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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3.15 조회 8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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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댄스 노트 - 백호울 + 이수은

“의식을 의심하기”
: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백호울과 공연연출가 이수은의 대화
이수은_연출가, 무대미술가



이수은 제공

안무가이며 무용수인 백호울이 정말 간만에 베를린에서 공연을 한다. 2013년에 백호울 안무가가 <NOTHING for 60min>이란 공연을 포츠담에서 올리고 나서 5년 만에 보는 공연이다. 사실 백호울 안무가는 유럽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공연을 보는 건 쉽지 않은 기회다. 아커 슈타트 팔라스트(Acker Stadt Palast) 공연장에 갔더니, 입장료를 10유로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최소 10유로 이상 낼 수 있으니 관객 스스로 입장료를 정하라고 하였다. 일반관객/할인관객으로 나누지 않고, 관객에게 스스로 공연의 입장표를 정하게 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의식을 의심하기
수은: 호울, 공연이 5년 전이랑 달라졌어! 사실 내 시각이 달라진 것이지만! (웃음). 같은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다른 느낌을 받은 적은 정말 드물었던 것 같아요. 이 무용공연, <NOTHING for 60min>의 주안점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



<NOTHING for 60min 2> photo by Jubin Kim
호울: 우리가 같은 말을 듣거나 같은 것을 보았을 때,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사람마나 다 다르잖아요. 그리고 어떤 한 부분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양 단정 짓고, 편견을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어요. 몸의 일부분만 보이게 해서 몸이 몸이 아니게 해석되게 하고 싶었고, 마지막에 60분 동안 보았던 것은 결국은 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움직임, 영상, 사운드의 협업이기 때문에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동등한 상태에서 서로가 보일 수 있는 것에 집중을 많이 했어요.
수은: 움직임을 어떻게 유추해 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무대 위에서 신체는 다만 정확하게 규칙적으로 움직이거나, 규칙을 깨거나, 유연하게 움직이거나 경직되거나 할뿐인데, 그 규칙성과 엇박자 사이에서 살아있는 세포분열을 봤다고나 할까요? 매 움직임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줘야 하던데, 몸에 쥐날 것 같았어요.
호울: 보통 움직임 콘셉트 하나를 잡고, 그것만 파고들어가는 작업을 해요. 콘셉트가 클리어하면 그 다음부터는 본능적으로 저도 모르게 움직여져요. 몸 자체가 지닌 리듬을 가지고 노는 게 규칙과 불규칙들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수은: 특히 이번 공연에서 유독 다른 무용공연과 다르게 느낀 건, 신체의 움직임과 음악의 파트너십이었어요. 공연에서 신체의 일부분들이 몸을 쓰다듬듯이 구석구석 터치하는데, 마치 컴퓨터를 재부팅해서 정보를 정리하는 듯한 의미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 이미지가 계속, “나는 누구냐? 나의 주체는 누구냐?”라는 의미를 계속 전달하는 듯했는데, 어떤 순간 음악이 이 움직임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구나 생각을 했어요. 음악이 없다면 움직임은 어떻게 관객에게 다가갔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호울: 하하하. 언니 해석 너무 재미있어요. 음악이 이 작업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움직임이 작기 때문에 소리로 인해서 움직임이 비주얼 적으로 크게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 특정 동작에 특정 사운드를 일부러 넣기도 했어요. 그 부분이 효과적으로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첫 연습부터 뮤지션이 함께 연습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 작업에서 음악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수은: 혹시 움직임과 뇌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우리 몸이 일상에 살아가면서 흡수한 정보들을 마치 컴퓨터처럼 다시 재정리하는 듯한 움직임들을 보니, 뇌는 단지 우리의 일상 경험들을 수집하고 재정리하는 창고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신체가 각각의 신경들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브레인의 역할은 뭘까요? 백호울은 무대 위에서 뇌와 신체의 분리뿐만이 아니라, 표피와 신경, 혈관, 혈액의 순환까지 분리시키는 연상을 불러일으켜서 나중에는 신체의 일부분을 복제 가능하게끔 만드는 이미지를 창조해 냈어요.
