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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5.14 조회 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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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예술과 예술 작업

조형빈_<춤:in>에디터

일시: 2018년 4월 25일 오후 3시

장소: 서울무용센터 구상실

참석: 홍혜전(모더레이터, 안무가), 김형희(안무가), 지우영(안무가), 조형빈(<춤:in> 에디터)

왼쪽부터 홍혜전, 김형희, 지우영 ⓒ양동민
장애 예술을 만난 예술가

홍혜전: 오늘 좌담은 장애 예술과 관련하여 어떤 작업들을 해오고 계시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시는 것으로 자기소개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우영: 제가 장애인에게 관심을 처음 가진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입니다. 서울대학교 안에 있는 자애원이라는 곳에 1학년 때부터 봉사를 갔어요. 거기 지체장애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쳤는데, 3학년 때인가 체육대회 때 공연을 올렸죠. 그런데 공연을 올리고 나서 받았던 충격이 아주 컸어요.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으니까요. 무엇 때문이었는가 하면, 춤추는 아이들은 신나서 춤을 추지만 그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물원에 동물을 보는듯한 느낌인 거예요. 그 광경을 보고 스무 살 때 굉장히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저희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이런 저런 것들을 겪으면서 많이 접하게 되었죠. 예술 작업을 했던 건, 제가 학교를 만들기 전에 푸르메재단에서 2년 간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무용과 다른 것들을 접목해서 공연을 올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잘 진행되었어요. 그리고 후에 학교를 만들게 되면서 4년 째 예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경증과 3급 정도 되는 경계선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1년 정도 작품을 만들면 손색이 없는 공연이 만들어져 무대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프로 무용수들과도 같이 작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인 것 같아요. 창작하는 사람들은 작품에 방점을 두게 마련인데, 내가 처음 스물한 살 때 만들었던 작품에 아이들을 올려놓고 구경거리가 되도록 했을 때의 수치심과 자괴감, 그런 것들이 있어서 작품에 관해서는 조금 놓으려고 해요. 작업 중에 기억에 남았던 건, <헬렌 켈러> 작품이 초청을 받아 광주에 공연을 하러 갔는데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다 시각장애인이더라고요. 처음엔 난감했었는데, 즉흥적으로 제가 그 자리에서 핀 마이크를 달라고 했어요. 공연을 하면서 동시에 말로 다 설명을 했죠. 그게 감격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용을 귀로 보는 거죠.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내가 작품에서 원하는 것 보다는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큰 숙제라는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우영 ⓒ양동민

홍혜전: 예전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공연을 하셨을 때, 관객의 반응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때와 지금 관객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우영: 당시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구경거리를 본다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관객들도 그런 것에 대해 지식이 없고, 평소에 장애인들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공연을 동물원 구경하듯 보는 걸 보고 쇼크를 받았었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작업을 하는 데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경계선 장애 아이들이다 보니 굉장히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예전과 지금이 다른 것은, 관객에게 핑계를 둘 순 없고 무엇을 했든지 창작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저도 어렸었고 할 수 있는 폭이 작았다면, 이제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보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숙련도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겠죠.

김형희: 저는 장애에 대한 특별한 계기나 경험은 원래 없었어요. 장애인을 볼 기회도 많이 없었고, 장애인이 춤을 출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죠. 어릴 때 장애인들을 만나게 되면 피해 다녔고, 장애인들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작업을 하다가 제 변화를 통해서 장애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다가,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제를 찾았어요. 처음에는 신문에 나오는 사회적인 문제 같은 것들을 찾았죠. 베트남의 라이따이한들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이런 작업들을 5년 정도 하다가 결국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게 됐어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춤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결국 트러스트 무용단이 어떻게 이 시대의 흐름에서 사람들과 같이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 시점에서 장애인을 바라보게 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움직임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사실 결론적으로는 특별히 다를 것이 없죠. 그래서 장애인 무용수를 찾아다녔고 결국 뇌병변 장애를 가진 남자분을 만나게 되면서 같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자기가 해보고 싶다고 찾아온 장애인의 움직임을 봤는데, 우리 무용수들 모두 그 춤이 너무 아름다워서 전부 할 말을 잃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2003년에 같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때는 장애인 무용수를 우리 무용수와 완전히 똑같이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저 무용수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다가, 마지막에 솔로 부분이 나오고 그때서야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었죠. 저도 사실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 무용수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우리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으니까요. 그 후에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오디션에서 알게 된 청각장애인 한 명과도 같이 훈련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따로 장애인 무용단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우영 ⓒ양동민

