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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7.27 조회 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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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인+] 춤과 건축: skip된 신체인가, skip된 공간인가

[춤인+] 춤과 건축



skip된 신체인가, skip된 공간인가

양은혜_기획자, 저술가

최근 한 건축가와 ‘극장의 안과 밖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에서 안무가는 무대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한 대화를 짧게 나눴었다. 이 질문에 대한 여운은 극장 밖에서 퍼포먼스를 했던 안무가들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극장 밖에서 극장성을 더 고민했었다, 이때 극장성은 시간에 대한 집중도였다, 퍼포먼스를 했는데 공연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퍼포먼스와 공연 모두 같은 말 아닌가, 야외에서의 한 퍼포먼스에서는 퍼포머의 에너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퍼포먼스라는 경계성도 일어나지 않았다.’
극장 밖에서 퍼포먼스가 이뤄졌다고 하여 모두 장소특정형공연은 아니었다. 퍼포먼스의 의도이자 무용수들을 움직이도록 하는 기반이 장소가 아닌 다른 요소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주제에 따른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음악, 감정 등의 관계를 무대장치로 설치하는 극장의 시스템에 익숙해진 안무가들이 다른 환경에서 작업을 할 때 건너뛰게skip 되는 요소들은 무엇이며 익숙한 무대 환경에서 소외skip되는 신체의 기억은 무엇인가.



"Listen to the space."


이 말은 지난 6월 서울무용센터 국제레지던시 아티스트 워크숍에서 윤지현안무가가 참여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동안 여러 차례 제시한 명령어이다. 이 말을 들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자신의 근육의 힘과 내부에서 외부로 발산하던 에너지로부터 힘이 풀리며 새로운 긴장상태를 나타낸다. 이때의 긴장상태란 무용수의 신체와 외부 환경 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즉 ‘Listen to the space.’라는 명령어를 듣자마자 무용수들의 몸은 공간과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 이때의 외부 환경, 공간은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스튜디오의 너비와 높이, 형태일 수 있으며 자신과의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다른 무용수들일 수도 있다.
쿄고쿠 토모히코안무가는 워크숍에서 무용수들에게 “내 몸의 중앙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 나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축을 인지하고 움직여보자.”라는 과제를 준다. 무용수들이 단순히 움직이는 것과 다르게 자신의 신체를 관통하는 축을 두고 움직일 때 중심이 생기는데, 중심으로부터 생기는 거리의 길이와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몸의 중심들은 다른 움직임의 결을 짓는다. 그러나 두 명의 무용수 혹은 여러 명으로 이뤄진 그룹에서, 서로의 축과 이 축의 그룹 중앙에 존재하는 중심축을 인지하고 움직였을 때에는 서로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공간의 움직임에 따라 축의 위치도 바뀌며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자의 워크숍에서 리듬이 보였다면, 후자의 워크숍에서는 패턴이 드러났다.



리듬과 패턴


리듬은 ‘규칙적인 변화의 반복’에 의한 움직임으로 그리스어 ‘rhythmos’라는 ‘흐른다’를 어원을 기원으로 한다. 패턴은 사고와 행동, 글의 일정한 유형이나 양식 또는 점, 선, 면, 색의 구성이나 이것들의 질서 있는 배열이다. 리듬이 음악에서 기본 요소로 기능한다면 패턴은 조형적인 요소로 사용된다. 이 둘은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시간을 읽는 방향으로 전자는 수평방향, 후자는 수직방향을 보인다. 리듬이 시간의 흐름, 과거의 규칙적인 변화의 반복이라는 공식에서 미래로 연결되듯이 패턴은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양식이다.
리듬과 패턴은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데 앙리 르페브르와 알렉산더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말한다.



