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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7.11 조회 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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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수렴하는 질문들
Space RED 결과 공유 아티스트 토크

허영균_웹진 《춤:in》 편집부


이재은 안무가 ⓒ조현우

제 1 부 : 교토 장인 기행 - 체험과 만남의 보고

‘손기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여, 교토의 장인들을 만나고 온 안무가 이재은이 레지던시 결과를 공유했다. 리서치 기간 중 펼쳤던 퍼포먼스 영상의 전시와 함께 동료 안무가들과의 토크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그가 약 두 달간 머무른 곳은 일본의 교토아트센터(KAC)로 폐교된 소학교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도심에 있는 학교 가운데 전쟁 후에도 형태를 보존한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12개의 스튜디오를 젊은 작가들에게 지원하는데, 전통부터 현대 예술까지 장르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인지 일 년 동안 쉴 새 없이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지역민 교육, 전통예술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 다도회 등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예술가들에게는 심사를 거쳐 무료로 공간을 대여한다. 이 모든 일을 열 명 남짓한 직원이 모두 해내고 있다는데, 컨템퍼러리 아트 페스티벌인 교토 익스페리멘트(Kyoto Experiment) 마저 이들 드림팀의 활약이라고 한다.



전시 중인 퍼포먼스 영상을 보는 관객들 ⓒ조현우

이재은 안무가는 3년 전, 고향인 부산으로 활동의 거점을 옮겼다. 그곳에서 손기술 장인에 흥미를 갖고 탱화장, 바느질 장인, 전통연 장인, 나무배를 만드는 장인들을 만나왔다. 그분들에게서 일본 특히 교토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 장인을 키우고 기술을 보존하는 시스템에 있어 부산과 차이가 크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었다.

이재은 안무가는 두 달간 체험한 기술 워크숍 프로그램과 만났던 장인들을 차분히 소개했다.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에 들어가는 패턴을 만드는 장인인 가와쿠시, 사사가와 하야시, 와다 노리야키를 만났던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스탠실을 하듯이 기모노에 들어갈 문양, 패턴, 소재 등을 모두 부분으로 나누어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었다. 교토의 부엌이라는 별명을 지닌 대표적인 시장 ‘니시키 시장’ 내에 있는 칼과 조리 기구를 만드는 장인의 가게 ‘아리쯔구’도 소개했다. 칼 갈기나 요리와 관련된 워크숍이 매주 진행된다고 하는데, 안무가 또한 이름을 새긴 칼 한 자루를 샀다. 안무가가 소개한 교토의 장인들은 기술의 연마와 보존뿐 아니라 워크숍 등의 참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장인들은 지역민과 외부인 모두와 항상 연결되어 있고, 이를 통해 연명하는 전통, 박제된 전통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으로 공존하고 있다.

‘장인의 노동 방식을 무용으로 인식, 확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재은 안무가의 리서치는 부산과 교토의 장인을 만나 그들이 재료를 엄선하는 방식, 무한의 시간을 바라보며 작업을 남기는 과정을 통해, ‘순간에 살아 있다가 휘발하는 성질을 가진 무용 공연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을까?’라는 또 다른 질문을 수거한다.

제 2 부 : 질문은 질문을 낳는다 - 무용가가 시도하는 다른 매체



아티스트 토크를 준비 중인 이재은 안무가와 김승록 안무가 ⓒ조현우

아티스트 토크에 함께한 김승록, 윤상은, 장홍석이다. 이 세 사람은 ‘기존 무용 표현 양식의 한계로부터 새로운 매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안무가로서 현장에 초대되었다. 이재은 안무가는 이들이 동시대 무용 환경을 인식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대해 물었다.



ⓒ조현우

김승록

즉흥 컨택 그룹 <쌍방>의 공동 대표다. <쌍방>은 무용이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서 사용하는 즉흥이라는 매서드, 과정을 작업화 하기 위해서 워크숍을 통해 함께 공부하기 원했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시작이 전문 무용단체라고 볼 수는 없다. 즉흥무용을 기본으로 그간 자신들이 배웠던 것을 각자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가르침을 주고받는 일로 시작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즉흥 춤판을 열어, 작업 아닌 작업을 연결하며 지속되었다. 그러다보니 전공자뿐만 아니라 비전공자 분들의 관심이 모아졌고, 매주 월요일마다 전공, 비전공의 구분 없는 컨택 워크숍이 6년 간 이어지고 있다.

비무용 장르의 사람들이 자주 참여하기에, 자연스럽게 기존 무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공연 형태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작업 혹은 타장르와 접목되는 공연을 만들 기회가 많았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2015년 국립 현대무용단 아카이브 플랫폼을 통해 발표한 <삼인무 교육부>라는 작업이었다. 교양처럼 학습된 무용 테크닉, 과거의 무용가들의 작업에서 보이는 삼인무를 무식하게 단순 수집해왔고, 그 수집의 레이어를 통과하며 비틀기와 농담, 놀이의 과정을 거쳤다. 그것이 모이니 빅데이터가 되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공연을 만들어갔다. 아카이브의 방식으로 공연을 만들다 보니, 컬렉터 개인의 취향 안에서 빅데이터가 편집되었다. 사용하지 못한 자료에 아쉬움이 남아, 지난해인 2017년 서울문화재단 지원 사업인 댄스필름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협업했던 영상 감독과 함께 공연이 이루어진 방식, 아카이브를 어떻게 작업화 하는가 등 구조로서 의견이 오갔다.

