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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에세이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7.12.28 조회 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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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2차 생산자와의 협업 공연을 동시대적으로 만드는가

홍성민_계원예술대학 융합예술과 교수

2차 생산자(기획자, 큐레이터, 평론가)와 창작자와의 최근 몇 년간 일련의 협업은 공연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까지 말할 순 없겠으나 유의미한 성취로 읽힌다. 무명의 아마추어 노 화가를 발굴하여 길종상가에게 설치를, 미술 도슨트에게는 작품설명을 맡긴 큐레이터 현시원의 <천수마트>(2011)를 필두로, 중년 안무가 세 사람의 30년 전 춤을 무대에 올린 평론가 방혜진의 <우회공간>(2014), 기획자 김현진과 시각예술가 이주요의 <십년만 부탁합니다>(2017), 젊은 안무가 오설영의 리틀엔젤스 경험을 안무가 장홍석과 이론가 서동진이 함께 풀어낸 <빅빅빅땡큐>(2016), 안무가와 연출가를 넘나드는 송주호/정세영과 평론가 김정현의 <퍼포먼스 연대기>(2017), 그리고 평론가 이영준의 렉처를 렉처퍼포먼스로 끌어올린 나레이션에 뛰어난 안데스와 조연출 남디의 협업 <타이거마스크의 기원에 대한 학술보고>(2016)까지 모두 창작자와 2차 생산자와의 협업이다. 이 작업들에서 2차 생산자들은 공통으로 기존의 일반적인 기획자나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을 넘어 공동 작업자의 수준으로 작품에 개입했다.

유의미한 점은 이들의 작품이 받은 성적표. 언급한 모든 작품이 동시대성(컨템포러리)의 완성도 차원에서 그해 공연예술의 상위 10% 내 성적을 받아들었다고 보아 무방할 진데, 이는 조금 과장해 무승부 외엔 져본 적 없는 무패행진의 복싱선수 승률에 버금가는 것이라 할 것이다. 2차 생산자와 협업한 창작자들이 대부분 30대 초반의 젊은 예술가들 또는 무대 연출이 전혀 없는 작가이며 대부분의 2차 생산자들이 공연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승률은 더욱 주목된다. 과연 2차 생산자의 무엇이 이들 공연의 동시대성을 획득하도록 이끌었을까? 그들이 선택했던 이론이나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컨셉이었을까 아니면 '진정한' 조연출로서 또는 공격적인 드라마투르기로서 그 성공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전통적 창작주체인 창작자들간의 상호협업에 비교해 뛰어난 성취가 가능했을까.

각 작업 과정마다 차이가 있고 복합적 요인이 없지 않겠으나 그 핵심 이유를 2차 생산자의 ‘편집’ 능력에 있다고 본다. 연결되는 개념이지만 또 한 가지는 이 퍼포먼스들의 공통점인 ‘다큐멘터리성’에 있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은 영화제작 과정과 비교하자면 프리프로덕션-프로덕션-포스트프로덕션의 삼 단계에서 프로덕션 지점에 공통으로 다큐멘터리적 소재를 놓았다. 이를 제외한 프리프로덕션과 포스트프로덕션의 핵심은 바로 '편집'이다. 영화의 후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편집이거니와 프리프로덕션에서의 캐스팅과 시나리오 등 역시 사실 편집과 선택의 과정일터이다. 그렇다면 공연예술에서의 편집능력이란 무엇일까. 당연히 영상편집의 능력을 말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대 위 연출능력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공연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영감’, ‘그분이 오셨다’, ‘창의성’, ‘본질(00이란 무엇인가)’, ‘연극성’, ‘무용성’, ‘현존’ 같은 수사들을 2차 생산자들은 간단히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적 소재들이다. 골방에 처박힌 기이한 무명 노화가(<천수마트>), 작업실 공간이 부족하여 타인에게 맡긴 작품의 10년간의 여정(<10년만 부탁합니다>), 군사독재 시대의 리틀엔젤스(<빅빅빅땡큐>), 잘 알려지지 않은 60-80년대 한국 퍼포먼스 사례들(<퍼포먼스 연대기>), 사진가 김기찬의 수백 장의 사진들(<타이거마스크의 기원에 대한 학술보고>), 공간사랑의 역사와 3인의 무용수(<우회공간>)를 프로덕션 대상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예술가의 영감과 상상력’ 대신 편집 능력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편집이란 소재의 새로운 접속과 배치를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 세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시 ‘발굴’하고 배열하여 새로운 배치 속에 올려놓음으로써 세계인식을 창출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시나리오 작가나 연출가(안무가)의 ‘상상력’을 최소화하고 단번에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으로 성큼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정치적 소재를 조형하는 전통적 공연의 ‘창의적 시나리오’를 생략하고 정치성을 확보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정치성은 현실정치가 아니라 동시대성을 말한다.)

