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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6.12 조회 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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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발레로 더욱 뜨거워지는 계절
제 8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윤단우_무용칼럼니스트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과 쌍둥이 축제로 열리며 매해 초여름마다 찾아오는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끝내고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8회째, 올해도 두 편의 기획공연과 두 편의 초청공연이 마련되었고 공모를 통해 선정된 여섯 편의 공연까지 총 10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군무 무용수를 재조명해 객석을 울린 김용걸은 <The type B>라는 작품으로 자유소극장에서 토월극장으로 무대를 이동해 관객들과 만나고, 지난해 기획공연 안무가로 초청되어 <죽음과 여인>을 첫 안무작으로 선보인 김세연은 <트리플 바흐>라는 작품으로 관객들과 다시 만난다.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초연했던 크리스티안 슈푹 안무의 <안나 카레니나>를 재연하고, 최근 몇 년간 <디스 이즈 모던> 시리즈를 공연해온 유니버설발레단은 2014년 의상과 음악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새롭게 선보인 바 있는 <춘향>을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다. 공모 공연으로는 서울발레시어터와 정형일발레크리에티브가 CJ토월극장에서 각각 <빨간 구두-영원의 춤>과 <더 세븐스 포지션>을, 자유소극장에서는 김지안발레단의 <윤이상의 귀향>,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의 <콤비네이션 2>, 임혜경르발레의 <이야기가 있는 발레 2>, 윤전일댄스이모션의 <사랑에 미치다>가 각각 공연된다.

축제의 중심, 기획공연 <The type B>와 <트리플 바흐>

발레축제여서 보여줄 수 있는 김용걸의 속마음, <The type B>

김용걸댄스시어터의 <The type B>와 김세연서울메이트의 <트리플 바흐>는 원래 공모 공연으로 축제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기획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기획공연으로 전환된 케이스다. 여덟 번의 축제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하며 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김용걸은 <The type B>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제목은 김용걸 자신의 혈액형인 B형에서 출발하지만 발레(ballet)의 B와 존재(be)의 B를 폭넓게 아우르며 발레리노로 또한 인간으로 갖는 고민과 생각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워크’ 시리즈를 통해 클래식 발레의 의미를 되묻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그는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Inside of life)>에서는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의 의미를 고찰하고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주역무용수 뒤에 가려져 있던 군무 무용수를 무대의 주인공으로 불러내 무용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고정관념 저 너머에 대해 꾸준히 환기시켜왔다.

“발레축제는 안무가 김용걸의 인큐베이터나 다름없습니다. 무용축제가 많지만 발레 작품으로 참가할 수 있는 플랫폼은 많지 않아요. 발레축제는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축제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운과 능력이 좋은 타이밍을 만나 부담 없이 뛰어들 수 있었고 또 다른 김용걸의 가능성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발레축제가 아니었으면, ‘워크’ 시리즈에서부터 밟아온 그 과정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The type B> 연습 사진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The type B>는 그의 현재의 고민이 응축된 작품이다. 관객들은 발레와 삶에서 출발한 그의 질문이 그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잘 안다고 생각해온 김용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말하자면 <The type B>는 발레축제를 안무가 김용걸의 인큐베이터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가 자신을 안무가로 성장시키고 그 성장을 함께 지켜봐온 관객들에게 건네는 내면의 목소리다. 사회적 주제를 다룬 전작들인 <빛, 침묵 그리고…>와 <수치심에 관한 기억들>이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움직임을 전개해갔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가 자기 자신을 파고들어가는 동안 맞닥뜨리는 질문들을 통해, 그리고 그때마다 무용수들과 대화하면서 움직임을 만들어갔다. 그에게는 과정의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용걸의 내면을 전달하기 위해 모인 무용수들의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베를린슈타츠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현과 유니버설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김나은, 각각 보스턴발레단과 들라트르댄스컴퍼니 입단을 앞두고 있는 이선우와 안세원, 그리고 김용걸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 온 김다운 등이 출연한다.

무용수들이 작품 준비를 하면서 부딪친 벽은 움직임이 아니라 소품 사용이다. 작품은 무용수들이 알파벳이 새겨진 큐브를 다수 가지고 나와 큐브가 만들어내는 주제어와 함께 움직임이 전개된다. 큐브를 들고 움직여야 하는 무용수들은 안무의 움직임과 큐브의 이동이 별도로 분리되지 않도록, 보다 자연스럽고 합일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큐브의 주제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표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극장이란 공간이 어떤 주제에 대해 예술가와 관객이 교류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예술가가 주제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면 관객들은 그것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서로 말을 하진 않더라도 그 다른 견해들을 교류한다는 건 의미가 있죠. 저한테는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창작이니까 계속해서 창작을 통해 관객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젊은 무용수들의 신선한 에너지와 열정, <트리플 바흐>

지난해 <죽음과 여인>을 통해 발레축제에서 안무가로 인상적인 첫 발걸음을 내디딘 김세연은 <트리플 바흐>로 축제 관객들과 두 번째 만남을 갖는다. <트리플 바흐>는 올해 초 스페인국립무용단 예술감독 호세 마르티네즈가 마련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에서 김세연이 무용단의 젊은 무용수들을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마드리드 현지에서 호평 속에 초연된 후 국내 관객들 앞에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세 커플의 파드시스로 구성되었던 마드리드 초연과 달리 서울에서 공연될 작품은 8인의 군무가 추가되어 더욱 풍성한 무대를 만들 예정이다.