그밖에 ‘교육’을 키워드로 리서치 해왔는데, 운 좋게도 서울청년예술단에 선정되어 작업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내년이 바우하우스 100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여기에 흥미를 느꼈다. 독일이 만든 이 산업화의 산물이, 예술 장인들과 함께 대량 생산과 예술성을 함께 고민해왔다는 것은 재미있는 지점이다. 마치 우리의 무용 교육과 닮은 것 같기 때문이다. 쓸모없다고 치부되는 - 속되게 무용이 무용하다(無用)하다고도 하는데 - 비생산, 비경제적인 부분을 산업 안에서 끌어안았다. 무용 교육이 공연을 위한 기술로서, 예술성과 상보할 수 있는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사업설명회’ 혹은 ‘진학설명회’ 형식으로 발표할 생각인데, 작품의 본질을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다보니 이런 방식을 떠올리게 됐다.

윤상은



ⓒ조현우

플랫폼A 입주 안무가다. <떵샤의 모던댄스>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 사물과 비사물 생명과 비생명을 키워드로 작업하고 있다. 작년에는 젠더 이슈에 대해 작업하면서, 소주를 광고하는 아이유의 입간판을 이용했다.

‘떵샤의 모던댄스’는 한국 무용계 안에서 정작 무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없다고 생각하여 개설된 블로그이다. 네이버 블로그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은 독자를 무용인으로 한정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무용계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솔직한 대화가 어려웠다. 나는 블로그를 통해 무용은 외딴섬이 아니라 이 사회를 이루는 전문가 집단 중 하나인 무용의 전문성이 사회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무용(계)를 보기 원했다.

화장품 리뷰, 맛집 소개 수준의 글을 쓰면서 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용 내부자의 시선으로 리뷰, 프리뷰, 편지, 인터뷰 등 여러 형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언론의 성격이 있기도 하지만, 개인의 아카이브로서의 기능도 있다.

장홍석



ⓒ조현우

2002년에는 요리, 2007년은 연극배우, 2013년부터 무용 작업을 했다. 앞으로의 행보는 알 수 없다. 지금은 안무가로서 <무궁화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다. 무궁화프로덕션은 ‘리틀앤젤스’를 둘러싼 수많은 맥락을 이 시대에 호출하여 기억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같은 팀인 오설영 작가는 리틀앤젤스에서 무용 활동을 시작했다. 나에게 리틀앤젤스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로운 것이었으나, 그 안에 몸담았던 오설영 작가는 “왜 흥미롭지? 이게 왜 재미있지?”라 생각했다 한다.

서로 다른 시각과 접근으로 리서치하며 자료를 모았고 이를 공유하는 방식을 고민하였는데, 결과물은 전시였다. 공연 예술가이지 미술작가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전시라는 매체가 상당히 어려웠다. 아카이브 전시의 경우, 작가의 생각이 지나치게 반영되기 보다는 자료 자체가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보여주려 하니 타인의 자료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의 기록, 타인의 자료, 타인의 오브젝트에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투영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 적정선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고민의 결과, 전시 부문은 자료 자체가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전시는 오픈 첫날의 셋팅이 끝나는 날까지 지속되지만, 공연은 끝나는 날까지 변경, 수정되며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완성의 개념이 없는 공연과 첫날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전시의 차이가 강박이 되어 어려움을 느꼈다.

이재은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인 부산에 몇 년 전 귀향을 했다. 부산에서 <쌍방>이 모체가 된 움직임 즉흥잼을 열게 되었다. 박병민 사진가(2017년 10월호 웹진 《춤:in》에 소개)가 그 모임을 기록해주었고, 그것이 사진전으로 이어졌다. 부산문화재단 또한 교토아트센터처럼 폐교 건물을 이용하고, 아르코가 부산에 운영하는 공연예술연습공간도 그러하다. 지방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생겨났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것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주 지역이 서울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핸디캡이 분명 있다.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교육’을 공부했고, 그러면서 움직임 즉흥잼에 쌍방, 김봉호, 양승희, 바리나모 등을 초대하여 릴레이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 이후 진행한 대담을 엮어 독립출판물 <글즉흥춤들>을 만들어 냈다.

초대한 세 분의 안무가를 통해 신체를 훈련하며 창작하는 사람들이 무용가, 전문가, 관객만을 더 이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출판, 온라인 매체, 언론, 영상 등은 공연과 달리 동일한 컨디션으로, 시간적으로 자유롭게 무용을 관람할 수 있게 한다. 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무용하기에 대한 대화를 나눈 자리라 생각한다.

제 3 부 : 덧붙임

이후의 토크는 ‘무용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패널뿐만 아니라, 플로어로부터도 끈끈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손기술 장인의 이야기로부터 동시대 무용 환경 이야기로의 연결은 메서드로서의 기술, 미디어로서의 매체에 관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자리에 참여한 필자를 얼마간 의아하게 하였으나, 두 달간의 리서치 이후 제 자리로 돌아온 창작자가 다시 한 번,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무용을 이어가기 위해서, 지금의 무용가를 알고 이들의 인식에 동행하기 위한 안무가의 행보이므로. 무용가가 시도하는 다른 매체는 곧 무용이 할 수 있는, 무용이 될 매체의 예고다.

허영균_웹진 <춤: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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