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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8.14 조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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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달리고
아시테지 여름축제 <낯선 사람들>

정은혜_공연예술가, 안무가



ⓒLeandron Kees

유난히 아이들은 달리고, 뛴다. 구르거나 빙글빙글 도는 걸 하루 종일하고도 재미있어한다. 춤도 뛰고, 구리고, 달리고 빙글빙글 돈다. 물론 여기에 조금의 기교와 약간의 순서가 정해져있다. 가끔은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기술 적인 동작들도 들어간다. 모든 면에서 춤은 아이들을 닮았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와서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가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것은 모든 표현과 표출의 첫 번째 출구인 몸으로 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있다. 남녀노소를 흥이 나면 엉덩이와 어깨가 제일 먼저 들썩이는 모습은 행복한 개가 꼬리를 흔들고 신이 난 새가 콩콩 뛰며 머리를 흔드는 것과도 닮았다.

<낯선 사람들> 이란 아동 무용극을 보았다. 아시테지는 26회를 맞이하는 나름 유서 깊은 축제로 아동청소년을 위한 공연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요즘 독특한 바람이 아동청소년공연계에 불고 있음을 느낀다. 연극, 인형극 그리고 음악극에 이어 무용극이라는 정체성을 띈 공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최근 성황리에 이루어진 국립극단의 <죽고 싶지 않아>도 무용극이다.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서도 아동청소년 무용공연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

딱히 무용이 아동청소년들을 배제 한 적이 없음에도 이제야 아동청소년공연계에서 무용극을 주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음악극에서도 연극에서도 춤과 무용은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로 많이 사용되어왔다. 무용인데 연극적 요소가 들어간 공연을 말하는 것인지, 연극이지만 무용적 요소가 들어간 공연을 말하는 것인지는 사실 보는 관객에 의해 정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럼으로 이 글에서는 무용극의 정의보다는 무용이 가지는 독특한 지점들과 장점들에 대해서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또한 <낯선 사람들>을 통해 무용전공자이며 안무자이기도 한 입장에서 나는 왜 무용으로 작품을 만들고 아이들과도 춤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도 찾아가는 시간이 될 듯하다.



<낯선 사람들> 공연 중에서 ⓒricca ricca*festa

우선 <낯선 사람들> 공연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서로 다른 국적의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종교, 직업, 언어, 나이 등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존재임을 나타낸다. 이러 차이와 다름으로 인해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 요소인 차별, 배척, 경계와 같은 것들을 군무 구성을 통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상처 받았을 약자의 시선에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외부에서 혹은 나 스스로가 했을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로 무용수 한 명이 가려진다. 무용수는 춤을 추며 하나씩 글이 적힌 종이를 때어낸다. 마침내 다 때어내고 본인의 모습으로 선 무용수는 어릴 적 사진을 꺼내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어서 나머지 무용수들도 자신의 언어로 각자 어릴 적 사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끝이 난다. 공연은 우리가 얼마만큼 다른 사람인지, 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고민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낯선 사람들> 공연 중에서 ⓒLeandron Kees

<낯선 사람들>은 춤이 극 안에서 할 수 있는 좋은 점들을 많이 보여줬다. 극인데 말이 없으면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위에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언어를 배우기 전에도 충분히 감정을 나누고 소통을 해왔다. 다만 말을 배움으로써 지름길을 찾았을 뿐이다. 말이라는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것을 대체할 다른 언어들이 나타났다. 눈빛, 몸의 방향, 표정, 손동작 등등. 이 모든 것은 몸의 언어들이다. 실은 대체가 아닌 최초의 언어나 다시 드러난 것 뿐이다. 몸의 언어인 춤은 비유와 상징으로 넘쳐서 추상적인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반대로 음성 언어가 몸의 언어를 가져다 쓰고 있진 않을까 한다. <몸의 철학>에서 우리의 생각은 몸의 위치, 방향, 상태 등 몸으로 얻은 경험적 지식과 관련이 깊다고 했다. 생각을 언어화 시킬 때 몸의 경험적 지식과 관련된 단어로 구성 된다. 결국 우리의 언어와 생각은 모두 몸의 영향 하에 있음 나타낸다. 이처럼 무용극은 태초의 언어가 다수로 구성된 극으로써 가장 솔직한 표현이다.

일반 무용 공연과 무용극의 차이점을 있다면 무용수들이 배우의 역할도 어느 정도 하는 것 인 듯하다. 그 중에서도 아동청소년 무용극의 무용수는 조금 더 나아가 광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아동청소년들에게 좋은 점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된다. <낯선 사람들>에 등장한 무용수들도 조금 더 자기 자신 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며, 솔직하게 춤을 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와 같은 행동, 표현, 솔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아이들이 극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일반 무용수들도 대부분 자연스럽게 연기를 한다. 하지만 몸과 움직임에 집중을 하다보면 가끔은 춤 자체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아동청소년공연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극의 경우 무용수들은 그들은 비해 본능적으로 좀 더 관객과 가까워지려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으로 언어 없이 몸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과 무용수가 자기 속에 있는 어린 아이를 끄집어내고 그 아이로 돌아갈 때 우리의 어린 관객들은 더욱 빠르고 쉽게 공연에 빠져들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낯선 사람들> 공연 중에서 ⓒLeandron Kees

