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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0.26 조회 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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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길에서 시민의 상상력과 정체성을 자극한다
: 댄싱인더스트릿

[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춤:in〉에서는 시대 흐름을 주시하여 기존의 춤 담론을 주도해온 개인적 창조의 패러다임을 넓혀서 2017년 한 해 동안 시민을 위한 표현이 돋보이는 춤 표현 활동을 연재한다. 〈춤:in〉은 춤과 정치·권력·인권 사이의 담론을 발굴하여 ‘시민 사회 및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시민과 공생하는 춤 표현의 가치를 적극 사고하는 계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본란에서는 시대·문명·사회와 춤의 선순환적 조화를 성취한 특이 사례들이 함께 조명된다.


길에서 시민의 상상력과 정체성을 자극한다
: 댄싱인더스트릿

김채현_춤비평가

1863년 런던에서 세계 첫 지하철이 운행된 이래 지하철역은 오늘날에 와선 도시 문화예술의 지하 발판이 되었으며, 대도시일수록 그 도시의 청년 문화가 활성화된 정도를 드러내는 현장이다. 열차 그래피티 등 지하철 문화예술이 가장 활발한 곳이라는 소감이 어울림직한 뉴욕에서 수십년 밑바닥 생활을 한 행동주의 칼럼니스트 I. 코소는 상류계급을 제외한 다양한 인종과 계급, 젠더가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문화와 풍습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곳이 뉴욕 지하철이고 뉴욕의 계급을 파악하려면 지하철 승차가 필수라 하였다. 겉보기엔 마냥 낭만적인 뉴욕 지하철역 버스킹의 배후에서도 이처럼 도시의 문화와 권력의 관계가 지속된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뉴욕 지하철 그래피티


3년전 뉴욕의 어느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버스커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예술 공연이 지하철역 구내를 이용할 수 있다는 뉴욕 교통국의 규정을 무시하고 경찰이 질서를 내세워 엉뚱하게 조치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이 버스커와 다른 두 힙합 버스커는 뉴욕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결국 작년에 5만5천달러를 배상받았다. 지난 몇 해 테러가 잦아지는 기류 속에서 치안에 더욱 민감해지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미국 경찰이 길거리에서 서성댄다 해서 흑인을 구금하는 등 간혹 범했던 지나친 처사는 외신에서 접한 대로다. 게다가 지난 3년간 뉴욕 경찰은 특히 지하철 ‘열차 안에서’ 춤을 추는 힙합 버스커를 엄중 단속하여 체포 건수(2014년 기준 300명 추정)가 급증하자 역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역 구내가 아닌 열차 안에서 심지어 철봉에 매달려 활개치는 움직임(pole dancing)까지 담은 춤들에 대해 뉴욕 시민들의 반응은 양분된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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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열차 내 댄싱

골머리를 썩였을 경찰과 뉴욕시 문화국은 2년 전부터는 힙합 버스커들을 열차 안에서 적발해도 체포하기보다는 지상의 다른 지정 장소로 가서 출 것을 권고하는 타협책을 쓰고 있다. 이를 계기로 맨해튼의 배터리 파크 등 시내 여러 옥내외 장소에서 춤 버스킹이 거의 매주 정례화되었으며, 이 행사(It's Showtime NYC)는 민간 조직인 댄싱인더스트릿(Dancing in the Streets)이 주관하고 있다. 대부분 유색 인종인 힙합 버스커들 가운데 상당수가 생계를 위해 버스킹에 나서야 했던 현실(어느 5년 경력의 춤 버스커는 한 주에 많게는 900달러 정도 벌어 대학 입학금으로 썼다)에 비추어 매우 제한된 장소에서 한정된 일정으로 열리는 이 행사로 지하철 열차 안의 춤이 근절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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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Showtime NYC 2017


댄싱인더스트릿은 뉴욕 맨해튼 북쪽 브롱스(양키스타디움과 동물원이 있는 곳)를 근거지로 해서 시민 참여형의 거리춤 프로그램을 집중 개발해온 단체이다. 대학에서 춤과 미술사를 전공한 베른하르트(E. Bernhardt)가 1984년에 결성하고부터 이 단체는 그동안 500회 넘는 거리춤 공연을 300여 무용인들과 함께 무료로 실현하였다. 참여 무용가들 중에는 메레디스 몽크, 스테판 코플로위츠, 에이코와 코마, 엘리자벳 스트렙 등등 뉴욕(즉, 미국)의 중견 무용가들도 많아서 춤 예술을 시민에게 전파하는 거리춤을 추구하고 있음을 짐작케 된다.