호울: 지금 내년에 할 작업을 준비 중인데, 판화에서 시작된 리서치가 의식(consciousness)까지 갔어요. 생각이 뇌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순환하는지가 흥미롭고, 알고 싶은 부분이에요.
수은: 공연을 보고 나니, 내 몸에 대해서 의심이 생겼어요.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 알아요? 관람객들이 다 빠져나간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밤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영화. 내가 의식을 놓는 그 순간, 내 몸속의 표피와 세포들이 살아 움직이는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조용히 내 의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듯한 각각의 신체들이 실은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좀 섬뜩했어요.
호울: 하하. 이 해석도 의식(consciousness)과 관련되네요.
베를린에서의 워크숍 경험
수은: 베를린에서는 공연 거의 처음이지 않아요?
호울: 베를린에서는 보통 일 년에 한두 번 공연을 하고 있는데, 제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곳이 베를린이더라고요.
수은: 베를린에 산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원래부터 베를린에서 살 생각이었어요?
호울: 베를린을 염두에 두고 나온 건 아니었고요, 2005년에 여행 겸 워크숍 겸 혼자 유럽으로 나왔었죠. 그때 방문한 첫 도시가 베를린이었어요. 그때 참여한 워크숍이 좋아서 유럽에 대한 환상도 생겼고, 베를린에 커다란 그라피티가 널려 있는 게 인상적이고 너무 좋더라고요.
수은: 오호! 워크숍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봐요.
호울: 베를린과 스톨젠하겐(Stolzenhagen)이라는 시골에서 워크숍이 있었는데, 시골의 오래된 건물에서 했던 워크숍이 인상에 깊었죠. 시골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춤만 출 수 있는 곳이었어요. 커다란 별장에서 참여자와 선생님들이 함께 숙식하면서 일하면서 원 없이 움직였죠.
수은: 워크숍에서는 무얼 했는데요? 뭔가 특이한 점이 있었어요?
호울: 즉흥을 하라고 지시하고선, 움직임이 끝날 때마다 의견을 묻는 게 특이했어요. 왜 움직이냐, 어떻냐, 움직임에 대한 네 생각은 뭐냐 등등…. 그래서 춤을 추면서 스스로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에서는 선생님이 동작을 주고 참가자가 따라하는 식이었는데, 한국에서는 계속 테크닉을 요구했는데, 여기에서는 생각을 표현하길 원하는구나 하는 게 제일 크게 느낀 차이점이었어요. 그러고 나니, 내 몸이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가 말하는 모든 걸 진지하게 경청하고, 제 움직임을 보고 칭찬 해주는 것이었어요.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 한국에서는 제가 못하는 사람으로 대우받았는데,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느꼈어요. 그때 유럽으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은 독일 사람들 때문에 좀 얼떨떨했고, 그들의 반응에 유럽에 대한 환상이 생겼을 수도 있어요. (웃음)
수은: 정말 그래서 베를린으로 이사할 생각을 했다고요?
호울: 그럼요. 베를린을 나오기 전까지 저는 안무자로서 한국에서 공연할 수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누군가 내 움직임에 대해서 존중해 주고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게 감사하고, 어쩌면 그 곳에서 내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수은: 첫 안무 작업은 뭐였어요?
호울: 2006년에 첫 작품을 했는데 <관계 -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I want to talk with u)>라는 듀엣이었어요.
무용수 두 사람이 눈과 눈, 손과 손, 발과 발의 컨택만 하는 거였어요. 2009년에 첫 작품과 그 다음의 듀엣작품 <관계-빛이 바래다>로 비엔나, 클라겐푸르트, 스톨첸하겐, 베를린에서 공연 하면서 자주 유럽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5명이 한 팀이었는데, 투어비용도 만만치 않았죠. 다행히 CJ 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서 투어를 할 수 있었어요.



Did U Hear / Photo by Tanz Hotel Ernst Gruenwald
수은: 제 기억에는 솔로 작품이 많은데 의도한 거예요?