베를린슈타츠발레단의 타일러 걸페인, 바이에른뮌헨발레단의 티그란 미카엘리안, 스페인국립무용단의 사라 카티분 등 이 작품을 위해 유럽에서 날아온 무용수들 외에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전 유니버설발레단 단원 조한나, 와이즈발레단 주역무용수들인 이현정과 남스라이 멘드바야르 등 실력파 무용수들이 함께한다.

“발레단에서 안무가를 초청해서 신작 작업을 하다 보면 클래식 발레에 재능이 있고 잘 어울리는 무용수들이 소외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돼요. 평생 발레 트레이닝을 통해 실력을 닦아온 무용수들이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는 거죠. 클래식 동작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비틀어서 새로운 동작을 만드는 건 안무의 한 트렌드이기도 한데 오히려 그런 작업을 많이 하면서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클래식 발레 동작을 정형화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동작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고 그만큼 변수가 많아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죠. 발레 동작을 거의 변형하지 않고 사용하되 세련된 클래식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The type B> 연습 사진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

김세연이 오디션에서 무용수를 선발할 때도 연습을 진행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본기와 열정이다. 첫 안무작을 만들면서 서양예술인 발레와 한국적 요소의 결합에 신경 썼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오직 발레 그 자체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무용수들이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하는 의지로 충만해 있는 것이다.

“춤과 음악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봐도 되는 작품이에요. 특별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상도 심플합니다. 대신 동작을 완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안무가 어렵거든요. 젊은 무용수들이 하는 작품일수록 그 작품을 하고 나서 실력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하면서 발란스 잡는 것, 코디네이션, 앙트르샤 시스 등등을 다시 배우면서 작품을 해내고 났을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스페인에서 발레단의 후배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했던 것과 달리 프리랜서 무용수들의 시간을 조율하면서 연습을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들 14인의 일정이 다 달라 총 8개 팀으로 나누어 부분 연습을 진행하고, 25일부터 일주일간 전체 연습에 들어간다. 동작을 만드는 것보다 스케줄 관리가 더 난항인 작업이다.

안무의 바탕이 된 바흐의 음악은 취리히발레단 레퍼토리인 <마그니피센트>라는 작품을 보면서 한번쯤 해보고 싶다고 기억해두고 있던 음악이다. 김세연은 이 음악을 춤을 많이 추고 싶은 무용수가 욕심내서 추기 좋은 음악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실 발레 안무를 입히기에는 까다로운 음악이다. 음악에서 3이라는 숫자가 매우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제목도 ‘트리플 바흐’라고 정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출신 스타무용수들인 임혜경, 엄재용, 김성민을 비롯해 스페인국립무용단의 수석무용수 에스테반 벨랑가르가 출연하고 유럽의 떠오르는 안무가이자 비주얼 디자이너 깅순 찬이 조명디자인을 맡아 세련된 무대를 보여주는 등 경험 많은 예술가들과 함께해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던 지난해 공연과 달리 이번 무대는 그녀가 스스로의 안무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요소들을 덜어내고 오직 춤과 음악에만 집중했다. 그 단순한 무대가 어떤 아름다움을 보여줄지 기대할 만하다.

6인 6색, 안무가들의 특색 있는 공모 공연

공모 공연은 지난해 일곱 편에서 올해는 여섯 편으로 한 편 줄었다. 주관처가 예술의전당으로 이관되고 나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야외무대인 신세계스퀘어에서는 3편의 기획공연을,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을 합쳐 공모 공연 편수를 12~13편 수준으로 유지하다가, 토월극장을 기획공연의 메인 극장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 2016년부터다. 2016년에는 토월극장의 기획공연 외에도 자유소극장과 야외무대에서 기획공연이 함께 올려졌으나 2017년부터 예산이 줄어들면서 토월극장의 기획공연만 남고 소극장과 야외무대의 기획공연이 없어지게 되었다. 2016년부터 토월극장의 기획공연이 신설되면서 공모 공연의 편수는 줄어들었는데,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최고 공연장을 자부하는 예술의전당이라는 공간과 축제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민간무용단체 지원이라는 성격을 갖는 공연사업에서 공간에 걸맞은 수준의 창작 레퍼토리가 얼마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충돌한 결과다. 필자 개인의 사견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서울 및 수도권 소재의 무용단체로 한정된 현재의 공모 공연 구성에서 지방단체를 수용할 수 있는 방안 또한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축제 타이틀이 서울발레축제가 아니라 대한민국발레축제이기에.

