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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8.31 조회 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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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안무대회 수상자들과의 대화 한판

글, 정리_권윤희(《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참석: 석진환(키부츠 무용단), 안수영(안수영컴퍼니), 권윤희(《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시계는 오후 6시를 향해가고 있었으나 한여름 탓인지 아직도 밖은 대낮처럼 환하였다. 6시 정각에 예정되어 있는 좌담을 위해 서울무용센터에 들어서자 로비에서 두 남자의 격앙된 목소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석진환과 안수영. 두 사람은 대학 동기로 한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한 사람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 서로의 근황을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코펜하겐의 국제안무대회(Copenhagen International Choreography Competition)에서 2등상을 받은 석진환과 탄츠플랫폼 베른(Tanzplattform Bern)에서 관객상을 받은 안수영은 해외안무대회에서 수상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같은 듯 다른 듯 흥미진진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다는 슬레이트를 칠 틈새도 없이 어느덧 좌담은 시작되고 있어 영기자도 얼른 두 사람의 이야기에 편승하였다.



줌아웃 대화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왼쪽부터 석진환과 안수영 ⓒ박호상


다시 무(無)에서 시작하다


석진환: 국립현대무용단에서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2014년도에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유럽으로 갔어요. 베를린에 갔는데 한국 사람들이 꽤 있어서 오디션을 보러 가면 5~6명 정도를 만나고 그랬죠. 저 같은 경우에는 운이 좋게 나간 지 한 5개월 만에 폴란드에서 계약이 됐어요.

안수영: 키부츠 전에?

석진환: 네, 그래서 거기서 1년 정도 영어도 배우고 외국인들이랑 공연도 같이 하면서 기본 베이스를 다지게 됐죠. 운이 좋았어요. 1년 정도 머물다가 다시 돌아가는 한국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폴란드에서 이스라엘 안무가 밑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마침 키부츠라는 무용단이 〈if at all〉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투어를 왔었어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냈죠. “석진환이라고 하는데 오디션을 보고 싶다….”

안수영: 용기 있네.

석진환: 외국인들은 워낙에 이런 방식이 익숙하기 때문에 흔쾌히 오라고 해서 가게 됐는데 예술 감독인 라미 베에어(Rami Be’er)에게 발탁이 된 거예요. 혼자서 개인적으로 갔던 건데 오디션도 보게 되고 그날 바로 결정도 된 거죠. 그렇게 2015년도에 키부츠 무용단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첫 번째 시즌은 투어하느라 정신없었어요. 12월 중에 7개월은 투어를 다녔거든요. 그러다 2016년, 2017년이 저한테 세컨 시즌이니까 이제 ‘창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침 이번 시즌부터 정식 계약을 맺고 합류하게 된 정훈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도 대단한 게 세종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키부츠컴퍼니에 오고싶어서 한국에서 비행기 티켓 한 장만 끊어서 혼자 이스라엘로 오디션을 보러온 친구거든요. 2주의 오디션을 하고 결국 이번에 같이 합류하게 되었어요. 춤도 잘 추고 원래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작품을 같이 하게 됐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컴퍼니에서 연습하고 끝나면 7시부터 10시까지 또 제 작업을 하면서 그렇게 3개월 반 가량을 같이 준비했어요.

안수영: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석진환: 원래는 하노버(International Choreographic Competition Hannover)라는 독일의 안무 대회를 보고 창작했었어요. 유럽에서 크게 하노버랑 코펜하겐의 국제안무대회 슈트트가르트의 솔로 컨퍼티션 등 유명한 컨퍼티션들이 몇 개 있잖아요. 로이 아사프(Roy Assaf)나 이단 쉐라비(idan sharbi) 등 유명한 안무가들이 이 대회를 거쳐 가요. 그렇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됐지만 마음 편하게 작업하자고 생각했죠.

안수영: 주제가 뭐였는데?

