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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9.28 조회 2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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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춤·시민·표현: 휠체어 행동주의자, 차별에 맞서다 : 페트라 쿠퍼스

[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춤:in〉에서는 시대 흐름을 주시하여 기존의 춤 담론을 주도해온 개인적 창조의 패러다임을 넓혀서 2017년 한 해 동안 시민을 위한 표현이 돋보이는 춤 표현 활동을 연재한다. 〈춤:in〉은 춤과 정치·권력·인권 사이의 담론을 발굴하여 ‘시민 사회 및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시민과 공생하는 춤 표현의 가치를 적극 사고하는 계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본란에서는 시대·문명·사회와 춤의 선순환적 조화를 성취한 특이 사례들이 함께 조명된다.


휠체어 행동주의자, 차별에 맞서다
: 페트라 쿠퍼스

김채현_춤비평가

국내에서는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 법 제정 이후 공공시설에서 계속 늘어난 경사 통로는 이 법을 상징한다. 이 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는 제한·배제·분리·거부 등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하는 행위는 차별로 정의된다. 간단히 말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차이를 이유로 유무형의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가 차별이다. 그 이름만으로는 진취적으로 여겨질지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인의 제반 권리를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구현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한 장애인 특수학교를 자기 지역에 건립하는 일에 반대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세태는 장애인차별의 현실을 무참히 드러낸다.

심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활동을, 이제는 잘 알려졌듯이, 해외의 많은 무용단들이 솔선수범해왔고 국내에서도 모색해왔다. 장애 증세가 대개는 몸의 상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장애인 무용단이 펼치는 춤들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일반 무용단의 춤들과는 달리 그 춤들은 장애를 가진 몸도 비장애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주체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환기하는 특성이 있다. 적어도 여기서는 장애인이 주체이기에는 미흡하다는 통념은 흔들리기 마련이어서, 장애인차별 없는 평등 의식의 고취를 위해 춤의 역할은 실제로 막강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으며 장애인 단체와 개인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장애인차별은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 정황에서 장애인차별에 맞서는 활동이 강화되리라는 것은 능히 예측되는 일이다. 페트라 쿠퍼스(Petra Kuppers)의 경우 진작부터 그 같은 활동을 꽤 다면적으로 실행해온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휠체어 여성 무용가일 뿐만 아니라 쿠퍼스는 미시건대학 영문학과 교수이자 커뮤니티 예술가, 시인, 영화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으로서 이만큼 다재다능한 작업을 수행하는 인물은 드문 것 같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페트라 쿠퍼스


2001년부터 3년간 쿠퍼스는 연작 〈풍경을 만드는 여성들(Landscaping Women)〉을 제작하였다. 이 작업은 정신 질환을 가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영국 서쪽 웨일스 지방의 국립공원, 런던의 실험소극장, 말기 환자 병원, 산골 마을을 돌며 5부작으로 진행되었다. 작업 포맷은 들판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몸으로 언어와 상징적 조형들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몸이 놓인 공간의 특정한 지역 신화나 존재론적 상황을 축으로 자신들이 그에 동화되는 순간들을 구현해나갔다. 참여자 개개인과 풍경의 상징성이 상호 작용하는 이러한 체험은 각자가 주체로서 장애를 극복하는 계기로 설정되었다.

이 작업은 쿠퍼스가 1998년 시작한 〈올림피아스(Olimpias)〉 프로젝트의 하나에 속한다. 〈올림피아스〉 프로젝트는 쿠퍼스가 타 장르 예술인들과 함께 추진한 집단 협력 프로그램으로서 그동안 30회 정도 진행되었다. 프로그램마다 주체는 장애인이며 각자의 치유를 목표로 삶과 예술을 장애인 입장에서 통합하는 방법이 두드러진다. 쿠퍼스는 자신이 장애인이어서 장애인의 눈으로 커뮤니티 예술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면서 치유 효과와 함께 장애에 대한 주변과 사회의 인식 변화를 동시에 모색해왔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올림피아스〉 프로젝트, 2013


쿠퍼스는 독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 20대 중반인 1990년대 초에, 자신의 말로는 장애인 예술 활동이 덜한 독일보다는, 영국 웨일스 지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영화와 퍼포먼스 연구를 전공하는 한편 장애인이나 재소자, 노숙자 등 사회 소수자들과 어울리는 커뮤니티 예술가로 작업하였다. 이후 쿠퍼스는 장애 문제를 범사회적 과제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미시건대학 영문학 교수로서 쿠퍼스의 강의 영역은 순수 영문학이 아니라 퍼포먼스 서사와 실행이다.

