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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3.15 조회 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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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극장 밖의 춤 - 뉴욕 인터뷰

김채현_무용평론가

기획연재 <뉴욕의 춤과 공공예술, 그 현장에 다가서다>는 격월로 게재되는 에세이입니다. 김채현 무용평론가의 현장 인터뷰로 뉴욕의 춤과 공공예술을 살펴봅니다. 뉴욕 공공예술 현장의 운영 실무자들을 만나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춤을 포함한 공공예술 활동을 국내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유효한 참조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벽에 부착된 DTE의 슬로건. 정의롭고 즐거운 세상을 예술로 세우자 ⓒ김채현
공공예술이 순수예술과 공존하는 거대 도시

뉴욕은 맛있다. 열 블록에 하나쯤 손꼽을 레스토랑이 있지 않을까. 뉴욕은 멋있다. 온갖 디자이너가 맨해튼 도처에서 멋을 되새기며 지금도 개성 창조에 몰두할 것이다. 뉴욕은 예술적이다. 고급예술과 실험예술이 쉼 없이 서로를 자극하며 갖가지 이미지를 제시해왔다. 뉴욕은 즐겁다. 수많은 극장에서 온갖 스토리로 발길을 끌어들인 지 오래다. 뉴욕의 재미, 끝이 안 보인다. 잠정 결론, 뉴욕은 매혹적이다.
뉴욕에서 누가 이런 인상을 감출 수 있겠는가. 이렇듯 뉴욕(주로 맨해튼)이 세상의 부러움을 사는 이면에서는, 내 생각으론, 무엇보다 문화예술과 자본을 결합시키는 뉴욕 특유의 요령이 결정적 구실을 한다. 소소하게는 트럭 푸드에서조차 상품화의 결기가 완연한 곳이 뉴욕이다. 금융, 정보산업, 크리에이티브 산업 등으로 미루어 뉴욕은 자본주의의 최고 거점 아닌가. 그 각도에서 뉴욕을 짚어가며 사례들을 주목하고 해당 전략을 부각시키는 말들은 이 세상에 차고도 넘치며, 너무 자주 들은 탓에 당연시된다.
뉴욕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뉴욕의 문화예술에 관해 소개되는 그 사례들, 치밀한 전략들은 무엇이든 대개 모범 답안으로, 일종의 표준으로 양해되고 내세워지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뉴욕에 대해 말해지지 않는 것은 뉴욕에 없는 것이고, 뉴욕에 없는 것은 세상에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요약될 법한 생각을 적지 않은 책과 수많은 블로그들에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같은 등식은 마치 지당한 상식처럼 굳어진 것 같고, 이로 인해, 뉴욕의 다른 면을 간과하는 폐단이 눈에 띈다. 특히 자본, 경영, 트렌드, 코드가 키워드인 곳에서 이런 편향성이 강하다. 뉴욕을 향한 거대한 착시 현상이 작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방식의 문화예술이 주도하는 뉴욕에서, 혹시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공공예술도 활발하다. 자본과 상품화의 논리에 예속되지 않은 공공예술을 추구하는 예술인이 뉴욕에 많으며, 뉴욕에서 공공예술도 그만큼 실현되고 있다. 공공예술과 순수예술을 넘나드는 예술인이 흔한 현상으로 미루어 뉴욕에서 공공예술과 순수예술의 구분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브루클린 폐허에 뛰어든 무용가



맨해튼에서 바라다 본 브루클린 전경. 해질녘이 이처럼 아름답다고 하나,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럴 것이다. 사진의 오른쪽 가장자리 바깥에 레드훅 부둣가가 위치한다. ⓒ위키피디어




마사 바워스 ⓒ김채현

영화 ‘브루클린’이 아니었다면 굳이 브루클린을 기억할 계기가 있었을까? 그 영화는 브루클린이 아직 퇴락하기 전인, 그래서 해외 (노동) 이민이 여전히 이어지던 호시절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브루클린은 산업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90년대에 이르면 사실상 만신창이가 된다. 뉴욕 허드슨강 하류 저 건너편으로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이 빤히 보이는 낭만(?)이 있고 맨해튼과는 일찍이 대교로 연결되어 뉴욕의 제조업 허브 구실을 한 그곳이 90년대 이전부터 그리 되었다. 70년대 후반 지역의 핵심 산업 조선업이 붕괴하고 해군 기지도 이전하자 자유분방한 히피들과 유명 연예인들마저 미국 서부로 떠나버리는 그런 연쇄 반응의 결과, 실업자도 속출하였다.
무용가 마사 바워스가 1993년 브루클린 부둣가에서 장소 특정 행사를 열었을 때 단적으로 그곳은 도시 속의 폐허였다. 못질 박은 가게, 버려진 거리, 혹 아이를 데리고 가더라도 공포에 질려 황급히 빠져나가야 하는 그곳…. 브루클린을 살려내자는 지역 여론이 일었을 때 바워스는 기꺼이 장소 특정 공연 <부둣가에서>로 동참하였다. 오래 방치되어 무서운 콘크리트 동굴이 되다시피 한 대형 물류 창고들에서 남녀노소 지역민들이 다수 동참하여 짓눌린 응어리를 외친 이 공연(!)은 지역민의 축 처진 어깨를 몇 시간의 공연으로 일거에 일으켜 세웠다 하며, 그 인연으로 다음해부터 바워스는 해마다 초여름의 ‘레드훅 페스티벌’을 지역 정례 행사로 정착시켰다.

