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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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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조회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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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도착한 ‘신여성’ 바라보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신여성 도착하다》리뷰

이경구_안무가

2018년 1월 16일, 오랜만에 아무 일정도 없는 휴일을 맞게 되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뜨고, 딱히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장소를 갈 때 드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음을 도착한 곳은, 덕수궁 대하문. 성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모습을 갖춘 두 남자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니고서 굳게 서있었다. 21세기 수문장과 도심 속에 우뚝 솟은 대한문을 배경으로 ‘호호호’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어머님들의 모습을 지나쳐서 도착한 곳.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전시되는《신여성 도착하다》라는 전시회였다.
나는 사실 요즘 전시회를 잘 보지 않았다. 핑계라면 미술관을 좋아하는 친구가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종종 함께 전시를 보러가고는 했었는데, 그 친구가 먼 동네로 이사를 가고부터 나는 미술관을 도통 가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가까이 사는 친구와 색다른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던 일이, 친구가 이사를 가버리니 마음을 먹고 시간을 정해서 가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홀로 가려니, 무언가 허전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차츰 전시회에서 멀어지고 있던 나에게 얼마 전 한 지인이 국립현대무용단 덕수궁관에서 전시되고 있는《신여성 도착하다》의 전시 리뷰를 부탁하였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무용단 고블린파티에서 만든 옛 여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은장도>의 화자로서 그리고 현 시대 안무자, 무용가로서 전시 리뷰를 써보는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홀로 전시회를 보러가는 것은 처음이라 내가 무언가를 못 느낄 것 같아 걱정되고,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걱정되고, 어설픈 기억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공연을 만들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은장도>의 화자로서《신여성 도착하다》라는 제목을 가진 전시회에 막연한 공감과, 호기심을 지니고 덕수궁관에 들어섰다.



줌아웃 안무가 이경구 관련 사진

ⓒ이경구


미술관의 한 벽면에는 《신여성 도착하다. THE ARRIVAL OF NEW WOMEN》라는 분홍색의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분홍색으로 쓰여진 ‘신여성’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어렴풋이 색깔과 관련된 일화가 떠올랐다.
“우리 여자친구는 분홍색! 옆에 남자친구는 파란색!”
나는 딱히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분홍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지 않고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시며 분홍색 물건을 나의 손에 쥐어주는 어른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수많은 아동들이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눈의 여왕 ‘엘사’ 덕분에 분홍색과 파란색 중,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마도 20대 후반인 나와, 나의 또래의 ‘여자’인 사람들이 어렸을 적 받은 물건의 색깔은 주로 분홍색이었을 것이다. 왜 색깔의 선택은 분홍색과 파란색이 대부분이었을까? 노란색도 있고, 초록색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사실 나조차도 주변의 여자 친구들이 분홍색의 물건을 집었을 때, 파란색의 물건을 집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한 기억의 분홍색이 ‘신여성’이라는 이름에 칠해져 있으니 왠지 모를 공감과 부끄러움이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났다. 그냥 ‘여자’라서 무난히 핑크색을 선택한 나를 꼬집는 느낌이랄까.

전시회 《신여성 도착하다》, 이 제목에서 ‘도착하다.’라는 말은, 마치 옛 여인들이 2018년 오늘에 도착했다는 상상을 일으키게 했다. 본 전시회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 2층에서 1부부터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졌다. 계단 앞의 벽면에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신여성’의 개념과 1부, 2부, 3부가 제각기 지닌 주제를 설명한 글이 쓰여져 있었다.
‘신여성(New Women)’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하여 20세기 초 일본과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 정치적,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기 새로운 여성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여성이 1890년대 이후 출현했으며, 이 용어는 언론 매체, 잡지 등에서 191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1920년대 중반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대대적으로 유행하였다고 한다. ‘구여성’의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신식 교육을 받고 신문명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한편으로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편견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신여성’이라는 용어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지금 ‘신여성’은 나에게 있어 사라진 여자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바깥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글을 읽고 배우는 ‘여자’라서,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혁명의 아이콘이 되기도, 조롱받은 약자가 되기도 한 사람이 2018년에 도착했다고 하니, 어떤 것들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줌아웃 안무가 이경구 관련 사진



1부가 시작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한 칸마다 2018년부터 1920년까지 연도가 쓰여 있었다. 1층의 맨 아래, 2017년이 적힌 계단부터 2층의 도착 지점인 1920년이 적힌 계단까지 올라간다. 한 계단, 한 계단 마다 연도가 적힌 계단을 밝고 올라가면 시간을 거꾸로 밟고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괜히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의미 있는 행위를 한 기분이 들었다.