석진환: 주제는 컴스 앤 고스(comes and goes)로 제목을 한국어로 해서 〈oda-gada〉였어요. 외국 생활하면서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던 적이 많았거든요. 오고가는 것 중에 어떤 것들이 가장 저에게 많이 다가왔는지 보니까 어린 시절이더라고요. 그런 저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기억하지만 대조적으로 우리의 삶은 메말라있거든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행복하고 그때를 추억해요. 하지만 금방사라져 버리고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는…. 그런 거예요. 어쨌든 오늘 나는 또 내 일을 하러 가야하니까요. 그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하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리고 리서치를 시작했죠. 수많은 어린 시절의 웃긴 일들, 해프닝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그런 해프닝들과 대조적으로 사라진 일상과의 갭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텍스트에서는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비기닝의 솔로는 드라이한 움직임으로 시작해요.



코펜하겐 국제안무대회에서의 수상


석진환: 사실은 마지막까지도 하노버를 먼저 시도하려고 했었는데 컴퍼니에서 투어가 있었어요. 시기가 겹치게 되면서 못하게 됐는데 마침 코펜하겐이 남아서 지원을 하게 됐죠. 코펜하겐 측에서 답 메일이 왔는데 ‘이번에 375팀 30개국에서 지원을 했다. 본선에 진출할 팀은 10팀’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큰 기대를 버리고 담담하게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 그 10팀 안에 선정됐어요.

안수영: 응시했을 때 영상은 초연이 안 된 상태에서 연습실에서 찍은 거야?



줌아웃 대화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석진환 ⓒ박호상


석진환: 네! 우리만 그랬어요(웃음). 사람들이 놀랐죠. 다른 팀들은 의상이랑 조명까지 완벽하게 해서 찍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내려놨는데도 불구하고 10팀 안에 선정이 된 거예요. 아시아 사람은 저희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너무 뿌듯하고요. 3개월 반 동안 힘들게 창작한 것을 인정받은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기 때문에 그냥 내 작품만 보여주고 오자는 생각으로 떠났죠.

안수영: 지원 같은 건 어때?

석진환: 호텔도 정말 좋은 곳에 머물렀는데 체류비까지 지급해주고 굉장히 감동받았어요. 예술가로서 대접받는 느낌. 그만큼 훌륭한 팀들이 많았어요. 전날 리허설을 하러 갔는데 잘하는 무용수들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재밌게 공연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공연이 끝나다보면 관객이 충분히 즐겼구나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걸 느끼니까 상을 받든 안 받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시상식을 하는데 관객상이 먼저 불리고 그 다음에 크리에이티브상(Creative Prize)이 불렸어요. 4등이 불리고 3등이 불리는데 계속 이름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끝났구나, 물 건너갔구나 생각했죠. 3등까지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2등을 호명하는데 제 이름이랑 작품명 〈oda-gada〉가 불렸어요. 정말 희열을 느꼈어요.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또 알아봐주셔서 너무도 감사헸고요. 또 좋았던 게 끝나자마자 입상에 대한 상금을 수여했는데 정확하게 세금도 없이 우리나라 돈으로 360만 원 정도를 덴마크 돈으로 주시더라고요.

안수영: 세금도 안 떼는 게 중요한 거구나(웃음).

석진환: 투명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서 꾸준히 유명 안무가들을 배출해내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수상을 하게 돼서 무용단에 있는 안무가와 동료들과 그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제 작품과 컴퍼니 이 두 가지 일을 이번 년도에 분배를 시켰다는 부분에서 뿌듯하더라고요. 양쪽을 계속해서 성장시켜 나가면 키부츠라는 이름으로 또 키부츠 안에서 석진환이라는 이름으로 내 작품이 한국에 초청돼서 공연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졌죠.



눈 뜨니 스타?


안수영: 공익이지만 29살에 군대를 갑자기 가게 됐어. 그때 (공익근무하는 2년만이라도)공연도 안 보고 무용이라는 걸 아예 끊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어. 그 이유가 콩쿠르에 15번을 나갈 정도로 미친 듯이 연습했는데 2009년도와 2010년도 딱 그 2년 동안 군대 면제가 없어진 거야. 그 계기가 오히려 나에게 휴가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공익을 하면서 나에겐 두 가지의 고민이 있었어. 주변 친구들처럼 나도 해외무용단에 가야하나? 아니면 한국에서 박사를 하며 공부와 안무 활동을 제대로 해볼까라는 생각이었지. 결정적으로 내 작품으로 해외 필드에서 뛰면 어떤 느낌일까? 내 작품을 해외에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세종대 대학원에 박사 공부를 택하게 되었어. 때마침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힙합의 진화’라는 프로그램에 참가 제안을 받게 된 거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힙합을 했기 때문이었어. 대극장 안무가 처음인데 갑자기 호암아트홀에서 공연을 해야 되는 거야. 그때 하필 집안 사정도 안 좋았고 금전적으로도 힘들었어. 좋은 연습 환경도 아니었지만 무용수들 모두 나를 진심으로 도와줬어. 연습 후 추운데 매일 새벽에 오리털 파카 입고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작품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그렇게 한 3개월 안무한 게 〈백조의 호수〉인데….

