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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8.31 조회 2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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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몰하는 덩어리
<수사학 - 장식과 여담>의 텍스트와 퍼포먼스

윤경희_비교문학연구자, 문학평론가

에두름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장식의 형태 중 하나는 가장자리의 과도한 확장과 주름이어서, 그것이 본체보다 먼저 그리고 더 오래 시선을 현혹하기도 하므로. 여담의 속성 중 하나는 바깥으로의 파상적 이탈인데, 언제든 본론으로 돌아올 태세를 갖춘 한, 이탈의 궤적 못지않게 무모한 귀로 또한 개척할 자신이 있기에. 인용, 주석, 나열이 없지 않을 것이다. 끼워 넣기, 매달기, 엮기도 장식의 기법이자 여담의 책략이니까. 외래의 고유명들이 등장할 것이다. 장식물의 세계에서 그것보다 즐겁게 도드라져 반짝이는 허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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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장식과 여담 ⓒ 정민구

들뢰즈와 과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소설의 본질에 관하여 독특한 이론을 내세운다. 예시와 함께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중세 로망스 《그라알 이야기》에서 주인공 기사 페르스발은 말을 타고 가다가 매가 무리에서 뒤떨어진 기러기 한 마리를 덮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기러기가 추락하고, 눈밭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붉은 점 셋이 하얀 표면에 흩뿌려진 형상에서 기사는 연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는 그것을 멍하니 묵시하며 자기가 본래 향하던 목적을 잊는다. 마침내 그는 말안장에 앉은 채로 잠든다.1)
12세기 음유 문학의 사소한 삽화에서 두 철학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동류성을 발견한다. 이들에 따르면, 중세 로망스 이후 《돈키호테》나 《클레브 공작부인》 같은 근대 소설을 지나 베케트의 《몰로이》와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자기가 무엇을 찾는지, 무엇을 하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 운동실조증에, 긴장증에 걸린 구제불능 인물들의 모험으로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의해왔다.”2)
명징한 이성이 작동을 멈춘 가수면의 상태에서, 길 없이 헤매거나, 끝내 실종되거나, 넋을 잃거나, 어딘가에 포획되어 빠져들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하릴없거나, 그르쳐 패망하는 인물들. 그들은 애초의 목적과 의도를 망각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문득 골몰하도록 유혹하는 새 대상을 에둘러 쫓으며, 비지의 차원을 깨뜨려 연다.
소설적 인물이 수행하는 것은 의무와 과업이 아니라 모험이다. 그들의 신체는 예정 없이 닥친 모험을 수행하는 와중에 당연히 궤적을 만들어낸다. 산보, 탐색, 편력, 표류, 방랑, 탈출, 추적, 실족하는 몸은 방향과 속도와 리듬을 변칙적으로 바꾸며 비정형의 선을 그린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러한 운동을 탈주선을 그리는 유목적 탈영토화라 칭한다. 동물행동학 용어들을 응용한 개념으로서, 태생적으로 떠돌이 동물이라 그렇거나, 가축이 길들여짐의 상태를 떨치고 멀리 도망치거나, 자기 세력권에서 안전하게 머무르던 동물이 그것을 가차 없이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소설적 인물의 몸 사용법은 신경정신과학의 관점에서 운동실조증과 긴장증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실조증은 걸음걸이가 의지에 반해 비틀거리며, 몸 전체가 균형을 못 잡고, 불안정하고 어색하다는 특징이 있다.3) 긴장증은 언어로든 행동으로든 외부 자극에 거의 반응하지 않거나, 같은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그것을 바꾸는 데 저항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팔다리를 잡고 자세를 바꾸어주면 마치 구부러진 양초처럼 바뀐 자세 그대로 유지하는 등의 증상이다.4)
그렇다면 소설적 인물은 동물이거나 또는 분열증을 수반하기도 하는 신경성 운동 장애자다. 클라이스트에게서 가장 현저하듯, 소설은 이 두 범주에 위태롭게 걸친 인물들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빠름과 느림의 속도차, 불협의 리듬, 뻗어나가며 헝클어지는 선, 굳어 뭉치다 파열하는 덩어리, 강력한 정동의 분출과 도약으로 생성되어왔다.5)
들뢰즈와 과타리의 소설 이론은 장르와 시대를 무차별적으로 압축하고 파열시킨 기묘한 아나크로니즘의 혼종물이다. 길들여진 문학 영역으로부터 탈주선을 그으며 뛰쳐나온 떠돌이 생체다. 그것은 이종과의 접합과 그로 인한 번잡한 증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굳이 소설이라 칭하지만 반드시 소설만은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인물이 있고, 그가 수행하는 동작들이 문제가 된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소설 이론에는 인간과 신체, 특히 신경 기능과 동작, 증상의 실재와 그것을 재현하는 수사적 언어, 텍스트와 퍼포먼스, 무용과 장애, 훈련 수행과 저항 충동, 불능의 한계와 정동 등 대립적이거나, 위계 종속적이거나, 상보적이거나, 전혀 무관한 개념들이 한데 덩어리져 있다. 그것은 소설의 영토에서 탈주하여 감각을 산출하는 다른 미적 기술들의 차원으로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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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장식과 여담 ⓒ 정민구


