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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0.26 조회 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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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의 현대화와 한국적 수용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와의 대화

이정미_피아니스트·문학 석사·문화예술교육사

줌아웃 대화 《춤:in》 이정미_피아니스트·문학 석사·문화예술교육사 관련 사진

(좌측부터) 이정미, 김태훈, 설호종


플라멩코의 길


이정미: 만나서 반갑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공연의 준비로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플라멩코의 세 가지 구성 요소인 칸테(Cante, 노래), 토케(Toque, 기타), 바일레(Baile, 춤)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인 단체로서 벌써 9년째 활동 중이시네요. 연륜이 점점 쌓이면서 콜라보나 스토리화된 공연 구성까지 시도하신 점이 돋보입니다. 우선 단체를 구성하게 된 경위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설호종: 저희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는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김태훈 플라멩코 댄스컴퍼니’와 플라멩코 앙상블 ‘라 뚜나(La Tuna)’가 2009년에 의기투합하여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라 뚜나’는 국내 최초의 플라멩코 음악 그룹으로서 플라멩코 기타의 선두 연주자 호세 리(Jose Lee) 선생님의 제자인 박석준과 플라멩코 보컬 소니아(Sonia), 기타리스트 박준호 그리고 월드 타악 연주자인 저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두 단체가 합쳐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공연을 할 때마다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속 무대감독, 조명 감독, 음향감독과 함께 하는 뮤지컬 공연 시스템을 도입하여 완성된 공연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관객층을 넓히고자 한 결과, 현재는 기존의 플라멩코 동호인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여행 등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플라멩코를 알게 된 많은 관객층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정미: 보통 집시들의 예술로 알고 있는 플라멩코는 사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기나긴 역사에 걸쳐 흡수한 여러 민족의 문화가 복합된 예술입니다. 집시들이 플라멩코의 태동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플라멩코가 세계화될 수 있었던 것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여러 환경과 정책, 예술가들의 역량이 잘 조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미 세계화된 플라멩코를 국내에서 익히고 공연하거나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가까운 곳의 일본에는 플라멩코 조직체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데 국내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김태훈: 한국 플라멩코의 역사 자체가 워낙 짧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체계적인 교육과정이나 창작 과정이 준비되어 있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플라멩코 무용수가 되고 싶어서 어떤 개인이 플라멩코를 배우고자 하면 몇 군데 없는 학원을 찾거나 외국으로 유학이나 연수를 떠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플라멩코 전수를 위해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음악 파트는 배우기가 더욱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플라멩코를 배웠다고 하더라도 다른 예술 분야처럼 정식 학제의 전공과정을 이수한 것은 아니므로 아마추어와 프로를 뚜렷이 구분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다만 국내외 공연 출연을 통한 실력 인정만이 유일한 프로 데뷔 방법입니다. 플라멩코 무용과 음악의 교육과정이 조금 더 체계화되어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배우고 실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플라멩코 공연을 할 때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추어지기가 힘들었고, 공연의 준비과정도 체계화되지 못했습니다.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좀 더 발전된 플라멩코 공연을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줌아웃 대화 《춤:in》 이정미_피아니스트·문학 석사·문화예술교육사 관련 사진

