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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에세이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8.01.25 조회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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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사랑한 영화, 그 오롯한 몸의 기록

최재훈_영화평론가

필름, 비디오, 컴퓨터 등 매체의 발달이 춤이 기억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피나 바우쉬의 춤은 3D 영상으로 기록되어, 생생하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매체로 전이되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위대한 작품들 중 다수는 필름으로 기록되었고, 오늘날의 춤은 일상적으로 녹화된다. 하지만 우리는 3차원 실황의 형식인 무용을 2차원 평면으로 온전히 접하기는 어렵다. 영상 매체의 발달로 동영상 매체의 기록성을 주목하지만, 영상이라는 평면이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공연자와 관객과의 분위기, 그때의 시대상, 그리고 그 공연의 시대적 가치와 의미 등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한 카메라 촬영만으로는 영상에 오롯이 담아낼 수 없는 가치 평가와 기록의 영역이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재현된 춤에 주목하고, 그 가치를 되짚어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대부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춤은 단순한 여흥을 주기 위한 장치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춤이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메타포로 전이되는 순간, 영화 속 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닌 가치 있는 기록물이 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가 공연된다. 눈을 감은 두 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춤을 추고, 한 남자는 여자들이 부딪치지 않게 의자와 탁자를 필사적으로 옮긴다. 영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알게 되지만, 피나 바우쉬의 이 작품은 주인공 마르코와 베니그노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엔딩 장면은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이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낙관적이고 생명력으로 가득한 작품이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



줌아웃 영화평론가 최재훈 관련 사진

영화 <그녀에게> 중 <카페뮐러>의 한 장면


실제로 피나 바우쉬의 열렬한 팬이었던 알모도바르는 앞선 영화를 통해 피나에 대한 경외심을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 속에 녹여냈다. 당연히 피나 바우쉬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 애정을 가지고 그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감성과 열정을 영상에 기록해 낸다. 온전한 공연 영상의 기록은 아니지만 <그녀에게>에 등장하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은 영화 속 인물의 상태를 상징하기 위해 세심한 카메라 워크와 내밀한 감정을 담아내는 표정 하나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온몸, 심지어 그녀의 머리카락조차도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모두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공연을 직접 본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피나 바우쉬를 기억하는 방법은 텍스트와 영상, 아카이빙된 글과 그 글로 인해 새롭게 창조된 가치들이며, <그녀에게>는 피나 바우쉬를 영상으로 기록한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더더우기 이 작품이 가치 있는 것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페 뮐러>가 그녀가 은퇴 후, 오직 영화 속 기록을 위해 다시 공연되었다는 것이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 <3 drei>는 전통적 관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관계’를 제안하면서 무용을 비롯하여, 인물들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현대 문화와 예술 걸작들을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이다. 3총사, 3인조, 3얼간이. 사람들은 세 명 이상이 되면 집단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 안에서 규범을 만든다. 그런데 유독 사회적 함의 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3이 있는데, 바로 삼각관계이다. <롤라 런>으로 알려진 톰 티크베어 감독은 <3 drei>를 통해 삼각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한 남자를 사랑한 부부라는 설정 속에 톰 티크베어 감독은 완벽한 삼각을 위해 세 사람 사이에 한 개의 변이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녀 사이의 3각관계가 흔히 V자 형태의 3각이라면, 그가 제안하는 삼각관계는 남1-여1-남2-남1로 이어지는 새로운 삼각형이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를 뛰어넘어 새롭게 만들어진 ‘관계’는 안정적인 밑바탕을 가진 삼각기둥이 되어 우뚝 선다. 이러한 새롭고 파격적인 관계를 담아내는 도시 속 삶, 도시 속 예술은 하나의 상징이며 인물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된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세 남녀의 춤은 유럽 최고의 안무가 사샤 발츠가 안무한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관계, 혼돈,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기 위해 영화를 위해 특별히 안무했다. 소란하지 않게 격정을 드러내는 움직임이 인상적인데, 영화를 본 이후 다시 본다면 그 세밀하게 녹여낸 상징성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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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 drei> 중


이외에 그 의미는 다르지만,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1985년 작 <백야>는 춤이 도구가 아닌,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정서로 기능하는 명작으로 전성기의 미하일 바르시니코프의 춤을 만나보고 싶을 때 꺼내보게 되는 영화중의 하나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은 완벽함을 꿈꾸는 발레리나가 극중 인물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벌어지는 분열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 안무는 뉴욕시립발레단 벤자민 밀피에가 맡았는데, 영화 속 왕자 역으로도 출연하였다. 인물의 감정에 따라 격정적으로 변화하는 움직임, 발레 장면과 극의 격정이 온전히 어우러진 작품이다. 16mm 필름을 사용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근거해 무용수들과 함께 돌면서 카메라가 함께 춤을 춘다. 극장 상영을 위해 35mm로 확대하면서 입자가 거칠어졌지만, 무용수들의 숨소리조차 담아내는 것 같은 영상 덕분에 무용현장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무용 영화는 아니지만, 생생한 춤의 현장을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이며, 기록으로서의 춤을 담아내는 방법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눈여겨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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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스완> 중


음악이나 오페라, 연극 등이 대본이나 악보를 통해 복기가 되는 것과 달리 춤은 쉽게 복기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오롯이 안무가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그 공연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에 있지 못한 관객은 시간과 함께 사라진 공연을 단순한 영상기록으로는 다시 접할 수가 없다. 하지만, 춤을 사랑하는 예술가가, 온전히 안무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경외감을 담아 찍어준다면 평면 화면 속 춤도 관객과 소통하는 대화의 기록이 된다. 그래서 영화 속 춤 작품은 안무가의 정서를 오롯이 담아 관객과 소통하는 값진, 새로운 춤 영상으로 빛난다. 멋지게도.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수상. 객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텐아시아 등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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