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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6.14 조회 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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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신창호 X 국립무용단 <맨메이드>를 보고

떵샤(윤상은)_안무가

웹진 <춤:in>은 ‘떵샤와 함께 무용공연 보러가요’ 꼭지를 2018년 6월, 9월, 12월 총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무용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과 함께 무용공연을 본 뒤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코너입니다.

'함께 이야기한 사람'

공경진 : 전통음악 해금연주자이다. 현재는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해금을 연주하며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러 예술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음악과 해금연주로 어떻게 승화시킬지 매 순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음악은 노래와 통해있고 움직임, 춤과 하나라고 굳게 믿는다. 요즘은 전통음악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자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박여의 : 2015년부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활동 중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20대 통째로 학교에서 보냈지만 전공자답지 않은 무지함으로 갈증상태이다. 돈보다는 재밌는 일을 좇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재밌게 돈 벌기. 아직 찾지 못 했다. 온갖 종류의 '해방'에 관심이 많으며 매일 궁리 중. 공간 안에서 관람하는 형태는 갇힌 느낌이라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평소 공연을 즐기진 않지만 오늘은 ‘무용 비대중화’의 해방을 궁리하기 위해 방문했다.

“보고 어떠셨어요?”

떵샤: 보고 어떠셨어요?

경진: 저는 그 군무에서 약간... 완전히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게 왤까.

떵샤: 저도 느꼈어요!

경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일부러 그렇게 놔둔 건지, 약간의 호흡을 자유롭게 하는 건지, 그게 주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뭔가 에누리에 대한 허용일까? 사람이니까.

떵샤: 저는 그걸 의도라고 본 것 같아요. 여의님 생각은 어때요? 여의님은 공연을 보면서 뭔가를 계속 쓰시더라고요.

여의: 까먹을까 봐요. 세련돼 보이고 싶어서.(웃음) 여튼, 저는 그 딱딱 맞지 않는 군무를 보면서 각기 다른 픽셀을 표현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는데. 어차피 똑같이 맞추려고 노력해도 잘 하지 못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떵샤: 음... 저는 그런 면에서 춤이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살짝 들긴 했는데... 이분들이 한국무용을 잘 하시니까 이런 현대무용 움직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차라리 이들이 더 잘 출 수 있는 한국적인 움직임을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아까 공연 볼 때, 여의님이 한 분 집어서 ‘저 분 진짜 춤 잘 춘다’고 했는데 그 분은 이 공연에 특화된, 다양한 춤을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였던 게 아닐까싶었어요.

여의: 한국무용의 느낌을 살리지 않을 거면, 왜 이 사람들이어야만 했는가.

경진: 프로그램 보면 ‘한국무용을 토대로’ 라는 글이 있어서. 맨 처음 인트로 장면에는 ‘태평무’에서 보이는 ‘잔걸음’ 동작도 나오고요.

여의: 아, 그 남녀 무용수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우리가 추는 게 한국무용이야? 현대무용이야?’하는 대화가 있었잖아요. 두 가지의 어떤 섞임을 의도했던 것 같긴 해요.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한국무용 복장 안에 가려진 발걸음을 오늘 처음 봤어요. ‘쟁쟁걸음’? 어떤 명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에는 부드러운 동작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복장 속에 숨겨진 파워풀한 동작을 목격하게 되어서 멋지다, 벅찬 느낌! 그러면서 ‘맞아, 저게 내가 알고 있던 한국무용이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왜 굳이 이걸 한국무용이라고 정의해야 하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 또한 저는 남성이 추는 한국무용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거북스럽다는 게 아니라 뭔가 어색하고, ‘내 뇌는 이건 본 적이 없어’ 하면서 새로운 데이터 입력 하느라 바쁘고 그랬어요. 정말 문외한이다.(웃음)

세 장의 티켓 ⓒ윤상은
LG아트센터 로비에서 ⓒ윤상은

떵샤: 공연의 주제 관련해서는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AI 이야기도 나오고, 개인성이 상실되고 개인이 전체 구조를 위해서 봉사하는 픽셀같은 이미지도 있었고요. 인공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잘 드러난 것 같은지요?

