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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8.09 조회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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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변한다

최종환_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교수

‘나는 더럽다.
매일매일 더럽혀지고 더욱 추악해진다.
자본주의가 만든 싸구려 감성에 소비되고, 그것을 만들고 팔기 위해 고민하는 내 자신을 더욱 타락시킨다.’

방바닥의 이불을 치우고 공간을 만들어 TV 브라운관의 동작들을 따라하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길거리에서 장판을 깔고 한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미친 듯이 혼자 춤을 추던 내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행동들을 했던 걸까?

춤이란 과연 내게 무엇이었는가?

스트릿댄스. 길 위에서 탄생한 춤. 인간 문화의 시작이 길 위에서 건축되었던 것처럼, 춤 문화 또한 길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 문화는 사회와 함께 살아 숨쉬며, 도시(Urban)의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흘러왔다. 비교육적인 시스템을 낙인처럼 가지고 한국으로 입양된 춤이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이란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길거리의 댄서들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배틀(Battle)'이라는 전쟁터에 늙은 노병들이 ‘스트릿 댄서’ 라는 낡은 계급장을 달고 자신들의 위치를 합리화하고 있다.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이전의 춤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보에서 보수를 선택한다. 그리고 전통의 계승을 다음 세대들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를 원한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진화된 댄서 세대와 춤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빠르게 연결하고, 변화된 춤의 양식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게이트 키퍼들이 필요 없이 자유롭게 스스로 춤을 생산하고 소비시킬 수 있는 수평적인 온라인 플랫폼과 간소화된 소비 구조를 통해 댄서들이 수익을 창출시키는 시스템이 발전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시대는 댄서들의 환경을 급변하게 한다. 전문가가 춤의 고급과 저급 그리고 기술의 수준을 논할 수 없을 만큼 대중들의 입맛과 평가에 ‘좋은 춤’이 결정되는 세대가 도래했다. 대중 춤의 가치 기준은 대중에 의해 결정되고 그 춤을 추는 댄서들의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된다.

90년대부터 꾸준한 성장을 보여 온 케이팝 댄스는 최근 아이돌들의 인기가 국제적으로 높아지면서, 단군 이래 없었던 문화적 영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필자는 세종학당과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진행되었던 케이팝 댄스 교육 사업을 수행하며, 해외 현장에서 직접 그들을 가르치고 한국에 열광하는 학생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신체 언어인 춤은 문자 언어의 장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역사 상 단 한 번이라도 한국이 문화적 수용자가 아닌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이 정도로 주도하는 경우가 있었던가?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스트릿댄스 포럼에서 스트릿댄스 1세대 타이런 프럭터, 마조리 스마스, 부다 스트레치, 주니어 부갈루와 스트릿댄스의 역사에 대하여 강연 중. ⓒ최종환 제공
뉴욕에서 활동하는 공공예술가 아비바 초청 당시, 한국 최초 세계대회 왁킹댄스 챔피언 원지혜와 아비바
ⓒ최종환 제공
힙합댄스 레전드 마퀘스트, 루즈조인트와 뉴욕에서
ⓒ최종환 제공

예상할 수 없었던 변화들은 지금 ‘나의 춤’을 다시 고찰하게 만든다.

과연 우린 ‘춤’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모더니스트들의 아티스트 타입? 스포츠맨과 같은 세계제패? 순수한 무용가? 하이레벨? 아직도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마인드를 가진 이들을 보면서 냉소를 날린다. 항상 '트렌디(Trendy)' 함을 놓치기 싫었고, 누구보다 ‘스타일리쉬(Stylish)' 하고 싶었다. ‘영원한 젊음(Forever Young)'을 외치고 ’마인드의 늙음‘을 저주했다. ‘힙(Hip)’하고 ‘쿨(Cool)’함을 절대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위해 춤을 추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나의 ‘순수성’은 더럽혀지고 타락되며 추악해진다. 예술가에게 ‘자본’이란 멀리해야할 금기사항이고, ‘돈’이라는 악마는 우리의 영혼을 삼켜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 욕망은 그것을 향하고 그 욕망을 감추고 연기하기 바쁘다.

계급 제도를 갓 벗어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너무 천박할 수 있겠지만,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는 혁명가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의 땀으로 얼룩진 일상에 스며들어 휴대폰을 통해 잠시나마 그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춤은 도구적 가치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생존을 포기한 채 예전처럼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 혼자만이 만족할 수 있는 ‘궁극의 춤’을 추는 것이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더러운 뿌리를 숨긴 순수한 꽃인 척하는 춤들이 길거리의 잡종 같은 춤보다 낫다는 고리타분한 우월감은 언제쯤 미학적인 업그레이드를 장착시킬 수 있을까? 분명히 21세기 춤은 변화하고 있고, 안개 속에서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혼재된 ‘춤’의 가치들이 제자리를 향해갈 것이라 기대한다. 몸의 역할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되고 있다. 당분간 인간에게 있어서 춤은 더욱 가벼운 흥미 중심으로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환_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교수 현재 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과 글로벌지식교육원에서 실용무용을 전공자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힙합댄스 박사 논문을 발표했고,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스트릿댄스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과정에 기여했다. 또한, JYP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댄스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케이팝 아이돌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엘리트포스와 같은 미국 1세대 힙합댄서들에게 춤을 사사받았으며, 한국에도 내한 강연했던 아비바 데이비슨(Aviva Davidson)과 같은 공공예술가의 초청으로 미국 뉴욕에서 정부행사로 열린 ‘댄싱 인 더 스트리트(Dancing in the streets)' 등에 참여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주최한 ’위대한 낙서‘ 전시에서 ’스트릿댄스의 미학과 가치’를 주제로 한 강연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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