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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2.28 조회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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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춤 표현과 창작, 개념부터 혁신되어야
: 시민의 · 시민 현장의 춤을 찾아가다

[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춤:in〉에서는 시대 흐름을 주시하여 기존의 춤 담론을 주도해온 개인적 창조의 패러다임을 넓혀서 2017년 한 해 동안 시민을 위한 표현이 돋보이는 춤 표현 활동을 연재한다. 〈춤:in〉은 춤과 정치·권력·인권 사이의 담론을 발굴하여 ‘시민 사회 및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시민과 공생하는 춤 표현의 가치를 적극 사고하는 계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본란에서는 시대·문명·사회와 춤의 선순환적 조화를 성취한 특이 사례들이 함께 조명된다.


춤 표현과 창작, 개념부터 혁신되어야
: 시민의 · 시민 현장의 춤을 찾아가다

김채현_춤비평가

고래로 공연‘예술’은 관객을 전제하는 철칙을 고수해왔다. 이 분야 활동가는 물론 공연예술인이라 지칭되며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공연예술인(무대)과 관객(객석)의 분리를 당연시하는 관행에서 공연예술인과 관객이 만나는 곳은 극장(또는 판)이다. 이 같은 분리가 애당초 적용되지 않는 공연 활동이 전통 사회에서 비일비재하였으나 주지하다시피 전통 사회의 공연 양식이 20세기 이후 현대 시기에 소멸되거나 위축되는 것이 일반적 추세였다. 그러한 무대와 객석의 분리를 허물어 공연 활동이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 효력을 가질 것을 지향하는 새로운 공연 활동은 현대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새로운 공연 활동은 과거의 공연 양식을 계승하고 복원하는 데 치중하는 그런 협소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이른바 현대적 판단과 감성을 바탕으로 삶과 결부된 공연을 추구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 중에서도 예컨대 현대 민주주의의 향방, 도시 재개발, 도시민의 정체성을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묻는 춤 활동도 드물지 않은 터에 이 새로운 공연 활동 유형의 춤 전반을 편의상 ‘시민을 전제하는 춤’이라 지칭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면, 이 연재글의 제목에서도 시민이 부각되었지만, 관객을 전제하는 춤과 시민을 전제하는 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춤을 관람하는 관객은 시민의 일부분이다. 이 점에서 관객과 시민은 범위와 규모에서부터 아주 다르다. 한 마디로, 관객을 전제하는 춤은 시민을 전제하는 춤에 포섭된다. 시민을 전제하는 춤은 관객을 전제하는 춤의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는 한편, 시민을 전제하는 춤 고유의 내용과 형식 및 방법을 추가로 갖출 수 있고 갖추어야 한다. 다만, 시민을 전제하는 춤을 지향하더라도 관객을 전제하는 춤을 외면하고 마다할 이유는 없다. 관객을 전제하는 춤과 시민을 전제하는 춤은 서로 간에 대립 개념이 아니라 동반 개념이다. 이렇게 보면, 관객을 전제하는 춤만이 전문성을 가지며 시민을 전제하는 춤은 전문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상식은 의문시된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60대 이상 노령층으로 구성된 Three Score Dance Company 공연, 2014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노령자 무용단이 시민과 함께 구성한 공연 Compass, 2012


시민을 전제하는 춤이 20세기 후반에 출현한 이래 오늘날 그에 대해 관심이 점증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연구가 그동안 소략했던 사정에 비추어 시민을 전제하는 춤에 관한 논의를 촉진하는 취지에서 그 동향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려고 한다.

먼저, 시민을 전제하는 춤으로서 흔히 거론되는 것은 사실적인, 현실적인 때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춤이다. 이 범주에 드는 춤 작품들은 〈녹색의 테이블〉 〈홍색낭자군〉 〈쿠에카 솔라〉 등등 매우 많은 사례가 들어질 것이다. 그 가운데 정치적 의식이 짙은 춤들을 그 소재에 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고 간혹 당대 정세를 배경으로 의(義)로운 작품으로서 더욱 조명을 하곤 하지만 ‘소재주의’ ‘도구주의’에 갇혔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말하자면, 시민을 전제하는 춤은 먼저 그 춤이 염두에 두는 시민이 어떤 시민인지 그리고 그 춤이 구사하는 방법이 예술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작품의 우열이 판별되어야 한다. 이 범주의 춤들은 객석과 무대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관객을 전제하는 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굳이 시민을 전제하는 춤으로 따로 분류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덧붙여, 〈홍색낭자군〉은 사실적이며 진보적 관점이 일정 부분 수긍될 수 있으나 특히 제작 의도 측면에서 문제가 컸었고 이에 따라 숱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여성으로 구성된 Flyaway Productions의 시민을 위한 공연, 2014