경진: VR, 무대의 시각적인 것, 동작들, 의상, 모였다 흩어지고 모였다 흩어지는 것들, 혼자, 같이, 둘이서 등 이런 모든 것들에서 현실을 드러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보면, 저희 국악계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거든요. ‘이게 전통이야, 현대야?’하는 것들. 전통음악계에서도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본질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그렇고요. 섞임, 혼란, 정체성 찾기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오늘 공연에서는 그것을 해소하고 해결점을 찾아간다는 느낌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 같은 느낌.

떵샤: 어떤 현실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다?

경진: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벽들이 마지막에 걷어졌을 때, 가건물, 폐허 같은 모습이 드러나면서 흉측했잖아요. 그 장면에서 약간 ‘지금 까지 본 것 들은 사실 되게 간단한 조작이었어. 화려하게 무대장치도 하고, 조명도 쏴서 이렇게 보여준 것뿐이야.’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떵샤: 문득 드는 질문인데, 만약에 현대 작곡가가 국립국악원 전통 연주자 분들한테 한번 자신이 작곡한 악보로 연주해달라고 했으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경진: 힘들죠. 왜냐하면 음악적 구조가 다르고 재료가 다르니까. 그 사람의 음악에 대한 태도는 어떤 음정이나 다른 재료들일 텐데 전통음악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맛’이 있단 말이에요. 시김새라던지, 그 조에 따른 음정이라던지, 평균율로 딱딱 떨어지는 음악이 아니고, 조였다, 넓혔다, 떨었다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작곡가가 그걸 가지고 표현하라는 건지 완전히 탈피하라는 건지 혼란스런 지점이 있을 거고, 엄청난 타협과 협상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여의: 저는 공연을 보면서 공연을 해석해보자는 욕심과, 또 해석하지 말자는 두 가지가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계속 갈등을 했었는데요. 그런 와중에 그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방의 벽이 허물어지고 VR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에요. 벽이 허물어지기 전까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앞에서 독무를 추고 있던 사람이 ‘주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벽 뒤에서 VR을 쓴 ‘같은’ 사람이 있었던 거죠. ‘그러면 누가 주체인가, 누가 주체여왔던가.’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어요. 그러면서 불현듯 ‘나는 주체인가 객체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주제, 의도를 잘 드러냈는지 보다 관객들 저마다의 해석이 더 재밌고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떵샤: 저는 이 공연을 보면서 어떤 딜레마 같은 게 느껴졌는데요. 경진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현상을 보여준다’의 차원에서 그친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주제는 거대하고 메시지가 있는데, 많은 수의 무용수들이 표현할 수 있는 스펙타클도 보여줘야 하고, 움직임도 실험적이어야 하는. 그러다보니 피상적인 접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경진: 제 생각에는 안무가가 너무 고민이 많은 사람이여서 생각을 그냥 다 풀어놓고, 무용수들한테 숙제를 던져준 게 아닐까 싶어요.

‘무용수’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요?

여의: 오늘 무용비전공자들이 보는 무용공연이 컨셉이니, 굳이 다른 분야의 전공자(나)로서의 평소 시선을 말하자면, 예를 들어, 무용수들의 성비율 차이가 큰 걸 보면서, 선발할 때 어떠한 기준, 어떠한 차별이 있을까 생각도 하게 되고, 비슷하게 길고 마른 몸을 가진 무용수들을 보면서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거나 나아가 사회적인 미의 기준이 뭘까 생각하게 돼요. 춤을 잘 추고, 못 추는 기준은 또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어쩌다 예술이란 것을 접하게 됐을 땐 항상 사회현상, 구조에 대입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경진: 근데 저는 팔 다리 긴 사람이 움직이는 게 더 메리트가 있는 건 이해가 가는 것 같아요. 무용단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떵샤: 그래서 무용단은 이렇게 몸선을 보여주는 작품에 특화된 게 아닐까.

