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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7.10 조회 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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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몸의 문법에서 익숙하지 않은 몸의 화술로 - 안무가 임지애 인터뷰

손옥주_공연학자

안무가 임지애의 시도는 독특하다. 한국춤을 전공한 그녀는 이제 또 다시 한국춤을 배울 채비를 하고 있다. 단, 그녀가 다시 배우고자 하는 한국춤에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낯선 공간(성)’과 관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한국을 벗어난 특수한 지리적 공간(space)에서 연행되는 한국춤이 될 수도 있고, 외국인의 몸이나 아마추어 무용수의 몸과 같이 전문적이지 않은 공간성(spatiality)에서부터 발현되는 한국춤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 ‘저것이 과연 한국춤인 걸까?’라는 경계에 선 질문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춤의 조건들과 조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것이 과연 한국춤인 걸까?’라는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로 쉽게 답하는 대신, 실제 연행되고 있는 춤에서부터 시작해 역으로 춤의 정립 과정을 추적해보고자 하는 안무가 임지애의 시도는 ‘그렇다’와 ‘아니다’에 국한되어온 전통춤의 문법을 뛰어넘어 ‘제 3의 몸’과 ‘제 3의 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탐구의 시작점에서 그녀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한인 무용단 중 하나인 ‘가야무용단’과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 실제 올 1월부터 무용단 수업에 참여하며 단원들에게 한국춤을 배우고 있다는 안무가 임지애를 만나 현재 진행 중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임지애, 손옥주 ⓒ양동민

한국춤 ‘다시’ 배우기

손옥주: 임지애 안무가님은 지금까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셨는데요. 최근, 독일에 거주 중인 파독 간호사 출신 교포들로 구성된 가야무용단과 함께 신작 준비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해서 가야무용단과의 협업을 추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지애: 가야무용단과 작업을 해왔다기보다는, 사실 무용단에서 춤을 배워보고 싶어서 올 2월부터 무용단 연습실에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2014년에 <1분 안의 10년> 3부작 안무 작업을 했었는데요. 당시 함부르크와 부산을 거쳐 마지막에 일본에서 무용가 네지 피진과 듀엣 작업을 했었어요. 네지는 한국춤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저는 부토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았어요. 대화 중에 저는 네지에게 “네가 생각하는 한국춤의 핵심(essence)은 뭐야?”라고 물었고, 네지는 반대로 저에게 “네가 생각하는 부토의 핵심은 뭐야?”라고 묻게 되었는데요. 이 대화가 계기가 되어 서로의 춤을 배워보기로 했지요. 네지는 일본에서 한국춤을 배우고 저는 제가 머물고 있는 베를린에서 부토를 배워, 나중에 둘이 만나 서로에게 각자가 배운 춤을 가르쳐주기로 한 거예요. 말하자면 저는 네지 피진에게 한국춤을 배우고 네지는 거꾸로 저에게서 부토를 배우기로 한 거죠.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나에게 익숙한 춤으로부터 거리를 둔 상태에서 그 춤을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게 되는 거잖아요. 익숙하게 느껴왔던 춤에 다른 관점을 도입하게 되는 셈이죠. 그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유사한 작업을 지역을 옮겨 다니며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네지 피진의 경우, 한국춤을 일본에서 배운 거잖아요. 한국춤이 지역적인·문화적인 경계를 넘어 다른 곳에 정착했을 때, 과연 춤의 언어가 어떻게 변형되고 그 문화에 동화되고 타협해 나가게 되는 걸까. 여러 다양한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2016년에 참여했던 서울무용센터 레지던시 기간 동안 제가 그동안 배워왔던 한국춤을 다시 배우는 기회를 얻게 되었었는데요. 당시 몇몇 분들께서 춤을 가르쳐주셨는데, 그 중 중국 대학에서 최승희 춤을 배운 분이 계셨어요. 당시 그 분이 한국에서 무용 전공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셨는데, 마침 그 분을 통해 최승희 기본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소위 신무용이라는 무대화된 한국춤을 배워왔는데요. 막상 최승희 기본을 배워보니 제가 배워온 춤들과 감각적으로 비슷한 점들도 있지만, 몸의 운동성이나 테크닉의 다이나믹, 감정의 표현성 면에서 굉장히 다른 점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몸이 차이점에 먼저 반응하더라고요. 최승희 춤이 그곳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정착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정착 과정이 너무 궁금해졌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제가 거주하고 있는 베를린으로 넘어오게 된 한국춤을 배워보고 싶어졌어요. ‘유럽에서 한국춤의 전통과 문화를 볼 때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지?’하고 제 자신에게 묻기도 했는데, 그동안 저는 아무래도 관광화된 시선, 상품화된 시선으로 한국춤을 바라봤던 것 같아요. 한국춤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제가 한국에서 전공자로서 배운 춤, 즉 학습된 춤과 이곳의 상품화된 한국춤을 끊임없이 비교하기도 했어요. 물론 저의 학습된 춤에도 이미 상품화의 과정이 내포되어있지만, 어쨌든 이런 관심이 밑바탕이 되어 베를린에서 한국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베를린 한국문화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문화원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춤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을 통해 가야무용단을 소개받게 된 거예요.
손옥주: 저 역시 베를린 체류 당시, 가야무용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요. 베를린 현지 교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단순히 취미활동을 위한 모임 이상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들었어요. 독일 전역에서 진행되는 각종 한국 관련 행사에 초청받는다고도 들었고요. 그렇다면 가야무용단은 베를린 시내에 연습공간을 확보한 상태로 정기적으로 무용수업을 진행하는 건가요? 무용단과 관련해서 설립 과정 등등 궁금한 게 많아요.