홍혜전: 그 부분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얼마 전, 장애인 무용단을 만드셨잖아요.

김형희: 처음에는 장애인 무용단이라고 따로 붙이는 것도 조금 고민을 했어요. 원래 그 전에는 트러스트 무용단 안에 같이 있었는데, 트러스트 안에서 같이 하니까 이들이 항상 스페셜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중심이 되지 못하는 구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독립적으로 장애인 무용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케인 앤 무브먼트(CANE & Movement)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Comtemporary Arts Natural Extension,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리서치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처음엔 네 명의 멤버가 있었는데, 점점 확장되어 현재 케인 앤 무브먼트 안에는 시각이나 청각, 뇌성, 지적, 발달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이들이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그들이 스스로 움직임을 인지하며 각자의 춤을 호흡과 움직임을 찾아가는 단계에 있어요. 단지 즉흥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움직이는 것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라는 것이죠. 나아가서 사회에서도 전문가적인 역할, 리더십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들을 따로 묶으면서 호흡과 움직임을 확장하고자 해요.

홍혜전: 트러스트 무용단 안에서도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하는 작품들이 있고, 케인 앤 무브먼트 역시 장애인무용수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비장애인 무용수와 함께 작업하고 계신데 굳이 무용단을 분리하여 진행하고 계신 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김형희: 조금 다르더라고요. 트러스트 무용단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장애인 무용수가 트러스트에서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공연 경험과 작품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하지만 케인 앤 무브먼트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열려 있어요. 초보에게도 열려있고, 자신이 스스로 하고자 하기만 하면 케인은 언제든 들어올 수 있어요. 트러스트는 조금 더 전문성을 가지고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단체로 가야할 것 같았어요. 원래 트러스트도 케인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너무 많은 것들이 한 단체 안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 가지 것들이 들어와 있으니까 트러스트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기도 해서 구분 했어요. 구분을 하고 나니까 지금은 오히려 장애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더 커졌죠.

홍혜전 ⓒ양동민

홍혜전: 저의 경우 본격적으로 작업 해온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요. 은평재활원에 거주하는 지적장애 성인 남성 열 명과 2015년 처음 커뮤니티댄스 작업을 시작하였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문무용단체인 춤추는 은평재활원을 창단해 활동하고 있어요. 저 역시 제가 장애인과 함께 작업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었어요. 세상에서 처음 공연을 보게 되는 사람과 세상에서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결심으로 한 여러 활동이 장애인들과 함께 작업까지 하게 한 것 같아요. 당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고, 커뮤니티 댄스를 통해 예술과 공공성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 이 모든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변화되고 진행되었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제가 너무 모르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땐 거리에서 장애인과 마주치게 되면 한 발 비켜서서 그분이 지나갈 때까지 어떻게 해드려야 될지 모르는 상태로 그냥 얼어붙어있던 아이였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죠. 장애 예술을 하겠다는 생각의 계기는 2000년대 제롬 벨의 <Show Must Go On>을 보고 트레이닝 되지 않은 몸이 무대 위에서 춤 출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2013년 페스티벌 봄에서 본 그의 <장애극장>을 통해 장애 예술이 어떤 것인지, 장애인도 공연할 수 있고, 공연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제롬 벨은 제게 고마운 분이세요. 그분은 저를 모르시지만요. 그때 나는 춤추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니 장애인에게 춤추는 방법을 전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자연스러운 안무가로서의 변화 과정을 통해 3년을 내리 장애별 특성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특히 지적과 발달장애에 관심을 가지던 참에 기회가 왔죠. 서울댄스프로젝트에서 전담예술가로 활동하면서 2015년 은평재활원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후 은평재활원 뿐만 아니라 지적장애가 있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 단체나 사업들을 통해 그들을 만나기 시작한 장애 예술 작업이 오늘날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작업과 소통

홍혜전: 작업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해 볼게요. 함께 작업하는 출연진들과의 소통방식이나 안무가로서 댄서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방식, 또는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려요.