설호종,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 단장, 월드 퍼커션 ‘타악궤범’ 리더


이정미: 불모지에서 그러한 시도를 하시고 매 공연마다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집니다. 사실 우리 전통예술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플라멩코도 원래 민속예술이므로 과거에는 따로 정해진 교육 제도가 아닌 구전에 의해 전수되어 왔습니다. 특히 ‘가족’의 역할이 지대 했지요. 현대에 활동하는 집시 플라멩코 예술가 중에도 대대로 내려오는 플라멩코 가문의 후손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박해받고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예술 혼을 피어 올리던 우리의 예인들과 집시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한을 대물림 받고, 그것을 승화시켜서 표현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부터 안달루시아 현지에서는 학문화 과정이 시작되었고, 음악학교와 무용학교에서도 플라멩코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한 교육과 전파도 매우 활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TV에 100회에 걸쳐 방영된 <리토(Rito)> 시리즈나 사우라(Carlos Saura) 감독의 영화들이었지요. 한국에는 어떤 루트로 플라멩코가 알려졌는지요? 또 배울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좀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설호종: 한국에서 플라멩코는 공연 및 영화, 광고 등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카르멘>, <돈 주앙>, <조로> 등과 같은 뮤지컬과 플라멩코가 소재로 들어 간 <도쿄 타워>와 같은 영화, 그리고 스페인 플라멩코 이미지를 차용한 TV CF 등이 있었지요. 물론 이러한 매체를 통해 대중들이 알게 되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플라멩코의 특정 이미지만 부각해서 플라멩코를 오해하게 되는 단점도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플라멩코의 왜곡된 이미지를 개선하고, 정통 플라멩코를 알리는 것이 저희 팀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합니다.
플라멩코 무용을 배우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몇몇 플라멩코 아카데미를 통하거나 국외 플라멩코 페스티벌, 워크숍 등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드리드에 있는 플라멩코 아카데미인 ‘아모르 데 디오스(Amor de Dios)’, 세비야에 있는 ‘크리스티나 헤렌(Christina Heeren)’ 등을 통하거나 개인레슨 등으로 배울 수도 있지요. 음악의 경우 국내에는 아카데미가 따로 없으니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들로부터 개인적으로 배우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정통 플라멩코를 제대로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음악과 무용의 공동 창작


이정미: 그런데 결국 플라멩코의 음악과 춤은 하나가 되어 무대에서 실연되고 있습니다. 플라멩코의 장르, 즉 팔로(palo)가 원래 칸테에 의해 나누어지고 이에 따라 안무가 이루어지는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시 유형으로 불리는 기본 유형들 외에도 스페인 전통의 유형들이나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식민지 건설 등으로 인하여 생겨난 유형들 내에 많은 팔로가 있지요. 무용수는 각 팔로의 특성을 살리기 위하여 무대에서 함께 연주되는 칸테의 가사나 음악의 모든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현대무용과 비교하여 플라멩코에서의 음악 과 춤의 관계를 요약하여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김태훈: 가장 중요한 특징은 플라멩코의 음악과 무용이 동시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칸테를 비롯한 음악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안무와 음악 구성을 할 때 선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공동 창작됩니다. 또한 무용수와 음악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파테아도(Zapateado)’라는 발 구름 동작에 의해 무용수가 리듬 연주가도 되고 여기서 발생하는 리듬은 음악 전체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플라멩코 무용의 테크닉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플라멩코 음악과 정서적 공감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테크닉적인 요소들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음악과 무용 모두 외부적인 테크닉만으로는 플라멩코가 표현되어지지 않으므로 플라멩코의 정서인 두엔데(Duende)가 반드시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줌아웃 대화 《춤:in》 이정미_피아니스트·문학 석사·문화예술교육사 관련 사진

김태훈,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 예술감독 및 안무가


이정미: 아,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을 이야기해주셨네요. 음악과 춤이 동시에 준비되고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연행된다는 것과 ‘두엔데’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셨습니다. 두엔데란 집시들의 한과 감흥이 절정에 오른 순간을 말하며 원래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귀신이나 악 마, 요정 또는 불가사의한 매력이나 신비스러운 마력 등을 뜻합니다. 그러니 매우 영적인 단어라고 볼 수 있는데 집시들의 두엔데를 이해하고자 하면 우리의 ‘한과 신명’과 유사한 정서를 떠올리게 되지요. 그런데 무대에서 시간예술인 음악과 춤이 펼쳐질 때 때 연행자와 관중이 느끼는 정서는 시대나 예술가, 공연 조건 등에 따라 계속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에보 플라멩코(nuevo flamenco)’라는 말 속에는 플라멩코 고유의 전통이 살아있다는 전제 하에 세계 각국의 예술을 접목하여 재창조한 플라멩코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의 플라멩코 조류이며 퓨전이나 크로스오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스페인 을 중심으로 플라멩코의 현대화는 대략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김태훈: 전 세계적으로 플라멩코와 다른 무용이나 음악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고, 현대무용과도 다양한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전통적인 플라멩코 형식과 내용들이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집시들의 전통적인 플라멩코 구조나 형식을 벗어나서 발레나 현대무용 을 익힌 무용수나 여러 음악가들이 각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단결’이라는 다양성