호울: 제가 원해서 솔로작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저는 무용수로 솔로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굳이 무용수로 솔로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하고 싶은 작업이 있는데 여건이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솔로를 하게 되죠.
수은: 지금까지 몇 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호울: 총 7작품이고, 그 중 5개가 솔로작업이에요. 첫 번째 안무작업이 <관계 -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어요(I want to talk with u)>였는데, 이 작품은 1.5m x 1.5m의 공간 안에서 움직였죠. 공간을 제한한 이유는 솔직히 다른 공연들보다 어떻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고안해 낸 아이디어였어요. 그리고 움직임의 테크닉을 뺐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작품을 짜고 싶었어요. 사소한 움직임으로 관객들의 동의를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수은: 공간을 크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작게 간다. 어디까지 한정지을 수 있을 지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호울: 그 다음 작품 <관계 - 빛이 바래다>의 공간은 무용수 둘에 의자가 하나였어요. 그리고 비엔나에 장소특정형 공연을 하러 갔었는데, 제가 받은 공간이 창과 문이 있는 단순한 방이었어요. 공간을 보기 전에는 그냥 영상과 몸을 활용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창문이 계속 거슬리는 거예요. 그래서 영상과 함께 창문을 프레임 삼아 창문 안에서만 움직이는 신체를 보여주는 공연을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관객들이 또 좋아하더라고요. 이 작품이 <NOTHING>이었고, 그 때의 경험을 발전시켜 창문 뒤의 있었던 몸만 빼서 공연한 게 <NOTHING for body>이었어요.
수은: 의자에서 창문의 프레임으로 공간이 줄였네요.
호울: 이렇게 작업을 진행하니, 그 다음 더 작은 공간은 뭔가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 다음 공간은 그래서, ‘몸’이 되었어요. <NOTHING for body>에서는 몸으로 계속 공간을 만들어요. 그리고 그 다음은 컴퓨터에 있는 카메라가 공간이 되었죠. 그게 <NOTHING for 60min>이었고요. <NOTHING> 시리즈 공연을 보고 들어오는 피드백이나 작업을 하면서 가지는 느낌은 몸의 개개의 작은 부분들이 사람처럼 독립된 생명체로 변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생각에 이르고 나니, 우리에게 얼굴이 없으면 다른 몸이 어떻게 얼굴을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더라고요.
수은: 다른 신체가 얼굴을 대신한다?!
호울: 그래서 나온 작품이 2014년도에 만든 <그대는 들었는가(Did U hear)>였어요. 앞선 NOTHING 시리즈와는 다른 음악과 움직임의 작업이었죠. 음악도 노이즈를 많이 이용하고, 움직임도 훨씬 경직되어 끊어서 움직였죠. 강하고 불편한 움직임. 관객이 불편할까 걱정되던 작품이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 작품으로 2016년에 스페인 발렌시아의 10 sentidos 안무경연에서 안무상을 받았어요. 단 한 안무가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얘길 제가 스스로 말하긴 부끄럽네요. 창작을 가지고 순위를 매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 상 받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진 않아요. 사실 상금 때문에 갔어요.(웃음)



백호울, 이수은 제공
수은: 상금, 중요하죠! 예술도 중요하지만, 예술적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 주먹이 불끈 쥐어지네요. 화제를 급전환해 볼까요? (웃음) 과거 작품의 비디오를 자주 봐요?