김형희: 아까 이야기가 잠깐 나왔지만, 지체장애는 어떤 측면에서는 장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좀 불편하다는 거죠. 작품 연습을 할 때 처음에는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어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보통은 전날 밤에 문자로 충분히 소통을 하면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제가 혼란을 겪는 건, 지난 밤에는 분명히 문자로 일상의 이야기와 고민들을 나누며 많은 대화를 했음에도 막상 연습실에서 직접 마주치면 마치 아이를 다루듯이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현재는 지체, 발달, 지적,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작업을 하는데 각기 다 달라요. 그 중에 지적장애와 소통이 제일 힘든 것 같더라고요. 같은 말을 열 번 이상 해줘도 또 질문하거든요. 그러면 내 스스로 인내심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들에게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해요.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욕심 같은 것들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그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욕심이 있어도 숨기고,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리고 각각의 다른 장애를 가진 무용수들이 모여 있으면 또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어요. 발달장애나 지적장애의 경우는 겉으로 잘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장애를 가진 무용수들과는 또 구분이 되거든요. 그런 경우들을 다 고려해서 기다려주고, 계속 있어주면서 참는 부분들을 나 스스로 훈련하고 있어요.

왼쪽부터 조형빈, 홍혜전, 지우영, 김형희 ⓒ양동민

지우영: 저는 그냥 제가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많이 해요. 시각장애인을 가르칠 때는 하기 전에 내가 눈을 감고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생각해보고, 경계선 장애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수업을 따라하는 방식이 재미있어야 하니까 그 부분을 강조해서 하고. 놀라웠던 경험 중에 하나는,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분장실에 있었는데, 둘이 소통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잠깐 화장실을 갔다오니, 둘이 소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놀랐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들 안으로 최대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장애라는 건, 사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받거든요. 그런데 경계선 장애는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사실 비장애인도 언제든 장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잖아요. 나도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것이고. 그래서 그냥 공감하고 상상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어요.

홍혜전: 저희는 직접적인 대화는 거의 불가능해요. 그러니 작업하면서 필요한 깊은 대화는 더 불가능하죠. 얼마 전 장애인의 날이어서 신문사에서 취재를 왔었어요. 기자분은 당연히 소통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취재를 오셨나봐요. 인터뷰가 불가능한 거죠. 인터뷰를 접고 그냥 가시더라고요. 그런 과정들을 보면서 제가 무용을 전공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각각의 지적장애 무용수들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행동과 표정을 통해 느낄 수 가 있거든요. 대화는 분명 안 되지만 본능 또는 감각적으로 소통은 가능한 거죠. 여러 감각들을 사용해 지적장애 무용수들과 소통하고, 한 장면 또는 움직임을 끌어내기 위해 긴 기다림과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동기를 제공하며 그들이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 장면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 장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저 역시 본능적으로 느끼고 예측하는 거죠. 본능을 열어 놓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해요.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지우영: 실질적으로 있었던 일 중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청각장애를 가진 딸이 있었는데, 중간에 온 엄마랑 수화로 싸우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낄 수가 없죠. 당사자들하고의 소통의 어려움 보다는 오히려 가족과 같이 있어서 어려운 점들이 좀 있어요. 이미 가족에게 상처를 받아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가 물어봤던 한 시각장애 친구의 경우, 가족들이 무의식중에 자기를 빼 놓고 먹을 것을 맛있게 먹고 있어서 상처를 받았대요. 그런 감정들이 오래 간다고 하더라고요.

