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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1.25 조회 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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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인의 서재] <물속 골리앗>
『2011년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 김애란)

김모든_안무가

‘스스로에게 나는 강한 사람인가?’묻는다. 부드러움 안에 나약해지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강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적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일련의 다짐과 생각들이 쌓여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을 마주 할 때면 나는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고민에 잠긴다. 개인으로서 한계를 부딪치는 사회 안에서 초라함과 고정된 제도 안에서 출구 없는 존재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소멸하는 나약함, 그 마지막의 모습과 과정은 주체적 존재 ‘나’로부터인가? 사회적 존재 ‘나’로 부터인가? 생각해 본다. 삶의 본질을 채우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을 우리는 무엇을 통해 채우고 있는 것인가?

소설은 긴 장마로 인해 잠겨버린 세상을 재건축 아파트에 고립된 가족의 모습에서 주인공 소년의 사투를 그린 소설이다. 전기와 수도까지 끊긴 채 둘뿐이 남은 어머니의 말수 역시 점점 줄어든다. 빗방울은 저마다 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가지며 불규칙하게 춤을 춘다. 폭우 속 모든 사물들은 흐려졌고 집과 바깥세상은 그럴수록 기이한 빛과 소음으로 변했다. 하늘이 절정으로 몰아치던 밤 불안감은 어머니를 죽음까지 내몰게 된다. 자신 앞에 닥친 비현실적인 그로테스크한 상황 앞에서 집안까지 점점 차오르는 황톳물 속에서 소년은 죽은 어머니를 모시고 탈출을 결심 한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하루는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 월년 단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기분 말이다. 현재의 기분과 몸 상태가 최상이라고 확신하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기 전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재생시키면서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 소설을 읽던 당시에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하여 군 생활 중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처한 상황이 나와는 다르지만 제한된 장소 안에서의 생활이라는 점이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첫 문장부터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나의 현실과 소설의 공간이 묘하게 대입이 되고 공감이 되었다. 그 공감이 주인공 소년의 입장이 쉽게 동화되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실제로 재건축 아파트에 10여년 거주한 경험 역시 소설의 문장에서 상황으로 묘사 되는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쉽게 그려지기도 했다. 소설이 가진 힘과 몰입감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고 빠져들었다.

소설을 처음 읽고 난 뒤에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나는 바깥세상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주인공이 처해 있던 상황이 내무반에 혼자 남아서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이 고독함과 고립감이 공감이 되었다. ‘두려움’이란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이 상황이 나에게 온다면 수영도 못하고 심지어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짧은 안도와 헛헛함이 교차 한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들, 물이 잠긴 세상에서 안과 밖의 공간을 넘나들면서 연약함, 좌절감, 상실감들이 연상된다. 거대한 세계 안에서 서울이라는 작은 도시 안에 아파트에서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입자들인데. 여기서 지르는 비명이 괴로움이 답답함이 한편으론 우스워지는 것만 같다. 이런 존재들이 허무한 상황과 대처 할 수 없는 무력감들이 두려움 안으로 나를 잠식시킨다. 남 얘기로만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이 이야기는 앞으로 현실세계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현재의 자연 현상들을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그 수위는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

소설을 통해 자연-사회-인간 이 형태가 계층 구조를 띠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은 매우 규칙적인 듯 보이지만 필연처럼 다가온다. 재난 앞에서 인간의 모습은 자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 인간이라는 의미, 사회 규범 안에서 개인이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질문해 본다. 사회구조의 규칙적 시스템과 구조가 일반화 되어지는 관습적 태도가 인간을 삶에서 방관하는 태도로 만든다. 그것이 결국 사회의 불균형을 생산하고 자연 순응의 개념으로 토착되어져 무 반응적 태도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 가고, 점점 비생산적 존재로서 사유를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 간다.