1부 관람기


1부의 제목은《신여성 언파레-드. ‘언파레-드’는 온 퍼레이드(On parade)의 1930년대식 표현으로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일렬로 늘어선 모습을 일컫는다고 했다. 1부 전시실의 초입부터 전시실 내부 깊숙이까지 한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그림들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 만화책을 길게 늘여놓은 듯 각각 고유한 색깔을 품은 그림들이 조화롭게 섞여있었고 한 그림, 한 그림마다 1명의 여자가 있었다. 이 그림들은 1920년대 발간된 대중 잡지들의 표지였다. 근대 신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과 이슈의 집결지였다고 하는 <신여성>, <별건곤> 등의 잡지라고 소개되었다.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표시하는 연도가 벽면에 써져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어 있는 그림 속에는 무표정의 여자들부터 살짝 미소 짓고 있는 여자들까지 차례대로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에는 옛 여인들이 있는데, ‘新(새 신)’이 써진 ‘신여성’이라고 하니,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혼란이 오면서도 새로운 유행을 맞은 옛 여인들을 훔쳐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1부는 이처럼 미술뿐 아니라 영화, 광고, 잡지 등의 대중 매체가 재현한 신여성의 이미지가 나열되어 있었다. 한복과 고무신이 아닌 서구식 복장과 구두를 선택한, 부모님이 물려주신 긴 머리카락을 귀 밑까지 자른 여성들을 담은 이미지, 그림들. 이 그림들 속에 여성들은 대게 얼굴이 잘 보였는데, 표정을 알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기쁜지, 슬픈지, 당당한지 그들의 기분을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꼭 그들의 감정을 알아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표정이 없을까? 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 스스로 도달한 결론은 유교 사상에 발목이 잡혀 밖에 나갈 수 없던 여성들이 밖으로 나가면서 빚어진 감정의 표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기가 슬프게도 신여성들에게는 어쩌면 유교를 벗어나는 탈출구이지 않았을까. 그녀들을 비방하는 사회와 뭇 남성들에게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겠다는 다짐, 조선 여성으로서의 해방감, 혹은 그것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죄책감을 가지고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세상에 맞선 것은 아닐까.



2부 관람기


2부는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 여성 미술가들》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다. 근대기 대표적인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었다. 2부부터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미술가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현상 자체가 그들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예술가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가정을 지켜야하는 엄마로서 끝까지 미술가로 활동하지 못한 화가, 이혼을 겪고 사회의 질타를 향해 반항한 화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들의 작품과 그녀들이 처한 사회적 배경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연관지어 그림들을 감상하게 되었다.



줌아웃 안무가 이경구 관련 사진



나혜석 화가의 <자화상>을 보며, 1부에서 만난 ‘신여성’에게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둡고 우울해보이긴 하지만, 완전히 그러지 못하는 갈등이 내비치기도 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복잡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상처가 생긴 듯 깊게 패여서 그려진 얼굴 윤곽에서, 무미건조한 표정을 보기도 했고 매우 분노한 마음을 엿보기도 했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위 그림을 그린 나혜석 작가는 이혼을 한 이후, <이혼고백서>라는 책을 발간했다고 했다. 당시 그 책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녀는 그 책을 통해 ‘남성’과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죄인’이 되는 사회에 반기를 들었으며, 수백년간 지켜졌던 정조관념을 부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2부에 전시된 나혜석의 <자화상> 이외에 다른 근대기 여성미술가들의 작품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따뜻하다.’였다. 어쩌면 근대기의 여성 미술가들은 불행했을 것이라는 나의 무지와 편견이 있기에, 그림에서 풍기는 곱고 따스한 느낌이 있는 그대로 맑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녀들의 길을 가로막는 구습을 피해 그녀들이 그리는 ‘그림’만큼은 순수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림에는 조금의 삶에 대한 원망도, 풍자도, 발칙한 해학도 느껴지지 않아,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곱게 그려진 작품들 사이에 다소 어둡게 그려진 ‘자화상’이라는 그림이 놓여져있는 2부의 구성을 보고 나는 2016년에 공동창작자로 그리고 무용수로 참여한 작품 <은장도>와 묘한 일치점이 생겨났다.



