로 환원하지 않기. 문학의 잡식성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미지를 미지인 채 남겨두자는 어떤 다짐. 다짐 이전 예감에 가까운 강렬한 충동. 수요일 아침, 짧디 짧은 수업, 그보다 더 짧은 공연이었지만 그들의 몸짓은 내게 이런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결국 같은 것에 저항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 와 깨닫는다. 그럼에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춤을, 춤을 추는 자를 여전히, 영원히 알 수 없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게 그런 경이 하나쯤은 꼭 (남겨)주고 싶다고.


김봉곤_소설가 1985년 진해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와 동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Auto」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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