호울: 쑥스럽네요. 이런 얘기를 하려니까… 네. 일 년에 2번 정도는 찾아서 보는 것 같아요. 갑자기 어떤 작품이 보고 싶은 날이 있어요. 작품을 만들 때는 몰랐는데, 다시 비디오를 보면, 전에 보지 못했던 움직임이나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초연을 하고난 주에는 그 주 내내 공연 비디오를 봐요. 약간 정신병자 같죠? 그런데 그렇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사실 내 작품을 내가 즐기면서 본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겐 잘 못해요. 이해를 잘 못하시더라고요. 자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은: 작업을 즐기면서 본다는 걸 왜 숨기려고 해요? 나도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자기 작업을 사랑할 수 있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내 주위에는 작업 다 만들어 놓고, 첫 공연 올라가면 너무 긴장하거나 이유 없는 두려움에 공연을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호울: 제 말이 이상하지 않은 건 언니도 베를린에서 오래 지내셔서 아마 그럴 거예요.(웃음) 이유야 추측할 순 있겠지만, 한국에서 이런 생각을 말하면 좀 따가운 시선을 받았거든요. 그럼 어때요, 다만, 전 제 공연비디오를 보는 게 너무 즐거워요.
음악과 관객
수은: <NOTHING for 60min>에서도 느꼈지만, 백호울의 공연에 있어 음악은 특히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감독 마티아스 에리안(Matthias Erian)과 협업한지는 꽤 오래 되었죠?
호울: 벌써 10년째에요. 마티아스가 한국에 공연하러 왔다가 알게 되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즉흥을 함께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서로 실험해 보면서 맞춰갔어요. 마티아스의 음악의 좋은 점의 하나는 움직이게끔 만들어줘요.
수은: 음악과 움직임이 아주 긴밀하던데 그러려면 오래 리허설 함께 해야 하지 않아요?
호울: 제가 안무를 시작하면서 가진 꿈이 작품 콘셉트 때부터 공연 때까지 항상 함께 하는 팀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어요. 콘셉트 구상부터 시작해서 모든 리허설을 함께 하면서 함께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는 팀을 갖는 거였죠. 적어도 마티아스와는 그 소원을 성취했어요. 리허설은 보통 즉흥으로 시작하는데, 그 즉흥을 보면서 마티아스가 음악을 제안하죠. 그러면서 구체적인 음악적 콘셉트를 잡아가는 거예요. 즉흥이 연습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즉흥을 하면서 서로 옴직임과 음악의 좋은 부분을 기억해서 모아가는 방식의 작업도 자주 하죠. 물론 연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요.
수은: 우아! 드림팀이네요! 관객들의 시선은 어때요? 무용공연은 몸을 추상적으로 움직여서 관객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호울: 어렵죠. 관객들이 무용공연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작품이 관객을 터치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봐요. 관객의 흥미를 건드리는 게 쉽지 않아요. 제 초기 작업은 관객들에게 아주 친절했는데, 점점 불친절해지고 있어요. (웃음) 작업과 관객의 이해의 경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운 숙제에요. 내가 좋아하는 건 실험적인 작업이거든요. 관객과의 소통도 중요하고.
수은: 관객이 없으면 공연할 수 없으니까?
호울: 솔로 작업 중에 란 작업이 있어요. 최근 작업이었는데 관객을 신경 쓰지 않고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움직임을 어떻게 배치하는 가에 대해 구성할 때, 관객을 많이 신경 쓰게 되는데, 이 작업의 주제도 무겁고, 이번엔 작업자가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 봤어요. 많이 아쉬운 작업이에요. 이때 몸의 한계가 왔던 시점이기도 하거든요. 몸이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아 힘들 기도 했고, 움직임 적으로 새롭게 발견하기도 어려웠어요. 나와의 싸움이었던 작품이었어요.
수은: 관객들의 시선이 안무자 백호울에게 중요한가요?
호울: 솔로 작업 중에 <Foreign body>란 작업이 있어요. 최근 작업이었는데 관객을 신경 쓰지 않고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움직임을 어떻게 배치하는 가에 대해 구성할 때, 관객을 많이 신경 쓰게 되는데, 이 작업의 주제도 무겁고, 이번엔 작업자가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 봤어요. 많이 아쉬운 작업이에요. 이때 몸의 한계가 왔던 시점이기도 하거든요. 몸이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아 힘들 기도 했고, 움직임 적으로 새롭게 발견하기도 어려웠어요. 나와의 싸움이었던 작품이었어요.
수은: 백호울은 지금 안무와 무용을 병행하고 있는데, 안무하는 건 어때요?
