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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8.31 조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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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치유 프로젝트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까지 한국무용을 전공하여 각종 실기시험과 공연에는 늘 가족들, 특히 그 중에서도 엄마는 1순위로 초대되었다. 언니는 미술을 전공하였는데 자매가 모두 예술을 공부했기 때문인지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사실상 부모님은 ‘예알못’(예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연 후에 감상을 물어봐도 “멋있다, 잘 한다.” 정도가 최선의 대답이었다. 이후로 함께 공연을 보러가지는 않았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 몇 년을 등골 빠지게 돈 벌어 자식의 춤바람에 투자했는데 정작 당신은 제대로 춤춰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딸 앞에서 춤추는 부모도 흔치 않겠지만 정말로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가 춤추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팔을 어떻게 들까? 춤을 출 때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막춤을 출 때는 어떻게 출까? 문득 궁금해졌다.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엄마는 집에서는 아내와 엄마로서 밖에서는 형님, 제수 씨로서 이름이 아닌 호칭으로 불리며 자기 자신을 잊고 살아간다. 나는 엄마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직접 춤을 춰봄으로써 내면에 쌓여 있던 응어리를 풀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잃어버렸던 정현이를 찾아주기로! 8월 7일 월요일 저녁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공연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를 보기 위해 아르코예술극장 스튜디오 다락을 찾았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프로젝트 그룹 춤추는 여자들 ⓒ권윤희

‘바비레따’는 여름 끝 무렵에서 초가을로 들어서는 2주간의 시기로 러시아에서는 젊었을 때 보다 더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중년여성을 일컫는 말로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년여성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데 반해 러시아에서 중년여성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르코예술극장의 3층에 위치한 스튜디오 다락에 들어가니 밝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춤추는 여자들(3명의 무용수와 1명의 배우로 구성된 프로젝트그룹)’이 관객 한 명 한 명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은 이름처럼 다락과도 같은 곳이었다. 여타의 무용공연과는 다르게 전공자로 보이는 관객은 없는 듯 했고 대부분이 가족 단위거나 나이가 지긋하신 동년배들로 채워져 있었다.

자리에 어느 정도 관객들이 차자 공연을 이끌어갈 네 명의 퍼포머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모여들었고 음악에 맞춰 박수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관객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엄마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손뼉을 마주치는 박수치기부터 변형시킨 엇박자로 박수치기, 몸으로 박수치기 등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무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윽고 2NE1의 〈날 따라 해봐요〉가 흘러나왔고 관객들은 앉은 채로 공연자들의 동작을 보며 따라하였다. 힐끗 옆을 보니 엄마는 정박을 조금씩 빗겨나가며 뻣뻣하게 팔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내게는 쉽게 느껴지는 동작들도 잘 따라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렸다. 분명 마음은 공연자들과 함께하고 있을 텐데 몸의 둔탁한 느낌을 아무래도 지울 수 없었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관객들 ⓒ권윤희


이어서 〈여행을 떠나요〉와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 한국인이라면 움직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노래들이 공연장을 울렸고 관객들은 몸짓과 함께 전지에 쓰인 가사를 보며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기타의 반주소리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 분위기가 급전환되면서 춤추는 여자들의 멤버인 강애심이 킴벌리 커버거의 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네 명의 퍼포머들은 각자 가슴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지 않아 후회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털어놓았다. 만약 처음부터 관객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면 누구도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먼저 공연자가 자신의 얘기를 함으로써 관객들도 거기에 동참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 보다 용기 있는 관객들은 많았다. 가족에게 미안했던 일, 사랑한다는 고백, 공연에 대한 감상 등 한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함께 춤추고 있는 공연자들과 관객들 ⓒ방석주


바비레따는 무용공연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 공연은 춤과 음악, 연극, 토크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 이것을 무용공연으로 보아도 될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공연을 본 영기자도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를 무어라 형언할지 몰랐지만 아직까지 공연을 기획한 춤추는 여자들도 이 공연을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바비레따〉만의 공연형식이 관객참여형 공연이라는 장르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일반 관객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 대중가요와 박수치기 등 일상적인 문화를 이끌어와 관객을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춤추는 여자들은 먼저 내면의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눈을 마주침으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열었고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름으로써, 춤을 따라 춤으로써 그들에게 화답했다.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형식의 공연이 생소했는지 완벽하게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던 엄마도 공연이 무르익어 갈수록 점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용기 있게 손을 들어 가슴 속에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하였지만 대신 나의 귓가에 속삭였던 엄마의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얘기였다. 모든 사람 앞에서 얘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마음의 고백을 해준 엄마에게 고마웠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춤추는 관객들 ⓒ방석주


마지막에는 모두가 무대로 나와 서로 손을 잡고 기차놀이를 하기도 하고 막춤을 추기도 하면서 하나가 되어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관절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았던 탓에 중간에 무리에서 이탈하기는 했지만 엄마 또한 처음 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춤을 추었으며 따뜻하게 포옹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비레따〉의 특수한 공연형식 이외에도 커뮤니티댄스 형식을 차용했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도 공연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이질감을 느꼈던 엄마가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할지 눈치 볼 것 없이 모두가 하는 동작을 따라하면 되었고 모두가 함께했기 때문에 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기대에 완벽하게 부합했던 하루는 아니었다. 엄마는 상당한 몸치였고 부끄러움이 많았으며 무릎의 부상으로 온전히 공연에 집중하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공연에 참여함으로써 잠시나마 엄마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현실과 일에서 벗어나 한바탕 웃고 울었던 시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2017년에 기획된 공연은 8월 28일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지만 (아마도) 계속 열릴 것이다. 평소에 마음을 전해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비레따〉로 놀러가 보는 것은 어떨까.




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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