손옥주 ⓒ양동민
임지애: 전해 듣기로는 1982년엔가, 파독간호사들이 모여 서백림간호요원회라는 모임을 설립했다고 해요. 일종의 친목 모임으로 결성한 건데, 당시 그 모임에서 무용단을 만들기 위해 단원들을 모았대요. 무용단 결성 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한 분이 한국에서 오신 한국춤 선생님과의 개인수업을 통해 1년 반 정도 한국춤을 배우셨다더라고요. 그 분이 베를린으로 이직하신 후에 간호요원회와 인연이 되어, 그 모임에서 자신이 배운 한국춤을 3년 정도 가르치게 되신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무용단이 만들어지게 된 거고요. 이후 1987년경, 가야무용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단하게 된 거예요. 가야무용단은 그동안 한인 사회에 뿌리를 깊숙이 내려왔어요. 한인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사는 물론이고, ‘여성의 날’ 행사처럼 베를린 시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 행사들에도 참여하고 있거든요. 춤을 통한 봉사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기도 하고요. 올 12월에 창립 30주년 기념 공연을 할 예정이라는데, 어쩌면 저도 공연에 참여하게 될지도 몰라요. (웃음) 무용단 단원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이, 저에게 춤이 어떠한 특별한 영역에 속해있는 자기표현의 매체라면 이분들에게 있어 춤은 그 자체로 삶의 일부분이자 훨씬 더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거꾸로 이분들의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고요.
손옥주: 가야무용단 단원들은 간호사로 일하는 등 생업이 따로 있었던 분들이잖아요. 취미활동을 위해 모였다가 행사 초청을 받으면 그에 따른 발표 준비를 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온 셈인데, 그럼에도 사실 그분들이 참여하는 무용수업의 커리큘럼도 상당히 체계적인 편이고 수업에 대한 단원들의 열정도 상당할 것 같아요. 취미활동을 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춤을 대외적으로 선보인다’라는 자의식도 충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가야무용단 단원들은 ‘한국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요.
임지애: 첫째로 그분들에게 있어 한국춤은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한국춤을 꾸준히 추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셈이죠. 뿐만 아니라, 독일땅에 한국춤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강하게 갖고 있어요. 가야, 소나무, 연화 등 한인 무용단의 이름만 보더라도 단체명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얻고자하는 의지를 볼 수 있죠. 조금 다르겠지만 저에게도 전통춤을 배우며 주입된 사명감이 조금 있기는 해요. 가야무용단을 찾아가기 전부터 단원들이 어떻게 춤을 배워왔을지, 그 과정이 궁금했어요. 초창기에는 스포츠댄스 같은 독일의 생활무용이나 독일의 민속춤까지도 응용해서 췄다더라고요. 그분들 춤에 배어있는 복합적인 감정과 상황적인 배경이 저에게는 동감되는 부분도 있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죠.



