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9.28 조회 4038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복사
  • 프린트

청년 지원 사업 - ‘돌아보기’와 ‘다시보기’를 통해 ‘앞서 보기’

글, 정리_허영균(웹진 <<춤:in>> 편집부)

일시: 2017년 9월 4일 오후 4시 30분
참석: 이지현(평론가, 모더레이터), 임진호(고블린파티), 장혜림(나인티나인 아트프로젝트), 천샘(오후의 예술공방)
참관: 이규석(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본부 창작지원본부장), 이정현(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팀 팀장), 이지은(서울문화재단 서울무용센터), 김연임(웹진 《춤:in》 편집장), 허영균(웹진 《춤:in》 편집부)



줌인 안무가·무용수·예술강사 윤상은 관련 사진

좌담_전체 / ⓒ박호상


사회 각 분야의 지원제도 가운데,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언제나 특수한 것이었다. 예술가의 삶은 일반화하기에 다소 어려운 영역에 놓여 있기에, 제공하는 쪽과 제공받는 쪽의 ‘쿵짝’은 종종 불협화음이었다. 그중에서도 청년 예술가들, 이제 막 분야로의 진출과 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의 필요와 요구는 더욱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한발 뒤에 놓여있던 청년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전 세계적인 청년층의 생존 문제와 맞물려, 드디어 우리에게도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청년층이 사회에 진출하여 안전하게 정착하게 하는 것은 해당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성장, 오늘과 미래에 관련된다. 이에 무용계는 청년 예술가의 ‘현장 접속’ 환경을 어떻게 대비하고, 반응하고 있을까? 청년 무용 지원제도의 경험자들이, 지원제도에 접속한 계기와 방법, 지원을 통해 작업을 꾸려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화 속에서 지원제도에 대한 기대와 더 나은 제도를 위한 제안을 수확해 본다.



이지현(모더레이터, 이하 이지현): 청년을 위한 지원사업의 경험과 기대라는 큰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려 한다. 사전에 질문지를 공유했는데, 이를 토대로 하되, 여기에 포착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편하게 나눠보자.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 중인 지원 사업은 무용 생태계 안에서의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연령대별 지원이 정책적으로 안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청년기’에 대한 지원은 대체로 묻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 사회 적응이 이슈가 되는 만큼, 무용계에서도 지원 정책과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여러 지원제도에 도전하는 것에 여러 번 좌절했거나 혹은 자신이 없어서 지원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지원 과정에서 겪은 자기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줌인 안무가·무용수·예술강사 윤상은 관련 사진

이지현 / ⓒ박호상


청년, 지원사업의 어려움


천샘(오후의 예술공방): ‘감성충만 지식저렴 예술가들을 위한 초경량 지식투척 프로젝트!: 오후의 예술공방’이라는 예술가들 인문학 스터디 그룹을 이끌고 있는 천샘이다. 햇수로 4~5년 정도가 되었고, 이 모임에서 쌓인 고민을 바탕으로 2015년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 공연을 올렸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무용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두 번째 공연은 사회의 혐오문제를 고발한 공연이었다. ‘살롱이브닝’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공연을 한 편씩 올리고 있고, 내년에 올릴 공연을 위한 ‘사전 연구 지원’을 신청해 선정되었다. 이름은 ‘2018 살롱이브닝을 위한 신체 언어 워크숍’이다.

장혜림(나인티나인 아트프로젝트): 나인티나인 아트프로젝트의 장혜림이다. 예술 교육을 통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참여형 예술 교육을 진행하여 현시대에서 느끼는 정서와 감성에 대해 소통하고 우리의 한국 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예술 작업을 시도하는 단체이다. 현재 서울특별시에서 지원하는 ‘서울청년예술단’ 무용 분야에 선정되어 활동 중이다. ‘서울청년예술단’은 예술 활동 경력이 적거나, 자립하지 못한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임진호(고블린파티): 고블린파티의 멤버인 임진호다. 고블린파티는 모두가 안무가이자 댄서로 구성된 팀이다. 지향점이 정해져있지 않고, 늘 순간순간 소통하고 이야기함으로써 합의점을 찾아 나간다. 한 사람의 리더가 있는 게 아니라 함께 가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나는 ‘dot(유망예술지원사업/dance of theater)’로 선정이 되어 서울무용센터 2층에서 공연했었다. 제목은 <구제>였다. 전에는 이 자리에 그 공연 사진이 있었는데…(웃음).