석진환: 그게 베이스는 어디였어요?

안수영: 예전에 태안 기름 유출사건이 터져서 파도에 시커먼 새 몇 천 마리가 떠밀려오는데 ‘저게 뭐지? 새가 기름에 굳어버리니까 사람도 저렇게 죽어버릴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때 너무 힘들다보니까 죽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나봐. 만약 공연이, 25분 후에 내가 죽는다면 뭘 하고 싶을까? 무용수들한테 물어보니까 별 얘기가 다 나오더라고.
사실 힙합을 진화시켰는지는 모르겠어. 대학 때 한 선생님께서 나한테 현대무용을 못 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현대무용을 못 추는 사람이구나… 현대무용은 뭐지?’하고 생각했는데 또 힙합하던 친구들과 함께 연습을 하면 그 친구들은 나보고 무용하냐고 묻는 거야. ‘내가 무용하나? 나 힙합하는데?’ 그렇게 정체성에 혼란이 오면서 중간에 뜬 적이 있었어. 복잡한 생각 속에서 춤이 뭘까 고민하며 춤췄을 뿐인데 힙합과 현대무용의 융합이 잘됐다는 평을 듣게 된 거지. 사회가 나를 만든 것 같아. 그때 당시 유럽에서 힙합이라는 스트리트 장르가 무대에 올라가는 게 한창 유행이었어. 그런 소셜트랜드가 그냥 내 춤을 추는 나에게 기회를 많이 부여해준 것 같아.

석진환: 그 타이밍에 딱!

안수영: 이용우와 왕현정이라는 독일에서 유명한 무용수랑 같이 셋이서 작품을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작품(백조의 호수)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어. 너무 잘 끝나서 그 다음날 슬쩍 네이버에 이름을 쳐봤는데 내 기사가 엄청 많은 거야. 옛날에 차인표가 눈 뜨니 스타 됐다고 하더니 이런 기분이구나! 뉴스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되더라고.

석진환: 우와!



줌아웃 대화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안수영 ⓒ박호상


안수영: 운이 운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아. 2011년도에 작품을 초연하고 너무 아까워서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 나갔는데 그랑프리를 받았네? 장광렬 선생님 덕분에 2013년도에는 ‘코리아무브스’로 안성수 교수님과 4개국 7도시를 투어했어. 굉장한 영광이었지. 이후 외국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독일 댄스 매거진에서 주최한 세계 평론가 40인이 선정한 Independent company에 안수영댄스프로젝트(현 안수영컴퍼니)가 선정된 거야. 발레리나 강수진 씨(독일 활동 당시)도 있었어. 20대 때는 몰랐는데 난 운이 참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있어. 또 2013년도 서울아트마켓(PAMS)에 선정돼서 공연을 했는데 내 작품을 눈여겨 본 그렉 페스티벌(The Grec Festival of Barcelona) 부 예술감독이 날 초청한 거야. 그래서 스페인에서 단독 공연도 하게 됐어.

석진환: 멋진 일의 연속이었군요.

