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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8.31 조회 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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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인의 서재] 분무(噴霧)의 책

[춤인의 서재]



분무(噴霧)의 책
―파스칼 키냐르, 《부테스》(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7)

오은_시인

줌아웃 에세이 시인 오은 관련 사진

파스칼 키냐르, 《부테스》(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7)


내가 좋아하는 책은 크게 두 종류다. 첫 번째로 장르를 불문하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책, 하나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들이는 책, 한 호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음질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 다 읽고 나면 온몸의 진이 빠져버리는 책.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빼면서 힘을 얻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뿌연 안개 사이를 걷게 만드는 책도 좋아한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을지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책, 몇 걸음 갔다가 심호흡을 한 후 주위를 한두 번 둘러보게 만드는 책, 크기와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운 파편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 박히는 책.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자꾸 상상하게 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시각각 떠오르는 풍경들로 기억의 일부를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단연 후자다. 물 흐르듯 이어지지만 물살이 세지면 나도 모르게 발을 빼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달음질하다가 내 속도에 내가 못 이겨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기 때문이다. 온몸의 진이 다 빠지기 직전에 책장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몸에서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면서도 빠져나간 자리를 비집고 뭔가가 계속해서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다. 키냐르의 책을 읽을 때마다 전자에 사로잡혔다가 종래에는 후자의 매력에 푹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텍스트 위에 물과 뿌연 안개가 둘 다 흐르는 책을 쓴다. 다름 아닌 분무(噴霧)의 책을.
신작 《부테스》를 펼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소도(小島)처럼 튀어나온다.

그들은 노를 젓는다. 계속 젓는다. 바다 위를 달려간다. 활대의 마룻줄 위로 돛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노 젓는 힘에 빠른 바람까지 가세하자 배는 쏜살같이 전진한다. (7쪽)

물 흐르듯 이어지는 책의 전형적인 시작이다. 하지만 그는 본격적으로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바다 위에 배가 있고 폭풍을 뚫고 괴물을 물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섬에 닿았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오히려 노를 젓는 장면에서 출발해 고대 그리스의 현악기과 서사 시인들을 불러들인다. 이 연쇄는 포세이돈이라고도 불리는 바다의 신 부테스를 소환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키냐르는 그리스 신화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일본의 신도(神道) 신화까지 끌어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진행되는 그의 이야기는 광활한 바다에 촘촘한 그물을 드리우는 선원의 몸짓과도 같다. 그 몸짓을 마주하면 호흡과 발걸음을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물로 뛰어드는 욕망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신을 사로잡은 것 속으로 잠수하려는 욕망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위험을 무릅쓰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만사 제치고 과감하게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데는? (29~30쪽)



줌아웃 에세이 시인 오은 관련 사진

Paestum Taucher


《부테스》를 읽는 내내, 환기되는 기분이 들었다. 일차적으로 환기(換氣)는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바닷새들의 울음소리, 선형적이면서 비정형적인 물고기들의 움직임, 저 멀리 수평선으로 몸을 눕히는 태양, 밤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 날치 떼처럼 시시로 튀어 오르는 이런 풍경들을 마주하는 것은 물론이다. 탁한 공기는 맑은 공기로, 아침은 밤으로, 태양은 별들로, 지금-여기는 그때-거기로 맹렬하게 달려간다. 배는 암초에 부딪치지 않고 앞으로 씽씽 나아간다.
키냐르의 더 큰 매력은 바로 환기(喚起)에서 찾아온다. 환기는 “주의나 여론, 생각 따위를 불러일으킴”이란 뜻이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자꾸 딴생각을 하게 된다. 어렴풋이 그려나가는 그때-거기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점점 선명해진다. 나는 선원이 되기도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그리스의 서사 시인이 되어 있기도 하다. 오르페우스가 되었다가 아폴로니우스가 되었다가 세이렌이 되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파도가 넘실대는 풍경이 아른거리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살갗에 물방울들이 촘촘히 박히는 것도 같다. 그야말로 온몸이, 온 신경이 반응하는 셈이다. 나는 문장들을 향해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여느 다이빙과 마찬가지의 다이빙. 높은 곳에서 아래로 어지럽게 머리부터 거꾸로 몸을 던지는 행동은 마치 회색빛 깃털과 발에 물갈퀴가 달린 새가 도망치는 물고기를 겨냥해서 부리를 꼿꼿하게 앞세우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하늘로 사라지는 맹금의 다이빙 같은 다이빙, 즉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줄곧 절대 되돌려지지 않는 다이빙이다. (62~63쪽)

어떤 독서는 물들게 한다. 이런 독서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읽는 이로 하여금 텍스트에 서서히 스며드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또 어떤 독서는 일깨운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각성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런 독서는 앎의 힘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키냐르의 책처럼, 다이빙을 요구하는 독서도 있다. 빠져드는 순간, 우리는 유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호흡을 위해, 생존을 위해,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다음 페이지를 위해. 여전히 깜깜한 삶의 다음 페이지를 향해 유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독서는 겁과 호기심을 둘 다 자극한다. 한 번도 가닿지 않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고 노래하듯 독려한다.
책을 덮는다. 물이 흐른다. 안개가 흐른다. 분무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음속에서는 파도가 일렁인다. 항해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노래처럼, 밤새 계속되는 춤처럼, 그리고 멈추지 않고 형색(形色)을 바꾸는 마음처럼. 나는 방금 “당신이 나를 버린 현장으로 돌아왔다.”(96쪽) 분무가 창 안으로 들이치고 있다.




오은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대학원에서는 문화기술을 전공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아서 하루의 절반을 고민하는 데 쓴다.
10년 넘게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시 쓰기다.
딴 생각을 하고 딴청을 피울 때 가장 행복하다.


오은_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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