호울: 안무는 제 천직이란 생각을 했어요! 작년 한국에서 창작산실 후보 심사 쇼케이스를 했을 때, 저는 출연을 하지 않고 다른 무용수들과 작업했는데, 더 이상 즐거울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상상하고 있던 걸 다른 사람들이 풀어주는 걸 보는 게, 나 스스로 무대에 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그때 작업기간에 완전 빠져서 ‘안무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이후로 꿈이 생겼어요. 아직은 비밀이지만, 꿈이 생겼다는 게 참 좋아요. 베를린 와서 힘들게 살면서 지치기도 하고, 좀 팍팍해졌거든요. 30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저는 순수 공연으로만 생활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앞으로의 작업과 생활의 유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아직까지 다른 일을 찾지 못하는 건, 아직은 작품을 만드는 것 이외의 다른 것에 시간 뺏기는 게 싫어요.
수은: 공연으로만 사실 생계유지하는 건 어렵죠. 무엇보다 공연에 중점을 두면, 시간배분이 어려워서 다른 일거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구요.
호울: 네, 맞아요. 그래도 공연이 저에겐 우선이니까 다른 아르바이트 하지 않고 버티는 거죠. 한국에서 살 때에는 이십대 중반까지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그때는 무용수로 활동했거든요. 젤 힘들었던 게, 아르바이트 시간 때문에 연습 시간을 바꿔야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제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안무를 하면서 창작 작업을 하는 게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빨리 마음의 결정을 내렸죠. 안무가를 하려면 돈을 못 버는 게 당연하니까. 사실 이 부분이 당연하다는 게 말도 안 되는 현실이긴 하지만. 금전적인 욕심을 포기하자.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었던 건, 그때는 어렸고, 무용수로로도 계속 활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안무자로 활동하니 생각이 좀 더 많이 달라지네요.
수은: 2006년부터 안무를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어때요? 10년 전의 안무가와 10년의 경험을 쌓은 백호울의 안무가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호울: 10년 전에는 욕심 많고 무척 고집스러웠는데,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죠. 그땐 춤이 전부였었는데, 살아가면서 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요.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성숙해졌고, 내려놓을 줄 아는 여유도 생긴 것 같아요. 또 예전엔 내가 잘하는 게 중요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젊은 세대들, 지금 활동하는 또래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겪었던 어려움들을 젊은 세대들은 겪지 않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작업했으면 좋겠고,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누가 나에게 하나만 알려줬더라면 이렇게 멀게 돌아오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리고 사십대를 바라보고 달리는 다른 안무자들을 보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게 너무 대단해보이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아직까지 이 일을 하는 게 감사하지만, 그 뒤엔 어려움이 많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요.
베를린에서 안무가로 살아가기
수은: 앞서 베를린을 엄청 좋아했다고 했죠? 아직도 베를린이 마음에 들어요?



이수은, 이수은 제공
호울: 베를린을 선택한 건 특별한 이유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베를린에서 활동할 생각은 아니었고,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웃음) 그리고 첫 3년간은 베를린에 거의 머물지 못했어요. 1, 2주 정도 체류하다가 계속 다른 곳으로 공연하러 다녀야 했거든요. 그러다가 베를린에서 펀딩을 받아서 작업을 해 보고 싶어 알아보니, 베를린에서 활동한 내역을 써내야 하는 란이 있더라고요. 저는 베를린에서는 거의 공연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펀딩을 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베를린에서의 작업을 포기했죠.