시민을 전제하는 춤으로서 그 다음에 거론될 수 있는 것은 시민의 현장을 찾아가는 춤이다. 지역과 공동체의 계층과 연령층 및 직능, 활동에 따라 다양하게 존속하는 현장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이 춤은 현장의 춤으로 통칭됨 직하다. 그 대표적 사례로 거리춤이 떠올려지며, 장소 특정 춤도 이 범주에 든다. 이에 따라 옥내 극장을 벗어나면 일단 현장의 춤으로 분류하곤 한다. 그러나 옥내 극장에서의 공연을 옥외 공간으로 고스란히 옮겨 놓았을 뿐인 것(옥내 공연물의 옥외 버전!)을 무작정 현장의 춤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옥외 공간에 준해 현장의 춤이라 판별할 수는 없는 일이며, 옥내 공간에도 시민의 현장은 있다. 여기서 보듯, 현장의 춤은 우선 현장의 물리적 조건부터 반영해야 하고 그리고 관람객의 관심사를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장의 춤은 ‘현장의 전반적 맥락’(물리적·인문적·지리적·사회적 특정성)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의 춤에서 관객은 일률적이지 않으며 장소 특정 춤에서처럼 관객은 유동적이며 심지어는 미리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춤의 맥락 형성 측면에서 결정적 구실을 하는 관객을 미리 고려하는 가상의 대화(쌍방 소통)는 현장의 춤에서 필수적이다. 이 같은 유기적 맥락을 도외시한 현장의 춤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거리춤은 시민의 관심권에서 동떨어지기 일쑤다. 아무튼 춤이 찾아갈 만하고 춤이 찾아가야 하는 현장이 엄청나게 다양하다는 것은 현장의 춤이 구사할 방법이 그 맥락에 따라 사실상 무한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장애인들의 춤, Jabadao무용단


시민을 전제하는 춤으로서 마지막에 거론될 수 있는 것은 시민에 의한, 시민의 춤이다. 20세기 후반 민주주의의 정착, 시민 사회와 커뮤니티의 성장, 웰빙 관념의 확산, 예술 개념의 변동 등과 같은 복합적 요인에 의해 시민의 춤 활동은 급격히 진척되어 왔다. 시민의 춤은 시민이 주체이되 시민 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사를 춤으로써 소통·공유한다는 점에서 사교춤·동호인춤 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후자의 춤들은 기교의 수련에 중점을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 무용가 수준의 기량 습득과 발표를 목표(대부분 전문가 흉내내기에 불과한 목표!)로 하기 때문에, 참여자들 간의 소통 면에서도 시민 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사가 주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어느 사교춤이 〈쿠에카 솔라〉처럼 시민 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데 쓰일 경우 그것은 시민의 춤으로 수용된다.

시민의 춤은 지역·공동체·장소·치유·치료·다문화·성인·노령·은퇴자·노숙자·아동·청소년·소수자·직능·환경·신앙·자선·교화·정당(政黨)·기업 등등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집단에서 소통 경로로 수행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종사하는 무용인들이 빠르게 느는 것으로 관측된다. 동어반복처럼 들릴지 몰라도, 시민의 춤은 시민을 필수 요건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자발적 참여자로 지칭되는 이 시민은 관심사가 유사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시민의 춤은 유사한 관심사들의 집결체이며, 이 집결체 속에 개별 구성원의 관심사를 녹여내어야 한다.

