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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7.27 조회 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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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인의 서재] 『리추얼』 : 저자 메이슨 커리,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춤인의 서재]



『리추얼』 : 저자 메이슨 커리,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백영옥_소설가

줌아웃 에세이 백영옥 관련 사진

저자 메이슨 커리, 옮김 강주헌,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무용수들이 협력하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문서 작업은 전혀 없으며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무용수들과 일하는 시간에 내 연습실에 한번 와보라. 우리는 오직 춤만 춘다. 나는 말하지 않는 대신 보여준다. 그러면 무용수들 역시 아무 말 없이 동작으로 답한다. 뭔가 잘되지 않으면 다시 시도하고, 자세히 보고 동작을 수정한다. 무용수들은 영리하고 빠르며 실제적이다. 다른 모든 분야의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들처럼 그들 역시 실제 '예'를 통해 가장 잘 배운다.”

여럿이 한 호흡에서 세계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무용수들의 협업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창조란 고상하고 고귀한 과정이 아니라 때 묻고 더러운 작업이다. 그야말로 고되기 짝이 없는 육체 노동인 셈이다. 그녀는 “육체 노동자들은 잘 알 테지만 작업이 일상적으로 느껴질수록 결과물은 더 좋아진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소설 역시 영감의 산물이라기보다, 압도적인 작업량과 규칙적인 글쓰기에 따라 좌우된다.

나는 ‘트와일라 타프’의 사진을 거의 매일 본다. 사진 속에는 두 팔을 내린 채 중심을 잡고 서서 턴 아웃된 오른쪽 다리를 높게 치켜 올린 백발의 노인이 서 있다. 1941년생. 그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동작을 ‘매일’ 한다. 위대한 창조자들의 생활 습관을 모은 책 ‘리추얼’에서 트와일라 타프가 쓴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느꼈던 전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레그 워머를 신고 후드티를 걸치고 모자를 쓴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세우고 운전사에게 91번가와 퍼스트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내 의식은 매일 아침 체육관에서 하는 스트레칭과 웨이트트레이닝이 아니다. 내 의식은 바로 택시이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내 의식은 끝난다.”

만약 신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기도의 내용에 대해 고민해 볼 일이다. 불멸의 걸작을 쓰게 해달라는 기도는 들어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매일 쓰고 읽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만약 기적이 있다면 나는 매일 하는 행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리추얼’에는 작가들마다의 습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르도 다양하다. 스티븐 킹은 하루 2000단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는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자만하지 않으려고 그날 쓴 단어의 수를 기록했다. 앤디 워홀은 친구인 팻 해켓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24시간 동안 겪었던 모든 사건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얼마만큼의 돈을 썼으며, 어떤 소문을 들었고, 어떤 파티에 참석했는지에 대해 빠짐없이 전해주었다. 전화는 보통 한 두 시간을 넘겼는데, 해켓은 워홀의 모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뒀다. 이 일기의 시작은 세금 정산이었지만, 한 예술가의 내면을 보는 가장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 워홀은 저장 강박증이 있었다.

흥미로운 식습관들도 이 책에 가득하다. 사르트르는 점심시간에 1리터의 포도주를 마셨고, 두 보루가 넘는 담배를 피웠다. 발자크는 반드시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셨다. 베토벤은 새벽에 일어나 잠깐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작업에 돌입했는데, 아침 식사는 직접 준비한 커피였다. 베토벤의 기준에 따르면, 한 컵에는 반드시 60개의 커피 빈이 있어야 했다. 그는 커피 빈의 숫자를 직접 하나 둘 세어 마셨다.

매그레 반장 시리즈로 잘 알려진 ‘조르주 심농’이 쓴 책은 모두 425권. 그는 성적 에너지가 창작의 불쏘시개라 믿었기 때문에 자신과 잠자리를 한 여자들의 숫자를 기록했다. 심농은 작품 하나를 끝내기 위해선 1.5리터의 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 작품을 시작하기 전과 끝낸 후에 체중을 달았다.

작품의 독창성과 예술가의 광기는 비례하는 걸까. 이쯤되면 예술가들이란 이상하고 방탕하기 그지 없단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는 칸트나 헨리 밀러처럼 규칙적인 습관이 야망의 증거라는 걸 증명한 작가들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칸트는 ‘성격’은 긴 세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증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위대한 철학자가 잿빛 코트를 입고 스페인 지팡이를 손에 쥐고 집 밖으로 나오면, 이웃들이 정확히 3시 30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조르주 상드는 성인이 된 후에 매일 밤 20페이지 이상의 원고를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작업한 후, 정확히 9시에 잠들었는데, 그가 낮잠용으로 듣는 음악은 요요마와 클리블랜드 쿼텟의 시디였다. 앞에서 말한 트와일라 타프는 습관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였다. 그녀는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란 책에서 높은 창조적 수준에 이르기 위해 견실하고 좋은 작업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내 인생을 통털어 그 어떤 사람보다 리추얼에 대한 가장 강력한 말을 한 사람은 미국의 화가 척 클로스였다. 나는 스물 한 살 이후, 이 사람의 말을 늘 되새기기 위해 노력했다.

영감은 아마추어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작업실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한다.

소설은 ‘엉덩이’로 쓴다는 황석영의 말 역시 이것과 같은 문장이다. 결국 예술의 세계에 ‘요행’이란 없는 셈이다.




백영옥 서울 출생. 광고쟁이, 서점직원, 패션지 기자를 거쳐 작가. 소설 『스타일』 , 『다이어트의 여왕』,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7시 조찬 모임』 , 『아주 보통의 연애』, 『애인의 애인에게』를 썼으며 인터뷰집 『다른 남자』 와 산문집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냈다. 소설을 쓰는 일이 고독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명랑한 노동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예술가라기보다 직업인에 가까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의 사람. 요즘 mbc fm 95.1 에서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의 진행자로 출근.


백영옥_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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