수은: 맞아. 독일 지역 문화재단 펀딩을 받으려면 결국, 2,3년간 지원금 없이 활동하면서 자신을 알려야 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독일 펀딩 종류도 한국처럼 여러 가지인데, 베를린 시에서 지원하는 펀딩은 순수하게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지원금이죠. 이 지원금은 베를린의 공연 씬에 얼굴을 들이대고, 활동해야 받을 수 있죠. 이 부분은 한국의 지역문화재단 펀딩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다만 독일의 펀딩은 펀딩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영역들이 더 자유로운 게 장점이라고 봐요. 한국에서는 펀딩 지원하는 작업자들의 작업료나 인건비를 책정하기가 어렵고, 나중에 내역 수정하기도 어려운데, 독일의 펀딩은 그런 면이 좀 더 자유롭죠. 그리고 펀딩의 많은 퍼센트가 지원자의 개런티를 포함한 아티스트와 스텝의 개런티 지출에 대해서 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죠. 창작자의 작업의 대가를 당연하게 인정하는 점, 프로젝트 진행 시 예산의 변경이 자유로운 점은 한국 펀딩시스템에 소개해 주고 싶은 부분이기도 해요.
호울: 베를린은 저에겐 그냥 삶의 터전이에요. 처음에 베를린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환상이 있었어요. 베를린에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활동하기를 원해서 그런지, 모두 다 가난해서 그런지, 노페이 공연이나, 티켓 값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많이 진행하더라고요. 그런 현실은 한국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아티스트들의 대우가 더 좋을 거라 착각했어요. 베를린은 처음 시작하는 아티스트들에게는 아주 좋은 장소인 것 같아요. 뭐든지 다 해볼 수 있는 자유는 있거든요. 저같이 작업하다 온 사람들은 다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도전해야 하니까, 그게 쉽진 않네요.
수은: 요즘 베를린에서 공연을 보러 가면 불편한 게, 독일의 특정 통용되는 작품의 스타일의 유행이 마치 최신이고 쉬크한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를 많이 발견해요. 처음에 새롭다고 느꼈던 표현들이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니까 공연들이 지루해지더라고요. 독일 공연계에는 정치사회 비판적 시각을 작품에 투영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어요. 18세기 시민극이 그렇게 해서 탄생되기도 했지만, 몇 년 전부터 응용연극학을 전공한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그런 의식과 함께 공연이 점점 문자화되는 경향이 너무 강해지고 있어요. 공연주제만 충실하게 들어내고, 공간화 작업, 움직임 작업, 시각적 작업을 소홀하게 해서 눈을 감고 들어도 충분한 공연들이 많아지는 게 안타까워요. 공연이 재미가 없어! 책을 읽으면 되는데 내가 왜 굳이 공연장에 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호울: 베를린에서 6, 7년 정도 지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베를린은 그렇게 글로벌한 도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밖에서 볼 땐 열려있어 보이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면 굉장히 보수적인 곳이라고 느꼈어요. 밖에서 보이는 베를린의 인상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인데, 무용 씬 안으로 들어오니, 패밀리처럼 외부인에게 관대하지 않은 곳이더라고요. 무용 씬만 봤을 때 제가 가지는 느낌이에요. 사실 이렇다 할 국제적인 안무가를 배출하는 것도 아니고, 베를린의 무용 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베를린에서만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극장 디렉터들이 해외로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베를린 안에서만 통용되는 씬과 아티스들이 두텁다는 게, 보수적인 베를린의 한 면이죠. 이건 베를린의 작은 조각을 경험한 저의 편견일수도 있어요. <NOTHING for 60min> 작업에서 말하려던 것처럼, 저 역시 저의 경험치에 의해 베를린을 단정지어 버리게 되네요.
수은: 독일 사람들은 정서상 유럽에서 변화가 느린 편에 속하죠. 독일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세계 정치사회에 관심을 많이 갖고 토론이나 논쟁을 많이 하지만, 실은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사회시스템의 안정화에 대한 토론이 주 고민이죠. 하지만 또 반대로 자기비판이 엄격한 나라이기도 해요. 냉소적으로 자기를 비꼬는 게 독일의 개그 스타일이잖아요.
호울: 전 베를린에 대해서 착각을 깬 게 또 있는데, 여기도 역시 학연/지연이 중요한 곳이었다는 거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이들은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건 제 착각이었어요.