리듬은 기본적으로 스타일(사회학에서 말하는 양태form와 같음)이지만, 다양한 관계를 맺는 얼개를 보여 주는 관계적 스타일이다. 가령, 심장의 리듬이 빨라지는 것은 내 다리가 많이 움직이는 것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양태이다. 심장의 리듬과 다리의 리듬은 이렇게 이어지면서 내 몸의 지금 상태(현전)를 드러낸다. 리듬은 ‘고저, 강약, 장단 등 움직임이 율measure’로 표현된다. 그것은 개별적일 수 있고(동일리듬성), 여러 개가 어우러진 것일 수 있다(다리듬성 혹은 복합리듬성). 또 한쪽 방향으로 패턴이 계속되어 나가는 선형일 수 있고(선형적 리듬성), 회귀하면서 반복하는 순환형(순환적 리듬성)일 수 있다. 복수의 것이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전체 리듬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조화형(조화리듬성)일 수 있고, 어긋나고 파열하는 부정형(부정리듬성)일 수 있다. 작은 리듬이 만드는 미시형(미시 개별형 리듬성)일 수 있는 반면, 여럿을 아우르고 통일하는 거시형(자기 리듬성)일 수 있으며 동시에 남의 리듬(타자리듬성)일 수 있다.1)

어떠한 패턴도 고립된 독립체가 아니며, 각 패턴은 오직 다른 패턴들의 지지에 의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상위의 패턴에 외연 지어져 있으며, 같은 크기의 패턴들에는 둘러싸여 있고, 하위의 패턴들을 내포하고 있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하나의 기본적인 세계관과 같다. 즉, 무엇인가를 만들 때 우리는 그 무언가를 따로 고립시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주변의 세계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무언가는 거미줄 같이 연결된 자연 속에서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2)



Break the rhythm!3)


리듬이 깨지는 순간은 어떤 상황인가? 고의적으로 리듬을 깰 수 있는가?
무대에서 리듬이 깨지는 순간은 무용수가 음악을 놓쳤을 때, 또는 속도나 고저 등의 차이로 타이밍을 놓쳤을 때 등일 것이다. 리듬이 깨지는 순간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연습실에서는 많은 신체 훈련이 이뤄지는데 신체에 얼마나 리듬을 지키는 훈련이 쌓여있느냐에 따라 리듬으로의 회귀는 자연스럽고 재빨라진다. 그 외에 의도적인 리듬파괴는 현대예술 혹은 작품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리듬파괴가 허용되기도 한다. 반대로 안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무용수들의 습관적인(이유 없는) 움직임들, 테크닉의 교육으로 익숙해진 신체의 장식적인 움직임들을 제하였을 때 나타나는 벌거벗은 움직임naked movement, 그 사람만의 움직임이 나오는데 이때의 움직임에는 그 사람의 성향, 그의 몸에 배어있는 문화와 정서 등이 비춰진다.
무대가 아닌 일상에서는 어떠한가?
연인과 헤어졌을 때, 가까운 지인이 사망했을 때, 사고가 났을 때처럼 지속되어 오던 시간이 멈출 때가 있는 반면, 청혼을 받거나 출산을 하거나 복권이 당첨되는 등 보편적인 시간의 속도와 리듬이 전복되거나 변화되기도 한다. 흔히 드라마 영화를 보거나 소설에서 리듬이 변화되었을 때 작품 속 인물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그 캐릭터의 선명도와 감동의 부피가 달라지는데 이는 작가가 일상의 리듬을 얼마나 심도 있게 관찰하는가에 따른다. 무대와 일상공간에서 일어나는 위의 상황들을 통해 리듬을 인지하고 리듬에 참여하는 주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새로운 리듬들을 만들어 가는데 이러한 시간의 지속성을 통해 리듬은 관계, 또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어 나간다.



Find the new way4)


지금 나의 신체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과 경험을 통해 관찰과 측정 그리고 축적된 경험을 통한 신체의 상태이다. 신체가 듣고 있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공간, 일상생활의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로 인해 측정된 공간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문화 등이 있을 것이다. 몸은 다른 환경에서도 그 기억들을 출연시킨다. 이는 내가 규정하는 어떠한 공간마다의 장소성, 경험에 의한 사물의 규정으로 이것은 공간과 사물을 대면하는 행위 등에서 나타난다. 패턴화된 신체의 기억은 패턴을 강화시키던 기존의 환경과 달리 낯선 환경과 충돌하였을 때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변형된다.