임지애 ⓒ양동민
손옥주: 그렇다면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이직해온 후 무용단 설립 당시부터 춤을 지도했다는 교민분을 통해 한국춤과 독일의 각종 춤 형식이 혼합된 방식의 무용 교습이 이루어졌던 셈이네요?
임지애: 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단원들이 한국춤을 창작하기도 하고, 한국 전통춤 의상을 입고 독일춤을 추기도 했대요. 하지만 기본에 대한 학습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활동을 이어나가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 국립국악원과 독일문화원 간의 협업을 계기로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해외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화사업이 추진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야무용단 단원들이 베를린을 방문한 국립국악원 단원들에게 춤을 배우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휴가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해 춤을 배우고 그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베를린의 다른 단원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대요.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또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 한국춤 전공자와 연락이 닿으면, 그 전공자를 초청해 한국춤 레퍼토리를 배우기도 해요. 그렇게 무용단을 거친 선생님의 수가 꽤 된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강습 시간이 제한되다보니,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단원들의 수용력을 고려해서 한국춤 레퍼토리를 변형해서 알려주었어요.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대신에, 무용단이 초청받은 행사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짧게 압축시킨 작품 형식을 가르쳐줬던 거죠. 이처럼 짧게 구성된 작품들을 각종 행사에서 반복적으로 공연해오다보니 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만 해도 자그마치 20편이 넘어요.
손옥주: 행사 때마다 선택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작품만 20편이 넘는다고요? 대단하네요. 말씀 듣다보니 가야무용단의 활동에서는 취미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춤이 지닌 원전성에 가닿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느껴지네요.



손옥주 ⓒ양동민
임지애: 가야무용단에서 춤을 배울 때 단원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가르치는 방법이 제가 춤을 배워왔던 방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사실 발레와 달리 한국춤에는 교습을 위한 특별한 용어가 없잖아요. 대개 자연을 묘사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교습이 이루어졌었으니까요. 그런데 가야무용단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교습이 이루어지더라고요.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에서도 그렇듯 각각의 몸이 그룹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며 드러내는 개인성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에요.
손옥주: 그렇다면 그런 교습 방식도 각 기수마다, 세대마다 전승되어 내려오는 건가요?
임지애: 그런 셈이죠. 자신이 배운 방식 그대로 다음 사람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가야무용단에 20대의 단원들로 구성된 교포 2세 반이 있는데요. 그 반이 흥미로워서 수업이 있을 때마다 자주 찾아가봤는데, 그 단원들은 아무래도 한국어보다는 독일어가 편할 것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수업 시간에 서로에게 독어로 설명을 해줘요. 한국춤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연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을 독어로 전부 다 재현해내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거예요. 이때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 어려운 단어들, 예를 들어 ‘맛’이나 ‘흥’ 같은 단어들은 그냥 한국어로 표현해내더라고요. 여기서 재미있는 게, 편견 같지만 그들이 느끼는 ‘맛’이나 ‘흥’은 내가 느끼는 것과 분명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춤으로 흡수하는 의미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요?