여의: 저는 다양한 작품이 있다고 하면 신체적 조건도 다양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봐요.

경진: 기관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요. 계속 성과를 내야 하니까.

떵샤: 그렇다면 ‘무용수’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요? 길고 마른 사람이 떠올라요?

경진: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예전에 안은미 무용단 공연 보러 갔을 때나, 바체바 무용단을 봤을 때도 그렇고, 자연스러운 ‘몸’이 떠올라요. 또 강수진 발레리나를 보면서 그 분의 뒤태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동작이나 그런 것 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누가 추는가가 중요하고, 군무라고 하면 그 들이 어떤 합일을 이루는 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여의: 아니, 저는 아까 공연에서 약간 살집이 있으신 분이 있어서 새로웠어요.

떵샤: 그래요? 실제로 보면 안 그럴 텐데.

여의: 다른 무용수들보다는? 체육복 같은 의상이라 태가 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제 머릿속에 있는 무용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보통의 체형을 가지셔서 입단이 가능한 몸매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아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문제야.’ 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예술 공연을 별로 보지 않아서 데이터가 별로 없는데 그냥 저는 무용수라고 하면 그냥 ‘00예고’ 친구들. 머리 올리고, 치맛단 안 줄이고, 구두에 양말 신은 그런 꾸미지 않은 친구들이 생각나거든요. 고등학교 때 특활반에서 입시하던 친구들 이후로는 무용전공자들도 거의 못 봤고 대학에서도 무용 전공자를 못 보았거든요.

ⓒ윤상은
ⓒ윤상은
“무용은 대체 뭐가 재밌는 걸까”

여의: 이 좌담의 기초질문이 ‘왜 무용은 무용하는 사람들만 보나’ 하는 거였잖아요. 저는 공연을 잘 안 보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서 무용 공연 보러간다고 하면 딱 부담감부터 느껴져요. 옷은 어떻게 입어야 되나, LG아트센터의 분위기는 어떤 건가 등 고려해야하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이 공연 올 때도, 작품 내용에 ‘픽셀’에 대한 내용이 있길래 ‘픽셀’같은 패턴의 옷을 입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었거든요. 이건 사실 옷 욕심이 많은 저의 욕심이기도 하고 이상한 포인트이긴 하지만 일단 픽셀 같은 걸 골라 입고 왔어요.(웃음) 공연장에 오는 ‘에티튜드’를 갖춘다는 차원에서. 그런데 우리가 드라마 같은 거 볼 때는 브로셔 이런 거 안 봐도 ‘아이고 재밌다’ 하면서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무용은 어려운 것 같아요. 무용은 정말 춤 하나로 우리의 마음을 동해야 하는 건가 싶은데, 일단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고, ‘이 타이밍에 웃어도 되나, 이 타임에 박수를 쳐도 되나, 저 사람이 춤을 못 추는 것 같은데 일부러 그러는 건가, 내가 잘 모르고 세련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등 복잡한 생각을 하게 돼요. 드라마를 볼 때처럼 그저 재밌게 보기 어려운 장르인 것 같아요.

떵샤: 그러면 혹시 지금 느끼는 그럼 부담감, ‘내가 잘 모르고, 어렵고’ 이런 것들 때문에 작품 감상에도 방해가 되는 것 같나요?

