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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4.10 조회 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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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남자도 발레하나요?

정도천_웹진<춤:in>독자

“남자가 발레를 한다고요? 그거 여자만 하는 것 아닌가요?” 내가 취미로 발레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꽤 오랫동안 수영을 했었는데, 30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문득 다른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컴퓨터 앞에서 가만히 앉아 일하는 디자이너 생활을 14년째 해오고 있는지라 척추는 이미 좌우 S자로 휘어진지 오래되었고, 목은 거북목에 자세는 구부정한 전형적인 디자이너의 직업병을 앓고 있었다. 가끔 이런 후유증 때문에 가슴통증이 심해져 정형외과에서 검진을 받기도 하고, 한 번에 10만 원이나 하는 도수치료를 매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치료를 받는 그때뿐, 몸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야근과 스트레스에 찌든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한번은 우연히 TV에서 이런 몸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필라테스가 좋다는 것을 보고, 회사 주변 아트센터의 필라테스 수업을 신청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신청자가 너무 많아 조기에 마감되는 바람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좌절해야 했다. 그러던 중 발레라는 과목이 눈에 띄었다. 발레는 사람들의 신청이 많지 않은 편이라 신청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던 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발레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과거 댄싱9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춤에도 여러 장르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현대무용과 발레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대중들에게 생소한 이런 분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깊이 알고 있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별다른 지식이 없이 막무가내로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나는 첫 수업부터 이 발레라는 신세계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쑥스럽지만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뻣뻣하던 몸을 좌우로 찢으며, 허리를 90도로 세우고 다리를 움직이는 포인과 플렉스 동작 등 그렇게 역동적인 동작도 아닌데 따라하다 보니 온몸에 땀이 나고 근육의 고통과 성취욕이 동시에 생겨났다. 또한, 바 동작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다보니 몸에 쌓인 스트레스와 복잡한 생각이 한 번에 날아가 버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로 찌든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매주 찾는 국립발레 아카데미 수업 스튜디오 전경 ⓒ정도천

이후 나는 발레라는 무용에 대해 새롭게 보기 시작했으며, 그에 관한 여러 정보들도 찾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수업을 처음 들었던 그 해에 내 생애 처음으로 발레 공연인 호두까기 인형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훌륭한 안무와 무대를 통해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멋진 공연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니 발레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러던 차에 국내 최고의 발레단인 국립발레단에서 국립발레 아카데미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좀 더 체계적으로 발레라는 분야를 배우고 싶어, 여기에 과감하게 지원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국립발레단 무용수 출신 선생님들이 각 클래스별로 발레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데, 발레의 기본 동작, 바 동작, 센터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한동안 굳어 있던 몸이 풀리는 스트레칭, 간단한 센터 안무 등을 수개월 해오면서 어느덧 발레라는 분야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발레를 좋아하는 다른 분들도 알게 되었고, 발레를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발레는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발레리노라는 역할로 무대에 서게 된다. 그들은 우아한 발레리나와 함께 역동적인 무대를 이끄는 동시에 매우 멋지고 과감한 몸짓으로 무대를 꾸미는데, 개인적으로 발레는 남자가 하면 더 멋진 분야라고 생각한다. 가끔 수업 중 발레리노 출신 선생님들을 보게 되면 쭉쭉 늘어나는 몸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선생님들의 역동적이고 우아한 동작에 매료되어 멍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도 많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나는 발레를 남자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다.

매년 연말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게 해주는 호두까기 인형 공연 ⓒ정도천

최근 들어 클래식 공연의 관심과 발레 분야를 다룬 예능 TV 프로그램으로 인해 취미 발레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취미 발레인들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발레의 긍정적인 면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발레는 하면 할수록 해냈다는 성취욕과 함께, 묘한 매력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다. 스트레칭이 잘 되면 그날 하루가 왠지 즐겁고, 바뜨망이 잘 되면 하루를 더 역동적으로 보내고 싶고, 피아노 음악 중 익숙한 차이콥스키 음악이 나오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발레는 나 혼자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더 많은 남자들이 즐기면 좋은 무용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도 발레 하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 합니다. 여자분 들보다 오히려 더 즐깁니다!” 매년 5월에서 6월까지 국내 발레단들이 모여 대한민국 발레축제를 연다. 올해도 역시나 개최될 예정인데 이 기간에는 매우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발레 공연들이 무대에 많이 오르게 된다. 마음속에 발레에 대한 벽이 있었던 분들은 이러한 무용수들의 멋진 무대를 통해 발레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또한 발레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꼭 한번 체험해보셨으면 좋겠다.

발레의 발전과 멋진 무대를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시는 무용수들, 국내 민간 발레단, 또 발레를 즐기는 취미 발레인들이 모두 무용으로 좀 더 아름답고 멋진 세상을 만들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

정도천 정도천은 취미발레를 한지 3년 차에 접어드는 디자이너출신 경영자로, 현재 정보디자인전문회사 인포크리에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30대 후반에 와서 발레에 매료되어 매주 수업을 듣고 있으며, 비록 나이는 40대이지만 발레하는 순간만은 20대가 되어 수업에 매진하는 열혈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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