홍혜전: 한 번은 춤이 뇌를 발달시킨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된 경험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긍정적인 상황이지만 안무가 입장에서 당시 상황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죠. 이 또한 제 욕심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질책했던 경험이기도 해요. 춤추는 은평재활원은 인간의 순수하고 본능적인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정말 움직임이 좋은 한 친구가 있는데 역시 대화는 불가능한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공연 바로 직전, 무대 뒤에서 보이는 움직임이 좀 이상한 거예요. 제가 좋아했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니라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움직임인 거죠. 이유인 즉, 이 친구가 연습하는 몇 달 사이에 발달을 했던 거예요. 음악에 반응하는 즉흥적 움직임을 수행했었는데, 갑자기 스스로 동작을 짜고, 그 동작을 기억하기 위해 생각하며 동작을 이어나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움직임의 리듬감이 없어지고, 본능적 움직임이 아닌 전혀 다른 밋밋한 움직임을 구사하고 있더라고요. 안무가 입장에서는 속 타는 일이죠. 생각해보면 비장애인이 전문무용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당연한 상황인데 말이에요. 연습 때 너무 잘하다가 콩쿨이나 공연을 앞두고 잠시 기량이 무너지는 경우같은 것이죠. 이런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공연을 앞두고 있다면 힘들다기 보다 당황스럽겠지만,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이란 걸 새삼스럽게 깨닫고 공연의 질 보다는 춤을 통한 우리의 행복에 먼저 의미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우영: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감정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네비게이션에서 온갖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나온다고 해도 그건 감정이 없는 말이잖아요. 경계선 아이같은 경우는 감정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거든요. 어떤 것을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때, 저게 그냥 감정을 흉내 내는 건지, 아니면 감정을 정말 알고 표현하는 건지, 이런 것들이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저를 내려놓는 경험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홍혜전: 저희가 작업하면서 장애무용수들이 변화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끼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선생님들의 작업에 미친 영향, 안무가로서의 성장 등 장애 예술 또는 장애무용수로부터 받은 영향력은 무엇이 있나요?

지우영: 많이 받죠. 얼마 전 수업을 하다가, 즉흥을 해야 하는데 한 아이가 다리를 다친 거예요. 수업 참여를 못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지구본을 가지고 즉석 퍼포먼스를 만들기로 했어요.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하고 걷다가 마지막에 다 같이 모여서 끝내는 장면을 만들었는데, 다리 다친 아이까지 나오니까 제가 갑자기 울음이 확 쏟아진 거예요. 저도 모르게 막 울었거든요.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순간에 제가 얻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수업을 하면서 제가 오히려 그들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뜻이니까.

홍혜전: 확실히 인간적 성숙이 있죠. 장애인이던 비장애인이던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춤에 대한 겸허함, 안무가로서 작업하는 목적 등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또한 춤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힘을 확인하는 계기들이 많았고요. 지적장애 무용수들에게 움직임을 끌어내는 과정은 힘들고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매 순간 감동을 받아요.

김형희: 저도 그래요. 2017년 케인 앤 무브먼트 신작을 준비하면서 준비과정 내내 기대되고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스스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잠재되어있던 감정이 춤을 통해 발견하게 되고 장애에 따라 춤이 더 확장 되어지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웠어요. 연습이 기다려지고 오늘은 어떤 즉흥성이 나올까 기대하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포장되어있지 않은 순수함이 사랑스러워요.

한국의 장애 예술의 현재

홍혜전: 저희는 작업하면서 행복함을 느끼잖아요. 그러면 사회적인 부분으로 좀 나아가서, 공공성의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장애 예술은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형희: 이야기한 장애 예술을 춤으로 국한해보면, 제대로 이제 시작이 아닌가 싶은데요. 장애를 바라보는 것들 중에 체험이나 테라피를 넘어서서 무대에 공연을 올리고 제대로 작품을 만드는 건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적으로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미 많은 안무자들이 춤의 다양성과 춤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많이 열려있어 누구나 춤출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많지는 않지만, 장애인 춤꾼들도 점차 활발하게 작업하게 되는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 2017년 유럽의 장애인 무용단체에 방문했던 것이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어요. 어쩌면 그때까지는 장애무용수에 대해 한계점을 느끼고 어느 정도의 불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때의 경험을 통해 우리도 훈련을 통해서 다양한 작업들을 만들 수 있고, 사회적인 시스템과 인식이 변화하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나아가 앞으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꼭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김형희 ⓒ양동민