여의: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재미가 없는 거죠. 그런데 중간에 남녀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텍스트가 들어가는 부분은 재밌었던 것 같아요. 언어가 나오는 순간 ‘저게 우리한테 익숙한 매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 이건 무용이라는 장르의 한계인가도 싶고. 그냥 저는 재밌으면 주목하게 되고, 재미없으면 빠져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동작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내가 왜 그 이유를 어렵게 찾아야하는지 불편함이 있었어요. 왠지 떵샤(전공자)는 저 동작이 어떻다, 멋지다, 별로다 이런 감상을 할 것 같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 좌담회가 아니었더라면 누가 ‘어땠어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좋았어요’ 하고 끝날 것 같아요. 근데 뭐가 좋았는지는 모르는.

떵샤: 저는 안무도 하고 무용수를 하다 보니까, 공연을 볼 때 어떤 특이점이나 새로운 시도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걸 작품의 형식적인 것에서 찾게 되는 것 같기는 해요. 예를 들면, ‘전형적인 대형에서 벗어나서 약간 흩뜨렸네’ 라든지 ‘한국무용 호흡이 팝핀 움직임의 호흡으로 전환됐네’ 라든지.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새로운 형식 찾기에 지친 시기랄까. ‘형식의 새로움을 찾지 않는다면 무용은 대체 뭐가 재밌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무용 외부의 시각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경진: 저희 전통음악계도 공연장 오면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보는 사람만 봐요. 저도 지금 똑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해야 될 판이에요. 우리 쪽은 또 학위에 대한 학구열이 너무 치솟아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서 공연을 많이 하고, 박사를 딴 후에는 교수 임용 때문에 연주를 해야 하는 게 있거든요. 그러니까 연주회가 내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니라 이 좁은 사회 안에서 어떤 친분관계 때문에 가게 되는 게 있어요. 그 공연을 즐기러 간다기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간다는 느낌도 들어요. 개인적으로 저도 전통음악을 대중화한다고 이 짓 저 짓을 많이 해봤어요. 홍대 놀이터에서 산조를 연주해 본 적도 있고요. 그런데 결국은 ‘전통, 오리지널을 더 깊게 잘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도달했거든요. 전통음악을 정말 잘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좋다’라는 말이 나오게 전통을 잘 하자. 해석을 해준다거나, 더 쉽게 가르쳐 준다거나 하는 것보다. 시대적으로도 이제 퓨전, 멀티를 지나서 오리지널이 유행하는 것 같아요.

“이 무용이라는 매체를 언제 찾아야 되는지 모르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경진: 무용을 누가 같이 보러가자고 하면 가서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그런데 막연하게 혼자 보러간다고 하면 시간 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또 드라마랑 다른 거는 공연 홍보라는 게 드라마처럼 친숙하게 되는 환경이 아니다보니까요. 공연은 누가 정보를 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수동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이 육아에 찌들어있는 사람한테는 오늘 이 공연도 전혀 모르고 있던 공연이란 말이죠. 결국 홍보에요. 대중매체에서 한번 흘려줘도 좋을 텐데 말이죠. 또 하나는 ‘내 팬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 윤도현 밴드가 인디에서 지금같이 뜨게 된 것 처럼요.

떵샤: 그래도 음악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좀 친숙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춤인에 심보선 시인이 쓰신 글 중에 사람들이 현대 미술, 문학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무용은 어떤 특별한 기예를 요구하는 것 같다는 글을 봤어요. 그 차이가 무용관객이 없는 이유랄까요.

경진: 그렇게 친숙하게 하려면, 취미반이 있어야 돼요. 대규모 취미반. 한국무용, 민요 이런 거는 아주머니들이 엄청나게 하세요. 심지어 이수까지 할 정도로. 그렇게 현대무용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취미반 가르치는데 이제 그 분들은 이제 귀가 고급이 되셔서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된 것 같아요. 취향이 생긴 거죠. 이게 대중화인 것 같아요.