이지현: 나이티나인아트프로젝트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노트댄스’라고 알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고, 그것을 소재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 청년 예술가들의 주제를 보며 느끼는 것은 ‘새롭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무용 전공자들이 교수님 밑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고, 중년이 되어서야 독립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독립 무용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졸업과 동시에 자기 작업으로 데뷔하면서 활동을 시작하는 사례가 시작된 지 10년이 채 안 된 것 같다. 아주 희망적인 일이다. 학교나 그 주변에 매달리지 않고, 자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임진호 씨가 <구제>를 공연한 경험을 좀 더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임진호: 서울무용센터를 활용하지 않았더라면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주소지가 경기도로 되어 있어서, 이 공간에서 레지던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공간을 관찰하게 되었고, 이 공간을 활용해서 작품을 하게 되었다. 작품을 만드는 것은 사실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과 후의 과정이 힘들었다. 작품 만들기의 과정은 늘 즐겁다. 고민과 스트레스의 연속이긴 하지만. 우선 작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요구되는 많은 서류 작업, 행정적인 과정이 선행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어떻게 지원하는 것인지 교육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전 미팅이 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내용을 숙지하기 어렵다. 매뉴얼도 있지만, 개별적인 사례가 다르기 때문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결국 전화로 물어보게 되는데, 담당자께 연락하는 게 일단 죄송하고, 수정 내용이 발견될 때마다 문자, 전화로 괴롭히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바보인가 싶기도 하고.

이지현: 그럼 뒤이어 오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임진호: 역시 정산이 어렵다. 평생 세무서에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게 된다. 왜인지 세무서에 가면 뭔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자발적으로 뭔가 내려고 간 곳인데도 불구하고,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다.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정산을 할 때 겪는 어려움도 있고. 창작 과정과는 별개로 전후에 필연적인 행정적인 과정은 늘 어렵다.

천샘: 임진호 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한다. 나의 경우 사업 변경 신청서를 쓰는 문제가 어려웠다. 처음에 지원서에 썼던 내용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중간에 무용수가 바뀔 수도 있고, 장소가 변경될 수도 있다. 사실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이런 변동을 사업 변경 신청서로 하나씩, 하나씩 수정해야 한다. 성격이 꼼꼼한 편인지라, 매우 디테일한 계획서를 사전에 제출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이 독이 되었다.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드는 정책이란 생각이 들면서 ‘무용 작업의 현실을 잘 모르나 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줌인 안무가·무용수·예술강사 윤상은 관련 사진

천샘 / ⓒ박호상


장혜림: 예술 작업을 글로 설득시켜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사업진행을 위해 청년 예술인들의 업무를 분담하고, 그 일을 체계화 시키는 과정이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은 서류 업무 처리를 위해 매일 통화를 하여 문의하고, 그것을 반영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쏟는다.

이지현: 서울 청년예술단 사업은 사업 안의 기획, 홍보, 정산 등의 업무를 청년들이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요구조건이다. 고블린파티나 천샘 씨의 프로젝트에는 내부 기획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진호: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이지현: 기획자에게 일을 맡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업무의 수월함이 다르지 않나.

임진호: 기획자를 모시더라도 우리가 준비를 해서 알려드려야 일이 수월하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맡겨버리면 도리어 일이 많아진다.

천샘: 한 달에 한 번 만남을 통해 공연기획 등의 일을 함께 한다. 아직 외부에 맡길 정도로 큰 작업을 하는 팀은 아니다. 손발이 잘 맞는 편이다.

이지현: 나인티나인 아트프로젝트 안에서 기획의 역할은 누가 맡고 있나?

장혜림: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후 좋은 기획자를 만나 함께 일구어 나가고 있다. 바로바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어느 정도 틀을 마련하면, 그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어서 서류제출 과정까지 도움을 받는다.



지원금 안에서 작업 꾸려가기


이지현: 지원금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가 사실 더 많고, 넉넉하다 해도 자부담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담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받은 지원금 안에서 작업 하는지 혹은 후원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진호: 과거에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공연을 보면, 2,000만 원을 지원받아 3,000만 원 규모의 작품을 한다. 그리고 그 차액을 부담하기 위해 다른 부당한 일을 한다. 그런 일들을 보며, 지원금 안에서 작업을 해야지, 무리한 작업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생겼다. 작업하게 될 사람들을 만나서도 예산 이야길 먼저 꺼내는 편이다. 물론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늘 마음이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예산을 밝히고, 이런 비용으로 작업을 의뢰 드리니, 아이디어를 주시거나 작업을 할 때, 예산을 고려해 달라고 부탁한다.