지우영: 저는 보통 나라에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기 이전에 제가 스스로 저질러버리곤 했었어요. 지금은 그래서 저희 아이들 데리고 현대무용단을 하나 만들려고 해요. 워낙 소질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데 아직 사회 인식 같은 것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아직도 그런 민원이 들어와요. 학교 오픈할 때, 거기 어떤 애들이 다니는 곳이냐고, 우리 애가 거기 애한테 피해를 받을까 걱정이 된다, 이런 민원이 들어오거든요. 저는 장애 아이의 부모이기도 하고 비장애 아이의 부모이기도 하니까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하기는 하지만, 관공서가 제도적으로 그걸 완충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전에 제가 다른 곳에서 수업을 할 때 보면, 예술가들이 한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회복지사가 들어와서 ‘너 아까 말 잘못했지, 얘 시키지 마세요’ 이러면서 판을 다 깨놓는 일들이 있었어요. 수업을 하는 중간에 애를 혼내더라고요. 그런 부분도 좀 놀랐었고. 저희 아들 같은 경우는 센터를 다니다가 저희 시어머님이 CCTV를 보시고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어요. 거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가르치는 데인데, 교육 방식이 굉장히 엄격해요. 그래서 아이가 한글을 무조건 다 떼게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아들을, 움직이지 말라고 손을 때리는 걸 시어머님이 보고 난리가 나신 거죠. 1학년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이 굉장히 엄하게 하고 숙제를 안 한다고 손을 때렸나 봐요. 그랬는데 그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자기가 우리 아들 같은 아들을 대학교를 보냈다고.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봐 주지 않는 거죠.

홍혜전: 과거에는 그런 교육방법이 있었죠. 문제행동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우영: 그렇게 했는데, 실질적으로 이게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더 혼란스럽죠. 어떤 방법이 더 옳은 것인가, 내가 장애인이 되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잖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물론 학교에도 규칙이 있지만 아이는 다 다르고 60억 인구가 다 다르듯이 한 명 한 명 다 다르게 해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그래서 가르치는 실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형희: 자폐 같은 경우는 애들이 막 돌아다니잖아요. 우리가 이번에 꿈 대안학교에서 열네 명을 데리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가만히 있어도 기물을 파손하고 고함을 지르고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나중에는 한 시간만 해도 선생님들이 다 지치는 거예요. 발달장애 같은 경우는 하면 안 돼, 하는 방법이 먹힐 때가 있어요.

홍혜전: 우리의 장애 예술은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까진 전문무용단체가 아주 적죠. 장애 무용이 활성화되려면, 장애인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교육과 기회가 많아져야 하고, 관객도 장애 예술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장애 예술에 대해 향유할 줄 아는 예술 교육이 많아져야 해요. 국가차원의 지원과 법률적, 정책적 지원도 분명히 강력하게 있어야 하고, 장애인을 위한 예술 교육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예술 교육도 필요해요. 제가 장애인과 함께 작업하기 전엔 장애인이 지나가면 비켜서서 얼어붙어 있던 적이 있잖아요. 작년에는 이런 경험도 있었어요. 휠체어를 타는 선생님을 극장으로 모셔야 했는데 제가 그분보다 좀 늦게 도착을 했더니 극장에서 난리가 난 거에요. 휠체어가 무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가 확보되지 않아 어떻게 모셔야 되는지 당황하고 계셨죠. 극장 측도 선생님을 잘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시는 거죠. 어차피 경로확보가 어렵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휠체어를 들고 가도 되는지 여쭤보고 그냥 들고 들어갔어요. 무엇이든지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이 익숙했다면 당황할 일도 아니었고, 경로가 확보되지 않는 공간도 없었겠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여러 방향의 교육이 어서 이루어져야 되요.