서울발레시어터 <빨간구두>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

토월극장에서는 서울발레시어터의 <빨간 구두-영원의 춤>과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더 세븐스 포지션>이 같은 날 공연된다. 안데르센 원작 동화를 재해석한 <빨간 구두-영원의 춤>은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안무를, 작곡가 최우정이 음악을 맡았고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업으로 클래식발레 공연의 전막이 아니면 오케스트라 반주를 듣기 어려운 공연 환경에서 듣는 즐거움을 더해줄 예정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과천시민회관 대극장과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두 차례의 쇼케이스를 통해 작품의 업그레이드 과정을 관객들과 함께했고, 올해 초 경기공연예술페스터 베스트컬렉션 공연을 거치며 작품을 더욱 가다듬었다. 발레축제에서 선보이게 될 최종 버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모아진다.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더 세븐스 포지션>은 발레의 기본 포지션이 다섯 개가 아니라 그 이상이면 발레 움직임은 어떻게 진화했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섯 개의 기본 포지션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이를 응용해 발전시킨 동작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발레를 하는 무용수들에게 이 기본 포지션을 제대로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기본 포지션을 넘어선 새로운 포지션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이 몸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고 이를 위한 예술가들의 도전과 실패를 신선한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자유소극장에서는 김지안발레단의 <윤이상의 귀향>과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의 <콤비네이션 2>, 임혜경르발레의 <이야기가 있는 발레 2>와 윤전일 댄스이모션의 <사랑에 미치다>가 짝을 이루어 올려진다. 2015년 <악마의 선율 파가니니 II>로 발레축제 관객들과 만난 바 있는 김지안은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윤이상을 소재로 한 여러 공연들을 접하며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작곡가로서의 윤이상은 물론 그 위대한 예술 뒤의 인간적인 면모를 함께 조명하며 그의 음악이 남긴 감동을 춤으로 표현한다. 윤이상 역에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이 출연하며 미국 조프리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정한솔이 함께한다.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은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 안무가로 활동하던 김성민이 주축이 되어 창단한 컨템포러리발레단으로, 대구아시아무용축제, 대한민국무용대상, 서울무용제 등 주요 무용무대에 작품을 선보이며 창단 1년 만에 내일이 기대되는 젊은 무용단체로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2014년 한국무용음악협회 기획공연 '무용과 음악의 만남'에서 처음 선보인 <콤비네이션>을 업그레이드한 <콤비네이션 2>를 보여줄 예정이다.

2016년 ‘이야기가 있는 발레’로 축제 관객들과 처음 만난 임혜경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생각과 과정을 작품 해설과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휴식과 여행, 여유로움을 표현한 <여름밤>, 서로 다른 춤의 언어가 하나의 춤으로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포옹(Embrasse)>, 고단한 하루를 이어가는 동안 힘을 얻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하는 습관들을 춤으로 풀어낸 <의식(Ritual); 신뢰와 용기의 문>을 공연한다. 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엄재용과 김나은, 전 솔리스트 오혜승, 전 서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김은정,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 안남근이 출연한다.

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윤전일이 발레축제를 통해 안무가로 데뷔한다. 그의 첫 안무작 <사랑에 미치다>는 불치병에 걸린 여자와 이를 모른 채 사랑에 대한 희망을 품는 남자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의 장르를 경계를 넘나드는 신선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현웅,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신승원, 국립무용단 주역 출신으로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의 안무감독을 맡은 바 있는 한국무용가 장혜림, ‘댄싱9’의 스타무용수이자 뮤지컬 <킹키부츠>에서도 좋은 연기로 호평받은 현대무용가 한선천, 서울시무용단 단원으로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40주년 기념공연 <카르멘>에서 주역을 맡았던 오정윤이 함께한다.