배치 또는 새로운 배열로 편집한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젊은 예술가들에게 세상은 태어나 눈 떠보니 헬조선, 헬연극계, 헬무용계, 헬미술계, 헬한남계인 상황이었다. 이미 배열이 촘촘히 완성된 곳에 태어난 셈이다. 촘촘히 완성된 배치 속에서 해방되기 위해선 주체적 나에 의한 창의적 편집의 배열이 필요하다. 배열을 바꾸기 위해선, 즉 영화 편집을 하기 위해선 푸티지(재료)가 있어야 할진대 이를 위해 촬영하러 나가는 건, 공연예술로 바꾸어 말하면 더는 유용하지 않은 대학교수들이 가르쳐준 ‘상상’과 ‘영감’의 시나리오 만들기 방식이다. 이제 이미 배열된 세상의 부분을 훔쳐오는 것으로 족하다.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지 않고 손 안 대고 코 풀기의 효율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2차 생산자들은 세상에서 떠낸 소재를 그대로 타임라인에 얹혀놓고 새로운 편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공연 창작자들을 앞선다. 이들은 공연 창작자들이 사명감에 목메는 연출 즉, 무대상의 움직임 편집, 조명 편집, 캐스팅 및 음악 편집 따위에 시간과 에너지를 크게 투자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다.)

동시대성이란 공연예술가들이 종종 착각하듯 포스트드라마틱 시어터-다원예술-렉처퍼포먼스 같은 장르 선형성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선형성은 철 지난 목적 지향적 모더니즘 개념일터, 좋은 2차 생산자는 포스트드라마니 다원이니 떠들지 않는다. 1차 생산자 즉, 좋은 창작자 역시 장르 선형성이 동시대성을 담보해줄 것으로 믿지 않음에 이를 좇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적 태도의 공연예술 역시 최신 유행 장르에 불과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뒤샹 이래로 지난 100년 동안 레디메이드를 사용하는 후대 미술을 ‘유행하는 장르’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2차 생산자와의 협업만이 유일한 답은 아닌지라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젊은 공연예술가들이라면 바로 이 특이성을 연구하면 될 일이다.



줌아웃 에세이 계원예술대학 융합예술과 교수 홍성민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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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마트>, 큐레이터 현시원+길종상가, 국립극단, 2011


정독도서관 앞 천수마트라는 허름한 상점 2층의 골방에서 오랫동안 독학으로 작업해온 노화가. 우연치 않게 화실을 발견한 현시원은 노화가의 서툴지만 범상치 않은 그림을 무대화 한다. 버내큘러(vernacular)한 사물을 제작하는 길종상가에게 조명과 그림프레임 등의 제작을 맡겼고 덕수궁미술관에서 일하는 도슨트에게 작품설명을 맡기는 것으로 1시간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큐레이터인 자신의 역할을 연출이라는 새로운 배열로, 그림을 공연으로, 도슨트를 퍼포머라는 새로운 배치 속으로 재편집한 영민한 사례로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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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공간> 평론가 방혜진+안무가 남정호, 안신희, 이정희, 아르코대극장, 2014,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평론가 방혜진은 70-80년대 대표적 예술 공간인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발표경험이 있는 세 명의 안무가를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기억도 분명치 않은 30여 년 전 자신들의 춤을 재연하는 동시에 군사정권 하 당시의 상황과 고민 그리고 현재를 설명해간다. 지금은 호화로운 미술관으로 바뀐 공간사옥의 건축 그리고 몸과 기억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춤으로부터 거리두기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당시 치열한 고민을 했을 중년이 된 안무가들은 이제 무용계에서 ‘촘촘한 배치’를 후대에 요구하는 당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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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부탁합니다> 평론가 겸 큐레이터 김현진+시각예술가 이주요 남산예술센터, 2017