줌인 안무가·무용수·예술강사 윤상은 관련 사진

임진호/ ⓒ박호상


천샘: 지금 하는 프로젝트는 36개월 미만의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와 무용수 엄마가 그룹이 되어, 신체로 소통하는 작업이다. 아기들이니까 3~4번의 만남이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지금 지원받은 걸로는 8회 차의 개인연구가 허락되는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신체 언어로만 소통하는 아기들과 만남으로써, 축소되어 버린 성인들의 신체 언어를 반추해보는 프로젝트인데, 아기들마다 적응하는 시간이 달라, 막바지가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하기도 한다. 회차의 제한 때문에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을 듯해 너무나 속상하다.

이지현: 다른 자원 조달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면, 펀딩 같은.

천샘: 이번이 첫 지원 사업이다. 그 전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작업비를 마련했었다. 지원금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립을 못하게 될까봐 처음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이 연구 사업을 마치고 나면, 다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공연을 올릴 계획이다. 작품을 위한 사전연구나 리서치워크숍으로는 펀딩의 필수조건인 ‘리워딩’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지원금을 신청한 셈이다.

이지현: 서울 청년예술단은 월단위로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 그 금액이 월 77만 원이다. 청년들 월 생활비가 얼마나 드나? 이걸로는 부족할 것 같다.

장혜림: 작업물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고 여겨지지 않지만, 사업 진행 계획을 위해 쏟는 시간에 비해 인건비로서는 생활비가 충분하지 않다. 외부 활동을 통해, 다른 수입을 마련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실정이다.

임진호: 가만히 숨만 쉬어도 100만 원은 나간다.

이지현: 청년예술단은 한 달에 8회 이상, 10일 이상 만나는 것이 기준인 걸로 안다. 지원금을 받게 되면 잠깐의 기쁨이 있지만, 현실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작업과 생활하기에 빡빡해서 다시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 주변에 신세를 지는 상황도 생기고. 아까 천샘 씨가 크라우드 펀딩 이야길 했는데, 펀딩에 성공했을 경우, 어느 정도의 자본이 마련되는지 궁금하다.

천샘: 첫 번째는 펀딩은 큰 성공을 했다. 3회 공연의 티켓 값을 책정해서 딱 220만 원을 모금했는데, 아무래도 주제가 세월호다 보니 단시간에 성공했다. 펀딩은 목표 금액을 달성한 후에도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데, 공연 포스터를 전달하러 팽목항에 다녀온 나로서는 그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돈을 모아서 보낸다는 생각이 어불성설로 느껴져서 멈췄다.

이지현: 지원금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돈이라면, 홍보 마케팅을 통한 티켓 수입 등은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자본이다. 이런 부분은 어떤 과정으로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천샘: 처음에는 홍보 마케팅이 가장 어려웠다. 지금이아 3년 차가 되어 방법을 알게 되었지만, 처음 시작할 때에는 신생 단체에 붙어줄 기획자도 찾기 어렵고, 자기 돈을 내지 않는 이상 우리를 조명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운이 매우 좋았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였고, 세월호 추모 공연으로 지원금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1주기가 되었을 때 무용 단체 중에서 추모 공연을 기획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주목받게 되었다. 작년의 두 번째 공연의 경우, 티켓 판매는 다음 포털 메인 화면에 펀딩 원고를 매주 한달 동안 노출하는 방식으로 홍보를 했다. 우리의 관심이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을 대상으로 예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특장점 때문에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다고 본다. 반면, 우리가 순수무용을 하기로 했을 때, 와디즈나 포털사이트의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싶다.



작업을 지속하는 모델 만들기


임진호: 무용하는 사람들에게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단체 카톡을 보내고, 학교에 알리는 식의 홍보는 죽기보다 하기 싫어졌다. 카톡, 문자를 보내고 반응 없는 채팅창을 보는 과정을 더는 반복하기 싫었다. 그러면서 무용을 하며 사는 나의 삶은 무엇이 다를까? 무용은 삶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그 생각을 공유했더니 주위에서 공감하고 좋아했다. 일상적인 행위들이 무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반응한 것 같다. 지금은 두 개의 목표가 생겼다. 우리의 작업을 알리는 것과 일반인들이 우리의 작업을 통해 무용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 ‘몸 학교’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방 닦기, 걷기 등의 일상적 움직임이 무용 동작이 되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대중적인 영화 코드에 맞는 무용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댄스필름에도 참여한다.