임지애 ⓒ양동민
손옥주: 그러게요. 교포 1세대의 경우, 독일에서 무용 활동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멋이나 흥이라는 게 이미 체화된 감정으로 온몸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직접 체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반면에 2세대의 경우에는 이것들을 외부에서 주어진 설명, 혹은 하나의 개념처럼 접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런 경우, 그들이 이 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할지, 그리고 자신의 몸과 움직임 안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임지애: 저도 그 점이 궁금했어요. 1세대의 경우, 예술교육의 제도권 안에서 한국춤을 배운 게 아니잖아요. 일을 하면서 여가 활동으로 한국춤을 배우기 시작한 셈이니까요. 그렇다보니 간호사로서, 무용단원으로서, 스스로를 중립적으로 위치 지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춤 안에 교육되지 않은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어요. 전문화되지 않은 일상적인 몸임에도 불구하고 30여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춤을 춰 오신 분들이다 보니 그 안에 그분들만의 언어가 형성되어있는데,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인 면이 흥미롭더라고요.
손옥주: 그분들의 언어라는 게 움직임 언어(movement language)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임지애: 예를 들어, 북춤을 출 때 엇박 사용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사실 그런 부분은 아무래도 춤추는 사람마다 지닌 특유의 감각을 요하다 보니 배워서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단원들의 훈련 과정을 통해 개개인에게 명확히 확립된 언어들이 있어요. 무용단에서 바로 그 언어를 배우며 제가 그동안 가져왔던 춤 형식에 또 다른 결(layer)을 입히거나 제거하기도 해요. 제 엇박은 교육되고 연습된 거잖아요. 어떻게 엇박을 만들어내야 하는지를 아는 거죠. 하지만 단원들의 엇박을 듣는 순간, ‘아, 저건 그냥 본능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전문 지식에 갇혀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표현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는 거죠. 사실 제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교육받았던 춤과 다른 문화의 맥락 안에서 자생해온 한국춤을 볼 때 처음에는 조금 헷갈렸어요. 춤의 기본도 다르고 춤의 맥락도 너무나 달랐거든요. 그러다보니 사실 처음 가야무용단의 춤을 봤을 때는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판단(judgement)을 내리게 되더라고요. 그 판단이 금방 멈춰지긴 했지만요. 제가 생각해왔던 춤의 의미와는 다르게, 단원들에게 있어서 춤은 그 자체로 삶의 한 부분, 삶의 한 방식인 것 같아요. 분명 고집스럽게 지켜지는 춤의 방식도 느껴지지만 뭐랄까, 몸 그 자체를 많이 보게 되는데요. 그분들의 춤추는 몸을 보면 예술이나 무용 등등의 특정 영역에 속해있는 매체가 아니라, 즉 삶과 동떨어진 영역에서 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낯선 문화를 살아갈 때 생겨날 수 있는 취약함이 쉽게 드러나는 동시에 이런 취약함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는 영역이 필요한, 삶의 최전방에 있는 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손옥주: 취미 활동을 겸한 교민 동호회로 출발했지만, 점차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다 전문화된 교수법을 경험하게 되면서 가야무용단 특유의, 뭐랄까요, 아마추어리즘과 전문성 사이에 놓인 춤 형식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네요.
임지애: 네. 하지만 그런 구분을 뛰어넘어서 그분들에게는 테크닉의 내공보다는 춤을 탄탄하게 지탱하는 몸의 내공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단원분들을 만나며 춤보다는 몸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춤은 그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몸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움직임에 집중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고는 해도, 결국 그분들에게 있어 움직임은 장식적인 테크닉이 아닌 ‘몸’이라는 육체성으로 환원되는 거죠.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같은 춤 레퍼토리를 춘다고 해도 제게는 그 춤에 대한 특정한 판단기준이 선행하다보니, 오히려 단원들의 춤에서 개인의 감정이나 욕구 또는 사적인 이야기가 더 잘 드러나요.

‘가야 무용단’의 한국춤 배우기

손옥주: 가야무용단의 공연 레퍼토리가 20여 편이나 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수업이 진행되는 거예요?
임지애: 총 세 번인데요. 그 중 두 번은 교포 1세대인 중장년을 위한 수업이고, 나머지 한 번은 교포 2세들을 위한 수업이에요.
손옥주: 그렇다면 수업 진행 방식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초청 행사를 앞둔 경우에는 발표 예정인 춤 레퍼토리 위주로 연습을 하겠지만, 평소 수업 시간에는 대표적인 한국춤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건가요?