Hofesh Shecter <SUN> trailer5)



무대


특정 지역이나 공간에 갔을 때 그곳에서 활동하거나 거주하는 사람에게 ‘여기는 너의 무대지?’라고 말하거나 나와바리なわばり라고도 표현하는데 이 두 단어는 공간을 구획하여 경계를 정한다는 공통점 하에 그 사람의 정서와 문화, 행동 등이 맺은 관계성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특정 공간, 즉 무대는 행위와 공간의 관계가 잘 드러나야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통 보편적인 무대에서 이뤄지는 무용은 공간보다 음악을 해석하는 데에 집중하는데 음악을 잘 해석하는 무용수는 신체도 잘 움직인다. 움직임에 따라 발산되는 신체의 에너지와 감정이 음악을 통해 고조된다. 음악의 리듬과 각 사운드의 질감이 갖는 차이는 빈 무대에서도 변이되는 공간성을 나타낸다. 기존 음악을 사용, 움직임에 맞는 음악을 작곡, 또는 현장에서 사운드디자이너가 무용수의 움직임과 공간의 상태를 조율하며 라이브로 연주하기도 하는데 관객도 신체의 움직임과 음악만으로 무용수와 공간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무용수에게 음악은 마치 wifi에 비유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극장 무대를 벗어났을 때, 그 공간이 도심이거나 일상공간이었을 때 무용수의 신체는 그곳이 무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 이 때 무대의 패턴은 외부공간을 듣고 기존의 리듬을 깬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무대가 무대로 되지 못할 때 skip된 신체는 skip된 공간, skip된 관객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용과 건축


신체와 공간의 상호연관성이 무용과 건축으로 읽히게 되면서 분야와 분야를 맺는 정의,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간의 몸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땅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무용과 건축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다. 그러나 그 구조물은 인간의 몸과 생활을 위한다는 건축 목적에서 신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무용과 건축은 땅을 기반으로 하여 중력을 어떻게 조율하고 또는 순응할 것인가라는 기본 전제하에 신체와 외부 환경과 맺는 관계의 구축성, 신체로부터 또는 신체를 통해 정제된 분위기ambience는 위에서 안무가가 무용수와 공간의 관계성을 갖도록 명령했던 말 ‘listen to the space'와 유사하다.
이는 나와 공간, 나와 타자의 축의 위치가 변화되며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조와 장소 그리고 신체가 서로 상호 소통하는 모습이다.
신체와 공간의 상호관계로 만들어지는 움직임, 축을 ‘기준’으로 해석하여 이를 분야, 지역, 커뮤니티 등에 대입하였을 때 개개의 기준과 서로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중심기준들은 스튜디오를 넘어 외부, 도시에서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1) Henri Lefebvre. 정기헌역, 『리듬분석』, 갈무리, 2013.
2) Christopher Alexander·Sara Ishikawa·Murray Silverstein. 이용근·양시관·이수빈 역, 『패턴 랭귀지』, 인사이트, 2015.
3) 서울무용센터 상반기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 중 윤지현안무가의 워크숍에서 사용하였던 말
4) 위와 같음
5) 신체와 음악만으로 연출되는 무용수의 상태와 공간에 대한 예시로 영국안무가 Hofesh Shecter의 작품의 트레일러(영상기법이 포함되었으나 무용공연 기록용영상은 보통 원거리에서 촬영되어 빈공간, 신체움직임, 음악이 돋보인 영상으로 선택함).




양은혜 성균관대에서 무용과 문학, 문화를 전공하여 안무가, 무용대본작가로 활동, 무용월간 및 건축기자를 역임하였다. 현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편집위원, 공연기획 및 드라마투르기, 안무기록과 무용디지털아카이브 운영, 출판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facebook.com/choreographyview


양은혜_기획자,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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