여의: 음악이 조금 더 친숙한 이유는 우리는 음악을 입맛대로 들을 수가 있잖아요. 슬플 때, 기쁠 때 등. 그런데 무용은 내가 이 무용이라는 매체를 언제 찾아야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만약 지금이 무용이 대중화 되어 있는 시대라면, 내가 어떤 외로움을 느낄 때 딱 떠오르는 무용작품이 있고, 그걸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떨 때 무용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다 무용을 봐도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분야에 속하거나 즐기려면 결국엔 돈인 것 같아요. 애초에 취미이던 입시이던 돈 없으면 끼기 힘들어요.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만 누려왔는데 대중화가 어려운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무용은 고급 취미이자 고급 분야 중 하나인데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지들끼리 모인 재수 없는(?), 그렇지만 모르는 내가 창피한. 양가감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끝까지 ‘뭐야 저런 우물 안 개구리들은?’ 하면 되는데 괜히 쪼그라드는 것 같고 그런 위축됨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무용이나 예술에 속하지 않음이 ‘안’한이 아니라 ‘못’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죠. 무용계 안에서도 ‘우리들만의 리그’, ‘니들이 뭘 알아’ 이런 분위기 아니에요? 아닙니까? (웃음)

경진: 교육 과정에 무용을 넣으면 돼요. 음악, 미술이 교과목으로 있는 것처럼 학교에서 발레도 한번 시켜보고, 창작무용도 해보고. 그렇게 학교 졸업하면 그런 경험을 해봤으니까 무용공연도 더 보러가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가장 빠른 대중화인 것 같아요. 춤을 우리가 어렸을 때 접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색하고 어려운 거거든요. 또 쇼맨십이 있는, 스타성 있는 안무가, 무용수가 나와서 붐이 한번 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도 남상일씨나, 국악 소녀 송소희가 나왔던 것처럼요.

떵샤: 그런데 저는 가끔 그런 스타성 있는 무용가분들 보면서 ‘저게 현대무용의 다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어요.

경진: 그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오리지널을 깊게 파는 사람도 필요하고, 중간에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미친 척하는 사람들도 필요하고 다 필요하더라고요. 어쨌든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거라는 거죠.

여의: 장윤정씨 덕분에 트로트가 인기가 많아진 것 처럼요. 굉장히 동의를 합니다. 제일 현실적인 거는 경진님 말씀처럼, 무용을 공교육 안에서 제도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모두에게 주어지면 내가 어떤 해석을 할 때 그 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없어질 것 같아요. 모두가 각자의 생애주기에서 한 번은 무용을 경험해봤다면 무용을 흡수하고 산출하는 결과물에 대해서 어떤 기준이 없어지잖아요. 각각의 산출물들이 다양하게, 그냥 모두의 삶에 스며들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용뿐 아니라 다른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스며들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경진: 우리 초등학교 때 생각해보면 체육대회 때 항상 다 같이 부채춤 같은 거 하잖아요. 저도 발레복같은 희한한 거 입고 뭐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거 요즘 안하나요?

떵샤: 마스게임? 운동장에서?

여의: 요즘엔 안하지 않을까?

경진: 아마 요즘 엄마들 난리나죠. 미세먼지 많은데 애들 내보내고 그러면. 그런데 우리 때는 그렇게라도 무용을 경험을 하긴 했단 말이죠?

여의: 그런데 저는 그런 식으로 했던 것이 더 안 좋았던 것 같아요. 5, 6학년들 운동장에 때려 넣고, 이 춤이 어떤 춤인지도 안 알려주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왜 돌고 있는 거야, 이 아프기만 한 춤이 왜 멋지다는 거야.’ 하면서 역효과가 나는 거죠.

떵샤: 오히려 안 좋은 기억, 트라우마가 됐네요. 제가 작년에 중학교 예술교사(서울문화재단 청소년TA) 나갔었거든요. 초등학생들은 즉흥 움직임 하라고 하면 너무 잘 한다고 하는데, 중학생들은 사춘기 오고 그러면서 남이 나를 본다는 거, 시선에 대한 공포를 너무 느끼기 때문에 잘 안하려고 했단 말이죠. 그리고 조금만 서로 터치하라고 하면 때리기 시작하거든요. 모든 것이 장난으로 번져요. 재밌게 접근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좌절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선생님들이 권력자처럼 했던 게 이해가 가기도 하고.