안수영: 스페인에서 〈백주의 호수〉랑 ‘한팩 라이징 스타’ 때 했던 작품 〈Time Travel 7080〉 그리고 시댄스에서 초연한 내 솔로까지 3개로 전체 공연을 꾸몄는데 〈Time Travel 7080〉은 다 한국 노래거든. 트로트인데 외국에서 울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 부 예술 감독이 하는 말이 솔직히 반신반의하면서 부른 건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자기도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크로아티아, 네덜란드, 파나마까지 갔는데 초청받은 곳이 10개국이 넘었고 공연은 총 35회를 했었어.
즐겁게 공연하다가 문득 재작년에 베른에서 연락이 왔어. 안무대회지만 공연에 더 가까운 형식이라면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대회였어. 독일에서 누가 내 공연을 보고 추천했다는 거야. 근데 당시 나는 대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공연을 준비하느라 흐지부지 연락을 드리지 못했지. 그런데 1년 후 어느 순간 갑자기 스위스가 가고 싶더라. 그때 연락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안무대회 측에 연락을 드리고 응시했더니 오라고 하시더라고. 비행기 티켓, 숙박, 소정의 작품료까지 공연하는 것처럼 대우를 해주시면서. 그리고 1, 2, 3등의 개념이 아니라 심사위원상, 관객상을 주셨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건 불가능


권윤희: 듣고 보니 두 분이 참가했던 대회의 성격이 굉장히 상이한 것 같아요. 공연 형식이라든가 지원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듣고 싶어요. 그리고 국제안무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무용수들에게 전달할 팁이 있을까요?

안수영: 베른 안무대회는 공연을 하면서 그 사이에 평가를 받고요. 관객 평가는 마지막 날 모든 팀이 모여서 5분 동안 이뤄져요. 대회의 성격상 조명리허설 시간이 70분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리허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까 보통 조명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거든요. 저는 항상 같이 작업하는 조명 감독이 있어요. 제 작품에 조명이 60큐가 넘는데, 그걸 다 만들어내 주셨어요. 해외극장 스태프들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했었는데, 최재호 조명감독님이 그 어려운 걸 해내더라고요. 그게 제일 좋은 팁인 것 같아요. 안무가의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스태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참가한 다른 해외 팀들을 보니 영상을 너무 영화처럼 잘 찍더라고요. 영상이나 지원할 때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팁을 드리고 싶어요. 진환이는 벌써 내년도 하노버를 생각하잖아요. 벌써부터 이렇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 대결했을 때 과연 준비과정이 짧은 사람들이 세계무대에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잘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해외로 나가는 단체에 관한 지원 사업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해요. 전문무용지원센터나 팜스 등에서 항공비를 지원받으면 더할 나위 없죠. 무용수 5명, 감독 그리고 매니저 이렇게 7명이어도 대략 1인당 2백만 원씩 책정하면 1400만 원이나 되는 거액이잖아요. 총 13명이 갔던 스페인 공연 때에는 크로아티아까지 가느라 2천만 원이 넘게 나왔던 적도 있었어요. 그럼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2천만 원 이상 지원받지 못하면 안무자가 비용을 부담하거나 못가는 상황이 되잖아요. 해외 공연 때는 초청하는 주최 측의 지원이 없다면 무엇보다 항공비가 가장 큰 부담이 되는데, 이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사업을 꼼꼼히 미리 체크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해요.



줌아웃 대화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박호상


석진환: 저 같은 경우는 최대 4~5개월 전부터 작품을 짜고 나갈 생각을 해요. 그래야 리서치 기간도 충분하고 작품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수정하는 준비 과정을 가질 수 있거든요. 그리고 하노버나 코펜하겐 같은 경우엔 제한 시간이 있어요. 솔로 몇 분, 듀엣 같은 경우가 15분이고 트리오도 다 정해져 있는데 사실 듀엣 같은 경우는 수상했던 사람들과 얘기해본 결과 15분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는 것보다 콤팩트하게 8분에서 9분이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안수영: 그렇게 하더라고요!

석진환: 9분이 제일 좋은 거고 8분에서 9분 정도만 창작해서 지겹지 않게 딱 만들어 주는 게 좋은 거예요. 그리고 중요한 게 개인적으로 의상도 그렇고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에 양말이랑 검정 팬츠에 티셔츠 하나 입었거든요. 우리도 그렇고 1등 했던 팀도 그렇고 콘셉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모든 작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 같아요. 뭔가 코스튬이다 이런 것 보다는 주제와 맞는 심플한 걸 했을 때 이동성도 쉽고요.

안수영: 베른 같은 경우엔 그런 시간적 제한은 없어요. 그래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진환이가 말했듯이 나갈 거라고 일단 마음을 먹었다면 정보를 수집해서 많이 조사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안무자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안무만 잘 짜는 게 아니라 여기는 또 다른 게 있을 수도 있거든요.