장애인차별에 대한 그 자신의 비판 의식에서 쿠퍼스는 장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을 교정하는 작업에 높은 비중을 두어 왔다. 웨일스 지방 관광지로 꼽히는 스완시의 대형 쇼핑몰에서 대형 스크린 2대를 설치하고 일반인들이 쿠션에 누워 관람하도록 한 작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정신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호흡, 움직임과 함께 정신 이상 증세로 가득 메워진 스크린을 관람하는 일반인들의 표정이 쿠퍼스는 지금도 ‘정말로 행복하였다’고 표현한다. 그 현장에서 사람들은 정신 이상에 대해 경험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 같은 증세를 거부감을 갖지 않고 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다.

쿠퍼스에 의하면, 1990년대에 공공장소에서의 이러한 작업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 말은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그다지 오래 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뜻하며, 때에 따라 극우 집단의 준동으로 사회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너울치곤 하는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장애인에 대한 인식 또한 그 토대가 불안정하다는 판단을 갖게 한다. 이런 연유에서 장애에 대해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인식 토대를 굳건히 해나가는 작업의 중요성이 환기될 필요가 있다. 또한 쿠퍼스가 무대 발표회보다는 장애인 커뮤니티를 축으로 인식의 토대를 결집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어온 이유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페트라 쿠퍼스와 파트너 근육긴장이상 시인 닐 마커스


장애 치유와 지역 사회의 결집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쿠퍼스가 구현한 사례로서, 2005년 뉴질랜드 두네딘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추진한 퍼포먼스가 들어진다. 두네딘 지역 원주민이 주축이 된 이 행사는 커뮤니티 댄스 현장 전문가가 총괄 진행하고, 지역 예술인들과 지역 호스피스에 입원하던 말기암 환자들이 공동 제작하였다. 그 지역의 설화처럼 환자들이 살아온 지역 공동체 전설과 그들이 간직해온 지역 공동체에 대한 기억을 중심 소재로 해서 그 지역 해안과 숲의 조가비나 이파리 같은 자연물이 환자들의 사연에 바탕을 둔 상징물로 재구성되고 또 사진 이미지로 재탄생하였다. 이런 장치들을 마련하면서 커뮤니티 댄스 현장 전문가는 참여자들이 해낼 춤과 움직임, 몸짓으로 춤을 개발하였으며, 전체 행사는 사진 이미지와 상징물을 배경으로 관람자들이 함께 원무를 진행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1)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근육긴장이상 시인 닐 마커스와 함께 한 퍼포먼스, 2009


휠체어 행동주의자(wheelchair activist), 페트라 쿠퍼스에게 어울리는 칭호이다. 장애인을 수동적 존재로 대하는 세태에서는 그런 칭호가 한결 도드라진다.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회복에 앞장서는 행동은 드물지 않으나 쿠퍼스처럼 이를 삶의 현장, 예술 현장, 학술 현장에서 동시에 실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일반인을 기준으로 장애인을 재단하는 오류는 흔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장애인들이 일반인의 이른바 정상 상태를 원할 것이라는 지레짐작 역시 완고하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은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긍정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부인하는 오만마저 범한다. 장애인을 온전한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이런 세태에 대해 쿠퍼스는 반기를 들었고 그 표현 작업을 완강하게 지속하고 있다.

덧붙여, 장애인 집단 내의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추는 그녀의 작업은 화려하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그러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구성되는 서사에서는 매우 환타스틱한 꿈의 세계가 두드러지며 아울러 커뮤니티적 진정성과 시대 의식이 확인된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페트라 쿠퍼스 시집 《PearlStitch》 표지


[참고 자료]
· 페트라 쿠퍼스 개인 웹사이트 바로가기
· 올림피아스 프로젝트 바로가기
· 페트라 쿠퍼스 작업 소개 영상 바로가기
· 〈풍경을 만드는 여성들〉 영상 자료 바로가기
· 〈티레시아스〉 영상 자료 바로가기




김채현_춤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김채현_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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