홍혜전 ⓒ양동민

김형희: 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홍혜전: 네. 그런데 장애인 입장에서 봤을 때, 집 밖으로 나올 기회가 많지 않아요. 고등학교 교육까지 마치고 나면, 그 다음에 갈 데가 없잖아요. 그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이 필요해요.

김형희: 후천적으로 되는 장애도 있는데, 우리가 장애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어요. 지금 계속 이야기 나오고 있는 지적장애 같은, 대화조차하기 힘든 장애와 후천적으로 사고를 통해 얻는 장애는 또 다른 차원이거든요. 그런 후천적인 것들은 장애라기보다는 그냥 불편한 것, 우리도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홍혜전: 그래서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교육이 확실히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김형희: 저개발국가들은, 오히려 장애인이 없어요. 안 보여요. 못 나오는 거죠. 우리는 지금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고, 뭔가 지하철도 혼자 타고 다니고 그러지. 우리는 라오스, 몽골 같은 곳을 자주 가니까, 가보면 장애인들이 안 보여요. 그런데 우리도 옛날을 떠올려 보면, 그냥 그들이 있음에도 바깥으로 못 나왔던 것 같아요. 집에는 있는데. 그런데 지금은, 너무 장애가 많아요. 앞으로 더 많을 거예요. 집에 있지만 밖으로 못 나오는 장애가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환경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노산에, 환경문제에, 이런 것들 때문에 점점 발달장애라든지 다운증후군 같은 장애들이 너무 많아질 거예요.

홍혜전: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그리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우영: 사회의 인식을 개선해 달라, 지원해 달라,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동정표처럼 되어버리면, 사실 장애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잖아요. 제가 소록도에 봉사를 갔다 온 적이 있는데, 너무 살기 좋은 곳이더라고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경계선 아이들도 사실 사회로 넘어가기 가장 좋은 아이들인데도, 정말 여러 가지 것들로 인해 힘든 부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이 아이들만이 살 수 있는 소록도 같은 곳이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왜냐하면 사회성이 떨어지니까 서비스업 같은 것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예술만 하고 살 수도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결론일 수 있겠지만, 문화를 한 번에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장애 예술인 마을 공동체 같은 것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도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장애인들도 그 안에서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우영 ⓒ양동민

김형희: 더불어 산다는 것이 말은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참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우리 무용단 연습실에 장애인 무용수들이 들어오면,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간판을 한 번씩 쳐다봐요. 장애인들이 막 들어가니까. 만약에 우리가 장애인만 있는 단체라고 한다면 또 이 지역에서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지역에 장애인 학교가 세워진다고 해도 동네에서 난리가 나잖아요. 굉장히 이기주의적인 건데, 장애인들을 한 인격체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 필요하다고 봐요. 오히려 서로가 같이 있을 때 더 좋은 부분들이 또 있거든요.