이정미: 그렇다면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에서 지향하시는 ‘누에보’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설호종: 말씀하셨듯이, 저희가 생각하는 ‘누에보(Nuevo)’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통의 바탕 위에 새로운 에너지를 넣겠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에너지라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현대화된 새로운 무용 동작과 음악 형식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와 의 퓨전을 통한 플라멩코의 재창조를 뜻하기도 하지만, 내면적으로 두엔데와 유사하기도 한 한국의 한과 신명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한국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플라멩코 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부터 발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의 이러한 시도는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각 문화권에서 추구하고 있는 플라멩코 현대화의 한 추세이기 도합니다.

이정미: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에서도 이미 인도의 종교적인 전통춤인 카탁(Kathak)과 플라멩코의 합동 공연을 시도하셨더군요. 플라멩코는 역사적으로 힌두교나 유대교, 이슬람, 가톨릭 등의 여러 종교와 민족을 배경으로 복합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며 발전하게 된 원동력도 이러한 다양성의 수용 덕분인 것 같습니다. 대표적 플라멩코 학자인 W. Washbaugh에 의하면 독일 철학자 크라우제(C. F. Krause)가 강조한 ‘문화의 단결’ 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적 태도가 플라멩코 부상의 첫 번째 원인이라고 합니다. 지역과 시대를 잇는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고 이에 따라 정통성 논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예술의 본질이 창조, 즉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행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실험은 활발하게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줌아웃 대화 《춤:in》 이정미_피아니스트·문학 석사·문화예술교육사 관련 사진



이정미: 아시겠지만, 재작년에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공연했던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의 초현대화된 안무와 의상, 음악은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추구해오던 현대화 작업과는 차별화되는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만의 작업이 추구하시는 방향을 알고 싶습니다.

설호종: 집시들에 의해 만들어진 집시 감성의 플라멩코는 집시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 플라멩코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좀 더 보편적인 플라멩코가 되었고 현대화된 플라멩코로 진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보편화되고 있는 플라멩코 위에 한국인만이 가지는 특성을 살려 표현하는 일, 즉 집시가 가지는 감성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다른 우리만의 신명을 더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플라멩코를 창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팍팍한 현실에서 생긴 한을 극복하려던 과정에서 생긴 집시의 두엔데와 우리 전통예술의 신명은 공연하는 예술가와 관중이 서로 소통할 수 있었던 정서였다는 점에서 유사하기는 하지만 각각 고유의 특성이 있다는 점도 분명하니까요.

이정미: 저는 살풀이춤과 플라멩코 연행의 정서적 특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살풀이춤의 경우 연행자가 타인을 위해 살을 풀어주거나 스스로 한을 풀고 신명에 도달할 때 관중은 그 행위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한을 풀고 스스로 신명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큰 무대 위에서 공연할 때는 이러한 감흥이 많이 줄어들지만요. 정통 집시 유형 플라멩코의 경우에는 쓰라린 한을 품은 집시가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현실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다가 황홀경에 빠지면 그 상태가 관중에게도 전달되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두엔데를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한이나 신명, 두엔데가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정서이기도 하지만 각각 예술적인 특성이 다른 것처럼 느끼는 정서도 다른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배움이라는 실험과 공연이라는 접촉


이정미: 단장님께서는 한국 타악을 시작으로 현재 플라멩코 퍼커션(percussion)을 연주하고 계신데 처음에 플라멩코 퍼커션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또 ‘플라멩코의 한국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장르 간에 상통되는 점이 있는지요?