줌아웃 안무가 이경구 관련 사진

ⓒ이경구


“고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지은 죄도 없이 이렇게 죄인으로 살아가야대노. 참말로. 내 어데라도 들따보고 살아야 되는데 이렇게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라카이, 내 이래가꼬는 어데 한 눈 팔 틈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네. 정절을 지키느니 개뿔, 예절도 없는 개잡년 되기 딱 좋겄네. 딱 좋겄어. 내 비록 미망인이라도 지나가는 남정네, 그 남정네 옷고름만 스쳐도 치맛자락이 넘실넘실 거린다 카이. 그캐서 그라는데, 내 여섯 일곱살 때 있다 아이가. 울 엄마가 내한테 호신용으로 이거 이 은장도 줬거든. 그래가 이걸로 억수로 신나게 내 허벅지라도 찔러볼라꼬. 그라믄, 누 알겠나? 억수로 좋아가꼬 훨훨 날아가뿔지. 염병. 아따 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위 대사는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무용단 ‘고블린파티’의 작품 <은장도>에 등장하는 한 여자 무용수의 대사이다. 본 작품은 은장도를 품고 살아가야만 했던 조선 시대 옛 여인들의 삶에 영감을 받아 무언가를 숨기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자 했던 작품이다. 은장도를 품은 옛 여인들이 현 시대에 나타나, ‘모던한’ 그리고 ‘심플한’ 이라는 용어로 현대사회를 꾸미는 듯한 소품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심정을 이야기한다.
작품의 첫 시작은 위 대사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자 하는 여성이 있고, 그리고 그 여성의 말과 존재를 숨기고자 하는 듯한 여자 3명이 있다. 위 대사를 말하는 여자를 방해하듯이, 나머지 여자 3명은 고운 목소리로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말하는 여자를 관객이 잘 볼 수 없도록 제일 뒤에 두고서 움직인다.
위와 같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고, 어쩌면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그려진 <은장도>의 한 장면과 2부에서 곱게 그려진 작품들 사이에 어두운 속내가 어렴풋이 그려져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이 놓여있는 구성이 겹쳐보였다. 그러한 구성은 어쩌면 근대 미술가들의 모여 있는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3부 관람기


3부는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다. 5인의 신여성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은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운동가 주세죽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했던 대표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20세기 이전의 전통적 사고가 아직 강했던 근대에 ‘신여성’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녀들의 행로는 순탄할 수 없었고, 당대에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의 행보 그리고 부딪혔던 어려움은 근대라는 시대 속 여성의 모습을 반추케 하는 거울에 다름없다고 했다. 이에 당시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뒤돌아보는 전시였다.
그 와중에 안무자로서 그리고 무용가로서 무척 반갑고 호기심이 생겼던 분은 무용가 최승희였다. 한국에서 여성 최초로 창작현대무용을 발표한 그녀. 한국에서 창작현대무용 공연의 역사를 시작한 그녀라고 생각하니, 사진에 그려진 그녀의 춤추는 모습이 조금 뭉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은 원래 자신이 추구한 순수한 목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상관없이 근대의 사회적, 정치적 편견 속에 수많은 오해와 과장된 해석을 낳아 퇴출당하고, 외면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여성’이라는 이름이 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한 근대기 여성 예술가들에게 어쩌면 피해의식과 부담감을 가지도록 했을지 모르겠다. 그저 예술가로서 이야기하는 작품들에게 입혀지는 불편한 해석이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관람 후


전시회《신여성 도착하다》를 관람한 후, 나조차도 근대 사회의 사람들처럼 그녀들의 예술품에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감상한 것은 아니었을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들의 작품은 많은 문제와 혼란이 있던 사회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관한 마음이 매우 감춰져 있음과 동시에 밝은 편이었다. 혹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겪은 문제를 쉽게 풀어놓지 않으려는 사명감도 느껴졌다.
이런 감상 아래 반대로 요즘 무용계에서 그리고 연극계에서 사회의 이슈들을 녹여낸 작품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이슈를 가차 없이 이야기의 소재로 공공연하게 들여온 작품에 대한 열광,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을 만드는 예술가를 진정한 예술가로 칭하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 다시금 명확해졌다. 사회가 분노한 현상을 작품에 들여올 때, 왜 그것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일까. 그러면 사회적 책임을 다한 예술가가 되는 것인가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그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만이, 아픔을 희망으로 바꾸어 상상해보는 것이 작품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겪지 않았다면 모를 사건을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로 빙의하여 사실처럼 재연해내는 것을 볼 때, 정말 부끄럽다. 쉽지 않은 문제를 쉽게 가져다 놓았을 때, 그리고 그것을 관객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라만 보아야 했을 때. 절망감이 온다. 사회의 이슈를 가지고 만드는 예술가들에게 어쩌면 본 전시회에서 엿볼 수 있었던 근대 여성 미술가들의 삶과 고통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작품들이 여러 방면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8년에 도착한 신여성을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온 전시회였다. 전시회가 알려주는 내용과 의미를 따라가는 시간도 흥미로웠지만, 정해진 공간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익숙했던 내가 자유롭게 공간을 돌아다니며 생각이 다가올 때까지 무언가를 오래도록 보고 있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집을 돌아와 전시회의 한 벽면에 쓰인 화가 나혜석의 짧은 글을 써놓은 나의 메모장을 보았다.

내 생활 중에서 그림을 제해놓으면 실로 살풍경이다.
사랑에 목마를 때 정을 느낄 수 있고
친구가 그리울 때 말벗도 되고
귀찮을때 즐거움도 되고 괴로울 때 위안이 되는 것은 오직이 그림이다.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그림과 나를 따로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경우에 있는 것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에게도 춤은 그리고 몸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그렇다. 정이고, 말벗이고, 즐거움이며, 위안이다. 나는 내가 춤이고, 춤이 내가 될 수 있는 솔직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경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예술전문사로 재학중이며, 고블린파티 안무자 및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컨템포러리 댄스를 기반으로 하여 관객과의 소통에 가장 큰 중점을 두되, 관객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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