권윤희: 그런 정보를 얻거나 서치를 할 때 가장 많이 도움을 받는 곳은 어디일까요?

안수영: 네이버에 안 나오는 게 엄청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네이버만 하잖아요, 구글을 잘 안 하고. 구글에 다 나오거든요. 구글링(!)이 필요해요.

석진환: 구글 맵도 최고에요.

안수영: 그리고 저는 독일에 있는 친구로부터 제일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 친구가 해외공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까 아는 사람이 많아서 소개해 주고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줬거든요. 사실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해외 현지 분들을 아예 모르는 국내 안무가들은 없을 걸요? 해외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런 루트를 갖고 있을 거예요.



2018년 하노버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다


권윤희: 이번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석진환: 저 같은 경우에는 가장 좋았던 게 리서치였던 것 같아요. 리서치 자체가 어떤 희망도 없고 먼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거지만 어쨌든 계속 찾아가잖아요. 근데 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이번에 크게 느꼈어요. 다음 것을 하더라도 시간을 넉넉히 갖고 계속 조사해나가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빨리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권윤희: 석진환 님은 정말 계획적이신 분인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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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상


안수영: 진환이는 옛날부터 그랬는데 더 좋게 발전된 것 같아요. 저는 이번에 다녀와서 저를 다시 발견한 것 같아요. 올해 서른일곱인데 제 자신을 잊고 있었나 봐요. 춤을 추고 준비하면서 ‘와 진짜 너무 춤이 재밌구나’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이건 못 끊겠구나. 이번에 용기가 더 많이 생겼어요.
보통 젊은 사람들 안무는 많이 하는데 지원금이 없으면 안 하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작품을 다 생각해놓고 ‘지원금 안 되면 다음에 해야지’ 하는데 이번에 그래서 반대로 해봐야겠다. 내 돈 다 들이고 공연하면 누가 욕하겠느냐. 작품의 내면보다 지원금을 어떻게 썼는지 보는 사람들 많잖아요. 내 돈으로 한번 해보고 내 맘대로 해야지. 그 용기가 스위스에 가서 친한 동생과 이야기하다가 나왔어요. 이번 10월에 그래서 아무런 지원 없이 공연합니다. 친한 동생과 뜻이 맞아서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둘이 나누면 조금은 덜 힘들잖아요. 보통 지원금 약간이라도 받는데 아예 받지 말고 한 번 해보자. 누가 욕하든 말든 아무 상관없이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최대한 아껴서 좋은 친구들과 한번 또 놀아보는 거지 뭐 있겠느냐 라는 생각으로…. 이번에 정말 큰 도전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새벽 5시까지 연습했던 제가 다시 또 나오고 있어요. 초대권은 없지만 보러오세요. 지원금이 없어서 평론가님들 교수님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님이 오셔도 2만원을 내시고 티켓을 사셔야합니다(웃음). 10월 13-14일, 포스트 극장. 할인도 없고요.

석진환: 아~ 나도 너무 보러가고 싶다.

안수영: 하노버에서 볼 수도 있어.

권윤희: 하노버에서 두 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안수영: 인사해야죠!(웃음)




안수영_안수영컴퍼니 대표·안무가 2007년 <선택>으로 안무가 데뷔. 2011년작 <백조의 호수>는 2012년 서울안무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이듬해 덴마크, 스웨덴, 독일, 영국 4개국에 초청되었다. 2013년 PAMS choice 선정, 2014년 유럽 3대축제 GREC festival에 초청되어 한국안무가 최초 단독공연을 올렸다. 이후 네덜란드·크로아티아·파나마 초청공연과 2015년 창작산실 선정 <뉴턴의 3법칙> 발표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2-2013 독일댄스매거진 《댄스포유매거진》에서 전세계 40인 평론가가 선정한 독립단체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석진환_무용수·안무가 2011-2013년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멤버로 활동하다 2014년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 베를린에서 개인작업, 폴란드 Bytom Rozbark Dance and Movement Theatre에서 예술감독 Uri Ivgi, Johan Greben과 함께 작업하였다. 2015년부터 이스라엘 Kibbutz contemporary dance company에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약 중이다


글, 정리_권윤희(《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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