공연이라는 형태는 관객에게 조금은 억압된 자리다. 바른 자세로 앉아서 꼼짝없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상의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노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노는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공연 또한 어른들은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인물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가 실존인물이듯이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무용수들의 스스로로부터 발현되는 캐릭터는 힘이 있다. 우선은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기술적인 부분을 재현할 수 있음으로써 아이들의 관심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항상 멋있는 것에 매혹된다. 멋있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기술을 구사할 때를 말한다.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에게 기승전결을 위해 꼭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은 무의미 하다.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춤은 아이들의 관심을 끎으로써 들을 준비를 시켜 줄 수 있다. 그나마 어른은 재미가 없어도 필요한 것이라면 참고 들어야한다는 자기 최면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음으로써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일반 무용수들보다 아동청소년 무용극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더 많이 관객을 인지하고 소통하고자 함으로써 그들을 공연과 현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용수들은 아이들에게 환상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눈을 맞추고 반응해주는 실제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저 무용수가 다음은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일지, 어떤 놀라운 행동을 할지에 대해 아이들은 잔뜩 기대를 가지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대에서 멋있어 보이는 것보다 광대와 같이 무용수 각자의 속에 있는 또 다른 어린아이로써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우월하지 않고, 조금은 바보스러우며 모자란 상태. 아이들이나 관객이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사랑스러운 우리의 어린 관객들에게 약점을 보여줌으로써 극 속으로 조금 더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곤란에 처한 사람을 볼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됨으로써 극에 집중하고 빠져들도록 한다. 1인극의 형태이든 무용의 형태이든 어린 관객을 염두 해두고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의 동의를 얻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한다. 때 묻지 않은 마음에 공감 받는 다는 것.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라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 보상으로 받고 싶다.

상상의 여지. 공연은 기본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많을수록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된다. 통째로 한 장면이 추상적일 수 도 있다. 그러한 여백을 통해서 관객은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게 되는데 무용극은 극 안에서 이러한 추상적인 장면 연출에 있어 억지스러움을 덜어내 준다. 함축되거나 확장된 연출을 가능하게 해준다. <낯선 사람들>에서도 무리가 한 인간을 배척하는 과정과 배척당하는 사람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반복되는 군무 구성으로 표현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배척당하는 무용수의 뜀박질은 다른 어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응원을 보내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군무를 춘다.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는 무용수들과 점점 올라가는 음악 그 후에는 모든 것이 멈춘다. 해소. 춤을 추는 목적은 사실 해소다. 충분히 느끼는 것. 아이들이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는 건 그것이 늘 새롭기 때문이며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춤은 기본적으로 발산이어서 몸에서 노폐물을 쏟아내듯이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무용수를 통해 우리도 함께 절정에 올랐다가 해소된다. 특히 이 부분은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한다. 나에게 예술은 올바른 감정표현의 방법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정신은 몸의 상태에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무용치료 쪽에서도 하나의 움직임을 그만 두고 싶을 때까지 반복함으로써 심리적 치료를 요하기도 한다. 그것은 끝까지 가봄으로써 완전한 해소와 탈피를 위한 작업이다. 땀을 흘리고 온 몸으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해소의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몸으로 쏟아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수많은 예술은 몸으로 쏟아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는 행위도 모두 움직임이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 되는 것이고, 무용수는 온 몸을 움직여서 춤이 되는 것이다. 춤추는 게 하나의 놀이인 요즘 청소년들은 솔직한 것 같다. 다만 아이돌 댄스라는 한정된 춤에게만 빠져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춤의 목적은 해소와 발산, 표현이지 유혹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한다.

<낯선 사람들>은 확실히 무용극이다. 극 전체의 흐름이 춤에서 춤으로 넘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런 와중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대사와 글들은 춤이 가지는 과한 추상성에 힌트를 준다. 익숙한 언어의 등장을 통해 관객은 표지판을 발견하듯 안심하고 다시 극 속으로 들어온다.

무용극은 추상성과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감정 표현, 환상의 세계와의 연결지점인 무용수들까지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적합한 것 같다. 하지만 무용에 극이 붙은 무용극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무용만으로는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꼬마 관객들은 누군가의 해석과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공연을 아이들만 보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어떤 공연이든 부모가 함께 봄으로써 서로 어떻게 느꼈는지 나누길 바란다. 아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봄으로써 이해의 영역을 넓혀가고 감정 정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새로운 해석, 솔직한 반응을 들음으로써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가끔 어른들은 성급해서, 그리고 내 아이가 흥미롭게 여기길 바라서 먼저 설레발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무용수가 멋진 점프를 하면 꼭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와! 저것 봐. 완전 멋지다. 저것 봐 바.” 아이와 같은 시선에 공연을 보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많은 걸 느끼고 갔으면 하는 마음도 느껴진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도, 공연을 하는 배우와 무용수들도 그리고 함께 보는 어른 관객들도 모두 우리는 어린 관객의 시선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에 아이들은 완벽하게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동청소년에게 꼭 알려줘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무용극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연극이든, 인형극이든 그것에 적합한 형식의 공연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고 보니 결국 춤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게 된 것 같다. 그러한 춤의 본질이 무용극 속에 있는 것이고 다른 모든 공연에 춤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나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고 표현하고 싶지만 춤과 움직임이 빠진 작업은 상상할 수가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더더욱 춤과 움직임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정은혜_공연예술가, 안무가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졸업. 기획 공연 <paper fantasy> , 1인 무용극 <까먹은 사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 <여자가 여자에게> 외 다수 안무 및 출연 현대무용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만드는 창작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민예술대학 <춤과 함께> 강사로 활동 중이며, 수원시청소년뮤지컬단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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