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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8.09 조회 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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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문학]나의 첫 무용수에게

손미_시인



ⓒ엄유정

영은 씨.

무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영은 씨라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이렇게 불러봅니다. 영은 씨가 이 글을 읽지 않을 지도 모르겠어요. 종종 영은 씨는 해외에 있더군요. 그곳에 무대를 올리고 있겠지요. 우리가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니까, 아마 영은 씨가 이걸 읽지 않을 가능성이 많겠지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더 마음껏 써보려고요.

영은 씨는 나의 시로 창작무용을 올려준 첫 무용수였어요. 나는 영은 씨의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의 시 한 편이 얼마나 다양하게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지요. 시는 집에 갇힌 고체였다가 무용수들의 땀방울이었다가 외로운 조명을 따라 끌려가는 그림자였어요.

시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최승호 시인의 <북어>를 읽고 영감을 받아 안무도 짰었어요.

2014년. 콜라보 무대를 위해 만난 회의에서 영은 씨가 그렇게 말했지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 가슴이 떨렸어요. 시를 읽고 안무를 짤 수 있구나. 그렇게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말이 참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된 날, 가족과 지인들, 동료 문인들을 초대해 영은 씨의 무대를 관람했어요. 무대는 체스를 두는 남녀의 모습으로 시작됐어요. 나의 시, <체스>를 풀어낸 거였어요. 여자는 자꾸 속임수를 썼어요. 팔을 괴는 척 하다가 체스 말을 숨기고 그걸 찾으러 남자가 다가오면 태연하게 다시 체스를 두고, 그러다 또 숨기고. 결국 승자 없는 게임이었어요. 그렇게 남녀는 체스를 두다가 각자의 몸짓으로 승패 없는 밀고 당기기를 이어갔어요. 서로의 말을 뺏어오는 것처럼, 없는 사랑을 찾는 것처럼.

영은 씨의 몸짓을 보면서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나의 시에 없는 질료였어요. 가볍게 통통 튀어 오르는 몸이 그렇게 슬플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무대의 저쪽으로 그리고 이쪽으로 뻗어나가는 손과 발이 수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무대 위로 흘러가는 나의 시가 무용수들의 머리와 가슴과 발가락에 닿아 자음과 모음으로 부서졌다 만나기도 했어요. 정말로 시의 내용처럼 ‘달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요. 무용수의 몸에 떨어지는 글자들이 그 조명 하나 하나가 그대로 스며들었어요. 비처럼 소품과 무대와 무용수에게 죄다 스며들어갔어요. 그 또한 다른 질료가 됐지요. 거기 쏟아지고 있는 텍스트는 나의 것이 아니었어요. 누구의 것도 아니었어요. 그 자리에서 다시 창작됐는데 그 작품을 누구의 것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장할 수 없는 영은 씨의 무대가 아까워서, 나는 몇 번이나 숨을 참으면서 무대를 지켜봤어요.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다 받아먹고 싶어서 애가 탔어요. 그렇게 춤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 무대를 가로지르던 모든 숨소리들을.

사실 나는 무용이 무서웠어요. 이 공포는 중학교 때 시작됐어요. 중학교 때 무용 선생님은 무용 시간마다 우리들의 토슈즈를 검사했어요. 발바닥이 검거나 때가 타 있으면 무섭게 혼을 내곤 했죠. 그래서 무용 시간 전날엔 언제나 슈즈를 빨았어요. 칫솔로 빡빡 때를 문질렀어요. 비가 오는 날엔 마르지 않은 슈즈를 손바닥 열로 말리면서 등교를 했어요. 그래서 무용하면, 가장 먼저 슈즈가 떠올라요. 슈즈의 공포, 무용실에 들어갈 땐 운동회 때 쓰는 머리띠를 하고 실핀으로 머리를 고정해야 했어요. 복장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선생님을 우리들을 때렸어요. 찰싹찰싹 찰지게 달라붙던 그 손이 무서워서 무용이 싫어졌어요. 무용실의 공포는 무용이 아니라 선생님의 결벽이었어요.

그런데 무용수인 영은 씨는 맨발이었어요. 공포로 박혀 있던 고정관념이 깨졌지요. 영은 씨는 발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줘 바닥을 지탱하고, 때로는 그 발가락으로 연기를 했어요. 쓸리듯 쫓아가는 그 발가락들이 각기 다른 감정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영은 씨. 무용수들은 왜 맨발인가요? 아무래도 이런 질문은 너무 유치하지요?

영은 씨의 무대가 끝나고 난 뒤 내가 가장 크게 박수를 쳤어요. 거기서 나의 고지식한 시는 부서지고 풀어졌어요. 아예 없어졌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무대에서 내가 본 건 제의였어요. 제단에서 영은 씨가 받아쓴 그 몸짓을 나는 충격적으로 목격했어요. 기분 좋은 목격. 저쪽에서 불러주는 것을 나도 그렇게 신명나게 받아 적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지를 벌려 하는 말. 사지에서 나오는 목소리.

나는 춤을 몰라요. 다만 감지해요. 그것은 시도 마찬가지에요. 시가 뭔지 몰라요. 다만 받아쓰고 있어요. 곳곳에 붙어 있는 문장들을 받아쓰고 있어요. 나는 정답을 몰라요. 다만 영은 씨의 무대를 보면서 이런 교집합을 생각해봤어요. 우리는 맨발로 걸어가는 게 아닐까요. 바닥에 뭐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 채, 발바닥을 찌르며 들어오는 목소리를 감지하는 게 아닐까요. 엉엉 우는 목소리를 대신해 쓰거나 추는 게 아닐까요.

손미_시인 시인. 2009년 《문학사상》 시 등단, 2013년 시집 《양파 공동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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