여의: 아마 학생들이 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지 않을까요?

떵샤: 네, 특히 아이돌 댄스. 아이들한테는 그게 곧 댄스, 무용이기 때문에 그렇게 예쁘게 하지 못 할 바에는 안 한다, 여서요.

여의: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지금도 완벽히 못 추면 안 추고 싶을 것 같아요. 부끄럽고 왠지 창피한 것 같은.

떵샤: 그리고 또 고등학교 가면 수능 준비 하느라고 체육활동, 무용 이런 거는 또 못 하게 돼요. 공교육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힘든 부분이 있어요.

경진: 어쩔 수 없네요.

떵샤: 우스갯소리로 수능이 없어져야 가능하다고.(웃음)

여의: 고 1땐가? 체육선생님이 무용전공자셨어요. 그런데 체육 교육과정에서 그분이 전공한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체육시간에 축구하고 발야구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과학탐구에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 교사가 따로 있는 것처럼 체육도 그렇게 세세하게 나뉘어서 전공자들이 활동할 자리도 생기고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상은
ⓒ윤상은
“오히려 공연보다 뒤풀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떵샤: 저는 이렇게 무용 안하시는 분들한테 감상평을 들어보는 일이 정말 드물거든요. 그런데 그게 되게 신선하게 다가와요. 저는 연출이나 구조를 보고 있는데, 여의님이 각각 무용수의 움직임을 다르게 캐치하는 부분이라던가. VR 씬에서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것에 대한 감상도 그렇고. 그런 해석들을 더 많이 듣고 싶은데 말이죠.

여의: 맞아요.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만의 리그’라서 못 들었거나 안 듣거나. 흑.

떵사: 신선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 훨씬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걸 하나도 못 듣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아쉬운 거죠. 특히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공연을 해석하는 게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성학자의 입장에서, 식물학자의 입장에서, 카페 사장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어요.

여의: 저도 최근에 사회복지에서 다루는 어떤 철학 사상을 건축에 적용해서 다르게 해석한 책을 재밌게 봤어요. 사회복지랑만 찰떡 같이 맞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죠.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사상들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용이나, 전통음악이나 사회복지나 다 서로 교차해서 적용해 볼 수도 있는 거죠.

떵샤: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경진: 저는 그런 의미에서 뒤풀이 문화가 자연스럽게 있으면 어떨까 해요. 관객들이랑 같이. 뒤풀이를 관계자들이랑만 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한테도 공지해서 같이 하는 거 좋은 것 같아요. 그들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단 말이죠. 공연한 사람들도 하면서 힘들었던 일, 공연 준비하면서 생긴 일도 이야기하고. 오히려 공연보다 뒤풀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든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여의: 예전에 아프리카 댄스팀 공연을 보러간 적이었는데, 공연을 하고 옆 건물로 가서 관객과의 대화를 2편으로 하더라고요. 관객과의 대화도 하나의 공연인 것 같았어요.

경진: 뒤풀이 하다 흥나면 악기 풀어서 다시 하기도 하고 하거든요. 춤도 또 추고.

떵샤: 그런 거 너무 좋죠.

“과연 자본과 함께 할 수 있는가”

경진: 저는 보면서 제가 이것을 즐길 수 있나, 재밌나 계속 생각했는데, 그것은 제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더라고요. 어려워도 그런가 보다 할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히스토리 안에서 얼마든지 이걸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열고 보느냐 마냐의 차이였던 것 같아요. 내 태도에 따라서요. 중간에 졸리면 졸린 대로. 재밌으면 재밌는 거 보고, 내가 하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봤던 것 같아요.