설호종: 제가 한국 타악기 연주를 먼저 시작하였지만, 항상 전 세계 타악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아랍 지역의 전통 타악기이자 벨리 댄스(belly dance)의 반주로도 쓰이는 다르부카(Darbuka)를 연주하는 과정에서 플라멩코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음악에 매력을 느껴서 플라멩코 타악기인 카혼(Cajon)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한국에서 유일 하게 ‘플라멩코 퍼커셔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플라멩코의 박자는 컴퍼스(Compas)구조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간략하게 특징을 설명하자면 대부분 익숙한 4박자보다는 12박자의 리듬 구조를 아주 다양하게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전통적 리듬에도 12박자가 자주 나오고 특징이 뚜렷하지요. 한국과 스페인 사이에 있는 아랍 지역 리듬의 경우 오히려 4박자 구조에 중점을 두는 편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 끝인 한국과 플라멩코의 리듬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도 하면서 앞으로 계속 연구해볼 여지가 많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리듬 부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미: 네, 단장님께서 다양한 악기를 접하고 연주하신 경험은 플라멩코 공연의 정통적인 부분을 강조하거나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변화를 시도하실 때 모두 큰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실험을 계속하시면서도 섣불리 공연으로 바로 연결시키지 않고, 각 공연의 의도에 맞게 신중 하게 악기와 음악을 선택하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플라멩코 합주단의 음악에서 국악 시나위 합주단의 현·관·타악기 구성과 즉흥성, 칸테의 발성과 판소리 창법과의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일레와 한국 민속춤을 비교해볼 때는 어떻습니까? 저는 살풀이춤과 정통 집시 플라멩 코 바일레를 비교해본 결과 각각 물과 불의 속성을 지닌다고 생각되어 연구해보았는데, 이처럼 상반되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물과 불이 ‘정화 작용’을 하는 것처럼 두 춤은 우리의 내면에 쌓인 ‘한’을 정화하면서 굳건하게 대지에 의지하여 추어지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김태훈: 한국 민속음악과 춤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특이한 것이 있는데 바로 ‘상모돌리기’와 동시에 악기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연행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악기 연주와 동시에 상모돌리기처럼 어려운 동작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압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상모를 돌린다는 것은 온 몸을 사용해서 춤을 추는 동작인 것이고, 동시에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플라멩코 무용수도 발구름을 함으로써 춤추는 동작과 리듬 연주를 동시에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용수가 음악을 연주하고, 연주자가 무용을 동시에 하는 개념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동작 과정에서 비슷한 발 구름 방법이 나옵니다. 상모를 돌리는데 필요한 스텝은 무게 중심을 아래로 향해야 가능한 것처럼 플라멩코 발 구름 또한 무게 중심을 발레나 아이리시 탭댄스처럼 위가 아니라 아래에 주게 됩니다. 참고로 인도의 춤인 카탁의 발 구름 또한 중심을 밑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기도 합니다.

