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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8.13 조회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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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센터와 E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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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열_춤비평가



Dance House Helsinki ⓒEuropean Dancehouse Network

이즈음 들어 세계 무용계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 중 하나는 춤 네트워킹의 확장과 춤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증대, 그리고 예술로서 무용 장르의 소통성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각 나라마다 댄스 플랫폼을 만들고, 교류의 중심이 되는 거점을 오픈하고, 국제 무용축제에 다수의 작품을 소개하는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무용계의 이슈 중 하나인 국립무용센터 건립에 대한 논의에서도 그 필요성 중 하나로 국내외 무용 네트워킹 중심센터로서의 기능이 특별히 강조되기도 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무용계가 당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1)무용가들이 신작을 창작하고 고유의 예술적 의도를 반영할 수 있는 맞춤형 지원체계 미흡 2)국제 협력은 대부분 일회적이며, 향후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평가 및 개선 체계 부재, 3)다양한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체계적인 재정 지원 부족, 4)지원 시스템 하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초연 작품의 질 저하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변화된 춤 환경을 반영한 적절한 지원 시스템,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적인 무용예술 발전을 포괄하는 프로그램,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들의 삶의 질과 연계된 무용 프로그램 운용체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아젠다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운용할 수 있는 전문기관의 부재가 가장 큰 핸디캡이다. 국립무용센터 건립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만약 대한민국에 국립무용센터가 설립된다면 다음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1)무용예술 커뮤니케이션 창구, 2)양질의 무용 예술작품 배양과 유통을 위한 창구, 3)무용예술 국제교류 창구, 4)지역 무용계 활성화의 창구, 5)무용예술 대중화의 창구, 6)무용예술 교육 프로그램 배양 및 유통을 위한 창구, 7)무용관련 자료 및 정보 제공의 창구, 8)무용 콘텐츠 개발의 창구, 9)무용예술 정책 개발 및 수행의 창구, 10)커뮤니티댄스 프로그램 배양 및 유통을 위한 창구, 11)국내외 무용 네트워킹의 장, 12)타 장르 예술과의 협업 작업을 위한 중심센터.

이 같은 기능 수행을 위한 국립무용센터의 운영 모델로 가장 근접한 곳이 바로 EDN(The European Dance House Network)이다. 2009년 5월에 창립되어 현재 유럽의 22개 댄스하우스가 가입되어 있는 EDN은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립 무용센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내걸고 있는 모토는 “국경을 초월한 무용예술 창작의 새로운 체계와 비전”이다.

EDN이 자체적으로 규정한 댄스하우스의 7가지 역할, 1)연중 지속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무용공연의 홍보, 지원 및 작품 제작에 주력, 2)예술의 독립성을 지향한다는 모토 하에 예술의 공공성 담보(특정 예술가, 단체, 작품의 이해를 반영하는 지원은 지양), 3)무용 및 관련 이슈에 대한 국내외적 차원의 체계적인 관여, 4)교육 및 참여를 위한 지속적인 프로그램 제공, 5)창작, 연구, 공연을 위한 체계 마련, 6)전문 안무가와 무용가를 위한 리허설 공간 제공 및 지원 시스템 마련, 7)전문가와 일반 관객을 위한 무용 관련 정보 및 자료(resource) 제공은 향후 대한민국 국립무용센터 운영과 관련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EDN은 회원이 22개 센터에 불과한 작은 네트워크이다. 그러나 이 기관의 운영자들은 모두 각 무용 센터들의 상이한 구조, 내용 및 시설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이들로, 각 제휴 센터들이 자국의 예술가들을 추천하고 이들 예술가들이 창작 작업을 위해 최적의 지원을 얻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각 댄스하우스들은 규모나 시설, 내용 면에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센터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 철학에 기반해 운영된다.

1)무용 미학은 한두 가지의 절대적 진리로 평가될 수 없으며, 다양한 문화와 각각의 안무가에 따라 수많은 미학적 진실이 동시에 공존한다. 따라서, 유럽의 무용가들은 개별 작품의 고유성과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며 이를 발전시켜 나간다.
2)해외 및 타 문화의 예술가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및 작품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3)지역 사회 관객들을 예술에 대해 열려 있는 주체로 바라본다.
4)새로운 관객층 개발에 참여한다.
5)창작 과정의 예술적 독립성과 고유성을 존중한다.
6)예술 작품을 공연하고 작품의 의도를 실현하며, 예술가 개인의 미적 가치를 보다 폭넓은 관객층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문 지식에 기반한 신중한 커뮤니케이션 및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7)인적 자원 및 다양한 체계에 대한 정보와 지식 공유 및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지원 대상 예술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최적의 예술적 표현을 통해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EDN이 생기고 난 후 무용 부문의 대형 프로젝트 지원도 보다 용이해졌다. EDN이 2007년과 2008년에 시행한 ‘차이나 무브스(China-moves), 2010년과 2013년에 한국의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와 시행한 ‘코리아 무브스(Kore-A-moves)’, 모듈 댄스(Module Dance)가 대표적이다. 모듈 댄스는 EU가 250만 유로를 지원하고 50명 이상의 안무가들과 무용단들이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첫 시행 후 4년 동안 3개 이상의 무용 센터에서 작업을 진행, 참여 작품들을 현지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앞서 지적했듯 국제적으로 무용계는 네트워킹의 시대를 맞고 있다. EDN 역시 Asian Network for Dance(AND)를 결성 중이다. 무용단체나 기획사, 축제가 파트너를 일대일로 접촉하는 교류방식에서 벗어나 다방향성을 가진 교류가 더욱 효율적이고 실제로 세계 무용계는 그런 흐름으로 컨택 포인트를 진행시키고 있다. 우리도 이들과의 교류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가 필요하며 국립무용센터가 바로 그 중심 창구가 될 수 있다.

국립무용센터를 통해 무용가들은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조언과 자문을 받을 수 있으며, 여러 제휴 단체들을 만나고 대면하면서 작품 유통 및 안무가, 무용수들의 수평교류, 협업 등소통의 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용계뿐만 아니라 관련 장르 종사자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축적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미학적 가치 체계가 상이한 관객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국립무용센터 조성은 한국 무용계의 총체적인 힘을 세계무대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무용계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무용예술을 통한 전지구화의 중요한 요충지, 좁게는 대한민국, 넓게는 아시아의 춤 문화, 더 크게는 전 세계 춤 문화의 중요한 발신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광열_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 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비평가, 서울국제즉흥춤축제 등을 개최하는 IPAP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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