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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6.12 조회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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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공공예술이 ‘뉴욕’을 치유해온 길

김채현_무용평론가

위안과 감동을 선사한 공공예술

2002년 3월 11일 뉴욕 맨해튼 밤하늘을 향해 거대한 조명 한 쌍이 투사되었다. 그 6개월 전 9월 11일 아침, 110층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붕괴시킨 여객기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광선 조명이었다. ‘빛의 헌정(Tribute in Light)’이라 이름 붙은 이 빛의 조형은 88개의 서치라이트로 제작되어 최고 높이가 7킬로미터로 무려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목격되었다고 한다. 3000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당한 9·11 테러는 뉴욕, 미국, 그리고 전 세계를 경악과 슬픔에 빠뜨렸다. 엄청난 참사 후 여섯 달, 막바지 현장 수습이 계속되며 테러의 충격과 고통이 차츰 진정되던 시기에 쌍둥이 빌딩을 상기시키면서 한 달 내내 밤마다 하늘을 비춘 두 초대형 빛줄기에 무수한 사람들이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 ‘빛의 헌정’은 그 다음해부터 지난해까지 9월 11일마다 쏘아 올려졌다. 초대형 조형물 ‘빛의 헌정’은 그 명분으로나 규모에서나 여느 개인 단위에서 실행될 조형물이 아니다. 이 조형물을 여러 미술가·건축가·조명전문가가 협력해서 만들도록 기획·추진한 주체는 크리에이티브 타임(Creative Time)이라는 뉴욕의 비영리 민간 조직이었다.

Tribute in Light in 2010 김채현 제공

Tribute in Light 2013 김채현 제공

45년 전에 조직된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뉴욕에서 오로지 공공예술만 추구해온 단체다. ‘빛의 헌정’을 추진하기 전부터 한 세대 동안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시각예술·퍼포먼스·비디오·미디어·사운드 작가 등을 규합하여 규모 있는 공공예술 이벤트를 맨해튼 일원에서 2백 회쯤 주최하였다. 하루에서부터 길게는 몇 달씩 열린 이들 이벤트는 이미 2000년 훨씬 이전에 맨해튼의 빠져선 안 될 일부가 되었고,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타임이 2002년 ‘빛의 헌정’을 수행할 자격과 역량이 충분하였음은 물론이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이 추구한 것은 대형 건물 앞이나 공공장소에 기마상이나 추상조각을 늘어놓는 식의 구태의연한 공공미술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실제 이슈를 반영하는 공공예술이(었)다. 이 단체는 이벤트를 거듭해올 동안 공공예술의 실현과 전파를 과제로서 끊임없이 고심해왔으며, 그 발전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는 크리에이티브 타임 서밋(summit, 각 부문의 권위자들이 모이는 회담)을 해마다 며칠간씩 열고 있다.

Creative Time Summit 2013 김채현 제공
공공예술의 혁신을 추구한다

2018년도 서밋의 주제는 ‘Archipelagos and Other Imaginaries(흩어진 것들을 엮는 또 다른 상상)’이다. 오늘날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떨어진 착취 현장들이 현실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타개하려면 국제적 연대의 상호 연합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고, 이 연장선에서 문화 예술이 실현할 전략을 모색하려는 것이 올해 서밋의 목표이다. 2017년 서밋에서 러시아혁명 백 주년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진단한 것을 비롯해서 지난 10년간 서밋은 불평등, 민주주의, 교육, 난민, 도시 환경, 공공예술의 진로 등을 주제로 열려왔다. 단적으로,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서밋은 예술인들이 민주 시민의 입장에서 21세기의 사회적·세계적 이슈들을 사상가·현장 운동가들과 더불어 논하고 공공예술의 역할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라 하겠다. 최근 몇 해 뉴욕을 벗어나 워싱턴, 캐나다, 스웨덴, 베니스 비엔날레 등지에서 열린 사실에서는 서밋의 공신력이 재확인되며, 올 가을에는 그 주제에 맞춰 카리브해(의 섬나라들)와 가까운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애당초 1973년 결성되었다. 그 이듬해에 이 조직은 맨해튼 남쪽 어느 건물에다 임시 공방을 차려 행인들이 바깥에서 예술인의 작업 과정을 보도록 하는 이벤트와 맨해튼 해안가에서 늘상 보던 요트의 돛들을 모아 설치미술처럼 전시하는 이벤트를 두어 달 열었다. 예술을 일반인들과 함께 나눈다는 그들의 발상이 겉으론 소박해 보일지 몰라도, 일반인들을 수동적 관람자 이상의 ‘능동적 참여자’로 변신시킨 점은 이후 공공예술의 향방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다. 예술을 사람들 곁으로 가져가서, 말하자면, 탈신비화시킨 이들 이벤트에 대해 대중들의 호응이 따랐던 것은 물론이다.