손옥주 ⓒ양동민
임지애: 무용단이 매해 참여하는 행사가 엄청나게 많아요.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거의 모든 크고 작은 행사에 출연한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주로 공연을 위한 레퍼토리 연습을 해요.
손옥주: 그럼 평상시에 본격적으로 레퍼토리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일종의 워밍업을 위해 따로 하는 트레이닝은 없나요?
임지애: 특별히 따로 하는 건 없고, 부채춤이나 화관무 등 한국춤 대표 레퍼토리를 춰보는 게 곧 트레이닝이자 공연 연습이 되는 거예요.
손옥주: 그렇다면 대부분의 레퍼토리는 무용단을 위한 군무 형식으로 새로이 변형된 신무용 작품들이겠네요?
임지애: 네. 들은 바로는 무용단을 거쳐 가는 선생님들은 가급적 원작에 가까운 춤을 가르쳐주시려고 하는데, 교습 과정 중에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단원들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한국춤을 연습해오면서 나름의 익숙한 습관들이 몸에 배어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움직임이 이전의 습관에 동화될 때가 있어요. 이 부분은 저도 춤을 추면서 가장 많이 경험하고 부딪히는 부분이에요. 자연스러운 부분이죠.
손옥주: 그럼 각 레퍼토리 작품들의 창작자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무용단을 거친 선생님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이전대의 선생님이 만들어놓은 창작 방식이 재미있으면 이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테니까요.
임지애: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죠. 뿐만 아니라 가야무용단의 특성 상, 단장을 비롯한 특정 선생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연습 때만 해도 모든 단원들이 매우 활발하게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데요. 특정한 한 사람이 정한 것을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의견을 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협업의 성격이 강한 편이에요.

한국춤의 ‘문화적 맥락’ 배우기

손옥주: 차기 작업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해요.
임지애: 가야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분들 중 두 분과 내년에 함께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손옥주: 2월부터 가야무용단 수업에 참여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수업 참여가 협업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예요?
임지애: 사실 처음에는 ‘함께 작업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없었어요. 단지 제 개인적인 연습의 하나로 한국춤을 다시 배우고(re-learning) 싶었어요. 저로서는 지속적으로 트레이닝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했거든요. 다른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는 제 자신이 이미 포화 상태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전에 네지 피진과의 작업, 그리고 서울무용센터 레지던시 기간 동안의 작업을 거치며 생각해왔던 것들을 시도해보고자 가야무용단을 찾아갔던 건데요. 그런데 무용단원들과 소통하며 점차 새로운 프로젝트로까지 생각을 확장하게 되었고, 마침 베를린 시에서 리서치 지원금(Senat Recherchestipendium 2018)을 받게 되어 구체적으로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손옥주: 아무래도 가야무용단은 특유의 움직임 언어를 비롯해 이미 나름의 독특한 시스템이 갖춰진 민간 무용단인 만큼, 이분들과 협업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과감한 시도라고 느껴지네요. 새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을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임지애: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업에는 한국춤이 다양한 문화권에 정착해온 궤도를 추적해가는 부분, 디아스포라적 몸 또는 문화가 시각화된 이국성에 노출되는 부분, 집단 안에서 이미 형성된 관습적 코드나 상징 속으로 흡수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집단처럼 읽히는 몸 등등 몇 가지의 결(layer)이 있어요. 사실 이번 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동기가 되었던 부분은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또는 춤의 제도권 밖에서 자기학습(Self Learning)을 통해 자생한 춤 언어가 저의 학습된 몸에 개입되는 것과 관련 있는데요. ‘하나의 문화를 수행하는 몸으로서의 디아스포라적 몸’이 이번 작업에서 안무적 재료와 장치로 사용될 계획이에요. 아직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요. 단원들 개인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하지는 않는 대신, 서로의 몸을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자 구체적인 안무 재료로 다루게 될 것 같아요.