이런 기본 지향점이 참여자 개인과 집단 차원에서 관철되는 데 있어 시민의 춤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필요하다. 여기서 전문가는 대개 무용인이 맡는 게 상례이지만, 전문가는 지도자나 트레이너라기보다는 조정자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참여자 개인과 집단의 관심사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대전제는 시민의 춤에서 주체가 시민 개개인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전문가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사실상 제한적임이 드러나며 참여자 개개인도 적어도 자신의 사정에는 정통한 나름의 전문가라는 점을 전문가는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문가 중심의 일방통행 또는 하향전달 식의 춤은 필리핀 세부 지역 재소자들의 춤처럼 표면적으로는 시민에 의한 춤일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시민의 춤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시민의 춤은 참여 시민의 규모에 발맞추어 수천 명의 대형 매스게임 행사부터 몇 명의 소집단까지 온갖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자 개인과 집단의 관심사를 조화시키는 데 있어 대형 집단보다 소집단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므로, 시민의 춤이 대부분 동아리 같은 집단 모습을 취하고 함께 춤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중시하며 관객 상대의 발표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은 커뮤니티 댄스가 많은 사정도 이러한 원리에서 기인한다. 이와 결부해서 주목할 바는 시민의 춤을 규정하는 것은 춤사위나 춤 양식이 아니라 ‘참여자의 의식(마음가짐)’이라는 점이다. 즉, 참여자의 의식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 춤은 핵심 매체가 된다. 그러나 이 춤이라는 것은 아주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몸 움직임을 의미하므로 시민의 춤에서 오히려 핵심 매체는 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몸을 가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춤은 활용성이 무궁무진하며, 여기서 춤의 잠재력과 강점이 재확인될 것이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장애인과 일반인의 시민 통합형 무용단 AMICI의 공연


지난 1년 춤·시민·표현 연재는 시민을 중심에 두는 현장의 춤과 시민의 춤 위주로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관객과 창작이 춤 담론을 지배하는 경향을 벗어나 시민과 (시민의) 표현을 축으로 춤 담론을 넓히려는 뜻에서 연재는 진행되었다. 관객 또는 개인이 아니라 시민(그리고 시민으로서의 개인)과 공생하는 춤 표현이 앞서 말했듯 지역과 공동체의 계층과 연령층 및 직능, 활동, 개인적 집단적 사정, 제 나름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존속하는 현장의 개인과 집단의 다면적 맥락을 반영하여 진행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적 추세이다. 춤이 극장 속 관객 앞에서만 맴돌 이유는 없고 세상천지가 춤의 터전이 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본다. 관객을 전제하는 춤과 시민을 전제하는 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관객 중심을 탈피해서 시민 중심으로 나아가려면 마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와도 같은 발상의 대전환 또는 확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시민과 소통하려는 무용인의 의지는 그 전회의 출발점을 이룰 것이다. 극장 안의 관객에 머무는 표현으로는 시민과의 소통에 한계가 있고, 우리 주변에서도 그 한계를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특히 무용인 각자가 품은 창작과 표현의 개념이 혁신되거나 대대적으로 보완되어야 하며, 이에 발맞춰 무용인의 교육도 손질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 무용 교육의 골간을 이루는 대학의 무용 교과들이 대폭 개편되어야 한다는 진단은 이런 사정에서 기인한다. 오직 AI 때문에 무용 교과를 변경하는 작업은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춤·시민·표현 연재가 부분적으로 찾아간 해외의 선례들이 큰 자극제가 되었기를 기대하면서 본 연재를 열독하며 동참한 여러분들께 재삼 감사드린다.



[참고 자료]
· 재소자들의 생활 조건을 진단한 Zaccho무용단(샌프란시스코)의 〈Dying While Black and Brown〉 스냅 영상 자료 바로가기
· Etcetera무용단(뉴욕)이 시민과 함께 도시 재개발을 환기한 〈Safe Harbor〉 영상 자료 바로가기
· 정유회사의 내부 경영 소통을 개선하기 위해 1년에 걸쳐 준비한 트럭 발레(스웨덴) 바로가기
· 여성으로 구성된 Flyaway Productions(샌프란시스코)의 시민을 위한 공연 영상 자료 바로가기
· 도시 속 시민의 형성 조건을 다룬 Flyaway Productions의 시민을 위한 공연 영상 자료 바로가기
· 노령자무용단(런던)의 댄스몹 영상자료 바로가기
· 장애인 춤, Jabadao무용단(영국) 영상자료 바로가기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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