공공예술에 전념한 DTE


DTE가 소재한 레드훅 부둣가 창고거리. 왼쪽 건물 2층에 DTE가 있다. ⓒ김채현


DTE 레드훅 페스티벌 ⓒDTE 제공

바워스가 운영하는 단체 Dance Theatre Etcetera(DTE)는 무용단은 아니며 무용 프로그램 운영 전문 비영리 단체이다. 지난 2월 연방 리모델링 중인 물류 창고 2층에서 바워스를 만난 DTE 사무 공간에는 직원 둘이 있었다. 바워스와 DTE의 넓은 시각과 활동 반경을 보여주려는 듯, 창고형 사무 공간은 학교 교실보다도 훨씬 넓었다.
DTE의 활동 내용은 3가지로 대별되며 모두 공공예술 활동에 속한다. 레드훅 페스티벌 이외에 전문 현장 예술인이 커뮤니티 일반인들과 공연 및 파티 형식으로 어울리는 ‘레드훅 무브잇’을 가을에 열며, 연중 내내 춤 중심의 통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레드훅 페스티벌은 주민 참여 중심의 파티와 전문·비전문 단체의 공연 행사로 진행되고, 지역 커뮤니티와 DTE를 잇는 기본 활동으로 중요성을 갖는다. 레드훅 무브잇은 지역의 여러 부류의 전문 단체의 공연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DTE는 평상시 예술 교육에 주력한다. 10대 중반 ~ 20대 중반의 청소년 및 청년층이 교육 대상으로서 지역의 학교 안에서 교사들이 상주하는 프로그램과 학교 바깥에서 진행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 그리고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교육 분야는 춤뿐만 아니라 연극, 극작, 힙합, 디지털 영상 및 영화 제작 분야를 포괄한다. 이들 교육은 교사 개개인이 섭외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DTE 자체의 프로그램에 준해서 교사, 학생, 학교가 상호 협의에 따라 진행한다는 점에서 아주 조직적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청소년 예술 교육에 관한 수요는 무척 다양한 동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므로 어느 곳의 예술 교육을 표본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DTE의 예술 교육이 커뮤니티 내에서의 수요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면서 취업 및 대학 진학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 교육은 전문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 단체가 예술 교육에 주력한 역사는 20년에 이른다. 교사 개개인의 개별 활동에 일임하기보다 조직의 교육 철학 및 교과에 준해 진행하므로 교육 내용이 축적될 것은 물론이다. DTE가 자체적으로 내세우는 다음의 통계치는 참고할 만하다. 수강자의 98.9%가 학습과정에서 개선을 보였으며, 80%가 학교 등교에 흥미를 새롭게 갖게 되었으며, 65%가 취업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성과를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사실은 예술 교육 자체의 힘을 입증하는 사례로 인용될 만하다. 단체 사무실 입구에 ‘티칭 아티스트’라 해서 담당자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붙여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각자 교육과 예술 양면에서 나름 전문성을 겸비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지역과 동행하는 예술적 실천



DTE의 거리춤 ⓒDTE 제공

브루클린은 뉴욕의 다섯 자치구(보로) 가운데 가장 크다(인구 250만 명). 그 가운데 레드훅이라는 몰락한 부둣가에서 DTE는 장소 특정의 커뮤니티 이벤트를 20년 넘게 진행해왔고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20년가량 실시해왔다. 이곳 역시 뉴욕의 어느 지역과 유사하게 흑인, 스폐인계, 아시아계가 섞여 있으나 백인의 비율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 내 인종 갈등과 가정불화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10년 전에 IKEA 분점이 뉴욕 최초로 레드훅에 들어섰듯이 이 지역이 폐허를 딛고 일어서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도 출렁여왔다. 이쯤에서 춤과 예술에 주어지는 역할들은 해당 단체가 소화하기 나름일 것이다.
지금은 열명 남짓 교사진과 지역 사회와의 네트워크로 활동들이 힘있게 추진되지만, 레드훅에서 이 같은 커뮤니티댄스 활동은 애당초 마사 바워스라는 한 여성에 의해 개척되었다. 25년전 당시 레드훅 실정을 바워스는 폐허라 단언하였다. 바워스는 예술가의 고독을 자신으로선 납득할 수 없었고 소규모의 옥내 공연장 활동이 자신에게는 미흡해서 이미 무용학도 시절에 자기로선 예술의 힘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행하기로 일찌감치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점차 민권운동이 확산되고 베트남 전쟁 반대 등 스튜던트 파워가 득세하던 그때 청소년기를 보냈고 대학 졸업 후에는 무장해제(武裝解除)에 앞장 서는 단체의 일원으로서 춤의 사회 참여를 두루 실천해온 인물이다.
그런 끝에 바워스는 지난 25년간 지역 커뮤니티에서 장소(그리고 지역) 특정의 커뮤니티댄스, 이벤트, 교육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퍽 불편한 부둣가 창고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재생하는 DTE에 대해 지역 사회는 협력과 후원으로 답하고 있다. 또한 도시 재생으로 조성되는 공간을 예술인만의 공방으로 제공하는 관행을 뛰어넘어 지역 사회와 동행하는 춤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독지가도 있다. 10년 전 어느 부동산 사업가가 지금의 사무실 공간을 무상 임대하였던 것이다. 2월달 추운 겨울날 부둣가 진입로 대로에 차량이 간간이 지나다닐 뿐 통행자가 적은 이곳에서 마사 바워스는 여전히 공공예술의 꽃을 가꾸고 있었다.

참고 Dance Theatre Etcetera 웹사이트 https://dtetc.org/#


김채현_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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