김뉘연과 전용완의 전작 <문학적으로 걷기>(2016)에서 동작의 유형은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관객들에게 배포한 작은 책자에는 디드로, 사드,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브르통, 베케트, 김뉘연의 텍스트 편린들이 연대기적 질서에 따라 정렬되었다. 이 일곱 명의 짧은 말 조각들에 김뉘연과 전용완 자신이 창작한 텍스트가 짝지어져 있다. 창작 텍스트는 일곱 작가 각각이 속한 시대, 두각을 보인 글쓰기 기법, 고유한 문체 등을 희미하게나마 연상시킨다. <문학적으로 걷기>는 일종의 프루스트적 모작이다. 모작 텍스트에서 화자는 타인에게 걷기를 권유하고, 청유하고, 명령하고, 심지어 최면을 걸 듯 주문하고, 그가 걷는 공간과 그의 걷는 신체를 치밀하게 관찰한다.
말과 몸이 공유하는 것들 중 하나는 수행성이다. 퍼포머티비티와 퍼포먼스. 강진안의 <문학적으로 걷기> 퍼포먼스는 이처럼 걷기를 권유하고, 청유하고, 명령하고, 주문하는 수행적 발화의 내용을 완전히 충실하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완전히 저항하지도 않으며 수행했다. 강진안의 동작들에서 걷기의 형상과 프로세스는 완연했다. 텍스트는 다소간 퍼포먼스의 매뉴얼이었고, 퍼포먼스는 다소간 텍스트의 미메시스였다.
<수사학 - 장식과 여담>(2017)에서 관건은 더 이상 모작과 미메시스가 아니다. 모작과 미메시스는 원본으로의 회귀적 상응에 어쩔 수 없이 종속되지만, 장식과 여담은 본체로부터의 원심적 이탈과 본체의 규모를 압도하려는 과잉의 욕망을 스스로에 허한다.
<수사학 - 장식과 여담>에서 이러한 이탈과 과잉의 충동은 어떤 층위들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텍스트 본문에서는 만연체의 문장들이 멀리 뻗어나가며 종결의 의지를 흐리게 꺾어버린다. 문장은 언어를 초과하는 선이다. 각주들이 텍스트를 장식하고 부풀리는 여담으로서 삽입되었는데, 그것들은 본문보다 더 길고 때로는 더 흥미를 자극해, 더 이상 각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본문을 능가하거나 적어도 그것과 대등한 주 텍스트로 기능한다. 텍스트 뒤에는 고유명 인덱스가 있다. 롤랑 바르트, 존 케이지, 디에고 벨라스케스처럼 위풍당당한 이름들 및 자코모 레오파르디, 엘 리시츠키, 칼 앤드리, 레온하르트 오일러, 모턴 펠드먼, 마리아네 프리츠 등 비교적 진귀한 이름들과 관련된 말 조각들이 텍스트 전편에 호화롭게 흩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러나 빛나거나 숨겨져.
타이포그래피는 독자로 하여금 복잡한 안구 운동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안구는 텍스트 상단의 본문과 하단의 각주를 오가며 상하 왕복 운동을 하거나, 그것이 다소간 불편하다면, 본문만 따로 끝까지 읽은 다음 각주만 또 따로 읽는 두 번의 수평 운동을 할 수 있다. 상하 운동이나 수평 운동을 수행하면서, 인덱스의 가나다순 고유명마다 그것과 관련된 쪽수를 찾아 불규칙한 수평 왕복 운동을 반복해야 한다. 상하, 수평, 왕복 운동들을 조합 수행하는 게 다소간 번잡하다면, 텍스트 디자이너의 의도를 파괴하고, 그의 지침에 길들여지지 않으며, 고유명과 관련된 쪽의 여백에 미리 그 고유명을 기입해 놓고, 본문에서든 각주에서든 고유명 관련 말 조각부터 찾아내는 수색 행위에 골몰해도 좋다. 장식과 여담 자체는 동작이 아니지만, 구부러지고, 뻗어나가고, 엮이고, 꼬이고, 묶이고, 매달리고, 늘어지는, 꽃 넝쿨, 리본, 보석 들, 그리고 이탈하고, 우회하고, 비약하고, 편력하는 곁가지 이야기들은 수사와 이미지의 차원에서 분명 선의 형상과 운동을 생성해낸다. 장식과 여담의 텍스트는 신체 퍼포먼스로 전환될 잠재성을 지닌다. 말이 몸이 되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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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장식과 여담 ⓒ 정민구