세계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던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 한데 모였던 2007년 이주요 작가는 여러 명의 지인에게 10년간 작품 보관을 부탁했다. 10년이 지난 후 김현진과 이주요는 극장 무대에 작품을 풀었다. 이들의 사물 퍼포먼스는 블랙박스의 어둠을 뚫고 나오진 못했으나 두 사람 모두의 첫 공연 연출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이 역시 미술작품을 무대 소품이 아닌 주연으로 퍼포머를 조력자로 그 배열을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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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빅빅땡큐> 인문학자 서동진+안무가 오설영+안무가 장홍석, 아르코 소극장, 2016,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근대국가의 전통 만들기, 집단과 개인의 몸, 냉전, 통일교, 국가에 의해 육화된 순수 영혼 등 끊임없이 발굴 연결되는 컨셉은 마치 이대학생들의 데모에서 출발해 끊임없이 발굴되었던 최순실의 그것과도 닮았다. 80년대 리틀엔젤스 출신의 오설영으로부터 발굴된 리틀엔젤스 재편집은 물론 서동진의 역할이 컸을 터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구현하는 일 또한 젊은 안무가들에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세련된 그래픽 감각과 함께 40분간의 흥미로운 쇼케이스를 구현한 이 작품은 2018년 완성작을 공연할 예정이다. 2017년 문래예술공장에서의 전시+퍼포먼스는 <빅빅빅땡큐>의 스핀오프로서 리틀엔젤스 아카이브 전시와 함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짧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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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연대기> 평론가 겸 기획자 김정현+연출가 송주호+ 드라마터그 정세영,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플랫폼 라이브, 2017, 사진: popcon


기획, 연출, 드라마터그, 조명, 퍼포머 등의 역할을 시시때때로 바꾸는 품앗이를 몇 년간 이어가고 있는 3인의 태도 자체가 지속적으로 배열을 바꾸는 독특한 연대라 할 것이다. 대부분 기록으로만 접할 수 있던 60-80년대 퍼포먼스를 가져오지만 4인의 퍼포머가 진행하는 여러 장치로 인해 워싱된 기억처럼 원본은 레퍼런스로 남았다. 파티션을 동원하여 블랙박스를 화이트큐브로 바꾸었다가 엔딩에선 다시 관객석과 무대가 도치된 블랙박스로 관객들을 배열한다. 관객은 무려 두 시간 동안 ‘재연이 아니지만 재연이 아닌 것도 아닌’ 또는 ‘블랙박스가 아니지만 블랙박스가 아닌 것도 아닌’ 심지어 ‘퍼포머가 아니지만 퍼포머가 아닌 것도 아닌’ 즉, ‘No me, not not me’를 통해 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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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마스크의 기원에 대한 학술 보고> 사진평론가 이영준+시각예술가 안데스+공연예술가 남디, 플랫폼L 2016, 국립현대미술관 2017, 사진 작가소장


평생 골목길을 찍은 사진가 김기찬(1938-2005) 작업의 재해석이며 골목길에서 찍힌 타이거마스크를 쓰고 놀던 당시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라고 공연 서문엔 낭만적으로 쓰여 있으나 2시간의 렉처 퍼포먼스는 실상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며 급변한 도시 서울의 교차 편집을 통해 관객을 예측하지 못한 세계로 이끌어간다. 버내큘러함과 애드호크한(ad hoc) 성질을 잃은 메트로폴리스와 지금 우리의 신체와의 연결은 나레이션에 탁월한 안데스 작가와 조연출 남디 작가에 의해 완성되었다.




홍성민 계원예술대학 융합예술과 교수. 20대엔 페인팅, 30대엔 비디오아트, 40대엔 공연예술, 50대엔 영화, 60대엔 페인팅을 다시 하는 걸로 인생을 계획했는데 계획대로 잘 안 되고 있다.
홍성민_계원예술대학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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