이지현: 무용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작업을 후원해줄 지원군을 만드는 일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을 만나는 일과 예술 행위를 함께 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행정적인 면 외에도, 창작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협업해야 하는 수많은 인간관계도 생기게 된다. 어쩌면 창작 자체와 창작을 실현시키는 과정은 상충되기도 하는데, 이 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궁금하다. 특히 나인티나인 아트프로젝트는 연말에 공연도 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장혜림: 우리 단체는 <2017 노트댄스>를 주제로 8월에 쇼케이스를 진행하였고, 10월 말에 또 한 번 공연을 올리게 되는데, 준비되어 가는 과정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일반인 분들이 무대에 서지만, 단순한 경험의 차원이 아니라 무대에 서는 무용수가 되기 위한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런 시간을 경험한 일반인들이 주변의 분들에게 그 경험을 전달하면서, 또 다른 홍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올해는 더 이상 참여자를 받지 않고, 하반기에는 미디어 작업물을 만들고 내년에 더 활발히 홍보할 수 있는 재료를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줌인 안무가·무용수·예술강사 윤상은 관련 사진

장혜림/ ⓒ박호상


이지현: 춤을 사회에 알리고, 관객을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려 시도하는 것도 청년 작업자들의 특징이다. 세대의 작업자들을 보면 홍보 마케팅을 기획자에게 맡겨버리고, 관객을 직접적으로 만날 엄두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을 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몰두했고, 그래야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대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관객을 만나려 노력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관객과 작품이 자연스러운 고리를 형성해서, 서로 유리되지 않으려는 지점들이 상당히 특이한 것 같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이지현: 무용(관련)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 혹은 아직 본인의 첫 작업을 무대에 올리려 준비하는 무용인들에게는 미래에 무대에 설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과 고민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 공연이나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들 때문에 미처 준비하지 못하다가 졸업을 하게 되면 현실을 맞닥뜨리게 될 텐데, 이들을 위해 충고나 조언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임진호: 돌아보면, 대학교 4년이 내 인생에서 제일 아까운 시간이다. 모순적이게도 대학 교육 때문에 청년들이 눈과 귀가 닫힌 상태로 사회에 나온다. 사회에 나오면 어떤 기회가 있고, 어떤 과정이 있으니 학교에 움츠려 있지 말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라는 교육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백지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졸업 후 할 수 있었던 일은 결국 다시 학교 선생님께 돌아가 함께 작업을 해달라고 애원하거나, 선생님들의 활동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배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생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후배들은 “형, 어떻게 해야 공연할 수 있어요? 지원금 어디에서 받을 수 있어요?”하고 질문을 한다. 그런데 마땅히 해줄 대답이 없다. 아직도 말로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나 역시도 지원 사업이 하나라도 뜨면 우르르 가서 지원서를 내니…. 작업자들의 창작의 문이 닫히기 전에, 창작 지원 사업으로 유입하는 안내와 교육이 필요하다.

천샘: 청소년기부터 대학교까지 외국에서 나왔는데, 어쩌다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한예종 무용원에서 전문사 과정을 밟으며, 학부생들을 보게 되었는데, 조급증, 불안증, 낙오되는 것에 대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데 참 답답했지만,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 없었다. 내가 찾은 길은 시스템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내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누군가의 제자가 될 수도 없다.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인들이 설 무대가 없다는 점이다. 컴페티션이나 해외 대회가 아니면, 자기 작품을 올릴 기회가 없다. 중간 정도의 실기 실력을 가지고, 평범한 무대를 만들어 보여줄 기회는 왜 없을까? 유럽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그저 신인들이 자유롭고 평범하게 설 수 있는 많은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보여주라고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운 무대를 보장해줬으면 한다.

이지현: 천샘 씨 얘기를 듣고, 작명을 하나 했다. ‘청년 자유무대’ 어떤가? 상반기 한 번, 하반기 한 번 진행해 보는 것이?

천샘: 그 작업을 우리는 현재 오후의 예술공방의 안무 공간에서 진행 중이다. 청년들이 자기가 가진 예술적 역량 그대로를 보여주는 무대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화려한 공연장만을 좇는 문화가 아니라, 스튜디오 공연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장혜림: 나 역시도 사회로 나온 이후, 처음 지원 사업 신청서를 대면하고 좌절했다. 사회로 나오기 전 대학에서 이런 어려움을 방지하고자 말씀하신 기회가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

이지현: 창작자들이 사회에 나와 활동을 하면, 이런 지원 사업에 접속하게 된다. 그런데 그 기간이 5년에서 10년 정도가 걸리는 것 같다. 그 시간을 단축시켜줘야 하고, 접근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 많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든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현장에서 활동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여전히 안고 있다. 예술적 감각이 가장 뜨겁고 뛰어날 시기에 자기 진로와 생존에 대한 고민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예술적으로 발산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과 저 사이에 20년 정도의 격차가 있음에도, 가지고 있는 문제는 항상 똑같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많을 것이다. 안무가들끼리 친목모임, 정보교류 모임만을 해도 해결점을 찾을 일이 많다. 무용 분야는 워낙 개별적으로 작업해서 그런지, 네트워크를 위한 모임이 거의 없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한 제안


이지현: 청년 예술가들의 직접적인 이야길 듣고자, 서울문화재단과 서울무용센터 담당자 분들이 참관 중이다. 청년 정책 사업에 대해 작은 부분일지라도,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 달라.