수은: 맞아요. 슬프지만, 이 세상에서 학연/지연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이곳도 문화계의 정치가 아주 심하죠. 그래서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생각하게 되요. 베를린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10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한국과 독일을 비교하던 걸 그만 뒀어요. 사람들이 베를린/독일에 살아서 좋지 않냐고 많이 묻는데, 내 대답은 항상 모호하죠. (웃음) 아, 좋은 것 있다! 공기가 한국보다 맑은 것, 어딜 가나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것, 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것, 이런 소소한 것, 살면서 인간으로 존중받는 편안함은 있어요.
호울: 저도 이제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는 운이 없는 지, 항상 콘셉트에서 공연까지 2년 정도 제작기간이 걸려요. 지원금에 거의 의존해서 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지원을 못 받으면 그냥 기다리는 거죠. 그래서 오래 걸려요. 처음에는 지원에 떨어졌을 때 우울하고 불안했는데, 작품을 계속 수정, 수정하면서 기다리니까 작품이 발전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요. 지원서 냈다가 떨어지면, 지원서 한 번 더 읽고, 레지던시 있으면 가서 리서치 하고, 아니면 중간에 쉬면서 다시 시작하고, 거기서 발견한 새로운 점을 다시 연구하는 식으로.
수은: 나는 베를린에 살면서 시각과 인식의 폭이 넓어진 걸 많이 느껴요. 무엇보다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에 사는 게 편해졌어요. 반대로 한국에서 그것 때문에 불편해 지는 게 있죠.
호울: 저는 베를린에 와서 변한 건지, 나이가 들어서 변한 건진 모르겠지만, 한국에 나와서 사니까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런 시각으로 제가 하는 작품을 바라보니, 작품마다 작품이 완성되는 때가 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는 조바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안 되면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편하게 생각해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오는 어떤 확신이 있거든요. 저는 항상 작품 생각하면서 사니까, 작품이 완성될 때가 되면 완성이 되더라고요.
수은: 5년 전부터 한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양쪽 나라에서 작업을 병행하면서 느끼는 건 어디서 사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나를 이해해 주고, 작업에 대해서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더라고요.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정체성과 내가 안식을 찾을 수 있는 홈타운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을 엄청 많이 했어요. 결과를 말하자면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죠. (웃음) 하지만 그 시도를 통해서 어떤 장소의 소속감보다,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형성되는 공감대로 인해 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성장해 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발견해 낸 세계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때, 그때가 행복하고 감사하죠.
호울: 전 감사한 게, 지난해에 맺었던 인연이 계속 연결될 때에요. 어디선가 제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저를 주시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Aerowaves라는 무용네트워크가 있는데, 거기서 심사위원단이 기대되는 안무가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2012년에 선정이 됐었는데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작년에 연락이 와서 심사위원이 저를 추천했다는 거예요. 그럴 때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구나 하고 감격하죠. 여건이 어떻든 간에 무대에 설 수 있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꾸준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수은_연출가, 무대미술가 연극, 무용, 음악극, 오페라의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과 독일에서 독립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독일 아티스트들과 함께 2015년까지 <오퍼 디나모 베스트(Oper Dynamo West)> 공연창작집단을 만들어 30편의 장소 특정형 창작 음악극을 작업했다. 2010년,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에 관한 작업집 <도시무대(Stadt als Buhne)>를 독일에서 출판하였다. 공연작업 외, 예술창작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두고 국제교류 프로젝트 리서치 그룹 '멜팅다츠'을 결성하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협업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백호울_안무가 백호울은 신체의 개별적 부분의 표정을 발견하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작은 신체 부위를 탐구하고, 몸의 해체와 변형을 통해 몸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작업을 한다. 2012년 Aerowaves 우선수위 리스트 선정,Erfurt tanztheater festival - contact energy에서 안무상2등과 관객상 수상, 2016년 스페인 발렌시아의 10sentidos 안무상 수상하였다. 지속적으로 레지던시에 초대되는데,Fabrik potsdam (독일), tanz hotel (오스트리아), im_flieger (오스트리아), dans byran (스웨덴), arts printing house (리투아니아), caso (이탈리아), 인천아트플랫폼, 서울무용센터 등 다수의 레지던시에 참여하였다.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 안무가로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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