댄싱인더스트릿이 소재한 지역 브롱스는 이 단체의 지향점을 보다 뚜렷이 상징한다. 1950년대 말 도시 고속도로가 브롱스를 관통하게 된 것이 지역 낙후의 시발점이었는데, 백인 중산층들이 지역을 대거 떠나자 유색인종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빈곤과 범죄가 만연해졌고 급기야는 경제에서나 보건에서나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반면에 브롱스는 힙합과 살사의 발상지로서 백인 위주 문화를 벗어나 문화적 기반이 나름 탄탄한 곳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거점 맨해튼과 롱아일랜드를 잇는 브루클린 대교는 1883년에 건설된 당시로선 자본주의의 동맥이었다. 이 유서깊은 다리의 개통 1백주년 행사로 250명의 춤꾼들이 다리를 건너는 춤축제를 연출하여 베른하르트는 호평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옥외의 장소 특정적 거리춤을 찾아나선 것이 댄싱인더스트릿의 모태가 되었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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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인더스트릿, 타임스 스퀘어 2016


댄싱인더스트릿의 활동 내용은 브롱스 지역의 정체성 강화와 춤과 시민을 위한 거리춤 활동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우선 댄싱인더스트릿은 브롱스에 소재한 단체로서 지역의 정서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즉,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는 달갑잖은 평판이 지역민 내부에서조차 부정적 정서로 흐르던 현실을 직시하고 이의 해소에 주력하였다. 지역민이 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지역의 잊힌 장소와 유산을 일깨우는 작업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이런 선상에서 그들의 장소 특정 춤들은 브롱스를 열등감의 늪에서 구해내는 효력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거리는 어디나 있고 예술의 소재가 된다. 이런 전제에서 장소 특정 춤들이 성립하지만, 댄싱인더스트릿의 거리춤은 춤의 제시와 수용 면에서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는 경향이 강하다. 거리의 사람 즉 일반인이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위치가 변경됨으로써 춤의 주체가 되며, 댄싱인더스트릿에서 시민‘을 위한’ 거리춤은 시민‘의’ 거리춤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해, 댄싱인더스트릿의 거리춤은 지역 주민이 지역 정체성 회복의 주체로 나서도록 하는 동시에 주민 자신이 자신의 지역 정체성을 각성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강점을 갖는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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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인더스트릿 파세이오


지역 정체성과 거리춤이 결합되는 대표적 프로그램으로서 파세이오(Paseo: 가로수길)는 댄싱인더스트릿이 시민 참여로 해마다 진행하는 장소 특정 이벤트이다. 브롱스의 음악가와 시인 등 문화예술인과 지역 춤꾼들이 어울리면서 지역의 명소뿐만 아니라 브롱스가 낙후되기 이전에 활기찼던 지역이나 70년대 브롱스 민권 운동의 중심지 등 다양한 역사 현장도 순례한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즐겁게 순례하는 동안 주민들의 호응은 매우 높다. 파세이오와 유사하지만 춤과 문화예술에 초점을 맞춘 지역 예술제(The South Bronx Culture Trail)도 매년 있다(올해 10일간 진행).

오늘날 브롱스 사회와 경제는 전반적으로 호전되는 것으로 관측된다. 상황이 이렇게 진전되는 데 있어 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로 계량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 사회가 자포자기의 상황에 놓인 그 시기 이래 브롱스에서 거리춤이 문화예술을 결집하여 지역민의 자부심을 키우는 구심점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댄싱인더스트릿의 여러 프로그램들은 시민의 삶에 밀착해서 그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풀어나갈 힘이 춤에 충분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우리가 간혹 접하는 거리춤과 비교하자면, 댄싱인더스트릿은 적극적이며 지속적인 기획으로 가히 거리춤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내었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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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인더스트릿 파세이오


[참고 자료]
· 댄싱인더스트릿의 공식 웹사이트 바로가기
· 댄싱인더스트릿의 파세이오 행사 영상 자료 바로가기
· 뉴욕 지하철 내 댄싱 영상 자료 바로가기 바로가기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김채현_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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