믿고 보는 초청공연,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로 선보인 신작 <안나 카레니나>를 재공연한다. 올림픽 기간 동안 강릉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고 발레축제 기간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난다. 톨스토이의 원작을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이 라흐마니노프와 루토슬라프스키의 음악을 사용해 두 시간짜리 발레로 압축했다. 19세기 러시아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귀족 부인 안나 카레니나와 장교 브론스키의 격정적인 사랑을 기본 골조로 브론스키를 짝사랑하던 키티와 나중에 키티와 결혼하는 레빈, 안나의 올케인 돌리와 오빠 스티바까지 세 커플의 엇갈린 감정을 담아냈다. 주인공 안나 역에는 박슬기와 한나래, 브론스키 역에는 이재우, 박종석, 김기완, 카레닌 역에는 송정빈, 이영철, 이재우가, 키티는 신승원, 레빈은 김명규와 김태석, 돌리는 박예은, 스티바는 이동훈이 캐스팅되어 지난해 초연의 주인공들을 대부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국립발레단 <안나카레니나>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

유니버설발레단은 <심청>에 이은 두 번째 창작발레 <춘향>을 토월극장에서 선보인다. <심청>이 클래식발레의 형식을 대부분 갖췄다면 <춘향>은 보다 드라마발레에 가깝다. 2007년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국적 창작발레로 첫 선을 보였고 2014년 발레단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일신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안무와 무대세트, 의상을 대대적으로 수정하였고 초연에 사용한 창작곡을 차이콥스키의 모음곡으로 바꿔 드라마의 깊이를 더했으며, 이번 공연에서는 새로운 영상디자인으로 한층 더 세련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춘향 역에는 강미선과 홍향기, 몽룡 역에는 이현준과 이동탁이 캐스팅되었다.

화려한 축제 뒤의 그늘

축제는 공연자와 관객들이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플랫폼이다. 플랫폼이 제대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관객들은 개별 공연들보다 축제라는 플랫폼 자체를 신뢰하고 공연을 보러 오며, 개별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공연자들은 플랫폼에 의지해 안정적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 축제라는 플랫폼이 나라와 문화를 막론하고 널리 선호되는 이유다.

이 지면을 빌어 고백하건대, 2011년 국립발레단 주최의 첫 번째 축제가 막을 올렸을 때,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발레 전용 플랫폼이 생기는구나 하는 기대와 이 플랫폼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양가적인 감정은 축제를 지켜보는 동안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는데, ‘대한민국발레축제’라는 무거운 타이틀과,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예술의전당이라는 축제의 무대, 민간 예술단체와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축제의 동기는 도무지 나란히 놓일 수 없을 듯한 상반된 성격임에도 8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제법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창작이 활발한 현대무용에 비해 발레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원제도는 신작 생산에 기울어져 있지만 안무가를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부재하며, 발레학교 하나 없는 환경에서도 국제콩쿠르를 석권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뛰어난 무용수풀에 비해 안무가풀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동시대와의 호흡은 무용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지만 이 시대의 컨템포러리발레가 무엇인가 하는 공통의 담론은 찾아볼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사후 피드백이라 할 비평 역시 움직임에 대한 인상비평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과 담론의 부재 속에서 안무가들은 개인의 개별적인 역량으로만 창작의 지난한 과정을 돌파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볼 만한 작품이 없고 믿을 만한 안무가가 없다는 도돌이표 같은 한탄이 이어지고, 한 번 공연된 신작은 혹평 속에 사장되기 일쑤이며, 작품의 만듦새는 어설프지만 무용수들의 역량이 공연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식의 주객이 전도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기획자들과 평론가들이 볼 만한 작품이 없고 믿을 만한 안무가가 없다고 말하는 반대편에, 작품을 만들려 해도 무용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안무가들의 호소가 있다. 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세연은 이번 공연을 위해 국내 오디션을 다시 치렀고, 소속 무용수들을 확보하고 있는 몇몇 단체를 제외하면 발레단에 소속되어 있건 프리랜서이건 무용수들의 겹치기 출연도 눈에 띈다. 하나의 축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퀄리티가 담보되는 작품의 꾸준한 공급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며, 이는 안무가들의 창작 환경이 개선되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하나의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명의 안무가 또는 한 편의 작품이 탄생하려면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다. 이 축제를 보다 오래도록 즐기기 위해 안무가와 작품의 인큐베이팅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다. 잘 차려진 잔칫상을 기다리듯이 축제의 개막을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때다.

제 8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전체일정


윤단우_무용칼럼니스트 작가. 무용칼럼니스트.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언론학을 전공했다. 개인을 길러내는 사회의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개인을 움직이는 마음의 물길은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쉬지 않고 글을 쓰고 드문드문 책을 낸다. 무용전문지 <몸>에서 기자로 무용취재를 했고 이곳에서 겪은 열정페이와 노동력 착취를 고발한 뒤 무용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와 함께 무용계에 적폐로 쌓여 있는 갑질 문화, 노동력 착취, 성폭력 및 신체 폭력, 지원금 횡령 등을 추적해 무용생태계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탐사취재 '무용계 블랙페이지를 쓰다'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신문>, <더무브>, <댄스포스트코리아>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쓴 책으로는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 독서에세이 <사랑을 읽다>, 발레에세이 <열아홉번의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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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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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옥선2018-06-15

    공연정보는 없이 왜 설명만. 가격.예약전번. 날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