원작 소설을 무용이라는 장르로 다른 옷을 입히기 위한 준비 과정들이 있었다. 우리가 외면한 사회의 한 이면을 표현한 소설 김애란 작가의 <물속 골리앗> 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재난 그리고 사회적 동물 인간이라는 접근 아래 고찰한 장면을 무대 위에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한 달이 넘게 지속되는 장마라는 재난에서 홀로 남겨진 소년의 감정 선들을 짚어 신체를 매개로 표현하고 싶었다. 소설의 배경인 아파트 내부와 장마로 인해 범람한 잠긴 도시를 무대로 옮겨온다고 생각해 보았다. 이 이미지들을 원작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닌 보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파트 신축에 필요한 거대한 크레인과 홍수를 나타내는 물이라는 재료를 떠올렸다. 주인공 소년이 잠겨버린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무용작품 안에서의 무대 방향을 모색해 보았다. 그때 물속의 잠긴 도시를 상상해 보았다. 작가의 스토리보드 구현으로의 작품해석이 아니라 나만의 표현을 대입하고자 했을 때 떠올랐던 것은 물에 대한 의미를 작품 내에 다양하게 삽입하고 싶었다.

물이라는 것은 본디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기도 하고, 외부의 영향 즉, 날씨, 습도들에 따라 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자연의 변화의 의미를 상상해보면서 물속에 잠긴 도시를 상상해볼 때 정반대의 상황으로 작품에 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여러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이내 메마른 땅, 임대 주택 아파트 등 지긋한 비가 내리지 않는 정반대 상황으로 지상에서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어쩌면 홍수로 도시 가득 물이 고여져있지만, 소년의 마음은 그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또한 소설 속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있던 것은 아닌지 상상 해본다.



줌아웃 안무가 김모든 관련 사진

<물속 골리앗>, ⓒ옥상훈


한 장소에서 한 달이 넘게 빗소리를 듣고 매일 반복되는 판에 박힌 바깥풍경을 보고 있는 소년의 눈에는 신기루와 비슷한 현상의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현상이 입체적으로 변형되어 모든 사물과 환경으로 인해 굴절된 세상으로 바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소년의 시각을 중심으로 무대세트를 제작하여 이미지를 구현하고 세계를 축소시킨 다양한 이미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무대 제작을 원했다. 이것이 모두 이뤄진다고 가정 해볼 때 그러한 측면에서 무대세트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신비롭고 내밀한 공간에 대한 환상을 그로테스크하게 다룰 수 있는 역할로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인물들의 집안 내부가 실제적 접근 방식이 아닌 인물의 심상이 투영되는 무대 세트로 진행되어 인간의 내적 변화의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줌아웃 안무가 김모든 관련 사진

<물속 골리앗>, ⓒ옥상훈


인물들의 감정을 신체를 매개로하여 접근하는 방법은 너무나 추상적이었고, 움직일 수 있는 당위성들이 필요 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처음 작업해보면서 문장들 안에 묘사된 글들과 상황을 움직임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장면을 순차적으로 옮겨오는 것에서부터 소설의 인물의 심리를 몸의 상태와 표정의 섬세한 디테일이 필요했다. 안무가가 해석한 감정을 무용수에게 전달하면서 일어나는 의견대립을 설득하고 반대로 설득당하는 과정은 반복되어 이뤄졌다. 청각적인 공간의 배경 안에서 무용수들이 인물의 심상을 고스란히 선보일 수 있는 상황들을 제시하였다. 이번엔 문학을 무용에 접목시켜 작품의 틀을 만들어갔던 과정은 앞으로 안무가가 지향하는 새로운 해석의 길로 제시되었다.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김모든_안무가, 무용수 ‘모든 컴퍼니’는 인간의 삶에 초점을 두어 바라본 시점들을 몸을 중심으로 풀어낸 주제를 무대공간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2017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어 <물속 골리앗>을 선보였다. 몸을 매개로 숏 필름, 설치미술, 전통음악, 연극, 문학 등 다양한 요소들을 매 무대마다 함께 실현시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나아가 무대에서의 한계점에 대한 해소를 영화를 통해 더욱 확장시켜 작품을 통해 표현해 나가려는 목표를 두고 있다. 2017년 <자메뷰>는 이태리, 미국, 아르헨티나, 칠레 해외 5개 도시에서 초청 상영되었으며 이태리 ‘스토리 위 댄스’에서 베스트 컨셉상을 수상하였다.


김모든_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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