최민선과 강진안의 퍼포먼스는 김뉘연과 전용완의 텍스트에 들뢰즈와 과타리의 소설적 인물을 접합시킨다. 최민선과 강진안의 퍼포먼스로 인해, 소설적 인물은 사실 안무적 인물이어서, 장식과 여담의 텍스트를 제 영역으로 삼다가도 그것에 내재된 과잉과 이탈의 힘으로 인해 오히려 그것에서 탈주한다는 것을 본다. 운동실조증과 긴장증을 겪으면서도, 선 운동의 불능에 덩어리지면서도, 기어이 다른 형상되기와 다른 리듬 창출하기를 수행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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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장식과 여담 ⓒ 정민구


최민선의 동작은 선의 뻗어나감이라 말할 수 있다. 최민선은 시간을 분할 조절하며, 가느다란 몸체와 팔다리를 고도로 통제하여, 구부림의 각도와 뻗음의 길이를 최선으로 구현해나간다. 계산적 이성이 신체의 확장을 관장한다. 최민선의 동작은 고요하고 단순하지만, 그것은 운동실조나 마비성 긴장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엄정한 훈련과 세심하게 양식화한 절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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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장식과 여담 ⓒ 정민구


반면, 강진안은 선보다는 양감이 두드러지는 몸으로 구조적인 확장의 프로세스보다는 파열적이고 격렬한 부딪힘의 충동을 표출한다. 강진안은 지속적으로 몸을 떨거나, 어떤 동작을 취하더라도 편치 않게 긴장하거나, 우리에 갇힌 떠돌이 동물처럼 벽을 상대로 정형행동을 반복한다. 비지에 골몰한다. 부딪힘과 튕겨나감을 거의 절망에 가깝게 반복하다가, 선을 뻗어 탈주하려는 충동이 좌절되어 웅크려 덩어리지지만, 견고한 세계를 깨뜨릴 소음과 리듬은 거의 백치의 것과 같은 그 골몰을 통해 생성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텍스트가 더 이상 다른 텍스트의 모작이 아니듯, 그것의 퍼포먼스도 더 이상 그것을 모방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식과 여담의 텍스트는 수행적 발화의 권위를 내려놓았다. 매뉴얼이지 않게 되었다. 언술은 더 이상 신체가 복종하거나 저항할 위계적 권력을 담지하지 않는다. 애초에 본체는 없이 오로지 장식뿐이었는지도, 애초에 본론은 없이 오로지 여담뿐이었는지도. 이런 말들은 어떻게 몸이 될 것인가. 말의 따름과 흉내가 아니게 되는 수를 보았다. 말의 장식품도 아니고 말의 곁가지도 아니게 되는 수를 보았다. “진흙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각자의 모양새가 오래 어쩌면 끝없이 신체 말단으로 기어가는 벌레를 닮았다는 생각”6)에 닿듯, 덩어리와 그것에서 집요하게 뻗어 나오는 선이 되는 수를 보았다. 그 덩어리와 선은 다음 텍스트와 퍼포먼스에서 어떤 형상으로 어디에 편력해 있을까.




1) 크레티앵 드 트루아, 《그라알 이야기》, 최애리 옮김, 을유문화사, 2009, 101-102쪽.
2)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Milles Plateaux, Paris, Seuil, 1980, p. 213. 인용문 번역에 다음을 참조하여 수정했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332쪽.
3) cf. Hubert H. Fernandez, et al., A Practical Approach to Movement Disorders: Diagnosis and Management, New York, Demos Medical,2015, pp. 159-172.
4) cf. Max Fink and Michael Alan Taylor, Catatonia : A Clinician's Guide to Diagnosis and Treatment, Cambridge, Cambridge UP, 2003, pp. 20-32.
5) cf.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op. cit., p. 328-330;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앞의 책, 508-511쪽.
6) 김뉘연, 전용완, 「수사학 - 장식과 여담」, 2017, 14쪽.




윤경희 비교문학 연구자, 문학평론가
파리8대학교 정신분석학 석사과정과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다. 2017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윤경희_비교문학연구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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