떵샤: 공연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경진: 저는 그런 면에서 또 공연을 무료공연 말고 꼭 사서 봐야한다는 주의에요. 하다못해 오천 원, 만 원이라도. 내가 내 돈 주고 보는 거랑 초대랑 다르더라고요.

떵샤: 동기부여의 차원에서.

여의: 자발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경진: 전통음악공연도 아직 초대가 많거든요.

떵샤: 사실 사람들이 돈 내고 잘 안 보려고 하니까요.

여의: 아까 말한 대로, 내가 어느 상황일 때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무용도 4부작 이런 거 했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는 과거의 나, 다음에는 현재 시제의 나, 일상의 나. 이런 식으로. 이런 게 이미 있으려나?

떵샤: 지금 연출 하시는 건가요? (웃음)

여의: 연출에 욕심이 좀 있어서. (웃음) 그러니까 상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경진: 맞아요. 자본을 떠나서 어떻게 삽니까. 들인 돈이 얼만데.

떵샤: 아 힘들다...

여의: 맞아요. 학자금 언제 갚나.

경진: 과연 자본과 함께 할 수 있는가.

떵샤: 자본과 함께 한다는 고민은 정말 끝없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경진: 그동안에는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면을 드러내야 하는 것 같아요.

“오늘 본 무용공연이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떵샤: 마지막으로 하나 질문, 오늘 본 무용 공연이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경진: 저는 공연 하나를 보면 좀 오래가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더라도, ‘공연을 하나 보고 왔다’라는 것 자체로 리프레쉬가 돼요. 두 아이의 엄마다 보니까 쳐져있던 저에게 뭔가 활력이 돼요. 일상에서 탈피해서 공연을 보고 왔다는 것 자체가. 그러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장면들이 제 창작에 영향을 끼치기도 해요. 저는 제 공연하기 전에 엄청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거든요. 책의 어떤 문구나, 그림, 이런 무용 공연에서도 그렇고요.

떵샤: 그럼 그게 꼭 무용이 아니어도 되는 거네요?

경진: 그렇죠. 그런데 오늘 봤던 주제로 한다면, 그 주제를 가지고 한동안 생각을 하게 되겠죠. 이런 문제에 대해서. 또 어쩌다 무용얘기 나오면 이걸 떠올릴 것이고, VR을 봐도 아까 그 장면이 떠오를 테고.

여의: 저도 공연을 자주 보지 않지만 공연을 하나 보면 좀 오래가는 타입인 것 같아요. 저에게 오늘 공연은 재미가 없었다, 지루했다 정도지만 이것이 나에게 끼친 영향이란 결국 공연보다는 공연관람 후의 이 좌담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특히 전공자는 이렇게 생각하는군. 다르게 해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특별하고 재밌었어요.

떵샤: 여의님은 제가 오늘처럼 데려오지 않으면 무용공연을 또 찾게 될까요?

여의: 글쎄요. 근데 만약에 <맨메이드> 공연의 감상평을 나중에서 어디서 듣게 된다면 귀 기울일 것 같긴 해요. 나와는 다른 해석을 읽어보고 싶을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볼 때도 보기 전에 감상평을 찾아보지 않아요. 보고나서 나중에 제 의견과 비교해 보거든요. 그런 것처럼 <맨메이드> 관련 텍스트가 나오면 한 번 더 보게 될 것 같고, 신창호 안무가가 나중에 또 뭔가를 한다고 하면, ‘오, 저번에는 재미없었는데, 이번에는 재밌을까?’ 하면서 관심은 가질 것 같아요. 신창호 안무가의 전작 <노코멘트>도 궁금해지고.

경진: 확실한건, 경험을 한번 하면 경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왼쪽부터 떵샤, 공경진, 박여의 ⓒ윤상은
ⓒ윤상은
떵샤(윤상은)_안무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동료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용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내부자 입장에서의 창작과 예술생태계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무용을 그들만의 세상 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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