홍혜전: 저는 두 번의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하나는 다문화유아들과 함께 한 예술교육수업이었는데, 어떤 아이 아빠가 프랑스인, 또 어떤 아이 아빠가 덴마크인, 그리고 엄마, 아빠 모두 흑인인 아이와 한국아이가 참여한 수업이었어요. 접촉즉흥표현 수업에서 흑인아이가 한국아이의 몸을 만지니까 만지지 말라고 우는 거예요. 그런데 프랑스아이에게는 예쁘다고 하고, 뽀뽀하고, 만지고. 다섯 살 아이들인데 말이에요. 또 한 번은 이태원에 있는 초등학교 어느 수업에서 발견한 장면인데, 흑인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질 않고 뒤로 밀어놓은 책상 아래에 숨어있더라고요. 왜 숨어있나 관찰해봤더니,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슬금슬금 나가서 이 친구한테 집적, 저 친구한테 집적, 당연히 친구들이 싫어하죠. 그러니까 또 따돌림 당하고. 두 사례들을 보면서 다름에 대한, 자기보다 못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봤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인간의 잔인한 본성은 교육에 의해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내가 봤던 흑인 아이의 사례처럼, 다른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무시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피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시선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랑 좀 다르게, 투쟁을 하려고요. 세상엔 투쟁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또 그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우리의 활동들이 어떤 면에서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희가 어렸을 때 춤을 추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든 열심히 활동과 작업을 지속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파이팅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형희: 당연히 해야 돼요.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내가 잘 하는 걸 멋지게 짜서 내 세계 안에 갇혀서 혼자 좋아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전달되지가 않는데. 그런 것들은 사람들도 보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데 진짜 예술가는, 여러 가지를 다 품을 수 있는 게 진짜 예술가예요. 그리고 그게 작품에 드러나는 거지. 나만 알고 나만 좋아서 하는 거는 사람들이 보지 않아요. 봐도 영감도 없고, 재미도 없어요. 모든 예술가들은 그래서 늘 열려있어야 한다는 거지. 열려있어야 한다는 게 수준이 낮아지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되는 거지. 우리 무용단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장애인과 같이 하는 작업들을 굳이 왜 하느냐고. 물론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지만, 진짜 실력이 있는 예술가는 그런 것들을 다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삶을 사는 사람이 무대 올라가서는 가짜를 보여줄 거예요? 공연을 보면서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뛰는 건 말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려면 평소에 늘 그렇게 잘 살아야 해요. 그리고 그 마음이 항상 열려있어야 하고. 그것이 장애든, 소외지역이든, 다문화든, 누구든,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자꾸 너무 구분 짓는 것 같아. 그래서 여기 계신 선생님들 같은 멋진 예술가들이, 좋은 예술판을 열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 좌담처럼 장애 예술에 대해 이슈를 다루는 것도 많이 발전한 거죠.

홍혜전: 마지막으로 후배예술가들 또는 장애 예술 작업을 해보지 않은 후배예술가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어떤 의견들이 있을까요?

지우영: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저에게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물이라고 표현해요. 내가 받았을 때는 선물이라 너무 좋았는데, 이걸 누군가에게 다시 주려면 용기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이 후배들이 받은 예술이라는 선물을, 본인이 받아서 기뻤던 것만큼 더 취약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랍니다.

김형희: 장애 예술이라고 특별히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이게 어떤 특별한 테크닉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살아가면서 바라보고 느끼고 캐치하는 예술가들인데. 삶의 한 영역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어떤 것은 예술이고 어떤 것은 예술이 아니고, 이렇게 너무 구분 지으려고 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죠. 실제로 예술은 엄청 힘이 있잖아요. 사람을 울릴 수도, 웃길 수도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고. 그래서 이걸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눠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나의 영역에서 삶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는 자세 같은 것이죠. 다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하면 문제가 하나도 없거든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내 것만 주장할 수 있겠어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가다보면, 다음에는 또 더 잘 하게 되거든요.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은 후배 안무가들이 자기 안무의 영역을 넓히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 같아요.

홍혜전: 저는 조금 고루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으면 자신의 예술세계가 그들과 함께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장애 예술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라면 장애인의 특성에 대해 공부하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안무능력이나 눈썰미만 믿고 시작하지 말고, 문제행동에 대한 대처능력이나 기타 사전지식들을 가지고 장애인을 만난다면, 지속적이고도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는 ‘사랑해라’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오늘 좌담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지우영 ⓒ양동민

김형희 : 1995년 사단법인 트러스트무용단을 창단하여 대표와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나눌 우리들의 이야기를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함께 나누고자 한다. 2017년 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케인 앤 무브먼트 무용단의 예술 감독이기도 하다.

지우영 : 독일 하노버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댄스시어터샤하르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경계선지능 아동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와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DTS행복들고나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예룸예술학교와 예하예술학교의 교장이기도 하다.

홍혜전 : 행복하고 창의적인 삶을 위한 무용예술의 적용과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하여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을 하고 있다. 또한 이런 학술연구와 더불어 무용현장에서 커뮤니티댄스 매개자와 춤추는 은평재활원 안무가로서의 예술 활동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조형빈_<춤:in>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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