임진호: 과거를 생각하면, 지원서를 보는데 너무 막막했다. 기획의도와 작품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작품에서 쓰이는 언어와 서류에서 쓰이는 언어가 다른 것 같다. 한번은 지원서를 쓰는데, 논문을 찾아보면서 내 생각을 다른 논문의 논리에 끼워 맞췄다. 그랬더니 한 편의 완벽한 지원서가 탄생했다. 하지만 몸의 언어는 이런 논리적인 글과는 다른 것 같다. 그렇게 내놓고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해서, 편안하게 쓰라고 주문하는 것이 훨씬 자기 의도에 가까운 글을 쓸 수 있게 한다. 분량을 위해 억지로 말을 만들게 하기 보다는, 한 줄이라도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쓰게 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지원서를 쓰는 의미가 아닐까.

이지현: 고블린파티의 리플렛을 봐도 진호 씨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정말 그렇게 쓰더라. 연출자라고 안 하고 ‘방향 제안자’라고 지칭하고, 공연에 대한 안내도 대화체로 되어있다.

천샘: 지원사업을 하려면 단체등록증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살펴보니, 아름다운재단의 단체 등록 지원서가 특히 매우 편안하게 서술하게 된 형태로 되어있었다. 청년 지원자들이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밝힐 수 있도록, 엄격한 절차가 창작성을 막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이지현: 지원서의 양식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창작자의 생각을 드러나게 할 수 있도록 바뀌는 것, 지원처에서 지원 방식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 등을 제안해볼 수 있겠다. 청년 무용가들이 지원서를 쓰는 것에 훨씬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 지원 사업 자신들의 작업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궁금해진다. 지원을 받는 만큼 걱정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향후 예술지원을 정책을 위한 팁을 제안한다면?

천샘: 지원금도 좋지만 시스템 적 보안이 있었으면 한다. 공간, 무대 지원. 한국의 시스템은 중견들을 위한 것 같았다. 신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무대와 다른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춤만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늘어나지 않을까 한다. 지원사업의 결과가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지원제도였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큰 수혜자다.

장혜림: 지원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단원들과 계속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첫 작업을 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을 단축하고 지원금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더 단단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기존의 프로젝트를 단절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호: <신나는 예술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우리는 병원에서 진행하는데, 이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다. 일상의 사람들을 무용으로 만난다는 점, 그리고 무용하는 사람들에게 공연의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무용실에 갈 일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좋은 예가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재단 산하에도 그런 프로젝트, 그런 공간을 협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좋겠다.




이지현 춤비평가. 이화여대에서 미국 1960년대 무용사로 석사, 한국 춤의 정서표현 특징 분석으로 무용심리학 박사를 받았다. 1999년 비평가로 등단했으며, 다수의 평가,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청년예술단 무용분야 대표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임진호 비상한 힘과 재주로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이나 심술궂은 짓을 많이 하는 한국의 도깨비를 단체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고블린 파티(Goblin Party)의 구성원입니다. 현재 국내외 유수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특유의 유머와 진지함을 무기로 관객과의 소통에 가장 큰 중점을 두되, 관객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장혜림 상명대학교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2104년 Ninety9 art company에 입단 후 무용수로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Ninety9 art project를 설립하여 현재 비전문 무용수들을 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여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서울특별시 예술지원사업 ‘서울청년예술단’에 선정되어 <2017 노트댄스>라는 주제로 상반기 공연을 마치고 하반기 공연을 준비 중이다.

천샘 “감성충만 지식저렴 예술가들을 위한 초경량 지식투척 프로젝트!” <오후의 예술공방>과, 현대무용의 대안적 실험공간을 꿈꾸는 움직임 놀이터 <댄서스 라운지>를 이끌고 있다. 외국생활에서 유일한 벗이었던 춤이 한국에서 직업으로 바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The 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에서 서양고대어문학부와 미술학부를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국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실기과 전문사를 졸업 후 2015년 [세월호1주기 추모공연: ‘팽목의 자장가’]를 총기획, 안무했고, 2017년 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항의로 벌어진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무용주간 [몸 외치다!]에 안무자로 참여했다.



글, 정리_허영균(웹진 《춤:in》 편집부)


목록

댓글 0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