Creative Time 사무실 입구 김채현 제공
Creative Time 사무실 김채현 제공

이 단체가 결성되던 당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동서(東西) 냉전의 시각에서 10년 동안이나 무리하게 치르던 때였다.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쇠락한 터에 미국과 뉴욕의 경제 사정도 피폐해졌고, 대규모 실직에 범죄율까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대도시 뉴욕을 떠나버리는 풍조가 완연하였다. 도시 재정을 비롯, 뉴욕시가 파탄에 직면했던 그 시기에 맨해튼의 빌딩 공간들이 텅텅 비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막으려는 시 당국의 눈에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활동은 한 줄기 희망으로 비쳤음직하다. 그들의 활동을 시 당국뿐만 아니라 부동산 사업가들마저 도시 공동화를 극복할 방안으로 후원하였다. 게다가 당시 시중의 경기 침체로 맨해튼 화랑들의 폐업이 속출하였고, 또 (화랑과 특수 공간 내에서의)전통적인 예술품을 거부하는 생각들이 해프닝 및 개념미술을 비롯하여 뉴욕 예술인들 사이에서 유포되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상황은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성장을 촉진한 요인들로 작용하였다.

맨해튼 42번가의 타임스퀘어는 뉴욕의 랜드마크(관광) 명소로 브로드웨이 극장가와 인접한 곳이다. 미국 경제가 거듭 추락하던 1980년대에 그 일대는 범죄가 횡행하나 치안이 부재하였으며 포르노와 스트립쇼가 만연한 곳이 되었다. 타임스퀘어를 구해내려는 뉴욕시와 손을 잡고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1993년과 94년 여름~가을에 백남준 등 수십 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42번가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상점 진열창, 극장 현관, 광고판 등등을 형형색색의 시각예술 건조물로 일변시켜서 타락한 나날을 딛고 일어서는 꿈과 공동체 의식을 환기한 것으로 호평받았다.

뉴욕과 맨해튼의 공공예술, 행동하는 민주주의

올해까지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250가지 공공예술 이벤트를 진행해왔고 참여 예술인은 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현장 작업은 거의 대부분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남쪽에서 진행되었다.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시각예술 이외 분야 예술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으며, 빌 티 존스, 에이코와 코마, 엘리자벳 스트렙 등 무용인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이에 더하여 지난 10년간의 서밋에 전 세계의 유수한 사회 사상가와 운동가를 비롯 200인 가량이 패널로 참여하였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현장에는 뉴욕의 진보적 예술 역량이 결집되었으며, 어떤 점에서 맨해튼은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자유로운 캔버스였다. 이만한 규모로 미루어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아마도 세계에서 공공예술을 가장 많이 실행한 조직이라 생각된다. 이 같은 실적을 거론하다 보면 자칫 실적주의에 맴돌기 쉬우므로, 그들이 공공예술에 집중하는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이 설정하는 주요 가치는 뉴욕시, 시민, 예술의 힘, 실험성 그리고 놀라움의 다섯 가지로 정리되며, 이는 다시 예술, 도시 현안, 시민 관객의 관계로 압축된다. 예술이 일상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발휘해야 한다는 관점은 일상에 눈을 돌릴 경우에만 실현 가능하며, 때문에 일상과 동행하는 예술의 역할이 과제로 제기되기 마련이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뉴욕 맨해튼 안에서 공공예술을 추구해왔고 그 예술이 염두에 두는 일상은 뉴욕 공동체를 움직이는 사회적 일상이다. 맨해튼은 뉴욕의 심장일뿐더러 (금융) 자본주의의 유력한 거점이므로 맨해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예술은 뉴욕과 자본주의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Creative Time 42번가 예술 프로젝트 김채현 제공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기존의 고립된 예술을 부인하면서, 예술이 일상에 참여하고 일상(시민)이 예술에 참여하는 쌍방향의 예술 작업이 가능하며 필요하다는 인식을 계급, 교육 정도, 인종을 초월하여 세간에 정착시켰다. 이를 토대로, 그들은 일상에서 영감을 구하고 일상에 놀라움과 영감을 불어넣으면서 감동과 공감을 통해 시민 관객을 설득하는 작업을 다면적으로 실천해왔다. 상식적으로 말해, 놀라움, 영감, 감동, 공감을 수반하는 설득은 예술로써만 가능하다. 그런 중에서도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공공예술은 그 같은 설득의 소재와 주제를 예술이 속한 사회적 일상 속에서 찾고 구현해왔다는 점에서 행동하는 민주주의라 불린다.

맨해튼 이스트 4번가에 위치한 크리에이티브 타임에는 20명 가량 인원이 상주하며, 그 활동에 비해 외양은 소박한 사무실은 칸막이로 독립된 책상 공간과 회의실, 자료실로 구성된다. 운영 자금은 뉴욕시 지원금, 재단 및 독지가 기부금과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김채현_무용평론가 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 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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