임지애 ⓒ양동민
손옥주: 그동안의 작업들에서는 기존의 한국춤이 보여 왔던 동작 문법을 해체함으로써 전혀 다른 움직임의 맥락을 만들어내는 등, 상당히 강한 실험성이 돋보였는데요. 이처럼 한국춤에 대한 정의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시도들을 많이 해오셨는데, 가야무용단과의 신작 협업 역시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건가요?
임지애: 이전 작업에서 다뤘던 부분들이 지속적으로 다른 맥락을 향해 확장되는 것 같아요. 새 프로젝트에서도 이전 작업들과 유사한 재료들을 다루게 될 텐데요. 서로 몸과 춤을 통해 만났을 때 동질성과 보편성의 사이에서 드러나는 작은 차이 또는 개인성에 대해 질문하게 될 것 같고요. 한국춤에서 레퍼런스를 많이 가져올 예정인데, 한국춤의 전통에 대한 작업으로만 읽히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건드리는 하나의 제안(suggestion)으로 이번 작업이 진행되었으면 해요.
손옥주: 이전 작업들을 접했을 때, 한국춤 동작에 담겨있는 의미를 중립적(neutral)으로 만들어낸 뒤에 바로 그 중립화된 지점에서부터 다시 뭔가를 시작하려는 시도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요. 이번 작업에서는 어떤 시도들이 이루어지게 될지 무척 궁금하네요.
임지애: 무용단 단원들의 몸은 저 역시도 작업 안에서 처음 대면해보는, 그동안 함께해온 작업자들과는 다른 배경을 가진 몸이잖아요. 그렇다보니 제 입장에서도 이분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무척 궁금해요.
손옥주: 단원분들의 몸은 한국인의 몸이면서도 오랜 기간 동안 전혀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경험해온,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한국을 떠나올 때의 시점에 머무름으로써 과거의 시점을 현재 상태에 새기고 있는 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작업이야말로 ‘글로벌한 몸’이 전 세계 무용계의 화두가 된 현 상황에서 특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은 물론 가야무용단과의 협업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계시겠지만, 이후에도 유사한 주제의 프로젝트 추진 계획이 있으신가요?
임지애: 한국춤이 지역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어떻게 정착되어갔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그래서 결국 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가야무용단과의 첫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데요. 지금 생각으로는 지역을 옮겨가며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LA 지역과 일본, 더 나아가 북한까지도 방문해서 현지에서 제가 직접 한국춤을 배워보는 프로젝트 시리즈를 기획할 수 있다면 좋겠죠. 한국춤이 각국의 문화에 따라 어떤 맥락 안에서 추어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알아나가고 싶어요.



임지애, 손옥주 ⓒ양동민


임지애_안무가 한국춤을 전공하고 베를린 Solo/Dance/Authorship (SODA) HZT/UdK 안무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현재 독일에 거주 중이다. 공연매체라는 조건 안에서 움직임과 안무적 실험을 통해 전통과 한국춤이 동시대에 어떠한 다양한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고 있다. 임지애가 바라보는 전통은 과거의 환영과 영광에 대한 찬미(worship)라기보다는 실험적 재료로 비평이 발생되는 창작적 공간에 가깝다. 그동안 가져왔던 ‘몸의 기억’이란 화두는 최근 ‘상상적 신화로서의 아시아’, 즉 ‘아시아적 춤의 궤도’로까지 확장되었다. 대표작으로는 <뉴 몬스터>, 삼부작 <일분 안의 십년>, <너의 동방, 나의 유령> 등이 있다. 임지애는 독일 <탄츠 Tanz> 매거진의 ‘주목할 만한 신인 안무가’ 및 <월간 객석>의 ‘차세대를 이끌 젊은 예술가 12인’에 선정된 바 있다.
손옥주_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FU)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연구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 근대 독일어권 무용계에 나타난 한국 재현>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닥터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세기 전환기의 한국과 독일의 예술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 등의 역할로 무용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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