이정미: 오, 또 카탁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인도의 전통예술은 플라멩코와 우리 민속음악이 춤의 간접적인 연결 고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역사를 추적해보면 고대로부터 서로 교류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니까요.
일부 플라멩코 학자는 집시의 출발 지역이 인도이기는 하지만 인도 전통춤인 카탁이나 바라타 나트얌(Baharata Natyam) 등과 플라멩코는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인도의 춤들은 인도 내의 각각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춤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춤이 각 지역마다 다르기는 해도 공통성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바라타 나트얌과 카탁은 종교적이면서 동작과 음악을 볼 때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플라멩코 예술가와 인도의 전통예술가들이 협업한 작품을 감상해보면 시대를 초월하여 두 예술의 동작이나 연주 형태의 유사성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집시의 이동 경로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아서 지금도 계속 연구 중에 있지요.
스페인 현지의 플라멩코 예술가들이 집시 기원지의 예술을 연구하여 협업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예술들, 즉 800여 년이나 되는 이슬람 세력 통치 시대의 예술적 유산과 협업하는 ‘플라멩코 아라베(flamenco arabe)’라는 복합적인 예술을 만들어내고, 과거 식민지 지역인 남아메리카의 문화와 융합한 장르들을 생산하기도 하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융합하여 민속예술이었던 플라멩코를 세계화시키는 작업들을 활발하게 시도하고 있지요. 여러 정책들과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고, 이론적인 연구가 그만큼 활발하다는 점이 부럽기도 합니다. 정통성에 대한 논란을 계속하면서도 예술가들의 실험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감독님께서 안무나 여러 공연의 준비 작업들을 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두시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김태훈: 전통적인 집시 유형만을 고집하다보면 새로운 표현에의 가능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칸테의 음색도 다양화되어 청중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기도 하고 기타는 그 이전에 이미 독립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습니다. 현대에는 콜라보 외에도 안무자에 따라 현대무용의 예술적인 표현을 획기적으로 차용하기도 합니다. 공연 예술이란 현장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동시대성을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므로 항상 저의 사고 자체를 유연하게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저희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음악이나 무용과의 융합을 형식적인 면에서 꾀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내재적인 감성의 융합입니다. 플라멩코에 내재된 감성과 한국인으로서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성이 융합되어 창작되어지는 작품 자체를 ‘한국화된 플라멩코’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형식적인 한국화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정미: 공연의 빈도도 중요해지겠군요. 이미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지정된 플라멩코에 대하여 스페인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수많은 연구와 공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에 비하면, 국내에서는 축제 기간에 한정하여 일회적인 내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은 플라멩코 공연을 몇 년째 꾸준하게 이어오시면서 이러한 점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으셨는지요?

설호종: 플라멩코를 한국화하기 위해서 단기간의 축제나 일회적인 공연이 방해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국내에서의 발전도 스페인의 플라멩코 자체를 충분히 체득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플라멩코를 자주 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누에보’ 라는 단어는 전통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플라멩코의 기본, 즉 스페인 현지의 플라멩코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공연이 계속 시도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플라멩코 공연은 관객을 끄는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회성이라도 다양하게 시도되어지는 축제나 공연이 계속 이어지면 소수의 관객이라도 그 공연들을 계속 접하게 되는 일이 축적되면서 플라멩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저희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의 진지한 노력과 창작 의지가 계속되는 한 관객들과 함께 공연의 수준을 더욱 향상시키면서 발전하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정미: 내달 1일에 또 공연이 있으시네요. 각 파트의 전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 ‘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를 알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아무쪼록 건승하시고요, 멋진 공연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대담에 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설호종·김태훈: 감사합니다!




김태훈_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 예술감독 및 안무가 전통 플라멩코의 공연 형식을 바탕으로 플라멩코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플라멩코 공연의 질적 향상과 현대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을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플라멩코 교육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정미_피아니스트, 문학 석사, 문화예술교육사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 연주자로 활동하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살풀이춤과 플라멩코의 비교 문화론적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현대음악, 동·서양의 예술 및 통합예술에 관하여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춤을 익히는 체험을 병행하면서 이론적인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설호종_누에보플라멩코컴퍼니 단장, 월드 퍼커션 ‘타악궤범’ 리더 한국의 타악을 비롯한 전 세계의 타악에 관하여 연구하며 플라멩코 및 아랍 음악의 퍼커셔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장단과 세계의 다양한 리듬들의 공통점을 찾아 현대에 맞는 새로운 리듬을 창작하고 있다.
개인홈페이지 www.worldpercussion.co.kr
타악궤범 www.worldpercussion.or.kr


이정미_피아니스트·문학 석사·문화예술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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